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교회들 가운데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교인들의 신앙을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그러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양적부흥을 이룬 교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엄밀하게 따져보면 꼭 그러한 프로그램 때문에 양적으로 성장한 것이 아닐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도입한 몇몇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했다는 소문이 돌면 그 프로그램은 유행처럼 많은 교회를 점령하게 된다. 예를 든다면 두 날개 프로그램이나 알파코스, 등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이와 비슷한 일이 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적용되는 것을 실제로 많이 보았다. 누가 DTS훈련이나 특정훈련을 받고나니 자기 개인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그 말을 들은 주위사람들도 그 훈련을 받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는 말
정치적 유대인들의 미국 이주의 역사유럽의 유대인은 공산혁명의 실패로 인한 박해를 피하기 위해, 또 이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였다.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과학기술로 미국을 정복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하자 모든 재산을 빼내어 미국으로 망명하기 시작했다. 공산 소련이 지식층 엘리트를 너무 많이 죽였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미국에 들어가서 직접 정복하기로 하고 미국행을 감행했다.당시 500만 내지 600만 명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러시아를 탈출해서 미국으로 향했는데 미국 사람들은 이들을 대환영하며 맞아주었다. 냉전 체제 하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으므로 단연 자유민주주의 승리라고 착각하여 환영하면서 받아 주었던 것이다. 실상은 아슈케나지 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교회에서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나 가르침을 종종 배우게 된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성도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은 그렇게 많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게 흐르고 있다.대부분의 교회에서 부흥회나 유명한 강사를 모시고 집회를 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그 속을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거나 집회를 하는 이유는 어떤 목적을 두고 있다. 그 목적이란 거의 돈과 관련이 있다.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해, 교육관을 세우기 위해, 교회 주차장을 넓히거나 아니면 교회 빚을 갚아 나가기 위해서 자주 외부 강사들을 모신다. 아니면 선교지에 보내는 돈을 모으기 위해
오늘날 우리 주변을 보면 이단들이 상당히 많이 있고, 그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단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요한계시록을 자의적으로 해석이다. 한국교회가 요한계시록에 대한 통일된 해석을 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상징적인 의미와 문자적인 의미를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오류에서 이단들이 계시록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는 것이다.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이 왜 통일성을 가지고 해석되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기록 시점에 대한 차이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언제 이 계시록을 기록하였는지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기록시점과 이단들의 발생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시
성경은 모든 인류의 기원이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이라고 밝힌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이스라엘은 황인종인 셈의 후손이다. 그런데 또 다른 유대인들이 있다. 후에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로서 백인종인 야벳의 후손이다. 둘을 분류해서 전자는 '세파라딤', 후자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이라고 한다. 성경에 아슈케나지에 대한 언급이 있다. "야벳의 아들은 고멜… 고멜의 아들은 아슈케나지(Ashkenaz) … 였다." (창 10:2-3)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로 세계에 흩어졌지만 강한 민족주의 때문에 단일민족인 것처럼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8세기 이전까지 세계에는 아주 소수의 혼혈 유대인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런데 돌연 수많은 백인 유대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백인 유대
개혁교회가 목사, 장로, 집사를 세워 교회를 섬기게 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목사만 교회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위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의 말 한마디에 성도들은 그저 순종하면 복을 받는 다는 기복주의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목사의 말에 순종하여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위해 목사와 장로와 집사를 세우셨다. 이것은 목사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는 장로와 집사라는 말씀이 아니다. 교회를 위해 목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장로와 집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간혹 교회가 갈등이 있을 때, 거기에는 자신
예정론을 믿으면서 왜 전도를 하냐구요? 예정론은 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속에 있었음을 고백하는 신앙이론이다. 구원도 내가 믿어서 받은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서 구원의 은혜를 주셔서 믿어지게 되었구나! 하고 깨달으면 예정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만일 회개하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여지셨다면, 이 또한 예정속의 섭리다.우리 인간의 편에서는 하나님의 결정이 무엇일까? 궁금해 할 필요없이 기도하고 삶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으니 체념하거나 운명에 맡기고 되는대로 살아가자는 것이 숙명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
과연 유대교의 정신과 사상이 베여있는 탈무드의 가르침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 다음을 읽는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왕의토라20세기에 들어 시온주의가 극심해지고 팔레스타인을 강점한 후에 주변 아랍국들과의 긴장이 높아지자,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 랍비들은 강도높은 주장을 하며 2009년 (The King’s Torah)라는 책을 발간한다.서안지구의 유대 신학교(Yeshivat of Od Yosef Chai) 교장인 랍비 이챡 샤피라(Yitzhak Shapira)와 다른 신학교 선생인 랍비 요셒 엘릿저(Yosef Elitzur)가 공저한 는 이스라엘 정착촌에 거주하는 신학도들에 대한 종교적 지침서로서, 팔레스타인 등 이민족들에 대한 이스라엘인
우리는 칼빈의 나 그의 주석을 읽으면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들을 볼 수 있다. 바로 '미친 개' '협잡꾼' 이라고 하는 말들이다. 칼빈은 이런 과격한 말을 (사실 칼빈에게 있어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고 할 수 있다) 진리를 왜곡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한정지어 사용한다.삼위일체를 부인하거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선택을 부인하는 자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그리고 동정녀 탄생을 거부하고 성경 66권의 무오성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아주 단호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칼빈은 진리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성경해석을 완고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성경의 난해한 부분을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면
유대인은 세계인구의 0.2%뿐이 안되면서 노벨상 수상자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유대인의 성공비결을 그들의 특별한 가르침인 탈무드에서 찾으려 하면서도, 정작 탈무드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는 거의 모른다. 1934-48년 손치노Soncino 편집본이 나올 때까지 탈무드의 영어 번역은 거의 없었다.탈무드가 비유대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성경은 모든 인류에게 주어져 공개된 것이지만 탈무드는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비밀에 붙여왔던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 내용의 황당함으로 매번 교황의 명령에 의해 불태워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배울만한 지혜가 아니라 온갖 외설적, 반윤리적, 반인륜적, 반기독교적인 사악한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곳곳에서 미
우리는 주변에서 다양한 교파와 교단을 통해 세우진 교회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파와 교단은 신학과 정치에 의해 규정된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가장 많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교파가 장로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장로교의 정치에 대한 목회적 측면에서 과연 오늘날 한국교회 장로교가 장로교의 독특성을 잘 발휘하고 있는지 언급하고자 한다.세계 교회에서 가장 큰 교회와 큰 교단이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이런 대형교회의 특징은 바로 목사 중심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교회도 유행처럼 이루어진다. 미국에서 커뮤니티 교회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자 한국에서도 이러한 커뮤니티 교회를 이루기 위해 목회자들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교회가 부흥하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유행병이다. 그런데 커뮤니티
(다음은 김주옥 선교사님이 정이철 목사의 “거짓 영의 역사가 많은 중보기도 운동”을 읽으시고 남기신 글이빈다.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조금 편집하여 기사로 올립니다)목사님,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제가 중보기도운동, 성령운동, 내적치유운동, 신사도운동을 4년간 열심히 뛰다가 알게 되고 밝히고 싶었던 사실들을 목사님이 정확하게 지적해주셨습니다. 목사님 글에서 한 가지 빠진 것은 ‘내적치유운동’입니다.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 행해집니다.중보기도운동을 '마귀적'이라고 표현하신 용감함에 감탄합니다. 나라를 위해, 이웃을 위해, 선교지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자들이라면 당연히 가장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칭찬받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이렇게 표현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입니다.중보기도자들은
요즘 우리는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 이라고 말하는 이런 말을 아주 쉽게 들을 수 있다. 신학에 대한 가르침과 개혁교회의 전통교육이라고 하는 캐터키즘을 가르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물론 현대교회가 도덕적으로 바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해서 지탄을 받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교묘한 사탄의 선전문구이다. 기독교는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는 “모두 다”의 문제이다.만약 우리 주변에서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리가 삶을 대적하며 삶이 교리를 대적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 팽배해 있는 교리를 혐오하는 사상이 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두말할 가치도 없는 진리이다. 그런데 구원 그 이후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심비에 새져진 성령의 법에 따라 살아가고 있으니, 이제 구약의 도덕법은 거기에 녹아져 있으니 볼 필요도 없다는 주장과 그 성령의 법을 따름에 지침서인 계명의 기초인 구약의 도덕법을 보면서 신구약 모든 말씀에 순종할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양분되고 있다.개혁주의 신학은 율법과 복음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속에서 복음을, 복음 속에서 율법을 발견할 수 있고, 발견해야 한다는 '언약' 신학적 관점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율법 그 자체로서는 '죽이는 것'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율법이 성령으로 인하여 사용될 때에 그것이 복음의
2002년도 월드컵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뜨거웠던 그 날이 생각난다. 신학대원 3학년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다. 총신대학원 3학년 4반 반장이었던 나는 서울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정현 목사는 총회의 헌법대로 편목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상식도 알고 있었다.그런데 오정현 목사가 3학년에 편목하였다는 말은 있었지만 그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1학기 시험을 앞두고 오정현 목사를 복도에서 한 번 보았다. 그런데 총신신학대학원 교수들은 오정현 목사를 과잉보호하듯이 그가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듯이 그를 자신의 연구실로 맞이 하여주었다. 그리고 오정현 목사는 편목 수업을 거치지 않고 강도사 시험도 보지 않았
기독교진리수호연구협회(기진협) 1,2월 신년세미나(제16,17회)에 초청합니다. 기쁜 성탄과 2017년 새 해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7년 세미나에도 실질적이고 매우 유익한 주제들이 준비되었습니다. 부디 꼭 오시어 함께 큰 유익을 나누시고, 또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데 힘써 동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16회 기진협 1월9일 신년세미나제 1강 : 신년하례 및 특강(오전11:00~오후12:20) 1)겸손함으로 관계를 새롭게 하라!(딤전6:3-10) 2)복(‘히.아쉐르’)의 진정한 개념 이해하기(마5:1-5
개혁교회와 현대교회의 설교의 내용은 다르다. 목사는 신학교에서 신학과 그 밖에 다양한 학문을 배운다. 배우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여기에 해당하는 답은 헬라어, 히브리어로 기록된 원어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음으로 그 원어 성경을 각 나라 언어로 번역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강단에서 목사가 설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의를 놓고 보면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시 말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이다.이러한 성경의 권위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어 주는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을 기록한 책’ 이라고 말한 존 맥아더의 말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최근 부요층과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고급신비주의 영성운동일 일어나고 있다. 일부 영성신학 운동가들의 진행하고 있는 ‘웰빙 수도원 운동’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영성운동의 중심에는 관상기도가 있고, 관상기도의 핵심적인 요소는 침묵이다. 이미 수년 전에 관상기도는 한국교회에서 거의 이단으로 정죄받기 직전까지 갔었던 적이 있다. 그때 관상기도 운동을 도입하여 활발하게 전개하던 이동원 목사가 더 이상 관상기도 운동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서 이동원 목사는 이단시비에서 놓여났었다.필자는 2016년 11월 8일 미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루터는 “구원하는 믿음은 오직 살아 있고 의의 열매를 맺는 생명이 있는 믿음”이라고 하였다. 죄인이 의롭다고 함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장2항은 루터의 가르침대로 “믿음은 다른 모든 구원의 은혜들과 함께 있으며 그것은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다” 라고 가르친다.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믿음으로 칭의를 받고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는가? 세대주의자들 가운데 반율법주의적 견해를 가진 자들은 이 질문에 충분히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믿음은 의롭다고 하는 것
그렇다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경은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이다.“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24:44).정확하게 번역하면 “모세의 글들과 선지자들의 글들과 시편”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선지자들의 글이란 모세 오경과 시가서를 제외하고 모든 구약 성경을 선지서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구약 성경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마귀는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성경으로 이끌지만 성령은 그리스도가 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