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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정이철 목사와 존경하는 박영돈 교수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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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정이철 목사와 존경하는 박영돈 교수님 사이에서
  • 고경태
  • 승인 2017.12.28 22:23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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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님은 순수한 복음의 정수로 한국 교회의 올바른 방향을 선도하고 있다. 박영돈 교수님은 고려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로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교계에서 정평난 신학자이다. 두 위인이 격돌하는 상황에서 나의 모습은 고래 싸움에 새우 같다.

박영돈 교수의 명성과 많은 지지자들의 '좋아요' 응원이 정이철 목사를 압도하는 것 같아 한 편의 글로 무게를 맞추어보려고 한다. 정이철 목사님의 행동을 ‘순수한 의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정이철 목사의 한국 교회를 위한 올바른 가르침을 사모하는 마음의 행동은 박영돈 교수님께는 당돌한 행동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페이스북에 박영돈 교수님께서 짧은 글로 견해를 피력하셨다. 이에 대해서 박영돈 교수님을 간략하게 비평하며 균형을 시도하고자 한다.
 

하나>
정이철 목사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를 순수하게 계승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박영돈 교수님께서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를 순수하게 계승하려는 자세인지, 아니면 16세기 종교개혁의 교리를 수정해서 발전할 것을 제안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정이철 목사는 1세기(4-5세기 교부신학) 기독교 진리와 16세기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를 순수하게 계승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박영돈 교수님께서도 같은 신학적 입장인데도 정이철 목사와 격돌이 있다면, 둘 중 하나에 오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격돌은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 박영돈 교수님께서 16세기 이신칭의 교리를 수호하고 계승하겠다는 견해를 확인하고 싶다.
 

둘>
박영돈 교수님께서는 “칭의와 성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이중 은혜이다”(duplex gratia, 기독교강요, 3.11.1)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중은혜가 칭의와 성화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만, 칭의와 성화가 모두 은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칭의에 성화를 동일하게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칼빈이 기독교강요 3권에서 성화를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화 뒤에는 이중예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중예정(견인)은 구원받은 신자가 구원에서 탈락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칼빈은 구원의 탈락 가능성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택자의 구원의 효력에 대해서 주장한 것이다. 기독교강요 3권에서는 그리스도와 연합, 성화에서 유효하게 하는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중은혜는 칭의와 성화가 모두 은혜로 이루어지는 구속의 은혜이고 구속의 효과라는 것이 더 적당한 이해이다. 칼빈은 칭의를 '힌지'(hinge)라며 절대 뗄 수 없는 서정(ordo salutis)으로 제시했다. 필자는 칼빈이 기독교강요 3권에서 칭의와 성화 개념의 불가분리성을 가르치거나 강조하는 것이 아닌 중생 개념(죽임과 살림)으로 전개한다고 생각한다.
 

셋>
정이철 목사는 벤자민 오가 박영돈 교수님의 가르침을 동영상으로 편집해서 교육하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판하고 있다. 박영돈 교수님은 이에 대해서 큰 반향을 나타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번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셨다.

“마지막으로 벤자민 오 라는 목사가 내 글을 자신의 목적으로 위해 인용했다고 나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사이비와 이단들이 주로 성경을 인용하는데, 그들이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인용하면 야고보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박영돈 교수)

박영돈 교수님은 정이철 목사가 자기에게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한 심기를 보이신 문장인데, 야고보서에 대한 박영돈 교수님의 태도는 공손한 것일까? 신천지가 요한계시록을 오용한다면 사도 요한에게 잘못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 첫째, 사자(死者)의 글에 대한 오용과 생자(生者)의 글에 대한 오용을 동일하게 평가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둘째, 성경 기록자에게는 성령의 감동을 부여한 특별한 수준으로 간주해야 한다. 박영돈 교수님께서 야고보와 비교한 것에 대해서는 많은 아쉬움이 있다.

필자는 박영돈 교수님께서 벤자민 오가 자신의 말을 이용하여 행위구원 사상을 교육하는 행위에 대해서 명확하게 자기 입장을 밝혀주시면 좋겠다. 정이철 목사와 박영돈 교수의 논쟁은 나쁘지 않으며 많은 관객들에게 유익과 기쁨을 줄 것이다. 그래서 정이철 목사의 지적이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나쁘지 않았다. 물론 박영돈 교수님은 많은 불편이 있을 것이다. 박 교수님의 대응과 가르침이 많은 후학들에게 좋은 가르침과 영향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이철 목사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가르침과 주장에 대해서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자기 견해를 조건 없이 순수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준 것에 대해서는 개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문제의 발단일 것이다.

정이철 목사가 무례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겠지만, 틀렸다면 그 틀림에 대한 증명은 박영돈 교수님의 몫이다. 반틸의 질문에 대해서 무시한 바르트처럼, 박영돈 교수님께서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페북에 답글을 하셨기에 관객의 한 사람으로 정이철의 편에서 글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첫째, 박영돈 교수님은 첫째, 16세기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를 순수하게 계승하려는가? 수정하려는가?

둘째, 벤자민 오가 자신의 글을 대대적으로 이용하면서 자신의 행위구원 사상을 가르치는 행위에 대해서 “금지하라”는 멘트를 하실 수는 없는가?

전자는 페이스북의 글을 읽으면서 든 필자의 생각이고, 후자는 정이철 목사가 박영돈 교수님에게 요구하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정이철 목사가 대 선배이시고 큰 선생이신 박영돈 교수님께 지적한 것은 무례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정이철 목사가 바르게 지적하지 못했을지라도, 박영돈 교수님은 돌아보아야 할 자신의 약점을 보시면 좋겠다. 큰 나무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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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검 2019-02-23 07:00:04
1명 여러곳을 헤집고 다닌다

진리의검 2019-02-23 06:57:53
이름그대로 무식하다

박영돈교수하고 사도요한을 동일시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무식하기 그지없는 자이다
철모르는 유치원다니는 자 수준인가?

칭의를 잘못이해해 주장하는 박영돈교수가 주장은 틀렸다
그런데 무지한 자는 칭의도 모르는 신학교수가 없다 한다
한마디로 무식하고 무지한자다

그런의미가아닌데요 2019-02-23 00:30:47
칭의와 성화에 대한 고경태 목사님의 글은 박영돈 교수님의 의도를 잘못 파악했거나 그저 헤코지할 의도로 기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칭의와 이어지는 성화의 과정은 성령안에서 당연히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의롭게 되었다고 해서 죄를 마음대로 짓겠습니까? 성화에서 행위가 언급된다고 해서 행위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들이 당연히 걸어가야 할 의로운 길, 그 행위라는 것은 로마서만 봐도 잘 이해되는데 목사님은 의도적인 시비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번 의롭게 되었으니(칭의), 성화과정에서 탈락가능성은 없다(이중견인)는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 반대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나, 칭의 이후의 행위에 대한 자신감 결여로 비춰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믿음과 구원의 과정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이중예정(견인)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자신없이 들릴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사람을 공격하는 도구로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영돈 교수님이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다른 글로 유추해 본다면 그런 것 같지는 않군요. 이중구원(견인)은 구원받은 신자가 구원에서 탈락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정치적인 강조를 하고 계시지만, 이것이 박영돈 교수가 언급한 "칭의와 성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이중 은혜이다"라는 문장과 모순을 이룬다고는 여겨지지 않는군요. 성화를 구원의 탈락과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 도리어 억지나 모순된 이해로 여겨집니다. 한편, 이 교리에 대한 강조나 이해가 실제의 믿음 그리고 구원과 얼마나 관련 있을까요. 여기에서는 논쟁의 도구일 뿐입니다.

말은 맞지만_모두들 2019-02-23 00:13:05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여 성자의 구속사역을 과거의 행위로 돌리는 자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강조하여 성자의 구속사역을 가리는 자들.

위의 문장은 흥미롭기 그지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이 잘못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강조하면 안되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정말 바른 믿음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선행은총이나 행위책임 같은 말에 골몰하며 급기야 매몰되어 이단분별 능력을 받은 것처럼 교만에 빠져 죄없는 사람들 잡는 것이 도리어 큰 문제입니다.

무례를떠나_무지하다 2019-02-23 00:08:19
글쓴이의 견해는 편협하고 무게를 잡는데 실패했다고 본다. 처음부터 정이철 목사를 두둔하고자 쓴 글일 뿐이다. 이신칭의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고경태 목사의 견해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가르침과 주장에 대해서 참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고, 정이철 목사는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둘째, 자기 견해를 순수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실제의 무례함이다.
박영돈 교수에게 질문하는 고경태 목사에 대한 나의 질문은 이러하다.
첫째, 이신칭의에 대한 문제를 여기서 등장시켜 박영돈 교수를 책잡으려고 하는 고경태 목사 당신의 태도는 감정적이거나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신칭의도 잘 모르고 고신의 교수를 하고 있겠는가.
둘째, 벤자민 오가 자신의 글을 이용한다고 해서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것을 방기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요구라고 느껴지지 않는가. 신천지가 요한계시록을 오용하다면 사도 요한에게 잘못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 라는 말의 진의는 무엇인가? 신천지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다. 사도요한이 무슨 잘못인가? 사도요한이 "금지하라"고 해야 하는가? 그래서 공손이라는 단어를 동원했는가?
이 사이트의 많은 글들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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