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오시어 죽으시기로 작정되었으나,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주도한 사람들은 대제사장, 서기관들, 장로들입니다. 자신들의 기득권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일으키시는 새로운 구원의 복음 운동을 많은 백성들이 따르자, 자신들의 특권을 보장하는 유대교가 흔들리는 조짐이 보였기 때문입니다.대제사장은 다른 유력한 자들을 모아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논의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민중이 소요한다고 걱정했습니다. 전국의 민중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세력화 되면, 로마에 대한 불만이 터질 것이고 로마 군대가 와서 피의 학살을 일으킬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그러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정치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
요즘 회중-청교도 운동에 대한 연구를 보물찾기처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를 뒤지다가 보게 된 한두 줄의 짧은 정보를 통해 중요한 단서를 얻어 계속 관련된 자료를 찾아 내면서 윤곽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읽어야 할 article들과 책들이 많고, 얻어진 정보들이 어느 정도 쌓이면 글로 정리합니다.그러다 보니 진도가 많이 나가지 못했습니다. 최후의 부활을 설명하는 마지막 25장만 읽으면, 3권이 끝납니다. 지난 며칠 동안 3권 21, 22, 23, 24장을 읽었습니다. 칼빈이 ‘예정’와 ‘유기’에 대해서 진술하는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 부분을 바르게 읽으면, 영원한 예정과 유기에 대한 칼빈의 가르침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현대인들은 예정 교리를 매우 싫어하고, 특히 유
글이 긴데 다 읽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도 맥돌이, 맥도날드에서 죽치고 책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을 시키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교회들에게 해를 미치는, 그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이단 문제를 다루게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일을 맡기시고 계십니다. 초기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일을 많이 하였으므로 칭찬도 많았고 박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방향을 바꾸시게 하시더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칭찬 듣고 박수 받게 하는 일을 시키시지 않습니다. 일마다 이 시대의 정통이고 주류이신 유명한 분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연구하도록 매일 맥돌이가 되게 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의 영감을 받
어제 12시간 동안 운전했습니다. 미국 미시간에서 카나다 국경을 넘어 4시간 운전해서 나이아가라 폭로로 갔습니다. 외딴 선교지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의 아내와 따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여기 미시간에 살다보니 귀한 손님이 오실 때 종종 가게되는 곳입니다.운전이 이상하게 꼬여 국경을 도합 4번 넘게되었습니다. 처음 미국에서 카나다로 넘어 갈 때에는 수월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네비를 잘못 쳐서 3시간 이상 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아니었습니다. 폭포보다 30분 정도 아래에 있는 버팔로라는 곳, 다시 미국 동부로 넘어가는 국경이었었습니다.미국 쪽 나이아가라 폭포를 먼저 보고 카나다로 다시 넘어 오기로 맘 먹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쪽 국경 직원은 카나가 국경 직원과 달리 무척
매일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고 있습니다. 지금은 3권을 읽고 있는데, 3권의 5장은 천주교의 연옥, 면죄부, 죽은자를 위한 기도 등을 다룹니다. 6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거룩과 성결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우리를 정결하게 만드셨으므로, 추악한 죄로 우리 자신을 다시 더렵혀서는 안된다고 매우 강조합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How then do I keep myself holy and clean?그러면 어떻게 나를 거룩하고 깨끗하게 유지하지?칼빈은 복음의 효력이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하여 영혼 속에 자리하고 있는 전 인격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 만족에 빠지거나, 죄를 변명하지 말고 인생의 종점을 향하여 끝까지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9장에서 자신이 장차 가게 될 영원한 내세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저는 종교개혁자의 진정한 힘이 자기 목숨보다 영원과 내세를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신앙에서 나왔음을 느낍니다. 신학 지식이 칼빈의 최고의 힘이 아니었습니다."내세의 삶에 비하면 현재의 삶은 무시해도 무방할 뿐 아니라, 완전히 멸시해야 한다. 하늘이 우리의 고향이라면, 땅은 타향임이 틀림없지 않는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곧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세상은 무덤이 아니고 무엇이냐?육신에서 잠시 놓이는 것이 곧 완전한 자유를 얻는 것이라면, 육신은 감옥이 아니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면,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 것은 불행이 아닌가? 세상을 작별할 때까지
칼빈의 를 보니, 칼빈의 힘은 성경의 말씀이었습니다. 칼빈을 보니, 진정한 힘이 성경을 가까이 하는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자신의 존재와 인격을 드러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 "성령의 영감"을 받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과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저술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성령의 특별하신 역사하심으로 그 사람에게 이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말하고 기록하였으나, 그의 마음에 와 있는 내용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성경이 기록될 때에 성령께서 그 특별한 사람들에게 그 같은 '감동'과 '영감
칼빈은 그냥 실력있는 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칼빈은 속사람이 잘 갖추어진 진정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설명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진정으로 자신의 행위의 교만을 버릴 것을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우리가 겸손하게 되는 방법은 철저하게 가난하고 부족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자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기가 아직 무엇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것을 겸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우리의 의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함께 가진 사람들은 파멸적인 위선을 가르치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3.12.6)칼빈의 인격과 속 마음이 묻어 나오는 이런 내용들이 그의 에 자주 나옵니다. 칼빈은
3권 20장에서 칼빈의 방언에 대한 두 번째 언급을 접했습니다. 이전에 방언이 언급되는 딱 한 문장을 보았는데, 오늘은 조금 깁니다. 총 4권 20장으로 구성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대작에서 방언에 대한 언급이 이 정도로 작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기독교의 방언 은사에 대한 이해에 논란이 종교개혁 당시에는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기독교가 출범되는 되던 초기에 잠시 교회에 존재하였으나, 곧 바로 사라졌으므로 전혀 논란이 되지 않았습니다.고린도전서 12장의 성령이 교회에 주시는 은사의 목록에는 방언과 방언 통변의 은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약 2년 후에 기록된 로마서 12장의 은사 이야기 속에는 예언은 있어도 방언이 없습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예언의 은사와
오늘도 우리 동네 맥도날드에 왔습니다. 제가 날마다 이곳에 온다고 하니, 햄버거 많이 먹고 미국형 성인병 걸릴까 걱정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햄버거 일년에 세개도 안 먹습니다.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할 때만 부득이 길가에서 한 두번 먹는데, 그때는 버거킹으로만 갑니다. 버거킹에 가서 1번 셋트를 치즈와 피클 빼고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맥도날드에서는 커피 라테를 저지방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마십니다. 맥도날드에만 와서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의 의지와 테아블이 저에게 맞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맥도날드 매장의 사장들은 매장의 겉 모양은 통일되게 꾸미지만, 내부는자기 개성대로 합니다. 도시마다 맥도날드 매장들이 도처에 있어도, 제 몸에 맞는 탁자와 의자, 그리고 눈을
제가 요즘에는 방언, 예언, 방언 통역 은사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은사주의, 신사도, 오순절 영성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판단됩니다. 문론 거기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으나, 어차피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목회자들이 다 함께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에 붙들리심을 받은 '남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7)두렵고 예민하고 무서운 말이지만, 성경적인 사실이니 말 못할 내용도 아니라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에서 보았던 많은 사람들 가
힘든 몸으로 맥도날드, 저의 도서관의 가장 안쪽의 자리에 와서 앉았습니다. 문제가 온 차를 수리하겠다고 차 밑으로 기어서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는 가운데, 허리에 문제가 왔습니다.저는 허리 문제를 30년 넘게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 번 응급실에 실려가서 정맥에 놓는 주사를 여러 대 맞고 간신히 움직여 지기도 했고, 2년 전 한국에 갔을 때에는 너무 증세가 심하여 허리 근육 속으로 약 15 cm 정도 직접 찔러서 약물을 넣는 주사를 맞고서 일정을 쫓아다니가도 했습니다. 이것 말고도 다른 문제들이 더 있습니다. 모두 3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진 저의 인생의 눈물 베인 이야기들입니다.저는 총신대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할 때, 그 무렵에 막 출시된 대웅 한약탕기를 기숙사 창틀에
이제 「기독교강요」 3권 16장 에 도착했습니다. 칼빈은 정말 능력있는 신학자입니다. 그의 모든 사고와 생각은 언제나 성경과 함께 갑니다. 칼빈의 중요하다 싶은 모든 말들은 전부 성경 구절들로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인용되거나, 성경 구절들이 괄호로 표기되어 있습니다.신학은 반드시 성경으로부터 나와야 함을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제시하지 못하는 신학자들의 말은 그 자신의 사색입니다. 신학 이론은 언제나 성경의 강물에 젖어서 나와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신학자의 이론이 그 자신과 독자들의 신앙과 영혼에 해악을 미칩니다.정독하다가 잠시 멈추어둔 서철원 박사님의 저술 「교의신학전집」의 특징도 중요한 모든 부분마다 관련 성구들이 풍성하게 괄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