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정이철 목사님, 링크에 해드리는 이인규 권사의 신유를 통한 그리스도의 계시가 있다는 내용의 글들을 보시고, 과연 올바른 내용인지 목사님의 의견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인규 권사는 지금도 많은 조직신학자들이 신유 이적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계속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주장합니다.

 

답변>
지금도 그리스도가 신유 이적을 통하여 자기를 계속 계시하신다는 말은 옳지 못한 신앙 이해입니다. 신유 이적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자기를 계시하신다는 것은 성경의 사도 시대의 계시적 이적들이 연장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이 보내신 최종적 구원계시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다양한 치유 이적을 일으키시면서 스스로를 구세주와 창조주 하나님으로 증거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연장되고 있다는 심각한 주장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잠시 혼동에 빠진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 “과연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의 구세주가 맞습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자신을 계시하는 특별계시적 치유이적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요한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 7:20-22)

성경의 치유 이적들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특별계시를 드러내는 특별한 이적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시고 창조주이심을 증거하는 계시의 통로로서의 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특별계시가 완성되고 종결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히 1:1,2)

특별계시가 종결되었으므로 당연히 특별계시를 내포하는 계시적인 이적들도 이제는 없습니다. 성경 66권과 예수 그리스도로 특별계시가 종결되었다는 사상은 정통교회의 신학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신학적으로 혼란해 집니다. 그래서 개혁신학의 표준 문서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1에도 특별계시와 특별계시 전달의 방편이 되는 하나님의 모든 특별한 일들이 이미 종결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여러 시대에 여러 방식들로 자신을 계시(啓示)하시고 그의 교회에게 그의 뜻을 선언하기를 기뻐하셨고, 후에는 그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시기 위해, 또 육신의 죄성과 사탄과 세상의 악의(惡意)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굳게 세우시고 위로하시기 위해 그 계시하신 내용을 온전하게 기록되게 하셨다.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지금 중지되었기 때문이다.”(웨민고백서 1-1)

웨민신앙고백서가 성경과 같은 문서는 아니지만, 우리가 참고하기에 좋은 신앙문서인 것은 확실합니다. 특히 성경과 계시에 대한 중대한 부분에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계시가 이어진다고 하면 심각한 신학적인 오류입니다. 이인규 권사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지금도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날도 기적은 있으며, 기적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알게하시는 것이다. 조직신학자들은 기적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한다.”(이인규 권사, 오늘 날 기적과 이사가 있는가?)

물론 지금도 기적이 있다는 말은 맞습니다. 감기가 낫는데 일반적으로 7일이 걸리다면 기도하고 난 후 한 시간 만에 낳으면 기적입니다. 자동차에게 부딪혀서 몸이 바퀴 밑으로 깔렸는데, 아무 손상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도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심으로 그러한 은혜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고,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가 있다고 하면 신학적인 문제와 오류에 해당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계시의 종결'을 무너뜨리면 심각하고 위험한 오류입니다. 지금도 일어나는 치유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성령의 사역으로 치유받은 사례라고 주장되는 경우들을 조사한 후 실제 성령의 치유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는 극소수라는 결과가 나오고는 있으나, 성령의 치유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유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계시가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오늘 날의 신유 이적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내용을 주장한 학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오해가 드러나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실제로 이인규 권사가 제시한 학자들의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인규 권사는 다음과 같이 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였습니다.

 

<이성주 교수의 주장>

신유의 이적을 통해서 자기를 계시하고 있다. 신유의 이적은 구약시대부터 시작해서 신약시대에 와서는 더 강렬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기적은 엘리야, 엘리사, 예수님, 예수님의 제자들, 교부들, 로마카톨릭교회, 그리이스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등에서 지금까지 계속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 신유의 이적은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이성주, 조직신학 1권, 성지원, 127-128쪽)

위 내용은 이성주 교수님의 신학적인 오해를 드러내는 내용일 뿐입니다. 맞는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신유를 통하여 자신의 사랑을 자기 백성들에게 베푸신다고 할 말을 신유를 통해 그리스도가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하였으니 부적절합니다. 그리고 사실 천주교 등에서 나타나는 이적이 성령의 이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약합니다. 왜냐하면 천주교는 이미 성경을 벗어난 잡종교로 전락하였기 때문입니다.

 

<루이스벌콥의 사례>

“하나님은 끊임없이 신현, 예언, 이적에서 사람에게 임하시며 또한 이 임하심은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에서 그 최고점에 도달하고 있는데, 그것은 돌이켜 교회에서의 성령의 내주로 인도하고 있다. 계시 전체가 향해 움직이는 신적 텔로스는 계시록 21:3에 묘사되어 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저희와 함께 계셔서”(루이스벌콥 조직신학 상권 159-160쪽)

위 내에서 루이스벌콥은 지금도 신유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던 여러 방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개혁신학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의 종결이라는 지극히 합당한 내용을 말하고 있군요. 그런데 이인규 권사는 다른 뜻으로 인용하였습니다.

 

<로이드존스의 주장>

"물론 기적은 자연법칙을 깨트리는 것이기에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들의 말은 하나님이 지금 그 자신이 자연에 정해놓은 법칙에 속박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 자신의 법칙에 대해 보조적인 위치로 끌어 내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마틴로이드존스,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208쪽)

로이드존스의 말도 기적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내용이지 기적을 통해 계시가 이어진다는 내용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군요. 혹시 로이드존스가 이적을 통한 계시의 연속을 주장해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로이드존스는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이 반복됨으로 부흥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론에서 큰 오류를 드러냈습니다.

“100년전에 여러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이 질문에 가장 잘 대답하는 길은 그것은 오순절 사건의 반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로이드존스, 부흥, 187)

또한 로이드존스는 부흥의 때에 미래를 예측하는 예언이 나타난다고 함으로 계시의 종결성을 스스로 훼손하였고, 동시에 교회의 무속화 위험성을 초래하였습니다. 

“부흥의 때에는 예언의 은사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문자 그대로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로이드존스, 부흥, 252)

 

<웨인그루뎀의 사례>

"따라서 사도시대에 특별히 많은 기적적인 능력의 사역들이 집중된 듯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사후에는 기적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고 생각해야할 이유는 없다. 사도들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특징을 이루는 새 언약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교회의 덕을 위해 성령께서 기적을 행하기를 기뻐하시는 한은 역사를 통하여 교회가 본받기를 추구해야할 모형을 세웠다고 보아야 한다" (웨인 그루뎀, 550-551쪽)

웨인 그루뎀의 말도 성경 66권 이후에도 기적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지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계속 계시하신다는 내용은 아닙니다. 혹시 웨인 그루뎀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더라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웨인그루뎀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는 계시(성경 66권에 준하는 예언)의 종결은 믿으나 신사도 예언자들이 주장하는 상대적 계시(낮은 수준 개인적인 예언)를 인정하는 오류가 있으므로 크게 의미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이인규 권사가 지금도 치유 이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이어진다는 주장과 그 주장을 보충하기 위해 인용된 사례들은 신학적으로 근거가 없거나, 그릇된 인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리교단의 제32회 총회 신학대책 및 이단대책위원회(분과위원장 황건구 목사,2018.7.10)


그런데 링크해 주신 또 다른 기사를 보니, 이인규 권사가 감리교단의 “제32회 총회 신학대책 및 이단대책위원회”에서 조사를 받을 때, 문제가 되었던 자신의 특별계시 주장을 수정하기로 했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더군요.

“역시 예장 합동 측에서 교류금지 등의 조치를 당한 이인규 권사(신도림제일교회)에 대해서는 일부 논란이 된 부분을 바로 잡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해당 교단에 감리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하기로 했다. 이대위에 따르면 이인규 권사는 일부 잘못된 신학적 오해를 인정하고 수정할 것을 약속해 이를 예장 합동 측에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이인규 권사는 또 대외적인 강의나 행사에 참석할 때 이대위의 검토도 받기로 했으며 자신이 운영하는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지도위원 구성에도 감리회의 이단 연구가를 영입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 이대위의 설명이다.”(이단시비, 감리회 공식입장 정리/ 기독교타임즈, 2017.7.10)

이인규 권사는 감리교 이대위에서 합동 이대위에저 지적받는 그릇된 특별계시 주장을 수정하기로 약속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합동측에 문건으로 만들어서 전달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자신의 싸이트에 다시 지금도 치유 이적을 통해 특별계시가 이어진다는 주장을 하였네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마 다시 고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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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