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

필자의 이전 글 “유석근의 [알이랑 민족]에 넘쳐나는 유해물질들(1)”에서 살펴 본대로 유석근 목사는 [알이랑 민족]에 영적 유해 물질들을 도배해 놓았다. 다시 한 번 아래 글에서 그가 얼마나 황당한 주장들을 하면서 유해한 쓰레기들을 만들고 도배했는지 잠깐 감상해 보고, 본 이야기로 들어가자.

"욕단의 가계는 에벨의 혈통으로서 셈족 중에서도 특별 선택을 받은 셈족의 종가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백성이었고,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신본주의 정신’이 가장 확고한 족속이었다! 따라서 욕단 족속은 셈족의 정통성을 승계한 백성답게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즉 ‘알이랑(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찬송하면서 동방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한국인의 성경 상의 기원은 하느님의 사람 ‘욕단’이다."(알이랑 민족, pp.47-48)

셈족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하나님의 선택 받은 족속이 맞는가? 결코 아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면 셈족이 아브라함의 조상인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특별히 선택한 자는 아브라함이며,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이스라엘 민족이하나님이 택하신 그의 백성이다. 다시 말하면 셈은 아브라함의 조상인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이 그의 구원 역사를 위해 택하신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욕단의 후손, 즉 한민족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백성인가? 결코 아니다. 지속적으로 주어진 방대한 하나님의 계시(구약성경)를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고 말았다(호4:6).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시의 책이 아예 없는 욕단의 후손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을 리 만무다. 욕단의 후손이 하나님이 택하신 제2의 선민이라면, 이들을 통한 구원계획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셨을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계시의 책을 갖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욕단의 후손에게는 기껏해야 하나님이 선택하신 제2의 선민이라고 주장하는 유석근 목사의 헛된 상상으로 만들어낸 “알이랑” 민요밖에 없다.

욕단의 후예들은 ‘알이랑(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찬송하면서 험준한 파미르 고원을 넘어 동방으로 이동한 것이 사실일까?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고대 시대인 당시의 기술과 장비로서는, 그리고 동행하는 어린아이와 여자, 노인들, 장애인들, 병자들을 감안한다면,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욕단의 후예들이 이렇게 험준한 고원을 넘어서 한반도까지 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또 욕단 족속의 지도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널려있는 평탄한 길들을 마다하고, 험준한 산악 지대로 넘어가야 하는 길을 택했을 리가 없다.

파미르 고원 전경


그럼에도 유석근 목사는 왜 이런 허무맹랑한 헛소리들을 늘어놓는 것일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렇게 해야만 유석근 목사 자신에게 주어진 사탄의 궤계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는 하나님의 복음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외치는 아래의 헛소리를 보라. 그는 [알이랑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무너뜨리려고 도전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그는 [알이랑 민족]을 통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을, 한민족만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편협한 하나님으로 만들어 놓음으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한국교회에 구원이 없도록 복음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다. 아래의 글이 그 증거들 중 하나이다.

"동방의 선민 한겨레여! 이제 스스로를 자각하고 다시 일어나라! 알이랑 민족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라! 민족의 주로 예수를 믿고 민족의 하느님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복음의 나라를 건설하라! 그래서 이 땅으로 다시 신시(神市), ‘하느님의 도성(City of God)’이 되게 하라! 우리는 여호와 하느님께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 끝에 감추어 두신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이다!."(알이랑 민족, p.50)
 

유석근 목사의 쓰레기는 하늘을 찌를 만큼 하나님을 모독한다.

유석근 목사는 자신이 만든 [알이랑 민족]이라는 거짓 복음을 믿게 하려고 급기야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까지 하고야 만다. 아무리 사탄의 하수인 노릇을 하더라도 이 짓만큼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불행한 짓을 하고야 만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는다(롬11:1-2; 28-29; 행31:35-38; 시89:30-37). 그들은 일찍이 택함 받은 셈족의 현저한 한 쪽 가지인 에벨의 혈통 ‘벨렉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은 하느님의 미쁘심을 무효화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구원 받은 이방인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시기 나게 하여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계획하셨다. 하느님은 이방인에 대한 시기심에 격발된 유대인이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분투하며 당신께 돌아오기를 기대하셨다."(알이랑 민족, pp.87-88)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은 하느님의 미쁘심을 무효화하지 못했다”는 유석근 목사의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불변의 진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마5:18). 그러나 유석근 목사는 이 말 바로 다음에서 자신이 힘주어 말한 불변의 진리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은 하느님의 미쁘심을 무효화하지 못했다”를 여지없이 뒤집어 버린다. 아래를 보라.

"그러나 이제까지 이방인 교회를 통해 이스라엘의 시기심을 일으켜 유대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은 성취될 수 없었다. 첫째 천 년과 둘째 천 년, 지난 2천 년 동안 서양 기독교 국가들은 유대인을 향해 ‘성자 예수를 죽인 하느님의 적’(the Christ Killer)이라는 오명을 붙여 많은 유대인들을 혹독히 박해하였고 학살했기 때문이다. 중세기에 자행되었던 십자군에 의한 유대인 학살과 20세기 초 독일에서 저질러졌던 600만 유대인 대학살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양 기독교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시기 나게 하라는 하느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로 갔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이방 기독교 국가는 시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 아니라 질시와 타기의 대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으니, 오늘날도 유대 민족은 복음에 대하여 전혀 무감각한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채 구원의 길 측면에 놓여 있다. 이것이 ‘벨렉의 후손’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이다. 이제 더 이상 서양 기독교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시기심을 일으킬 수 없다. 앞으로 그것은 벨렉계 천손민족 이스라엘과 형제 족속인 ‘욕단의 후손’이 감당할 과제이다. 형제란 위급할 때까지 위하여 났기 때문이다."(알이랑 민족, pp.87-88)

유석근 목사는 한낱 연약한 인간에 불과한 히틀러 때문에, 그리고 타락한 서양 기독교 국가들 때문에,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계시하신 이스라엘의 구원 계획(롬11:11-12)을 성취하실 수가 없어서 포기해 버렸다고 한다.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히틀러 등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들의 만행 때문에 실패했다는 천인공노할 망언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바울에게 말씀하신 원래 계획대로 이방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알이랑 민족]을 위해 미쁘신 하나님을, 쉽게 식언하시며 자신이 계시한 약속을 모른척하시는 무력하고 형편없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앞에서 언급한 유석근 목사의 망언은 이단들도 감히 하지 못하는 천인공노할 짓이다. 이단들은 성경을 엉터리로 해석하여 자기의 주장을 하나님(성경)의 뜻처럼 오도하기는 하지만, 유석근 목사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단도직입적으로 틀렸다는 헛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망언이 더욱 심각한 이유는, 유석근 목사가 말하는 제2의 선민은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므로 이후에 하나님이 로마서에서 바울에게 계시하신 이스라엘의 구원 계획은 처음부터 거짓말로 계시하신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석근 목사는 자신의 “알이랑 복음”을 오래 전에 계획된 하나님의 계시로 변조하기 위해 로마서를 기록케 하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유석근 목사는 조금 뒤에서 또 앞의 말을 뒤집어 버리는 다음과 같은 헛소리를 한다.

"혹시 당신이 짧은 안목으로 하느님이 ‘욕단의 후손을 잊으셨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식언하시는 분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식언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행치 못할 말씀을 발설하지 않으며, 하신 말씀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알이랑 민족, pp.94)

유석근 목사는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로마서에서 하나님이 계시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계획을 틀렸다고 말하므로 하나님을 식언하시는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는 성경에는 없고 [알이랑 민족]에만 있는 ’선택된 욕단의 후손‘을 놓고, 민23:19을 갖다 붙여 ’하나님은 식언을 하시는 분이 아니며, 거짓말도 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그의 뒤집기는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그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의 말씀이 틀렸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므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다는 자신의 [알이랑 민족] 이야기가 믿을만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이 옳다면, 바울에게 감동하신 성령과 유석근 목사에게 감동한 성령은 다른 영임에 틀림이 없다. 유석근 목사를 감동하여 하나님을 모독하는 [알이랑 민족]을 쓰게 한 영은 과연 어떤 영인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제4장 욕단계 선민 알이랑 민족>에 널려있는 유석근 목사의 심각한 쓰레기들

유석근 목사는 아래의 근거를 내세워 ‘욕단의 후손’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선택 받은 종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하느님은 분명히 ‘에벨의 온 자손’, 즉 ‘벨렉의 후손’과 ‘욕단의 후손’을 함께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 천손민족은 ‘벨렉계’와 ‘욕단계’ 두 계열의 백성이 존재한다."(알이랑 민족, p.91)

‘하느님이 분명히~~선택하셨다’라고 말하는 유석근 목사의 진술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특히 ‘에벨의 온 자손’을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말은 더 더욱 성경에 없다. 그는 ‘욕단의 후손’을 천손민족으로 만들기 위해, 단지 ‘셈이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창10:21(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을 슬쩍 변조해서 독자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그가 속이는 것이 아니라면, 어쩌면 유석근 목사는 우리와 다른 이상한 성경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후에도 동일한 거짓말을 다음과 같이 반복한다.

"‘벨렉의 후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나라가 출현했기 때문에 하느님은 ‘욕단의 후손’을 잊으셨는가? 그럴 바에야 왜 하느님이 애초에 천손민족의 범주에 ‘에벨의 온 자손’으로 제한하였겠는가? 만약 우리가 그렇게 단정해야 한다면 하느님은 결코 ‘에벨의 온 자손’을 구별하시지 않았을 것이다."(알이랑 민족, p.92)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나라가 벨렉의 후손으로부터 출현했다는 유석근 목사의 말은 정확한 진술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택하신 아브라함이 ‘벨렉의 후손’인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신 아브라함에게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석근 목사는 성경에도 없는 이야기를 마치 성경인 양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벨의 후손을 천손민족으로 삼으신 적이 없으며, ‘에벨의 온 자손’을 구원 계획의 도구로 구별하신 적도 없으시다.

또 유석근 목사의 말대로 구원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설령 ‘셈’의 아들 ‘에벨’이라고 해도(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한 최초의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그의 두 아들 ‘벨렉’과 ‘욕단’이 다 구원 역사를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라는 유석근 목사의 주장은 교회 마당에서 노는 강아지들도 웃을 헛소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유석근 목사의 주장대로라면, 아브라함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이스마엘도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며, 이삭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에서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아래에서 유석근 목사가 나열한 ‘욕단의 후손’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증거들은 교회 밖에서 노는 강아지들도 웃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헛소리들이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정직한 탐구자는 욕단의 후손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할 것이다. 그들도 선택 받은 종족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는 다른 셈의 후손과는 달리 그의 열셋 아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여, 그 이름이 두 번이나 명백히 기록되어 성경에 남아있다(창10:6~29; 대상1:19-23)." (알이랑 민족, p.91)

위에서 유석근 목사가 ‘욕단의 후손’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선택 받은 종족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성경에 욕단의 13명의 아들의 이름이 다 기록되어 있다는 것과 또 그 이름들이 창세기와 역대기에 두 번이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석근 목사는 또 거짓말을 한다. “다른 셈의 후손과는 달리 아들 그의 열셋 아들의 이름”이 다 기록되었다는 그의 진술은 성경에 없는 거짓말이다. 성경을 보라! 다른 셈의 후손들과는 달리 욕단의 아들의 이름만 다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셈의 후손의 아들의 이름도 다 기록되어 있다. 단지 다른 후손의 아들의 이름보다 욕단의 아들은 13명이나 되기 때문에 아주 길게 기록된 것뿐이다. 또 두 번 기록된 족보도 욕단의 후손뿐만 아니라 수두룩하게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족보가 창세기와 역대기에 중복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두 번 기록된 것이 중요하다는 유석근 목사의 주장을 인정하다면, 마태복음, 누가복음에까지 네 번 기록된 족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또 성경에 바울은 족보는커녕 그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밝히고 있지 않은데 비해, 아간은 그의 족보가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수7:1). 그렇다면 아간은 바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란 말인가? 그래서 욕단의 후손처럼 아간도 소상히 조사하고 탐구해야 하는가?

유석근 목사는, 아주 초보적인 신학적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역대기에서 창세기의 족보를 왜 다시 기록하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어리석게도 중복 기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탐구할 가치가 없다면 왜 하느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성경에 분명하게 남겨 놓았겠는가? 그들도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을 위해 택함을 받은 또 하나의 선민으로서 주님의 특별한 계획 아래 있는 백성이기 때문에, 후대의 사람들이 그들을 잊지 않고 추적해 주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알이랑 민족, p.91)

그는 다음 글에서 사찰 마당에서 노는, 그래서 성경을 잘 모르는 강아지들도 웃을 헛소리를 하고 있다.

"하느님은 분명히 ‘에벨의 온 자손’을 선택하셨다. 따라서 그는 ‘욕단의 후손’을 통해서도 무엇인가 구원사에 큰일을 행하실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말이 되고 만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알이랑 민족, p.92)

하나님의 말씀인 롬11장을 거짓말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이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말이 될까봐 걱정하는 모습은 기적에 가까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지금 사찰 밖에서는 노는 강아지들도 웃을 자신의 헛소리에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난을 치므로 예수님까지 욕되게 하고 있다.

위의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은 일차적으로 ‘토라’를 의미한다(물론 구약성경 전체로 보아도 문제는 없다). 그럼에도 유석근 목사는 성경을 변조하고, 부인하고, 엉터리로 해석해서 만든, 실상은 성경에 없는 [알이랑 민족]을 성경과 동일 선상에 놓고,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말이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꼴을 보고, 어찌 교회 마당에서, 마당 밖에서, 또 사찰 마당에서, 사찰 마당 밖에서 노는 강아지들까지 웃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글을 마치며

한민족이 욕단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유석근 목사의 주장이 옳다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욕단의 후손에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므로 욕단의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이 틀림없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들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한반도에 오는 동안 계속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에게는 유석근 목사가 주장하는 이상한 ‘알이랑 노래’ 말고는 아무런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 이것이 욕단의 후손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위해 선택된 제2의 선민이 아니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유석근 목사는 이 치명적적인 약점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한민족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극복하려고 삼태극 문양으로, 한민족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유석근 목사는 아래의 삼태극 문양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므로, 한민족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제2의 선민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약 성경에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아주 간접적으로 희미하게 암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구약 시대 사람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 신약 성경에서는 비교적 분명하게 산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람들이 눈치 채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삼위일체"(trinitatis)는 ‘터툴리안’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삼위일체"는 이때(AD 약 155년~240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도 없는 한민족은 어떻게 하나님이 삼위일체인 것을 그토록 정확하게 알았을까?

한민족이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신 것을 알아서 삼태극 문양을 만들었다는 것은 유석근 목사의 상상력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교회 마당에서, 마당 밖에서, 또 사찰 마당에서, 사찰 마당 밖에서 노는 강아지들이 들었다면 이전과는 달리 전혀 웃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아지들에게도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헛소리여서 웃는 대신 다들 기가 막혀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석근 목사의 삼태극이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면 아래의 국기를 가진 나라의 조상들은 적어도 하나님이 세 분이신 것은 알았다는 유추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독일>                         <가봉>                    <네더란드>

삼태극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음양의 법칙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천, 지, 인이 하나라는 사상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으로 나타낸 것뿐이다. 참고로 말하면, 삼태극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조금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현상이나 존재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관계를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석근 목사가 삼태극을 보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떠올렸다면, 거의 틀림없이 그의 하나님은 선도에서 말하는 다른 하나님일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오랜 ‘선도 전통’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질로서 ‘일(一), 한, 하느님’을 제시하고 이를 이루고 있는 세 차원(삼원)으로 ‘천·지·인의 삼신(三)’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단의 후손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제2의 선민이기는커녕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은 족속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므로, 자기의 백성에게는 반드시 말씀하신다. 욕단의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면 하나님은 그들이 한반도에 오기까지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것이며,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 자신과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욕단의 후손도 벨렉의 후손처럼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욕단의 후손에게는 ‘알이랑’ 노래밖에 아무 것도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욕단의 후손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틀림없다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오래도록 자기의 백성에게 침묵하셨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1:4)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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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모 목사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한국 교회를 신물 나게 체험하며 갈등하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교회를 꿈꾸며 1999년 김천에서 ‘제자들 경배와 찬양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창모 목사는 한국교회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이 단지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 등이 아니고 이미 한국교회에 만연된 잘못된 신학에 있음을 확신하고서 무엇이 바른믿음인지 신학적으로 깊이 고민하는 목사이다. 이창모 목사는 자신이 중2때 수련회에서 방언을 받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것을 ‘영의 기도의 언어’라고 가르치므로 의심없이 수 십년 동안 옹알거리는 방언현상으로 기도(?)하였던 대표적인 방언기도자였다. 김우현, 김동수 등이 저술한 거짓 방언을 미화하는 한심한 서적들을 접한 후 방언에 관한 깊은 신학적인 성찰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오늘 날 방언이라고 알려진 소리현상과 성경의 참된 방언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되었다. 이전의 자신처럼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다른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진정한 복음으로 돌이키기 위해 <방언, 그 불편한 진실>(밴드오부퓨리탄,2014)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