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술사(오컬티스트)들의 기술들은 전 세계에서 활용된다. ‘형태화(manifestation)의 법칙’을 통해서 마법을 이루기 위해 신비술사들은 항상 과학적 기술을 사용했다. 긍정적 사고, 긍정적 발언 그리고 구상화(visualization), 이 세 가지 방법 모두는 지금 복음적 교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사용되고 있다. 이런 오컬트 기술의 전도사가 조용기 목사이다. 긍정적으로 말하기(고백)에 대해 조 목사는 주장한다.

“당신의 입으로 예수님의 임재를 만들어야...그(예수)는 당신의 입술과 당신의 말에 묶여 있다...”(조용기 목사)

가장 파워풀한 오컬트 기술인 ‘구상화’에 관해서 조 목사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각화와 꿈을 토해서 당신의 미래를 품고 그 결과를 부화시킨다.”(조용기 목사)

조 목사의 저서 ‘4차원의 세계’의 서문에서 로버트 슐러는 구상화에 관해 이렇게 적었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그저 즐기기를 시작하라. 이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된다. 나도 해봤다. 성령께서 이 메시지를 우리와 전 세계에 주시도록 허락한 조 목사에게 감사한다.”(조용기 목사)

조 목사는 “영은 4차원이다”라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계시하셨다고 말한다. 그 안에 창조적인 힘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이 우주를 구상화를 통해 창조하셨으며, 신비술사이든 크리스천이든, 사탄이든, 하나님이든, 누구든지 마찬가지로 방법으로 ‘4차원의 법칙’을 적용함으로써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계시를 매일 수납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원리까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그가 수납한 계시 내용은 성경과 거리가 멀다.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4).

사단의 기본은 하나님과 비기는 자가 되려는 것임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이런 계시를 받았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에게 계시를 해 주시기 전에 여기 저기 정보를 흘리셨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조용기 목사가 처음이 아니라 표절한 것 같다. 표절한 내용들은 삼류 심령술사 같은 사람의 책에서 나타난다. ‘긍정의 힘’의 전도사격인 조용기 목사의 가르침으로 한국교회의 메시지는 비성경적으로 왜곡되었다. 지금부터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전적으로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조용기 목사의 설교 방식

설교란 형식으로 성경의 권위를 빌려 전달하지만 경우에 따라 전혀 성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법’이란 제목의 설교와 ‘성공적 인생을 사는 법’이란 강연은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될 수 있다.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다지 낯설지마는 않은 현대의 설교 한 편을 재구성해 보도록 하겠다.

"설교제목: 주식 시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승리하는 법(빌립보서 3장 12-16절)

주식 시장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곳입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지요. 옛 말에 주식은 귀신도 모른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에서 어떻게 승리하며 살아갈까요?

1. 마음을 맑게 비우고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하라. 이것을 중심 목표로 삼는다.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마 5:7)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데 큰 재물을 주면 타락하는데 사용될까봐 우리가 마음이 청결해지기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내가 주식시장에서 승리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선명하게 그려보고 그렇게 된다고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2. 빠르게 부자가 되었다면, 빠르게 거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 3:1)

밭에 씨를 뿌려도 씨가 오랫동안 땅 속에 있다가 서서히 자라나게 됩니다. 우리는 성급하면 안 됩니다. 성급하게 자라려고 했던 씨앗에 대해 마태복음 13장 5절에 보니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빠르게, 곧 무언가 되려고 하는 자들은 곧 말라버린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께서 ‘이때다’ 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금식을 하므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앞서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3. 어떤 정보가 겉으로 보기에 매우 매력적이라고 해서 거기에 입각하여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라.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 2:1)

4. 걱정하느라 잠을 잘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하게 투자하지 마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리”(벧전 5:7)

매 순간순간 요동치는 주식시장에서 우리는 혼을 쏙 빼놓기 일쑤입니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예측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입니다. 예측 가능한 사회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지만 앞을 전혀 내다 볼 수 없는 세상은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주식시장에 환난이 닥쳐와도 담대하십시오. 바로 그 세상을 이기었다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화난을 몸소 다 겪으시고 우리에게 나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식시장의 일은 오늘로 걱정을 끝내야 합니다. 또 집에까지 가지고 와서 내일 주식시장을 걱정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그래도 걱정이 되시는 분은 우리 주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오늘 본문 말씀인 빌립보서 3장 14절을 보십시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상주심을 믿고 푯대를 향해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주식이 완전히 바닥칠까 염려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고, 주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성도 여러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런 주식 투자자들에게 평강이 임합니다.

5. 주가 하락에 대비하여 늘 유동 자금을 확보하는 자세를 가져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마 25:3-4)

신랑을 기다리는 미련한 다섯 처녀는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복 받으려면 복 받을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6. 투자자 백 명 가운데 아흔 아홉 명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주가가 높을 때 더 올라갈 것이라 생각하고 주가가 낮을 때 더 내려갈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합리적인 최고점이라고 판단하는 수준 이상으로 주가가 올라갈 때는 절대로 따라가지 마라. 오늘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잃은 것은 이미 뒤의 일입니다. 뒤를 쳐다보거나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우리는 오직 앞을 보고, 판단으로 잃은 것에 자꾸만 마음을 두거나, 까가 오르는 것에 한없는 욕심으로 기다리는 것은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합리적인 생각을 눈감게 하는 욕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겹칠 때 일어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옛날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나이아가라 폭포 상류를 날다가 양 한 마리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독수리는 쏜살같이 내려와 양의 시체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꽉 움켜쥐고는 그 고기를 뜯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물살은 폭포 쪽으로 빨리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걱정하지 않았고, 먹이를 뜯어 먹는데 정신을 팔았습니다. 아마도 그 독수리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으니까 폭포에 떨어지더라도 아무 상관은 없어”

그러는 사이 양은 물줄기와 함께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독수리는 먹기를 중단하고 위로 솟구쳐 오르기 위해 날개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독수리의 발톱이 죽은 양의 몸속에 깊이 박혀서 빠지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독수리도 양의 시체와 함께 폭포수에 휩쓸려 죽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욕심으로 꽉 움켜잡은 것은 우리를 나락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워야 하며 지혜롭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오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복을 받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오는 복이 쌓을 곳이 없도록 내리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이런 류의 설교가 한국교회, 특히 대형 교회에서 쏟아지는데 그것을 막을 방법도 내지 않고, 이건 틀렸다고 소리 높이는 개인이나 단체가 거의 없는 교계가 매우 수상하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설교의 가면을 쓴 세속 처세술이 날뛰는 것이다. 몇몇은 “우리 교회의 설교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이란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세속화, 처세술이라고 합니까?”라고 반문할지도 모르나, 주식 설교에서 보듯 온통 그리스도를 들먹여도 세속화, 처세술로 가득할 수 있다. 일반 성도들은 이렇게 변질되어 있는 틀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

그래도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말하지 않습니까? 성경이 들어갔으니 최소한 그것은 성경적인 내용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 모두들 그것으로 속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주 치명적이다. 조용기 목사의 ‘바라봄의 법칙’은 일반 싸구려 세속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일 뿐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에 히브리서 11장 1절, 2절을 붙인다고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세속이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돈이든 인간관계이든 취업이든 소망하는 것에 마음을 집중하면 좋은 것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마음속에 그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에게 기쁨과 부와 장수를 주시고 싶어서 안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세속의 ‘끌어당김의 법칙’에는 기독교처럼 강력히 우리의 소원을 들여 주실 그런 분이 안계시지만 교인들에게는 성령님이 있지 않는가? 이것이 ‘바라봄의 법칙’의 본질이다. 온갖 세속적 아이디어에 성경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형상이다. 한국 사회는 아모스 사회와 다를 바가 없고,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종교지도자들은 한국교회의 많은 목사들과 매우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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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운 목사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을 중심으로 탁월하게 가르치는 뛰어난 교육목회 전문가이다. 정대운 목사는 “객관화(진리)의 주관화(신앙)를 추구합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교육목회 철학을 표현하기 좋아한다. 세종대, 개신대학원대학교(M.Div),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에서 공부했고, 현재 계속해서 국제신학대학원대학(석,박사 통합과정)에서 연구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교수(교회사)로 사역하고 있고, 고양시의 삼송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