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 교리는 17세기 신학자들에 의해서 구성되었습니다. 이 교리는 종교개혁 신앙의 중심도 아니고 그 정신에도 맞지 않습니다. 성경적으로 전혀 불가한 내용입니다. 신약 성경에 전혀 없는 가르침이고, 17세기 신학자들이 사변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개혁신학자 헤르만 바빙크 (Herman Bavinck, 1854~1921)가 아무 반성 없이 17세기에 형성된 사변적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미국의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가 전달해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전에 바빙크와 벌코프의 신학전통을 따라갔을 때, 나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잘못되었음을 알고 저의 신학에서 폐기하였습니다. .능동적 순종은 그리스도는
그 동안 우리는 의로워지는 방식에 대해 사변적이고 이분화된 이해를 여러 모양으로 강요받았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마치 기독교의 정감록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하며 잘난체하는 거짓 선생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죄를 사하였고,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행위, 즉 완전한 율법준수,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완전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낸 완전한 삶과 순종이 우리에게 의를 선물했다는 가르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혹시라도 필자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와 죄에 대한 형벌을 해결하지 못했다거나, 예수님이 율법을 못 지킬 정도로 부족하고 무능한 분이었다거나,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가득차서 완전하게 실행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이철 목사님, 오늘 박영돈 교수님이 페북에 올리신 글에 대해 목사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영돈 교수님의 이 글을 보시고, 목사님의 의견을 꼭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한국교회에서 전파되는 메시지는 구원파적인 복음, 값싼 은혜의 복음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실제 목회현장에서 부딪히는 더 심각한 문제는 그와 상반되는 율법주의적 폐해이다. 신앙이 더 진지하고 열심인 교인들일수록 율법주의 족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신음하는 경우가 많다. 올곧은 삶과 거룩에 대한 특별한 열심이 있는 설교자들이 종종 값싼 은혜의 복음에 대한 반작용으로 너무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청교도들과 조나단 에드워즈를 탐독하는 이들이 거기서 발견한 높은 수준의
예수께서 율법을 준수하여 하나님 백성의 자격(의)을 얻으시고, 피 흘리시어 죄 용서(구속)를 이루셨다는 초기 청교도신학에서 유래한 구원론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그릇된 사상이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율법을 지켜 하나님 백성의 권리와 자격(의)를 얻었다는 말씀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단 한 구절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무익한 사변의 산물임을 의미한다. 존 칼빈은 예수의 성육신부터 죽으심까지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과 피 흘리심이 우리의 의가 되었다고 했다. 다음은 기독교강요 2권 16장 5절의 전문이다 (한국출판사). '칼빈주의'라는 말로 자기의 신앙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구원론에 관해서 칼빈과 달리 예수께서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백성의 권리와 자격(의)를 전가하여 주었다는 성경에
어떤 분이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교리'의 성경적 근거가 잘 설명되어 있다하시며 안토니 후쿠마(Anthony Andrew Hoekema, 1913-1988)의「개혁주의 구원론」의 해당 부분을 카피하여 보내주셨다. 후쿠마의 능동적 순종의 의에 대한 부분을 읽어본 필자의 소감은 다음과 같다. “제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라도 그의 주장이 성경의 단 한 줄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 그 개인의 사색에 불과하다. 만일 그 신학자의 이름이 유명하면 더 큰 부작용이 일어나게 될 뿐이다. 이제라도 한국 교회의 개혁신학자들은 신앙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스스로 신학을 세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정이철 목사)후쿠마도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
존 페스코에 대한 연구 논문이 몇 개 있다. 이윤석 박사는 “결정적 성화 개념에 대한 존 머레이와 존 페스코의 상반된 견해” (「한국개혁신학」 46권, 2015)에서 페스코의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제시했다. 우병훈 박사는 “칼빈의 모세 언약 이해—존 페스코와 코넬리스 베네마의 논쟁에 비추어서” (「칼빈연구」 제13집(2016)에서 모세 언약에 대한 두 이해를 제시했다.17세기 웨민고백(이하 WCF) 이후 끊임없이 칭의 논쟁은 안과 밖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능동적 칭의와 수동적 칭의, 모세 언약(율법) 이해는 개혁 신학 진영 안에서 펼쳐진 내용이고, 전가 교리 부정, 무율법주의, 이신칭의 부정 등은 밖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이신칭의
프롱크의 책「도르트신조 강해」을 번역하여 국내에 보급한 사람은 현재 카나다에 거주하는 공학도 황준호 씨이다. 지난 번 글에서 황준호 씨가 다음과 같이 비성경적인 율법구원론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구원은 모두 율법에 대한 일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영생을 얻으며,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 사람의 문제이며, 예수님은 구원자로서 자기 백성 대신 율법을 지키고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셨으며,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율법을 지키기 시작하며, 천국은 완벽히 율법을 지키는 곳입니다.” (황준호, 구원은 모든 것이 율법에 대한 것임, 2019.2.24)오늘 황준호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율법을 지켜야 생명에 들어가”라는 제목의 또 다른 글을 살펴보았다. 그의 글
미국 청교도신학교 교수 코르넬리스 프롱크(Cornelis Pronk)의 저서 가「도르트신조 강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청교도신학을 추구하는 한국의 개혁파 교수들과 목회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을 홍보하는 영상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사도 바울이 저주한 '다른 복음'(갈 1:8)을 위해 헌신하는 매우 위험한 사람으로 판명되었다. 그는 현재 카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황준호라고 하는 인물이며 전혀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평신도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하고 보급한 사람에게 어떤 심각한 요소가 있는 지에 대해서 조금 후에 자세하기 이야기할 것이다. 프롱크의 이 책은 ‘그 책의 사람들
요즘 서철원 박사의 과 칼빈의 를 매일 탐독한다. 신학이 점진적, 시대적 발전 과정을 거쳐왔으므로 칼빈 같은 인물이라도 자신과 이후 학자들이 축적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더 정교하고 선명한 신학을 세워가는 후대의 재능있는 학자와 비교될 수 없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칼빈이 만들어 낸 신학의 '판'은 너무도 귀하고 소중하다. 칼빈도 말했으나 흐릿하였던 것이 서 박사님의 작품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또는 칼빈에게서 부족했거나 없었던 것이 서 박사님의 작품에서 교정되거나 정립되는 점들을 본다.칼빈이 원죄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었는지 유심히 보았다. 원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의해 기독교 신앙이 달라지기(틀어지기) 때문이다. 원죄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아담이 율법 안에서 지어졌고, 율법을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약의 율법에 대해 소견을 다시 명확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율법을 지키셨고, 마지막 순간에는 율법의 요구대로 자기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심으로 우리에게 의롭다 하심과 구원을 선물하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지 않으셨다면, 그 분의 피 흘리심이 우리를 의롭게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시고 율법의 요구대로 목숨을 내어 놓았음으로 우리에게 의와 구원이 주어졌습니다.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으시고 전가하셨다는 말씀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고 죽으심이 우리의 의이고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귀하지만, 만일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가 따로 있다면, 성육신의 의
(다음은 서철원 박사님의 최근 작품 「교의신학전집」 4,5권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서 박사님은 기존의 개혁신학자들이 만든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의의 전가 교리가 성경과 종교개혁 신앙에 비추어 볼때 매우 부당하고, 로마교회의 도덕적 칭의론을 개신교 용도로 각색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개혁신학의 역사적 흐름과 주된 내용을 한 눈에 조망하며 거침없이 그 옳고 그름을 말하는 걸출한 한국인 신학자의 심원함을 접하고 싶은 신학도들이 필히 소장하고 일독하기를 권한다. 정이철 목사)"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라고 할 때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켜서 얻은
바른믿음의 한 독자에 의해 코르넬리스 프롱크 교수의 율법 이해가 바울의 율법 이해와 완전히 상충되고, 심하게 말하여 바울에 의해 프롱크 교수가 이단으로 정죄되고 있다고 제기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으므로 급히 복음서를 제외한 신약 성경의 율법에 관한 모든 말씀들을 살펴보았다.과연 기독교의 율법에는 구원에 필요한 의를 얻게하는 기능이 본래 있었는지 각자가 살펴보기 바란다. 1. 아브라함“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2,3)아브라함 때에는 아직 율법이 없었으나, 바울은 아브라함이 무슨 행위로 의롭다함
칭의 이해(구원 탈락 가능성)에 대해서 2016년부터, 그리고 ‘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해서는 2017년부터는 담론을 전개하고 있다. 필자는 칭의 이해에 관해서는 직접 토론에 참가하였고 CLC를 통하여 을 출판했다. 그리고 ‘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해서는 관객으로 참여하고 있다. 나중에 이것도 저술로 묶는다면 또 하나의 좋은 신학담론을 한국 교회가 소유하게 될 것이다.‘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한 담론은 짧은 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을 걸쳐서 누적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칭의 이해와 관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칼빈의 말처럼 칭의 이해는 신학에서 경첩(hinge) 역할을 하고 있다. 문짝이 경첩과 연결되지 않으면 제 구실하지 못할 것이니, 루터의 말처럼 칭
(다음은 서철원 박사님의 (그리스도론)의 pp.166-167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한국인으로서 세계 교회의 역사적 개혁신학을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신학자가 평생 동안 가르치고 연구하며 다듬어 낸 기독교의 진리를 번역이 필요없는 우리 말로 접하는 기쁨을 맛보기 원하는 신학도들이 반드시 소장하고 일독하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정이철 목사) 첫 인류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므로 곧 하나님의 섬을 거부하므로 죄인이 되어 생존권을 박탈당하여 죽게되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7)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지킴 곧 순종히므로
(다음은 존 파이퍼의 글 "The Sufficiency of Christ's Obedience in His Life and Death"를 정이철 목사가 번약한 내용이다. 존 파이퍼도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얻고 전가했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충분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 이전의 예수의 생애의 모든 순종과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존 파이퍼에게서 십자가의 피 흘리심과 구분되는 별도의 예수의 율법준수의 의의 획득과 전가 교리를 믿는 흔적이 조금도 나타나지 않는다. 존 파이퍼의 원글이 아래에 있다.)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롬 5:19; 고후 5:21; 롬 4:6, 11; 10:3)가 만들어졌다
종교개혁 완성자 존 칼빈에게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의 획득과 전가 사상이 있었을까? 칼빈이 에서 율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전혀 아니었다. 율법에 대한 칼빈의 이해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한 최고의 해설자인 사도 바울의 사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바울과 칼빈의 율법에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일치하였다.1) 바울과 칼빈에게서 아담이 창조될 때부터 율법이 주어졌고,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저주받았으며, 훗날 시내산에서 그 율법이 모세를 통해 기록되어졌다는 사상을 찾을 수 없다. 바울과 칼빈은 율법이 인류가 죄 아래 떨어지고 난 후 하나님께서 다시 자기 백성을 가지시기 위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예수님이 단지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셨다는 사실만 강조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으셨다는 것만 강조하면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범죄에 대해 저주하시고 진노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시기 위해 예수님은 완전히 흠이 없고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어야만 했습니다.특히 율법도 잘 지켜야만 했습니다. 율법의 사형선고 하에 있는 잃어버린 자기 백성들을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도 율법 아래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율법의 요구를 따르셔야만 했습니다. 태어나신지 8일 만에 할례(눅 2:21)를 받으시는 등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귀하신 일생은 시작부터 율법을 준수하시는 삶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율법을 무시하셨다면, 마치 구약시대의 제물로 드려지는 황소에게 피부병이 있으면 온전
아담이 행위언약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신학적 주장의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1)아담은 영생이 없는 상태로 창조되었다.2)아담은 영생의 상태로 진입가기 위해 선악과로 대표되는 율법들을 준수해야 했다.3)(성경에 명확하게 나오지 않으나) 영생으로 진입하기 위해 아담이 지켜야 했던 율법은 훗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과 율법들이다.4)아담이 율법준수에 실패하여 영원한 죽음에 처해졌다.5)구원자 예수(제2의 아담)는 아담의 자리에 들어가 모든 율법들을 지켜서 자신과 죄인들을 위한 의를 획득하였다.6)예수께서 율법을 지켜 얻은 의(능동적 순종의 의)를 전가하여 죄인들에게 칭의가 주어졌다.7)또한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수동적 순종의 의)으로 죄
능동적 순종의 의 획득, 전가를 가르치는 모든 교수님들께!저는 미국에서 을 운영하고 있는 정이철 목사(예장 합동)입니다. 우연하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의 획득과 전가'에 관한 신학 논쟁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발단은 주로 합신 출신 목회자들, 그리고 파주에 있는 어떤 신학교 출신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를 믿지 않는다고 서철원 박사님과 정이철 목사를 무식하고 개혁신학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러 날 동안 수군거리고 비방하였습니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능동적 순종의 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노승수 목사라는 분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함으로 예기치 않은 이단사상 논쟁이 벌어졌고, 또한 능동적 순종의 의를 주장하는 분들의 일반적인 성경이해가 매우 부족하다는
현직 교수님들은 제3자들의 심각한 논쟁에 자신의 논문이 이용되는 것을 싫어하신다. 왜냐하면 현직 교수의 글을 인용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본능적으로 그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절차와 과정에서 부도덕한 일이나 속임수는 없었다.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 김 교수님의 논문을 사용하기 위해 김 교수님과 주고 받은 문자를 그대로 공개한다.“교수님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논문을 얻었습니다. 길어서 독자들에게 그대로 소개할 수 없는데, 제가 교수님의 요점을 요약(발췌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해도 될까요?” (정이철 목사)“다시 수정본이 왔나요? 그 중에서 재량껏 하세요.” (김 교수)“수정본인지 ... 그것은 모르겠구요 ... 두 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