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포스트모던 상황 가운데 기독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반기독인들로부터 세찬 도전을 받고 있다. 이들 반기독지성을 대표하는 중심인물 가운데 그 영향력에 관한한 3총사를 꼽으라면 아마도 평생 신을 부정하던 유명 무신론자 크리스토퍼 에릭 히친스(Christopher Eric Hitchens, 1949-2011)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석좌교수로 있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 30년 이상 캠브리지 대학 석좌교수를 역임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 세 인물의 두드러진 특징은 모두 영국계이며 반기독인인 동시에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지성인이라는 점이다. 히친스는 무신론에 정면 도전한 책인 「신은 위대하지 않다」(god is not Great), 마더 테레사 수녀에 대한 비판서인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 「헨리 키신저 재판」(The Trial of Henry Kissinger) 등의 저서를 통해 신을 정면  부정하고 있으며 이 책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많은 토크쇼와 순회강연을 통해 기독교 복음주의자들과 ‘신의 존재’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인 인물로 유명세를 떨쳤다.

무신론자들 사이에서 '우상파괴자'라고도 불렸던 그는 신구약 성경 뿐 아니라 지적 설계, 악과 지옥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반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신랄한 비판을 가해왔다. 또한 신·구교 뿐 아니라 유대교, 이슬람교까지 싸잡아 비판해온 인물이었다.

히친스 못지않은 무신론 논객인 유명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신은 인간이 만든 망상'(존재)에 불과하다며 자신의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기독교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에 정면 도전하여 모든 종교인들의 공적(公敵)이 되었다. 2018년 3월 사망한 스티븐 호킹도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무신론자들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더 피어선을 주목하는 이유

이 같은 선교적 위기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이미 100 여 년 전 선교사, 목회자로서 뿐 아니라 탁월한 변증가의 모습을 보였던 피어선 박사(Arthur Tappan Pierson, 1837-1911)의 사역에 대해 다시 한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10년부터 만 5년에 걸쳐 90여 편의 글을 묶어 출판한 「근본교리들」(The Fundamentals)의 집필진 가운데서도 피어선 박사는 64명의 참여 저자 중 놀랍게도 가장 많은 논문을 제출한 인물이었다. 그가 세속에 대항하여 성경과 신앙 수호에 얼마나 열심 있고 탁월한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신학자요 목회자요 선교사인 동시에 평택대의 전신인 피어선 신학교의 설립자였던 아더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 1837-1911)은 탁월한 변증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리 구체적으로 잘 연구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청교도 배경의 가정에서 자라 일찌감치 헬라어와 라틴어, 수사학적 교육을 받고 성경 자증(自證)의 원리를 받아들인 보수주의신학자였다.

평택대 신대원의 안명준 박사는 이런 피어선의 성경관을 종교개혁주의자들의 신학에 굳게 선 루터와 칼빈의 전통을 굳게 따르는 학자였다고 논증한다. 이런 그가 어떤 식으로든 성경과 신앙의 변증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종의 기원」(1859)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고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던 19 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분명 인류 역사의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이 격동의 역사적 중심을 치열한 목회자요 선교사로 살았던 피어선 박사의 변증가적 혜안을 살펴보는 것은 19세기 말과 유사한 혼돈의 시대로 접어든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도 많은 교훈이 될 것이라 본다. 


기독교 변증이란?

그럼 기독교 변증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기독교 변증학’(Christian Apologetics)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여 기독교를 변증하는 학문이다. 기독교 변증학은 기독교와 기독교 신학을 반기독교적 공격으로부터 수호하는 일이다. 성경적 변증학은 성경의 근본 가르침에 순종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우리가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를 믿도록 권유할 때 변증학에서 터득한 변증의 방법을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되기 때문에 변증학을 선교학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도 있다.

반면 ‘기독교 험증학’(Christian Evidence)은 기독교 변증학에서 이미 그 존재가 변증된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하시는 구속의 사역에 대해 그 진리성과 타당성을 변증하는 학문이다. 우리의 경험 속에서 확인되는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구속적 사역의 증거들을 거론하는 일을 하는 학문이다. 변증학은 기독교 신론의 지위를 확보하기를 목적으로 하고 험증학은 주로 기독교의 경험에 관한 정해(正解)를 유지하기에 노력한다.

따라서 변증학의 범주 안에 험증학이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사실보다 철학에 관심을 갖고 후자는 철학보다 사실을 더 많이 취급하게 된다.  사실 피어선 박사는 이들 변증과 험증에 모두 능했던 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


기적의 의미

기적(奇蹟)은 불가사의한 일을 뜻하는 라틴어 미라쿨룸(miraculum)에서 왔다. 신약에 나오는 ‘이적’과 ‘기사’와 ‘표적’ 세 용어는 경우에 따라서 함께 쓰일 때도 있는 데(행 2:22; 살후 2:9; 히 2:4) 이 용어들은 구원의 역사와 관련된다. 즉 구원적 신론에서 이적은 필연적 귀결이다. 창조, 섭리, 죄, 구원의 원리를 인정할 때 구원은 진실한 필요물, 즉 은총으로서의 이적이 된다. 자연이나 사건의 흐름에 대해 초자연적 간섭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적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면 다양하다. 오늘날까지 성결파 및 오순절 복음주의자들은 신유와 방언의 기적이 유효함을 주장한다. 


데이빗 흄이 본 기적

하지만 18세기 철학자 흄(David Hume)은 기적은 자연법의 위배로 보았다. 흄은 종교에 관한 자신의 두 저서 ⌜종교의 자연사⌟와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우주 질서의 원인이 되는 지적 창조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신은 우주 질서의 원인으로서 가정된 이신론적 존재(a deitistic being)이며 따라서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는 자연 법칙을 위반하는 기적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흄에게 있어 기적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흄이 볼 때에 혹 신의 특별한 의지에 의해 일반 법칙이 깨어지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전혀 알아챌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벤자민 워필드

가 본 기적그럼에도 기적은 분명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20세기 초 과학자들 뿐 아니라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기적을 거부한 사례가 늘어나자 구프린스턴의 신학자 벤자민 워필드(B. B. Warfield)는 우리 마음에 품은 세계관이 아니라 우주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실들에 대한 정당한 고찰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기적을 이해하였다. 그러면서 워필드는 기적은 사도들이 교회의 토대를 놓음과 함께 그쳤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피어선이 본 기적의 문제

피어선은 기적을 자연법의 위배로 본 흄(D. Hume)이나 스트라우스(Strauss)와 의견을 달리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능을 나타내는 표적으로서 기적을 사용한다. 하나님은 기적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관심을 끌지 않는 것은 기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태양이나 무지개를 기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힘 모두를 초월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기적이라 인정한다. 정해진 자연의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작용을 경이롭다고 하나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성경을 과학의 틀 속으로 가져갈 때 문제가 발생한다. 즉 피조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는 인과율(因果律)에 사로잡힌 희랍인들의 구조 안에서 기적은 존재할 수 없다. 기적이 그들의 틀 속에 잡힐 수 없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에 있어 관심은 하나님의 일이었다. 하나님이 단지 무엇을 하시며 그 일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그들의 의문의 영역이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의 과학적 검증은 희랍인의 몫이지 결코 유대인들의 몫은 아닌 것이다. 성경은 과학 책이 아니다. 과학의 언어로 쓰여 지지 않은 책이다. 자연과학적 영역과는 관심 분야가 다른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대해 우리가 갖는 신앙적 믿음으로 인해 비록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기는 하나 성경의 말씀대로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이 곧 성경의 하나님이시라면 진정한 과학은 성경적이다. 하나님이 주신 이 두 권의 책(말씀의 책 성경과 하나님의 활동의 책 자연은 때로는 근접하기도 하고 어떤 시기는 우호적이었으며 어떤 때는 서로 간에 무관심한 영역으로 치부하여왔으며 어떤 때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여왔다. 그것은 간혹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필요한 긴장이기도 하였다.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자연과학의 질서를 만드시고 그 사실을 성경을 통해 계시하시고자 하였다. 헨리 모리스는 엔트로피(entropy)의 법칙이 성경 창조의 기적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흔적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참된 기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 우주의 근본적인 법칙과 과정들의 관계에 비추어 정의 될 수 있다. 과학의 영역에 있어서도 당연히 성경은 권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확고한 창조 신앙의 피어선이 살아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것은 당연하였다. 피어선은 변증에 있어 과학과 기적 둘 다 당연히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평택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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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다. 강남대, 개신대학원, 건양대, 명지대, 서울신(예장 합동), 서울기독대학원, 백석대와 백석대학원, 피어선총신, 한세대신대원에서 가르쳤고, 안양대 겸임교수, 에일린신학연구원 신대원장을 역임했다.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전 한동대총장 김영길 박사 공저),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를 발행했고, 다양한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한다.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비축하고 있는 인터넷 신학연구소'(www.kictnet.net)을 운영하며, 현재 참기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