김효성 목사


3. 근본주의의 성경

자유주의와 신복음주의와의 갈등에서 근본주의가 가진 대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주의와 신복음주의로부터의 성별 혹은 분리(分離, separation)이었다. 우리는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어야 할 때가 있고 그 교제를 끊어야 할 때가 있다고 본다.

1) 자유주의로부터의 분리

첫째로, 근본주의는 자유주의로부터 분리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그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주장이다. 성경은 분명히 불신앙으로부터 분리할 것을 말씀했다. 고린도후서 6:14-18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세상과 교회,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 사이에는 명확한 선이 있다. 교회는 성도들의 교제이다. 그러므로 교회적 교제, 영적 교제에는 분명한 한계선이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초청되고 있지만, 아무든지 교회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성경은 우리에게 이단자들로부터 분리하라고 교훈했다. 로마서 16:17, 18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너희가 배운 교리 혹은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디도서 3:10절은,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고 말씀했다. 요한이서 7-11은 이렇게 말한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 . .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유다서 3-4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고 말씀했다. 이단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단과의 분리는 꼭 필요하다. 이단은 저주 받을 일이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또한 이단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다: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딤후 2:17, 18).

또한 이단은 멸망케 할 이단이다: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 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벧후 2:1).

이단의 부류에 속하는 자들은 천주교인들을 비롯하여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안식교, 크리스챤 사이언스, 통일교 등 이단 종파에 속한 자들뿐만 아니라, 특별히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가진 자들이다. 20세기 초, 교회의 배교에 대항하여 싸웠던 메이천은 자유주의자들과의 분리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가지 사실이 완전히 명백하다. 즉 자유주의자들이 기독교인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자유주의가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은 여하튼 완전히 분명한 것이다. 또한, 그것이 그러하다면, 자유주의와 기독교가 계속 동일한 조직체 안에서 전파된다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회 안에 있는 그 두 부류들의 분리는 이 시대의 절실한 요구이다.”

또한 그는 배교된 교회로부터의 분리의 정당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자유주의파가 실제로 교회의 기관들을 완전히 장악한다면,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은 그 교회의 활동을 계속 후원할 수 없을 것이다 ... 만일 자유주의파가 실제로 교회를 장악한다면,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물러설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그는 신복음주의적 타협의 죄에 대해 말하기를, “오늘날 가장 나쁜 죄는 당신이 기독교 신앙을 동의하고 성경을 믿는다고 말한 다음, 기독교의 기본적인 사실들을 부인하는 자들과 협력하고 타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교회들은 건전하지 않다. 그 교회들은 배교적이거나 적어도 타협적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적 교회들을 포용하는 연합 전도활동들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 비록 그러한 활동들이 겉보기에 결실이 있는 것 같을지라도, 성경이 그러한 잘못된 교제와 연합을 금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반대해야 한다. 교회의 일차적 의무는 외적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실한 순종이다. 기독교는 물량주의나 숫자주의나 실용주의(實用主義)가 아니고 하나님 중심의 진리주의이다.

오늘날 기독교계는 대 교단들이 자유주의화 된 상황이므로 그들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교회협의회(WCC)나 각 나라 안의 교회협의회(NCC)는 명백히 불건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연합활동들을 반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유 보수를 망라한 초교파적 연합 집회들, 부활절 연합예배, 연합 성찬식, 성서공회, 찬송가 공회, 방송국 등의 연합활동들은 옳지 못하다. 보수교회들 간의 초교파적 연합 활동들은 가능하고 필요하지만, 보수적 교회와 자유적 교회 간의 연합활동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두움의 일에 참여치 말라”(엡 5:11)고 말했고 “거기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고 말했다(고후 6:17; 계 18:4).

2)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

근본주의는 또한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도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을 고의적으로 포용하고 협력하는 저 타협자들을 계속 용납할 것인가? 그들에게도 어떤 징계와 교제의 단절이 필요하지 않은가? 근본주의자들은 그렇다고 확신하였다.

이것은 옛날 영국에서 청교도 운동이 일어났을 때 비국교도들 혹은 분리주의적 청교도들의 신념과 비슷하였다. 근본주의자들은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의 성경적 근거를 데살로니가후서 3:6, 14-15에서 찾는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무질서하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이단을 배격하라는 사도적 명령을 고의적으로 거역하고 자유주의 이단자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교제하는 신복음주의자들은 교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고의적 불순종자들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들이 이단이 아니고 참된 성도요 형제들일지라도, 교회는 그들의 불순종과 타협적 태도를 묵인하거나 용납하지 말고 그것을 책망해야 하고, 성경의 교훈대로 그들과의 교제도 단절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교리적 이단이든, 윤리적 죄악이든 간에, 오류와 악은 누룩처럼 교회 안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악의 제거, 악으로부터의 단절이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5:6절,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갈라디아서 5:9절,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디모데후서 2:17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비록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화해자이시지만, 비록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우리의 진정한 형제이겠지만, 비록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우리와 함께 천국에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회개치 않는 악에 대한 적절한 권징은 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명령이다. 정당한 권징은 성경적 교회가 마땅히 성실히 실행해야 할 의무이다. 성경은 잘못된 자들과 “사귀지 말고 함께 먹지 말고 내어 쫓으라.”(고전 5:13)고 말했고, 또 그들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고 명령했다 (살후 3:16).

그러나 교회적 교제의 단절이든지, 개인적 교제의 조심이든지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덕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교제의 단절은 먼저 성실한 노력을 전제해야 한다. 잘못의 교정을 위해 개인적인 권면이나 교회적인 합법적인 노력을 먼저 성실히 행해야 한다. 불가피한 분리의 때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성급한 분리는 교회의 개혁이나 갱신에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다. 더욱이, 신자 개인의 경우에는 교회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 즉 분리해야 할 교회에 상응하는 건전한 보수적 교회가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항상 겸손과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한다. 미움이나 영적 교만은 그 어떤 죄와 오류 못지않게 큰 죄악이다. 우리의 우리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내가 남보다 좀더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참신자는 어느 때든지 결코 교만할 수 없다. 갈라디아서 6:1절,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으라.” 디모데후서 2:25, 2절,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15절, “[고의적인 불순종자의 경우] 그들을 원수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4. 근본주의의 초교파적 성격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여 말한다면, 우리는 근본주의가 초교파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우리는 개혁주의자이지 근본주의자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개혁주의라는 말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개혁주의라는 이름 아래 신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혁주의라는 말 이상의 어떤 용어를 필요로 한다. ‘근본주의’라는 말은 바로 이런 필요를 위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자유주의적 배교와 신복음주의적 타협을 반대하고 순수하게 성경적 좁은 길을 추구하는 입장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그러므로 근본주의는 간단히 정의하자면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와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입장이다. 자유주의는 명백히 이단 사상이다. 그런데 이 이단적 사상이 현대 기독교회들 속에 널리 퍼져 있다. 유럽 교회의 영적 상태는 매우 어둡고 배교적이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북침례교회(ABC), 남침례교회(SBC), 연합 감리교회(UMC), 합중국 장로교회(PCUSA),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등 역사적 대 교단들은 대체로 자유주의적이다.

한국 교회의 경우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는 처음부터 자유주의적이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은 상당히 자유주의적이며,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측)는 예전부터 자유주의적이었고, 대한기독교성결교회(기성측)와 대한기독교침례회(기침측)도 상당히 자유주의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평가는 위의 교단에 속한 모든 목사들과 성도들이 다 자유주의자들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 순진한 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 교회들의 교역자 양성원인 신학교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는 입장이 아니다. 또한 그들 교회들 안의 다수의 목사들은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를 지키고 그 신앙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버렸고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였거나 그것을 포용하는 넓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명백히 이단이기 때문에, 성경적 기독교회들은 자유주의 이단을 배격하고 자유주의자들을 교회에서 출교시켜야 마땅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근본주의는 성경적으로 바르고 정당한 입장인 것이다. 개혁교회도 역사적으로 권징의 성실한 시행을 참교회의 표지로 간주했기 때문에, 근본주의는 이런 점에서 개혁교회의 입장에서도 역사적 지원도 가진다.
 

에드워즈 영(E. J. Young, 1907-1968)


미국의 보수적 구약학자이었던 에드워드 영은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에 대하여, 신복음주의는 전도와 학문과 교육을 강조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것[신복음주의]은 매우 중요한 교회의 교리와 신앙을 위한 활기찬 투쟁의 필요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강조한다. . . . 그러면 신복음주의가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해답인가? 우리는 아니라고, 강조해서 아니라고 대답한다.

여기에 한 일시적 현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빨리 지나갈수록 교회를 위해 더 유익하다 ... 근본주의 안에는 훌륭한 많은 점들이 있고, 만일 우리가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를 당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주저도 없이 근본주의를 택해야 할 것이다. 근본주의는 신앙의 변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관심은 참으로 성경적이다 ... 그것[근본주의]은 실수들을 범했으나, 외쳐야 할 적절한 때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저 조심성 있는 중도파들이 범한 것과 같은 그렇게 큰 실수는 아니었다."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는 물론 현실적으로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많은 진실한 사람들이 혹은 무지해서 혹은 연약해서 성경의 교훈을 성심으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그런 사상을 가진 자들과의 교제를 정당하게 여기는 것은 분명히 자유주의 이단에 대한 타협이며 이단을 배격하라는 주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다. 성경의 교훈을 고의적으로 불순종함으로써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형제들에 대해서 교제를 단절하라고 성경이 가르치기 때문에(살후 3:6, 14), 근본주의가 신복음주의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바르고 정당한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믿는 이들은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에 대한 바른 지식과 확신 뿐만 아니라, 이 배교적 시대에 대한 바른 분별력과 그 배교를 대적하는 바른 입장을 가져야 한다. 오늘 시대에는 바른 분별력과 바른 입장을 가진 목사들과 교회들과 단체들이 필요하다. 특히, 목사들을 양성하는 신학교들은 바른 분별력과 입장을 가지고 목사 후보생들을 성실히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진실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바른 분별력과 입장을 가진 교회를 선택하고 거기에 소속해야 할 것이다.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은 ‘개혁신학’에서 잘 표현되어 있고 오늘날의 배교와 혼란에 대한 바른 분별력과 입장은 소위 ‘근본주의’에서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근본주의적 개혁신학의 부흥을 갈망한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배교와 신복음주의적 타협을 바로 인식하고 버릴 때에만 가능한 부흥이다. 성경적으로 올바른 근본주의적 장로교회들의 설립과 초교파적 교제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절실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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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목사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총신대학 신학연구원, 훼이스(Faith) 신학대학원(Th.M. in N.T. 미국 필라델피아), 밥 죤스(Bob Jones) 대학교 대학원 졸업(Ph.D. in Theology,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공부했다.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합정동교회(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담임목사이다. 신구약 성경을 주석하여 인터넷(http://www.oldfaith.net/01exposit.htm)을 통해 보급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견실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신학자이다. J. G. 메이천, 『신약개론』을 비롯하여 많은 10권 이상의 외국 신학자들의 좋은 저서들을 번역하여 한국 교회에 보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