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은 성경 밖에서 영적세계를 체험하는 타종교 사상

나도 코스타에 여러 번 참석했다. 정식으로 등록하여 모든 프로그램을 소화하지는 않았다. 시카고에서 열릴 때, 낮에는 가족들과 함께 시카고 일대에서 휴가를 즐기며, 밤에는 코스타의 오픈 집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이후 코스타를 대표했던 목사들에게서 줄줄이 추문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또 한 사람의 추문이 신문에 났다. 그래서 코스타를 설립한 홍정길 목사께서 매우 한탄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아쉬움이 있다. 코스타 목사들에게서 논문 표절, 돈 문제, 성 문제 ... 도덕성의 하자만 없었으며 그들이 매우 훌륭한 목사인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 바로 그런 점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대표적인 코스타 목사들의 문제는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예수’와 관련된 문제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분들로서 설교도 잘하고 모든 면에서 대단한 분들이다. 그러나 깊이 알고 보면 그렇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난 윤리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다.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분들이고, 코스타를 대표하는 목사들이라면 누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사상을 가졌어야 한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방하는 마귀에게는 크게 위협을 주는 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코스타를 대표하는 목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유명한 코스타 목사들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가르쳤다. 한국 교회를 어렵게 만들었던 중요한 문제들이 코스타의 유명 목사들과 연관되었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서 살려볼 것인데, 오늘은 먼저 다른 종교의 명상의 영성을 끌어들여 성도의 ‘경건’을 위협하였던 분들을 살펴보자.

 

‘영성’은 다른 종교에서 유래한 개념

올바른 믿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 꼭 한번은 생각해야 할 것은 ‘영성’과 ‘경건’이다. 과연 영성은 무엇이고, 그리고 경건이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해 명확하게 요약하는 그 어떤 책도 아직까지 본적은 없다. 나도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마음이 찝찝했으면서도 이 말을 사용했던 적이 많았다. 영성이라는 말은 건강한 신앙을 위해 꼭 추방해야 할 말이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영성이라는 말을 앞장서 사용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태를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이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영성이라는 말은 원래 다른 종교들에서 유래했다. 성경은 ‘경건’에 대해서 말씀하지 영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건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의 역사를 따라 성경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뜻한다. 영성이라는 말은 이방 종교인들이 종교적인 수행정진 과정을 통해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성이라는 개념 속에는 이미 귀신과의 접촉이 내포되었다.

성경은 인간의 내면에 부패와 죄성이 가득하여 자연적 인생으로는 아무 소망이 없다고 한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죄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성을 추구하는 다른 종교들은 인간의 내면에 고귀한 신성이 처음부터 존재한다고 본다. 인간 속에 잠재된 신성을 일깨우는 것이 모든 다른 종교들의 궁극적 목표이다. 다른 종교들에서 중시되는 주문, 금욕, 금식, 고행, 침묵, 명상 등의 수련의 목표는 의식세계를 초월하여 자신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존재(신성)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방 종교들의 영성수련이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영성, 영성수련이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코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기독 신앙이 아니다. 다른 종교의 사상과 영이 기독교 속으로 유입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방 종교들의 궁극적 목표는 ‘열반’, ‘해탈’, ‘도통’, ‘득도’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영성수련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우주의 궁극적인 존재, 즉 신성과 하나 되었음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다른 종교들에게는 이와 같은 영성을 만들어가는(spiritual formation) 공통적인 수련 방법이 있다. 바로 ‘명상’(meditation, contemplation)이다.

다른 종교들이 명상(관상)을 중시하며 매일 명상 수련을 하는 이유는 일상의 의식을 탈피하여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의식(궁극적 실제, 참된 자아, 신성)을 체험하게 만들어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명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외의 다른 모든 종교들은 생각과 마음을 버리고 비우는 명상으로 영성을 만들어 간다. 현대인들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명상을 소개하기 위해 MBC 방송이 제작한 영상을 보자. 다른 종교인들이 영성을 증진시키는 방법인 명상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알게 해 준다.
 


성경은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의식과 생각을 비워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뭔가를 찾아 내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인간의 속에는 아무 소망이 없으므로 인간과 세상을 넘어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성경을 통하여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종교이다. 인간의 영혼과 인격은 이미 타락한 아담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으므로, 이제 갓 태어난 어린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과 영혼이 순전하지 못하다. 인간 속에는 죄와 부패가 가득하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기독교는 죄인에게 보혈과 성령과 말씀을 채우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명상의 영성, 비움의 영성 ... 이런 소리들은 기독교와는 관련이 없는 잡소리이다.

기도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경 말씀과 우리의 삶이 함께 나아가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결국에는 우리의 속을 채우는 것이지, 결코 비우는 것이 아니다. 기도에 대해서 그간 못 들어본 새로운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기도의 목적은 경건을 이루고, 계속 연습하며 사는 것이다.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성령의 역사를 따라 말씀대로 살아가는 경건을 날마다 연습해야 한다(딤전 4:7).

명상, 관상, 묵상을 한다면서 갑자기 스님이나 된 것처럼 마음을 비우느니 어쩌느니 ... 이상하게 기도하면 안 된다. 속을 비우면 반드시 못된 것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명상하는 사람은 반드시 귀신에게 접속될 수밖에 없다. 명상하며 속을 비우는 사람을 보고서 건드리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귀신은 자기의 대장 마귀에게서 심히 매질 당하는 미련퉁이 귀신이다.


영성수련의 끝은 접신

이방 종교의 명상하는 영성의 끝은 귀신체험이다. 명상을 통해 또렷한 의식을 버리고 무념무상의 상태에 들어가면 영적인 존재가 찾아온다. 영성을 얻고자 수련하는 사람 주변에서 기회를 보던 귀신이 수련자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 귀신들이 영성수련자에게 음악, 의술, 예능 등의 특이한 기술을 전수해 주기도 한다. 구원에 이르지는 못해도 세상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나름 심오한 철학을 깨우치게도 한다. 살아가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병을 고치는 재주, 신통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신비한 비방과 주문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종교적인 수련을 통해 뭔가를 터득한(도통한) 사람들에게는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어떤 뭔가가 실제로 나타난다. 기독교에서 성령께서 교회를 섬기도록 신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과 유사하다.

도울 김용옥이 동학운동에 대해 강의하는 영상을 보았다. 동학을 창시한 최수운(1824-1864)이 도를 얻기 위해 수련하다가 특이한 영적인 체험을 했다는 부분을 유심히 들었다. 최수운은 도를 깨닫기 위해 산 속에서 홀로 명상하였고,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찬 물로 목욕하기도 했다. 다음은 도올이 최수운의 득도 장면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몸이 떨리고, 엎어지고, 넘어지고 하다가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하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이방 종교들의 영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요즘 교회에서 ‘기름부음’(성령세례)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천주교에 유입된 명상의 영성

다른 종교들의 명상의 영성이 일찍부터 천주교 속으로 유입되었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행해지던 수도사들의 기도 속에는 다른 종교의 명상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수도사의 영성’, ‘수도원적 영성’이라는 말은 곧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참선하는 불교의 스님들처럼 기도를 했다는 것과 관련된 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관상기도’라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천주교의 관상기도는 이방 종교의 명상이 수도사들의 기도와 관련되어 생겨났다.

▲ 토마스 머튼과 달라이 라마

현대 교회에 유입된 다른 종교의 명상의 펴보려면 천주교 신부였던 신비주의 영성운동가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토마스 머튼은 천주교의 신부였으면서 동양의 여러 종류의 종교의 명상을 통해 이루어가는 영성수련에 깊이 심취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동양 종교들의 명상 수련을 천주교 속으로 도입하여, 천주교 안에서 침묵과 명상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를 접하는 영성운동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전부터 천주교 안에 존재하였던 관상기도가 토마스 머튼으로 인해 더욱 더 관심을 받으며 크게 일어났다. 토마스 머튼은 관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과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며 초월적이며 무한하게 풍성한 근원(Source)으로부터 유출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생생한 깨달음이다. 관상이란 무엇보다 그 근원에 대한 실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만물이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유출되었으므로 관상(명상)을 통하여 존재의 근원을 인식하게 된다는 토마스 머튼의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 하나님, 만물이 하나의 ‘궁극적 신성’으로부터 발출되어 존재한다고 보았던 고대 영지주의에서 유래한 사고이다. 또한 인간과 만물 속에는 우주의 긍극적 존재인 신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상은 현대의 뉴에이지와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들의 세계관이다. 그래서 뉴에지와 다른 종교들은 명상이 우주의 궁긍적 존재를 체험하게 만들어 준다고 보고서 명상(관상)하는 수련을 중시한다. 토마스 머튼은 천주교의 신부였으나 동양 종교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사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리차드 포스터의 레노바레 운동

토마스 머튼의 영향은 천주교를 넘어서 개신교 속으로도 흘러들어왔다. 개신교 안에서 ‘기도의 영성’(?)에 관하여 세계 일등이라고 알려진 리차드 포스터(Richard J. Foster)를 통하여 토마스 머튼의 명상의 영성이 전파되었다.『영적 훈련과 성장』,『기도』,『돈, 섹스, 권력』등의 리차드 포스터가 저술한 책들은 한국 교회와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리차드 포스터의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등장할 때에는 누구도 그의 사상을 의심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은 토마스 머튼의 동양 종교에서 배운 명상의 영성이 리차드 포스터의 책 속에는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레노바레 운동’(Renovare Movement)이라는 것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리차드 포스터의 위험성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레노바레 운동이 한국 교회에서 문제가 되었을때, 리차드 포스터에 대해서 연구한 조진모 교수의 말을 읽어보자.

“포스터는 여러 신비주의자들 가운데 20세기의 최고의 영성가로 알려진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의 말을 그의 책에 즐겨 인용한다. <영적훈련과 성장>에서도 묵상을 어렵거나 복잡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포스터는, 특별한 방법을 배우려하지 말고 자유스럽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유하면서 머튼의 글을 인용하며 소개하였다.”

“퀘이커인 포스터는 가톨릭인 머튼과 나우웬과 사상적 교류를 나누었다. 포스터와 나우웬이 토마스 머튼의 사상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머튼과 나우웬의 신비주의적 가톨릭 사상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관상기도와 기독교 영성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 일반화된 사실이다.”

“포스터는 가톨릭 신비주의자인 머튼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의 개념을 자신의 언어로 새롭게 표현한 것이다. 머튼과 포스터는 동시에 인간의 내면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합일’이라는 신비한 경험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허버트 더글라스(Herbert E. Douglass)도 토마스 머튼의 사상에 찬성하는 포스터의 기도 방법은 동방 신비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로 인하여 뉴에이지와 동방 신비주의, 보편구속설, 범신론으로 혼합된 관상 기도로 축적된 관상 기도가 기독교에 잠식되고 있다고 하였고 하였다.”

▲ 달라스 윌라드(좌)와 리차드 포스터(우)

1988년 미국에서 리차드 포스터와 미국 남가주대학(USC)의 교수였던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 1935-2013)와 레노바레 운동을 시작하였다. 달라스 윌라드는 한국과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최고의 기독교 지성인, 그리고 탁월한 변증가이며 기독교 철학자로 그 명성이 대단하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도 동양의 종교들이 가르치는 명상을 통해 영성을 증진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달라스 윌라드는 동양의 종교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 신성이 내재한다고 믿었고,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영성훈련이 쇠락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리차드 포스터가 추구하는 명상 스타일의 기도 운동을 일으키는데 동의하고서 힘을 합하였다.

‘레노바레’라는 라틴어는 ‘새롭게 하다’, ‘갱신하다’, ‘회복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명상의 영성에 심취한 사람들에 의해 레노바레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곧 명상을 기독교에 도입하여 기독교 신앙을 더욱 새롭게 갱신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방 종교의 영성을 기독교 신앙에 도입하자는 것이니, 성경이 경고하는 ‘다른 영’(고후 11:4)을 끌어들이는 심각한 행위이다.


레노바레 운동을 도입한 강준민, 이동원 목사

레노바레 운동을 한국 교회에 도입하는데 앞장선 사람들은 누구일까? 굳이 이것을 살펴보는 이유는 요즘 지적되는 코스타의 문제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코스타를 대표했던 유명 목사들이 윤리와 도덕에서 무너졌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한다. 그러나 코스타를 대표했던 유명 목사들에게는 그 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미혹하는 거짓 영의 다른 사상을 가졌다는 것이 그들의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분명한 노선과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표적인 코스타 강사였던 강준민 목사를 보자. 그는 이방 종교의 영성으로 기독교의 경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 대표적인 코스타 목사이다. 강준민 목사는 캘리포니아에서 로고스 교회를 개척하여 성공한 후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인 동양선교교회의 담임으로 청빙되었다. 그런데 2003년에 동양선교교회에서 리차드 포스터를 강사로 모시고, 자신도 강사가 되어 ‘레노바레 영성훈련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강준민 목사에게서 그 이전에 레노바레와 관련된 일이 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이때 리차드 포스터를 초청하여 자기 교회에서 함께 강사가 되어 레노바레 영성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강준민 목사는 <뿌리 깊은 영성>이라는 책을 내 놓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유명한 책들을 줄줄이 내 놓으면서 더 유명해졌다. 그는 영성이라는 트레이드 마크를 달고서 복음주의를 이끌 대표주자로 인정되었다. 코스타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간에 말씀을 전하는 대표하는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강준민 목사가 2003년에 이미 리차드 포스터와 함께 자신의 교회에서 영성세미나를 열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이전부터 이방 종교의 명상(관상)하는 영성에 관심이 많았고 심취하였던 다는 것이다. 명상의 영성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것의 거장 리차드 포스터를 초청하여 함께 강의하면서 세미나를 열수는 없다.

▲ 강준민 목사의 대표작

강준민 목사의 대표작 <뿌리 깊은 영성>은 2007년에 출판되었다. 이전부터 명상의 영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몇 년 후 출판한 이 책에서 강조하는 ‘영성’은 대체 무슨 영성일까? 이방 종교의 귀신의 영성을 잘 포장하여 신실한 기독교의 경건의 대가인 것처럼 존경을 도둑질 한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모두가 함께 착각하였다.

코스타를 대표하는 목사에게 이런 심각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홍정길 목사와 많은 사람들이 그저 돈 문제, 여자 문제, 논문 표절, 폭행 등의 문제로만 한탄한다. 복음이 분명하지 않는 사람이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유명한 목사가 되고, 코스타를 대표하는 목사가 되었던 것이다. 이 보다 심각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저 돈, 명예, 이성 등으로 허물을 범했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이 점을 생각해 보자. 적에게 적이 되지 못하고, 적의 하수인이 된 사람을 어찌 아군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군 진영을 대표하는 유능한 장수라 하겠는가? 이것이 코스타 유명 목사들의 문제였다.

2005년에 리차드 포스터, 달라스 윌라드, 유진 피터슨 등이 중심이 되어 ‘레노바레 바이블’(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이 편찬되었다. 레노바레 운동의 중심인물들이 새로운 성경을 편찬하여 보급하였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오늘 날 전 세계에 세대주의 사상이 이렇게 널리 확산된 것은 미국인 스코필드라고 하는 사람이 존 다비에게서 세대주의 사상을 배운 이후, 그 이론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한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편찬하여 보급하였기 때문이다. 그 성경을 애용하였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세대주의 관점으로 성경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성경이 보급되는 곳에는 더불어서 세대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확산되었다.

바로 그런 목적으로 그들은 레노바레 성경을 편찬하였다. 레노바레 운동을 위한 지침서가 되도록 새로운 성경을 편찬한 것이다. 강준민 목사는 레노바레 성경을 편찬하기 위해 수고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명상의 영성을 보급하기 위해 성경을 편찬하는 일에도 가담하였다는 것은 강준민 목사가 건강한 신앙과 성경이 말하는 신자의 경건을 위협하는데 크게 쓰여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찌 이런 사람이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목사이며, 코스타를 대표하는 목사가 되었던 것일까? 코스타는 무슨 기준으로 강사들을 선발하는 것일까? 그러나 코스타의 설립자인 홍정길 목사와 코스타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단지 코스타의 유명 강사들이 저지른 돈 문제, 여자 문제, 논문 표절, 폭력 ... 이런 문제만 거론하고 있다.

▲ 2007 레노바레 컨퍼런스 기자 간담회

강준민 목사의 멘토이고, 코스타 설립자이며, 종교다원주의 성향을 가진 미국의 카돌릭 기도원에서 관상기도를 접하고서 한국 교회에 소개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던 이동원 목사도 레노바레 운동을 도입하는데 크게 앞장섰다. 이철신, 최일도 목사도 레노바레 운동을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 많이 힘썼다. 최일도 목사는 미주에서도 이상한 명상을 시도하는 수련회를 열고 있다고 제보가 많았다. 크스타의 다른 대표적인 목사인 오정현, 홍정길 목사도 레노바레 운동을 소개하는 집회의 강사로 나선 것을 보았다.

코스타의 유명 목사들, 한국의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목사들에게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왜 그들에게서 적의 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적의 하수인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는 반성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그저 돈, 여자, 성질머리, 표절 등의 문제만 한탄하고 있다.     

 

정이철 /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목사, '바른믿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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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