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철, 미국 앤아버반석장로교회 목사이고 신학신문 <바른믿음> 대표이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바른믿음>에서 소개되는 정보에 의하면 전남 여수 출신이고, 1967년생이라고 한다. 필자가 69년생이고 86학번이므로 정이철은 그 보다 조금 빠를 것 같다. 지금도 여수에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은 한국에 방문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가 어떻게 정이철 목사와 알게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사실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어떻게 정이철과 연결되었을까? 정이철을 안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정이철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빨대’, ‘총’ 등 상상하기 어려운 어휘를 구사하면서 사람들에 충격과 패닉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일단 그런 어휘 사용은 독자들을 자기의 목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저널니즘’(journalism)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 정도가 무척 심하다. 아무튼 충격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충격은 받았고 기사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필자와 정이철의 만남의 과정에는 림헌원 목사(기독교진리수호연구협회 대표, 한돌 교회)가 있다. 누가 먼저 했는지, 페이스 북으로 연락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김성로 목사(춘천한마음교회) 사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연결된 것 같다. 그때는 단순하게 “부활을 강조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훼손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싸움의 최전방에 정이철이 있었다. 정이철 목사, 이창모 목사, 림헌원 목사, 조덕영 박사가 2016년 가을에 ‘기독교 100주년기념관’에서 처음 조우했다.

그리고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 사상에 대해 2017년까지 함께 연구했고, 그해 9월에 합동에서 ‘참여금지’가 결정되었다. 동시에 고신에서도 일단 ‘참여금지’가 발표되면서 동시에 공식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백석, 대신에서도 연구가 시작되었고, 금년 가을 총회에서 공식적인 입장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정이철, 림헌원, 이창모 목사를 이단조작자로 몰고 파렴치한 사람들로 매도하는 정체불명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악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자는 2016년 김세윤 박사의 사상에 대해서 비평했다. 그리고 <현대 칭의론 논쟁>(CLC, 2017)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동역자들과 함께 출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이철은 김성로 목사의 사상 논쟁이 끝난 뒤 박영돈 교수의 신학 사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미국 뉴저지 주의 있는 강력한 신사도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벤자민 오 목사가 박영돈 목사의 칭의론 주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행위구원론을 전파하기 때문에 촉발되었다.

그 무렵에 필자가 2012년에 쓴 논문에 박영돈 교수와 관련된 내용이 있으므로 그 부분만 발췌하여 <바른믿음>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필자가 정이철과 단짝이라고 알려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어서 그 유명한 “빨대”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박영돈 교수님도 무척 노하심을 표현하셨다. 그때 필자가 또 다시 박영돈 교수님의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글을 <바른믿음>에 올렸다. 결국 이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정이철과 고경태는 단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총신대학교 사태를 맞아 정이철 목사가 교회갱신협의회(교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시작하였고, 또 다시 두 사람이 단짝이라고 알려지게 되는 요소들이 또 생겨났다. 왜냐하면 서로 전혀 다른 면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포지션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정이철과 고경태는 단짝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그렇게 수 없이 질타를 당하는 정이철과 친구가 된다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정이철을 끊어내지 못하고 더 단짝처럼 보이게 될까? 그것은 정이철이 끊임없이 자기의 신학적인 내용을 주장하는 사람이고, 그 주장하는 태도는 과격하지만, 그 내용은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방언 기도’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기도’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이철 목사가 서울 모 교회에서 방언에 대해서 강의한다고 해서 참석했다. 그때 필자가 보니, 정이철 목사의 프리젠테이션 능력이 탁월했다. 그리고 방언에 대한 그의 주장은 간명했다. 아주사 부흥운동이 가짜이고, 그 가짜에서 발생한 방언도 가짜라는 것이었다. 아주 간단하고 단순했다.

그리고 최초 방언은 기도가 아니라 전도와 관련되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3시간 정도의 강의였는데, 간명하게 “아주사 부흥운동은 가짜였다”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장로교회 목사나 신학자 중에서 아주사 부흥운동을 성경적인 부흥이라고 보는 기존의 그릇된 신학에 기초하여 가르치는 사람은 앞으로 정이철에게 무참하게 지적을 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이철은 그 분야만큼은 최고의 전문가적 지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자기 실존적으로 경험한 것을 근거하기 때문에 너무나 민감한 지식 체계였다.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미국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둘째, 정이철 목사는 단순한 사람이고, 그가 주장하는 내용도 단순하다. 정이철이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와 가치를 조금이라도 훼손하거나 폄훼하지 말라는 것이다. 김성로 목사가 그것을 범하다가 정이철의 2년여의 투쟁으로 인해 결국 참여금지를 받았다. 필자가 보니, 정이철의 2년 동안의 외침은 “십자가를 훼손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단순한 내용이었다.

박영돈 교수, 김세윤 박사, 최갑종 박사 등의 칭의론에서 십자가 구속의 은혜의 완전성을 훼손되는 점이 발견되었다. 성화를 설명하면서 십자가의 구원의 완전성을 약화시킨 것이다. 그러자 정이철은 아무 행위가 없었던 십자가의 강도가 천국에 간 것을 설명해 보라고 따졌다. 구원에 있어서 행위의 역할을 강조하면, 정이철은 즉각적으로 십자가의 강도의 구원을 들이대고, 아무 행위를 할 수 없는 병상의 중환자가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음의 은혜를 들이댄다.

정이철의 주장은 단순하고 강력하고 빠르다. 그러나 정교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그런데 그의 빠름과 강력함이 한국 교회를 흔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맹견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피하는 것과 같은 현상일 수도 있다. 맹견을 이기려면 그 이상으로 사나워져야 하는데, 정이철처럼 진리에 대해 사나워질 자신이 없는 것이다. 물론 정이철은 자신에게 공격당하는 유명한 교수들과 목회자들이 자신처럼 미치기를 원할 것이다. 또 그렇게 십자가 은혜에 미쳐서 날뛰는 공격자를 사모할 것이다.

셋째, 정이철은 개혁신학을 사랑한다. 개혁신학이 무엇일까?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이고,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이철 목사를 어찌하다보니 알게 되었다. 복음의 선한 일을 위해 두 번 동역했다. 지금은 세 번째 일을 기획하고 있다. 정이철 목사를 일 년에 한 번 만나고 있다.

정이철은 수많은 오해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욕먹는 것이 즐거울까? 이러한 일로 이전이 동역자들이 떠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산골목동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을 믿고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의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데(방향성), 그 방법이 서툴고 거칠기 때문에 그 선한 일을 악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분명 과정에서 오해와 충격과 피해가 있을지라도 결과는 선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나도 서툴고 어리석지만, 동역자가 있으니 한걸음 발전하며 앞으로 간다. 필자는 친구 관계에서 먼저 결별을 선언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이철 목사도 나에 대해서 오해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오해했다. 그러나 오해와 이해를 반복하면서 하나씩 알아가지 않겠는가? 주 하나님께서 나갈 길과 피할 길을 주시리라 믿는다. 주변 친구들에게는 나이가 50이니 60이 되면 좀 순(順)하게 되지 않을까? 라고 말했다. 그럴 것이다. 이제 우리 선배님들께 한분 두분 천국으로 가시고 계신다. 다음 세대에 우리가 들어간다.

우리가 그 위치에 섰을 때, 우리의 후배들이 우리를 욕한다면 그 비판을 겸허히 받으면서 후배들과 함께하면서 복된 개혁신학의 도리를 증진해야 할 것이다. 정이철 목사가 후배들을 맹폭한 적은 없다. 후배들이 개혁신학 사상으로 정이철 목사 혹은 각 선배들을 맹폭해주길 기대한다. 그래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놀라운 역사가 한국교회에 풍성하게 일어나길 소망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