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도 운동의 영성은 힌두교의 쿤달리리 현상과 유사

신사도운동가들이 이야기하는 “성령세례”와 “기름부으심”이 나타날 때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쓰러지는 현상이다. 주로 손을 이마에 대면 쓰러진다. 가만히 있다가 저절로 쓰러지기도 한다. 둘째는 주체하지 못하는 웃음이다. 그러고 나서 우울증이 사라졌다면서 간증하는 사람도 있다. 셋째는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는 현상이다. 이 현상이 하도 많아서 신사도운동가들은 자신들의 부흥을 새 포도주 운동이라고 비유한다.

넷째는 괴상한 방언을 흥얼거리는 현상이다. 나는 그간 신사도운동을 살피면서 방언이 연약한 영혼들이 병들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서 나타나는 방언 등의 영적인 현상을 틀림없는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의심하면 스스로 괴리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다음과 같은 우매한 삼단논법이 제시된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거듭난 사람에게는 귀신들이 들어가지 못한다! 나도 이미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닌 사람이고, (집사직도 받았고), 더 은혜를 받기 위해 여기왔다! 고로 나에게는 귀신이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서 더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꼭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성령의 인치심(엡 1:3)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나는 진리의 영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거짓된 종교적 감성에 포로가 되어서 이상한 신앙의 용사로 성장하는 교인들을 적잖이 보았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집회에 참석하여 신비한 현상들을 경험하는 일이 많다.

신사도운동의 집회에는 이러한 주된 네 가지 현상들 외에도 개와 다른 짐승 같은 행태, 구르고 뛰기, 고개를 비틀거나 척추를 심히 구부리는 증상, 누워서 팔딱거리는 현상, 지식의 말씀이라고 포장하는 점(예언?)하는 능력 등의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런 일이 성령 하나님의 고유한 사역이라면 왜 지난 2,000년 동안 잠잠하다가 갑자기 이런 괴기 시리즈가 벌어지는 것일까?

힌두교의 쿤달리니와 흡사한 신사도운동

위에서 언급한 이상한 일들이 손기철 장로의 사역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그가 일으키는 이적들과 그에게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을 연구하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 성경과 바른 신학과 역사적인 건전한 부흥운동의 전례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그러한 현상들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 힌두교의 영성운동인 쿤달리니 각성(Kundalini Awakening) 현상을 알고 나면 그러한 의문스러운 일들이 해소된다는 사실이다. 힌두교에서 성행하는 영성이 새로운 성령세례와 기름부으심으로 포장되어 하나님의 교회 속으로 유입된 신사도운동과 상당히 유사하다.

풀러신학교의 교수였던 유명한 피터 와그너(Peter Wagner)그 작업을 포장하기 위해 “성령의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of Holy Spirit)이라는 이론을 주창했다. 피터 와그너에게 새로운 신학의 모델이 되었던 빈야드 운동의 “능력전도”(Power Evangelism)을 주창한 존 윔버(Joyhn Wimber)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쿤달리니 각성이라는 것이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인도의 종교와 관련된 시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쿤달리니는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도 이미 가까이 다가와 있다.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 하나의 예가 “요가”(Yoga)이다. 사람들은 요가가 근육을 풀고 관절을 유연하게 만드는 단순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요가협회의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다음의 내용을 읽으면 쿤달리니가 우리 주변에서 실제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쿤달리니가 각성되면 육체와 정신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온다. 우선 육체적인 변화는 병의 요소가 일체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런 현상은 우주의 원초적인 힘이라는 쿤달리니의 강력한 생명력이 세포에 가득 차기 때문인데, 병이 있던 사람도 깨끗하게 치유된다. 그 뿐만 아니라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머리가 아픈 적이 없고, 항상 가을 하늘처럼 맑기만 하다. 이처럼 거의 완벽한 건강은 바로 고차원(高次元)의 명상(瞑想)을 수련(修練)하도록 마련된 것이다. 육체의식을 망각할 정도의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미세한 통증이나 평상시와 다른 조그마한 이상감각이 몸에서 느껴진다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이처럼 힌두교의 쿤달리니에 대한 개념은 실제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쿤달리니 에너지가 평상시에는 인간의 엉덩이 꼬리뼈 부근에서 잠재하는 상태로 존재한다고 한다. 또 어떤 문헌에서는 쿤달리니 에너지가 남성의 음경을 중심으로 뱀처럼 감겨져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쿤달리니 에너지를 다른 말로 “뱀의 능력”(the Serpent Power)이라고 한다. 다음은 쿤달리니를 경험한 스테니스라브 그로프(Stanishslav Grof)라는 사람이 쓴 글의 일부이다.

“그들의 등뼈에는 아래로부터 위로 뜨거운 열이 올라가면서 강력한 에너지를 느낍니다. 그러면 그들의 몸은 발작을 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흔들이고 몸이 꼬입니다. 그들의 감정은 엄청난 에너지로 인하여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심한 감정의 기복을 나타냅니다. 분노, 염려, 슬픔, 기쁨, 황홀경에 사로잡힘 등의 모습이 타나나지요. 이 과정에서 각 개인들은 그들의 몸과 정신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오직 쿤달리니 에너지의 강력한 움직임이 이들을 다스릴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 중에는 의도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웃음들, 눈물들, 방언들, 전에 알지 못했던 노래들을 부르는 현상들, 영적인 주문을 외는 모습들, 요가 자세를 취하는 모습들, 다양한 동물들의 소리들을 내거나 동물들처럼 움직이기도 합니다.”  

위의 내용을 보면 신사도운동에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고 신비하게 미화하는 모든 현상들이 힌두교의 쿤달리니가 활성화될 때에 나타나는 모습들이다. 쓰러짐, 비틀거림, 발작적인 웃음, 방언, 이상한 노래(방언찬양), 동물의 소리와 행동, 몸의 떨림, 극도의 황홀경 등 새로운 성령세례이고 성령세례 받은 자들만의 특권인 성령의 권능의 나타남(기름부음)이라고 홍보되는 이 모든 행태가 알고보니 힌두교의 쿤달리니 각성과 상당히 흡사한 것이다. 미국의 한 신사도운동 전문가가 제작한 다음의 영상을 보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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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부터 손기철 장로의 사역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들이 어떻게 힌두교의 쿤달리니 현상과 연관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손기철 장로의 경험과 주장들 중에는 성경과 신학과 건전한 기독교의 교리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쿤달리니 각성에 대한 정보와 유사한 점들이 많다.

손기철 장로의 이적 1)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한다”

손기철 장로는 기름부으심이 자신을 통하여 나가고, 또한 자신이 접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그의 책에는 그러한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들이 많다. 손기철 장로의<기름부으심>이라는 책 12 페이지에 나오는 다음의 내용은 자신에게서 기름부으심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나갔고,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로 전이되었음을 보여준다.

“최근에 나는 100여 명이 참석한 대한항공신우회 수련회에서 1박 2일 동안 이 내용을 강의하고, 그 분들에게 기름부으심을 흘러보냈습니다. 2일째 실습시간에 놀랍게도 동일한 기름부으심이 그들 대부분에게 임했으며, 그들이 다른 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성경 어느 부분을 통해 이러한 현상이 기독교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경적인 현상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무리 찾아도 성경 속에서 이러한 현상의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외관상 약간의 유사성을 보이는 내용이 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전도 당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였다는 내용이다(행 8:17). 이 부분을 신사도운동가들이 성령의 권능과 성령의 은사를 딴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의 성경적 근거로 주장한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와 같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교회를 설립하고 예수의 십자가의 새로운 계시를 선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시의 신적기관이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성령이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이 즉시 또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일을 했다는 내용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의 이 내용이 손기철 장로를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권능(기름부음?)의 전이현상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손기철 장로에게서는 이러한 이적이 나타난다. 그 외에도 다른 많은 신사도운동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성경과 바른 신학과 건전한 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결코 성령의 역사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다. 손기철 장로를 통하여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이 힌두교의 쿤달리니 각성에 대한 이교도적 영성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것이다.

쿤달리니가 각성되는 계기는 크게 다음과 같다고 한다. 첫째, 전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쿤달리니가 저절로 웃음, 환각, 예언, 방언, 동물의 소리, 비틀거림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무속인들의 세계에서 학습하지도 않았고, 평소에 아무런 증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신 내림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둘째, 요가와 같은 쿤달리니 각성을 목적으로 하는 수련활동을 통하여 쿤달리니가 활성되어 그 증상이 나타나다. 신내림을 받기 위해 애쓰던 사람이 신을 받아 무당이 되는 경우와 같다.

셋째, 이미 자신의 신체 내에서 쿤달리니가 각성되어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쿤달리니가 각성된 선생을 구루(Guru)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서 구루는 쿤달리니 귀신능력을 부리는 요사스러운 자들이다. 구루들은 이마를 때리거나, 신체의 다른 부위를 만지거나, 눈을 마주보거나, 대화를 통하여 수련생들에게서 쿤달리니 에너지가 활성화되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부린다.

손기철 장로가 말하는 것처럼,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포장되는 현상을 어떤 사람을 통하여 경험한 사람들이 후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신사도운동가들의 대표적인 현상은 구루를 통하여 살아나는 쿤달리니에 대한 정보를 감안하면 쉽게 이해된다. 먼저 신사도운동의 기름부음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안수를 받거나, 예언을 받거나, 그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감동받으며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그 괴이한 기름부음이라는 것은 성경과 바른 신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표적인 신사도운동가 체안의 사례

다음은 캘리포니아의 추수반석교회(Harvest Rock Church)의 목사이고 대표적인 한국인 신사도운동가인 체안 목사(Che Ahn, 안재호)의 책「성령의 불 속으로」에서 발견한 내용이다. 신사도운동의 대표적인 사도이고 그 세계에서 상당히 영형력있는 위치에 있는 그는 또 다른 대표적인 신사도운동가인 존 아놋(John Anott)이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함으로서 신사도운동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은 현상을 경험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집회 도중 어느 날이었다. 성령님께서 신선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처럼 집회장소를 덮고 지나갈 때 어느 한쪽 부분에 앉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웃는 현상이 일어났다. 내 친구 루는 흥분하여 팔꿈치로 나를 툭 치면서 소리쳤다. ‘우리 쪽으로 오고 있어! 우리 쪽으로 오고 있다구!’ 그때 나는 ‘웃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들이 앉은 곳을 지나가셨을 때, 나는 무언가에 취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웃음은 20분간 계속되었다. 모든 것이 우스웠다. 아무도 우스운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내 앞에 앉았는데, 왠지 그의 대머리가 우습게 보였다. 나는 몸을 기울여 그의 대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는 상관치 않았다. 그 역시 내내 웃고 있었다. 그것은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을 유쾌하게 하는 놀랍고도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때 나는 우울증이 치료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지는 이 현상을 성경과 신학과 건전한 교리들 속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쿤달리니 각성에 대한 정보와 그 현상이 상당히 흡사하다. 왜냐하면 쿤달리니가 각성되어 인간의 두뇌를 지배할 때에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발작적인 웃음이기 때문이다. 먼저 쿤달리니를 경험한 존 아놋이 구루(Guru)의 역할을 했던 것이고, 구루인 존 아놋을 접하면서 체안 목사에게서 쿤달리니가 발동하여 두되를 지배하자 이유 없는 웃음이 터졌고, 그때 우울증이 치유되는 이적도 나타났다. 이러한 간증은 신사도운동의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흔한 것이다.

그렇다면 체안 목사는 이후 어떻게 변했을까? 그 또한 쿤달리니의 능력에 조종당하는 구루의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연 체안은 그렇게 되었을까? 다음의 내용을 보면 체안도 결국 그렇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유력한 신사도운동가로 변한 체안 목사는 부흥집회를 인도하다가 리사(Lisa)라는 1.5세 코리안-아메리칸 크리스찬을 위해 기도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신비한 능력이 나타났다고 한다.

"‘예수님! 주님이 리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녀에게 보여주소서.’ 나는 조용하게 간구하였다. 내가 이 기도를 드리는 순간, 리사는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나를 보고 웃는 것인지 내가 기도한 것에 대해 웃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곧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웃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나는 성령께서 그녀에게 밀물처럼 임하기 때문에 그 웃음이 터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 웨슬리는 떨고 웃는 현상을 사탄의 장난으로 간주했다

이렇게 이유 없이 웃음이 터지는 현상을 어떻게 성경과 건전한 기독교의 부흥운동의 전례를 통하여 설명하겠는가? 어떤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의 부흥운동에서도 이러한 웃음이 나타났으며 웨슬리도 그러한 현상을 성령의 역사로 인정했다고 우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고 전혀 사실이 없다. 웨슬리는 복음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육체적인 현상도 따라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웃고, 펄쩍펄쩍 뛰는 등의 열광주의적인 행동은 사탄의 책략이라고 규정하였다.

웨슬리가 1773년에 인도하였던 어떤 집회에서 한 찬송을 약 30-40회 반복하여 부르자 참여한 몇몇 사람들에게서 몸이 심하게 떨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때에도 웨슬리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그러한 현상이 하나님의 역사를 불신하게 만드는 사탄의 장난이라고 가르쳤다. 웨슬리가 1740년 브리스톨에서 인도하였던 집회에서도 일부 사람들이 주체하지 못하고 웃는 현상이 나타났었다. 그 일에 대해서도 웨슬리는 결코 긍정적이거나 타협하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었다.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웨슬리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자신의 기록에 남겼다.

“나는 몇몇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사탄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들은 웃음의 영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더군요.”

웨슬리가 남긴 위의 말을 보면 웨슬리는 예배 중에 낄낄거리며 면서 웃는 현상을 성령의 역사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 또한 그 집회에 참석했던 한 여성도에게서 숨이 넘어갈 정도로 주체하지 못하고 웃음현상이 일어났었다. 그 일에 대해 웨슬리가 남긴 기록을 보면 “사탄에게 아주 강력하게 사로잡혀서 거의 숨이 넘어갈 때까지 웃었다”라고 말했다. 존 웨슬리는 존 윔버가 1979년 어머니날에 자신의 교회에서 경험하고서 크게 고민했던 그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사탄의 역사임을 분별하였던 것이다.

예배 중에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웃은 현상은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확하게 쿤달리니 귀신이 발동할 때에 나타나는 현상을 증언하는 사람들의 말과 그대로 일치한다. 존 아놋의 집회에서 이유 없는 웃음을 경험하며 우울증이 치유되는 것을 경험하고 신사도운동가가 된 체안 목사가  부흥집회를 인도하며 또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힌두교 구루들이 쿤달리니를 부리는 현상과 유사하다. 지금 전 세계에 힌두교의 영성들이 교회들 속으로 광범위하게 침투하였다. 이러한 이방종교의 영들의 공습을 “성령의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 of Holy Spirit)”이라는 이론으로 미화시킨 사람이 바로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이다. 

손기철 장로에게서 그런 기름부음(?)이라는 현상을 전수 받은 사람들이 얼마 후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동일한 일을 행하는 괴이한 능력이 타나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힌두교의 구루들의 쿤달리니 물결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손기철 장로의 현상 2) “기름부음은 강한 전류가 통하는 느낌을 동반한다”

손기철 장로는 자신에게 기름부으심이 임할 때에 마치 강한 전류가 통하는 듯한 신체적인 느낌이 동반되었다고 기술하였다. 그렇다면 성령의 임하심은 실수로 자동차 밧데리의 두 전극을 붙잡을 때의 느낌과 같은 것일까?

“크리스 해리슨 목사님의 집회 이후에도 나는 기름부으심이 내게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기도 모임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나는 성령님께서 충만히 임재하실 때까지 찬양한 뒤 줄곧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깊은 기도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팔꿈치에서부터 양손가락 끝까지 수만 볼트의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이 불같이 달아올라 너무 놀란 나는 방언기도를 하다 말고 ‘어! 어! 어!’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에 어떠한 감정적, 신체적 느낌이 동반될 수 있다고 나도 생각한다. 나도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터지고 기도가 터지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런데 수만 볼트의 전류가 통하는 듯한 느낌에 대한 간증은 성경을 통하여 설명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간증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 대부분이 빈야드-신사도운동 계열의 집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음은 일찍 빈야드 운동을 받아들인 한국의 기도원에서 일어난 실제상황이다. 손기철 장로가 말한 것처럼 강한 전류가 통하는 듯한 기름부음을 받고서 발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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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러한 현상이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에 관한 말씀들을 통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들은 모두 쿤달리니가 각성되어 구루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쿤달리니를 부리는 것으로 의심되는 빈야드-신사도운동가들이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사람인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의 간증이다. 그도 손기철 장로처럼 강한 전류가 몸에 흐르는 듯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이 일을 경험한 후 그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생겼다고 한다.

“마치 용암의 물로 된 불과 같았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내 몸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붙인 것 같았습니다. 가장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전등에서 전구를 빼다가 그 소켓에 내 손가락을 꽂은 것 같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전등에서 전구를 빼고 대신 손가락을 꽂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전류가 팔을 타고 온 몸을 강타할 것이다. 손기철 장로가 경험한 현상과 동일하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전기충격과 같은 모습으로 경험하는 이런 현상은 신사도운동가들에게 매우 흔한 일이다. 그들은 그 경험 후에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손기철 장로의 현상 3) “방언! 방언찬양! 점하는 예언! 쓰러짐!”

손기철 장로와 다른 신사도운동가들은 방언이 쉽게 나오게 한다. 이는 사람의 능력이 아니고 성령이나 어떤 다른 영이 일하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손기철 장로의 책 <고맙습니다 성령님>의 229 페이지에는 규장 출판사의 대표에게 안수기도 할 때에 자신에게서 기름부으심이 흘러나가는 것을 느꼈다는 내용이 있다.

“여 대표가 나가노에서 기름부으심을 받고 회사로 돌아가서, 전 직원들 앞에서 그 동안 자신의 이성과 지성만을 믿고 성령님을 제한했던 것을 공개적으로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기름부으심을 흘려보내겠다고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그후 규장의 전 직원들은 물론 Godpeople.com의 전 직원이 방언과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감격하여 ‘할렐루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일본의 나가노 집회에서 손기철 장로의 기도를 통하여 방언이 시작된 규장의 대표가 한국으로 돌아와 규장의 전 직원들에게서 방언이 나타나게 만들어 버렸다. 이와 같은 방언 현상이 성경의 어느 부분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까? 오히려 쿤달리니 각성될 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정보와 유사하다. 방언은 쿤달리니 귀신이 작동할 때에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쿤달리니 각성의 현상을 경험하고서 설명하는 스테니스라브 그로프(Stanishslav Grof)는 방언이 쿤달리니와 관련된 현상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이러한 현상 중에는 의도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웃음들, 눈물들, 방언들, 전에 알지 못했던 노래들을 부르는 현상들, 영적인 주문을 외는 모습들, 요가 자세를 취하는 모습들, 다양한 동물들의 소리들을 내거나 동물들처럼 움직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신사도운동가들의 사역에서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이고 흔한 현상이 방언이라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방언이 나타났다고 하여 신비하게 생각하고,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해 버리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방언이 나타나는 현상은 신사도운동집회에서 정말 비일비재하다. 부흥집회를 인도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비틀거리게 하여 사람들에게 성령의 술을 마시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성령바텐더라는 별명을 얻었던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의 집회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도 이런 종류의 괴상한 방언이었다. 다음은 그가 인도한 집회에 참석하여 무려 6시간 동안 술에 만취하여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같이 되었던 한 여성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성도는 낮 12시부터 1시 30분까지 거기 누워있었습니다 ... 여성도는 무려 여섯 시간이나 바닥에 붙어 있었습니다. 일곱 시가 되어서는 영어로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말을 하려고 하면 방언만 튀어 나왔습니다. 여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서 방언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시골길의 돌맹이처럼 흔하다.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서 이런 괴상한 방언이 얼마나 흔하게 나타나는지 더 많은 증거로 설명할 수 있다. 대표적인 신사도운동가(힌두교의 구루) 하워드 브라운과 다른 사람이 유창하게 방언하는 모습을 부여주는 다음의 영상을 보면서 방언에 맹신을 버리고 경각심을 높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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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철 장로는 이처럼 보통 사람으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사실과 정보를 사전에 정확하게 알아맞히기도 한다.

“한번은 집회 전에 아직 비어있는 좌석 주변을 돌고 있는데, 내가 어떤 좌석 앞에 갔을 때 성령께서 ‘이곳에 중국 형제가 앉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히 중간에 확인해 보았더니 정확히 그 자리에 중국 조선족 형제가 앉아 있었습니다.”

 성령님이 이러한 일을 못하시는 분은 아니지만, 예수께서 가르치신 성령에 대한 말씀을 보면 성령은 이러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3,14)

손기철 장로가 성령으로부터 미리 누가 그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들었다는 이야기는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된 유명한 전직 무당의 무속체험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유사하다. 이러한 내용도 쿤달리니 각성 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부산요가협회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쿤달리니가 각성되면 큰 지혜(智慧)의 눈을 뜨게 되고 새로운 창조(倉曹)력을 탄생시킬 수 있다. 비젼(Vision-선견지명), 심령적 체험을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예언자, 성자, 예술가, 시인, 작가, 등의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

손기철 장로의 사역에서 나타나는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현상인 쓰러짐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손기철 장로는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심으로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하여 쓰러진다고 했다. 그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쓰러진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이라고 한 신문 기자에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때 손기철 장로는 역대하 5장의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제사장들이 엎드렸다는 기사와 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이 “내니라”라고 했을 때 로마 군병들이 쓰러졌던 것을 그 성경적인 예로 제시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진 것이 아니고 스스로 엎드렸을 뿐이고 로마 군병들은 예수의 신성을 느끼고 혼비백산하여 나자빠진 것이지 은혜스럽게 쓰러진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손기철 장로의 쓰러뜨림은 성경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또한 쿤달리니 현상과 유사하다. 쿤달리니 에너지의 발동하면 가장 먼저 몸의 기운이 풀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쓰러지면서 환각제를 먹은 것처럼 희열을 느끼면서 웃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우울증이 낫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몸을 심히 떨리기도 한다. 또한 무한한 행복과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신사도운동가들은 이 모습을 성령 안에서 안식한다고 표현한다. 이 모든 현상들이 쓰러짐과 함께 시작된다. 손기철 장로와 다른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서 쓰러진 사람 가운데 어떤 이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바로 이와 같은 현상을 경험했다고 간증하기도 한다.

앞에서 살펴본 이교도적 영성이 초대형 온누리 교회의 치유집회라는 당당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확산되고 있는 신사도운동과 흡사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국 교회의 가장 화려한 부흥의 아이콘이었던 하용조 목사가 후원함으로 더욱 쉽게 전파되었다. 또한 손기철 장로 그 본인이 온누리 교회의 장로라는 사실 또한 이 무서운 일이 의심받지 않고 삽시간에 확산되게 만들었다. 이제 온누리 교회 스스로 자신들이 심고 크게 키운 이 기괴한 나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현명하게 결정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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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