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전에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 그는 누구일까?”라는 글을 <바른믿음>에 기고했다. 그 글이 <바른믿음> 사이트에서 가장 많은 댓글이 나올 정도로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번 기회에 정이철 목사가 휘두르면서 한국교회를 흔들고 있는 신학의 칼의 성격을 정리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매체인 <바른믿음>을 사람들은 ‘신학과 이단비평 전문사이트’라고 한다. 이 사이트는 2014년 10월 1일, 그러니까 약 4년 전에 드라마틱하게 시작했고 지금까지 한국 교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오해일수도 있고, 공격일수도 있다. 아무튼 정이철 목사의 기사와 보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정이철’ 자신뿐인 것 같다.

필자는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 그는 누구일까?”에서 좀 당황스러운 어휘를 사용했다. 그것은 ‘미친개’(여러 날 후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맹견’으로 수정)라고 표현했는데, 정이철 목사가 그 표현을 잘 수용해주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미친개’ 발언으로 사회적 파장이 있었다. 왜 정이철은 미친개라고 자기를 지목했는데 그대로 수용했고, 다른 분은 왜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로 거부했을까?

‘미침’, ‘광인’(狂人)이라는 것이 어떨 때는 가장 큰 명예이고, 어떨 때는 가장 큰 수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건한 그리스도에게 ‘미침’보다 더 한술 떠 ‘미친개’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과장 표현은 두 가지 의미(선한 미침과 악한 미침)를 갖고 있었고, 정이철 목사가 두 가지를 잘 수용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전의 기사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 그는 누구일까?”에서 정이철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구속의 효력과 은혜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로, 아주사 거짓부흥와 오순절 운동을 통해 퍼진 거짓 방언, 거짓 성령세례 등이 한국교회를 이단으로 만드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확신하는 신학 노선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정이철은 바로 이 구도에 걸려드는 사람이 유명한 교수이건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이건 일체 가리지 않고 매서운 공격을 퍼붓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바른믿음>의 또 다른 기사에서 정이철 목사가 지나치지 않고 반드시 격렬하게 공격하는 또 하나의 주제가 발견되었다. 예장 합동 총회의 현재 서기 직을 맡고 있는 유력한 목회자의 강의 내용을 비판하는 글에서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현대의 거짓 방언을 거부하는 것보다 좀 더 원천적인 신학 사고이다. ‘계시 연속주의’에 대하여 강력하게 거부하는 신학’이다. 정이철 목사는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장에 근거한 ‘성경 66권의 충족성’을 너무나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다. 성경 66권을 넘어선 다른 계시나 다른 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명료하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정이철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정교한 설교 문장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의 설교 동영상을 들아보면, 인지 시스템(필자는 ‘신학좌표’라는 개념으로 표현)이 빠르고 정확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특별한 능력이다. 누구에게나 있지 않는 특별한 능력이다. 정이철에게는 다른 사람의 글이나 강의의 핵심 포인트(point)를 너무나 예리하게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문제점이 내포된 강의나 설교 동영상을 빠르게 녹취하는 기술도 탁월하다. 동영상의 내용이 텍스트화되어 <바른믿음>의 기사에 등장하면, 그 문제점이 더 분명하게 제시되면서 독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그의 글의 설득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질타와 비판이 일어나고 있으나, <바른믿음>의 영향력이 한국교회에서 사라질 수가 없다.


필자는 정이철 목사의 후배이지만, 정이철의 허락을 받아 정이철 목사가 주장하고 외치는 핵심적 신학 가이드라인을 만들려고 한다. 그것은 독자들도 정이철 목사를 감시하고 도와야하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가이드라인을 매뉴얼로 삼아 행동하게 되고 가이드라인에 동의하는 동역자들이 지지와 조언을 줄 수가 있다.

정이철의 엄청난 언어 구사로 준 임팩트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정이철 목사는 빨대를 설명하는 기사까지 보냈다(“빨대란 무엇이고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그러나 한국에서 빨대는 기능적인 빨대가 아니고 거머리와 같은 표현으로 매우 혐오스러운 표현으로 인지하고 있다. 정이철의 설명을 단순히 기능적인 빨대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아메리칸의 순수한 빨대와 한국의 치욕적인 빨대 어휘에 대한 뉘앙스 인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른믿음>을 통해 정이철 목사가 나무꾼의 시퍼런 도끼처럼 휘둘러 대는 신학적 Tool은 아직까지 매우 단순하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훼손하거나 부정하면 미친개가 되어 짖는다. 둘째로, 아주사 거짓부흥과 오순절 운동을 통해 교회에 들어온 거짓 방언이나 성령세례 사상을 옹호하면 정이철은 (최소한 합동 교단 혹은 개혁신학을 주장하는) 미친개가 되어서 물고 뜯는다. 셋째로, 성경 66권 완성 이후 추가적인 사적계시, 새로운 계시 등을 주장하면 정이철은 즉시로 미친개가 되어 좇아가서 물고 뜯는다.

필자는 산 자의 부당한 신학 내용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칼 바르트 등)에 대한 신학을 연구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정이철 같이 현재 사역하는 목사들을 지적하면 “너는 오류가 없냐?”라고 반문한다. 그러면 정이철 목사에게는 오류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당연히 오류가 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류를 지적받고 토론 과정을 통해서 인지하고 동의하고 수정하면 된다. 오류가 없기 때문에 타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오류가 있기 때문에 타인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류 속에서 함께 죽자고 합의하는 것 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동역은 격려와 동조, 그리고 견제와 비판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정이철 목사의 맹렬한 비평 기능은 역기능이 있겠지만, 순기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순기능이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은 정이철 목사를 공인(가이드라인 구축)시키는 것이고, 공인화된 과정에서 벗어난다면 그의 순기능도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은 두고 봐야 한다. 마지막까지 선한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의 동역으로 함께 주의 보좌가 있는 천국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땅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영향력 있는 동역이라도 둘이나 혹은 하나가 지옥으로 간다면 그것이 선한 동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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