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언약은 창세기 6:18에서 노아와 맺은 언약에 최초로 등장한다. 개혁파는 창세기 1장에서 무죄 상태인 아담에게 주신 명령을 언약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노아 언약이 새로운 생활 체계를 이루는 구조이다.아담 언약은 첫 언약이고 실패한 언약이다. 실패한 이유는 아담의 범죄이다. 이 때 죄의 개념을 확립할 수 있다. 죄는 언약을 깨드리는 것인데, 언약을 깨는 것은 반역이다. 범법은 언약이 유지되지만 반역은 언약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반역을 범하면 반역자는 그 땅에서 살 수 없이 3족을 멸하는 것이 왕권의 위계이다.첫 상태에서 죄는 정녕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창 2:17). 아담은 반역했고 하나님은 반역한 아담을 즉결 처분하지 않으시고 여자의 후손으로 회복 방안을 선언하셨다(창 3:15
‘방언(方言)’은 표준어로 사투리, 즉 지방어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여러 의미로 신학화하여 사용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단수형(글롯사)과 복수형(글롯사이)으로 등장한다. 이창모 목사는 복수형이기 때문에 다양한 외국어로 이해했다. 방언은 1세기 예루살렘과 고린도에서 발생했는데,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았다. 이창모 목사는 고전 14:14-15절에서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했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린도전서 이후로 방언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창모 목사는 몬타누스파들이 방언했다는 견해를, 몬타누스의 추종자인 프르스길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가 키벨레(Cyblele) 신전에서 이상한 노래로 흥분시키는 방법을 도입한 것으로 제시했다.
신학, 학문을 진행할 때에 사고 체계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체계가 없을 때에는 많은 혼란을 양산할 것이다. “체계 없는 사고 체계”에서 나오는 산물은 반드시 혼란을 선물로 제공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완전한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인간에서 나온 산물은 위험하다(마 15:11). 그럼에도 인간에서 나온 산물로 인류는 유지되었고, 유지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갖는 부조리의 원인이며, 인간미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문하는 사람은 체계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한다. 기존에 사용하는 어휘 개념을 이해하며 사용하는 것이고, 자기 개념을 자기-어휘로 개념화하는 것이다. 학생은 기존 어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선생은 자기-어휘 개념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3권, 47장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사역(그리스도의 비하)을 정리하고 있다. 바빙크가 사용하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살피기 위함이다. 바빙크는 그리스도 속죄 교리, 속죄제사(희생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빙크가 속죄 교리를 부정하는 형태로서 소시누스파를 심각하게 여겼음을 보고 있다.소시누스 파의 중심인물을 삼촌과 조카 사이였던 두 사람(Laelius(1525-1563) and Faustus (1539-1604)이었는데, 두 사람은 로마 교회를 떠나 방랑하면서 개혁파들과 토론을 즐겨했다. 삼위일체를 부인했고 조카는 Unitarianism을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부정한 대표적인 위인들이다. 1597년 폴란드로 이주해서 1605년 라코비안 요리문답(Racovi
1646년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하 ‘웨민고백서’)는 잉글랜드 의회파가 주도했고, 스코틀랜드 장로파가 업저버로 참석하여 형성한 신앙 표준 문서이다. 1658년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은 웨민고백서 작성에 참가했던 회중주의자들이 후에 별도로 런던의 사보이 궁에서 모여 작성한 선언문이다.회중 제도를 추구하는 원로(Elder)들은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 예레미야 버로우(Jeremiah Burroughs, 1600-1646), 필립 나이(Philip Nye, 1595-1672), 시드락 심슨(Sydrach Simpson, 1600-1655), 윌리엄 브릿지(William Bridge, 1
바빙크는 종교개혁에서 확립한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가 점차 신비적, 윤리적 혹은 도덕적 견해로 전환되었다고 우려하며,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를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바빙크는 1800년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대속 교리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신비적, 윤리적, 도덕적 견해로 전환되었다고 제시했다(439쪽). 대속 교리를 부정하는 측에서 죄의 속죄 교리가 복음의 한 요소가 아니라, 바울에 의해서 첨가되었다고 주장했다(440쪽). 그러나 바빙크는 예수의 대리적 고난과 죽음에 대한 고백을 강조했다(440쪽).바빙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을 기독교 고백의 심장과 핵심으로 제시했다(441쪽). 바빙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했다고 주장했다(441쪽). 이것은 비밀 그리스
서철원 박사는 바빙크 신학이 사변이 있다고 했다. 바빙크는 20세기 대표적인 칼빈파 신학자이다. 바빙크 이후에 진행된 칼빈파 신학은 바빙크보다 더 사변적으로 전개되었다. 한국의 석학은 사변으로 경도하는 개혁파 신학에 대해서 주의를 경고했다. 한국 개혁파는 세계 개혁파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국 개혁파가 바르게 선다면 세계 개혁파가 루터와 칼빈에 입각한 종교개혁 사상을 풍성하게 형성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서 박사의 견해를 따르면 바빙크의 신학보다 더 사색적이지 않고, 성경과 교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훈련하면 된다.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다. 필자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비하 사역과 승귀 사역으로 구분했다. 47장이 “그
우리는 2016년에 김세윤 교수의 신학에 대해서 많은 탐구를 했다. 그 결과를 2017년에 (CLC)을 출판했다. 이 신학담론의 장을 위해 (대표 정이철 목사)을 활용했다. 김세윤 교수의 칭의 이해를 “유보적 칭의”라고 최덕성 박사께서 정립하면서, 한국 교회는 유보적 칭의와 구원의 탈락 가능성에 대한 담론으로 뜨거웠다. 이제 우리는 김세윤의 칭의를 “유보적 칭의”라고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있다.그런데 최근 ‘칭의’에서 ‘의’라는 개념 이해로 논의가 확장되면서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라는 개념이 있고, 루터의 개념인 의인임과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개념을 갖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남은 죄’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다. 신
1>손성은 목사가 지난 해 6월에 SNS에서(facebook.com)에 서철원 박사의 신학 사상에 대해 게시한 글에 75개 정도 댓글이 달리면서 많은 호응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정이철 목사가 을 통하여 손성은 목사의 글에 대한 답변을 게시했다.2>손성은 목사가 포스팅한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바른믿음의 글을 재인용).“한국교회의 그 유명한 신학자, 그것도 칼빈주의, 개혁신학을 강조한다는 한 신학자의 말입니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한국교회만 아니라 2천년 세계교회가 깨닫지 못하였고, 칼빈의 신학도, 청교도의 신학도 자신
필자는 신동식 목사의 권유와 인도로 출판사 우리시대에서 「영분별을 위한 신학좌표」를 처음 출판했었다(2017년). “신학좌표”라는 말은 지금도 생소한 것 같다. 그러나 신학하는 사람, 신학을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신학좌표(神學座標, theological latitude, theology coordinate), theological latitude를 구글에 검색하니 GPS을 근거로 신학교 위치가 나왔다. theological latitude, theology latitude는 외국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개념인 것 같다. 신학좌표는 문자의 의미대로 “신학에 어떤 포인트 위에 신학하는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이다. GPS는 위도(緯度, latitude)와 경도(經度, lo
1. 들어가는 말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누구인가? 정이철 목사가 에드워즈 자신의 신비적 체험과 부인 사라의 신비적 체험 등을 기점으로 꾸준하게 비평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이철 목사 외에도 상당히 저명한 많은 연구자들이 에드워즈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비평의 내용들은 매우 심각해 보인다. 에드워즈에 대해서 높은 평가가 있는 반면에 매우 심각한 비평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에드워즈를 비평한 학자들은 우리가 신학을 높이 평가하는 위인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의 「구속사」라는 저술이 있다. 에드워즈가 노샘프턴(Northampton) 교회에서 1739년에 6개월 동안 설교한 30편의 원고를 그의 사후에 스코틀랜드의 존 어스킨(John Erskine, 1721-1803)이『구속 사역의 역사』(1774년)라는 명칭으로 출판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귀탁이 번역하여 부흥과개혁사에서 「구속사」(2015년)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우리나라의 신학교에서 구속사적 성경 해석은 상당히 중요하고 관심을 받는 주제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드니 그레이누스(Sidney Greidanus) 혹은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1902-1999)을 통해 많은 신학생들이 그것을 접했다. 게할더스 보스(Ge
정이철 목사의 “에드워즈를 세우고 예수가 손해보게 하는 연구 그만해야 한다”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 기사에서 정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참 부흥과 거짓 부흥의 차이필자는 사도행전의 참 부흥과 이후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마귀의 거짓 부흥의 차이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1. 사도행전의 참 부흥에서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선포하는 이적들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역사 속의 많은 거짓 부흥운동은 대부분 이미 신앙고백하는 사람들 속에서 큰
어떤 목사가 나에게 유투브 동영상 두 편을 보냈다. ‘리얼 크리스천 1부’, ‘리얼 크리스천 2부’라는 제목의 두 개의 영상이었다. 미국 뉴저지의 신사도-행위구원론 교회라고 소문한 ‘사랑과진리교회’의 벤자민 오 목사가 김세윤, 권연경, 최갑종,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과 인터뷰하는 내용의 영상이었다.필자는 한국 교회 구원론을 ‘구원파 구원론의 신학’이라는 김세윤의 주장에 대해서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리얼 크리스천 1부’의 도입 부분에서 김세윤 교수는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정죄한 스스로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대다수 교단의 목사들의 복음 선포가 사실 상 구원파 신학”이라는 주장으로 시작하였고, 그 뒤를 이은 ‘바울신학의 대표 연구자’라고 소개된 권연경 교수, 백석대학교 총장인 최갑종 교수도 유사한
필자는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라고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강조하기도 한다. 학생이 교과서와 참고도서 등 관련도서를 구입하는 것이 학습하는 사람의 중요한 준비 자세이고 항속적으로 공부하는데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에 근거한 것이도 하다. 어떤 주부가 1,000원 할인을 받기 위해서 3,000원의 교통비를 소요했다면, 그 주부는 2,000원의 손해를 본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주부는 알뜰한 정신이 그 가정의 가계를 튼튼하게 한다. 숫자 지표가 아니라 공동체의 정신(mental)이 중요하다. 정신을 만드는 유일한 문화는 책이다. 미디어(드라마 등)로 형성시킨 정신은 현세적이고 임시적이고 소비적인 정신이다. 그러나 책으로 만들어진 지식은 책을 만드는 사람의 탁월한 정
신출귀몰 ‘전우치(田禹治, 14??년 ~ 15??년)’가 있었지만 조선을 바꾸지는 못했다. 많은 도전자들은 혁명을 하기도 했고, 반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에서 드러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 Calamus Gladio Fortior 영,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우리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이라 했다. 문(文)을 숭상하여 무(武)를 천시할 때도 있었다.그러나 권력은 항상 무력(武力)에 근거했다. 그럼에도 무력은 시대를 아프게 했을 뿐 회복을 제공하지 못했다. 간혹 무력독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인간존중이 결여된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다. 칼(刀)을 근거로 한 통치에는 칼잡이를 잡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장 전계헌 목사) 제102회 총회기 제3차 총회실행위원회 회의에서 “총신비상사태와 관련한 정이철의 신학사상 문제점 분석과 평가”를 작성해서 발표했다(17-33쪽).지난 4월 20일 총회관에서 열린 실행위원회 회의자료에 수록된 보고서의 작성에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조직신학, 주경신학, 선교신학, 실천신학 교수 7명이 참여했다. 그런데 이 글을 비평하려고 글을 보는 순간 패닉에 빠져 버렸다. 그것은 첫 어휘가 “총신대 김영우 총장은~”라는 문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첫째, “총신비상사태와 관련한 정이철의 신
필자는 이전에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 그는 누구일까?”라는 글을 에 기고했다. 그 글이 사이트에서 가장 많은 댓글이 나올 정도로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번 기회에 정이철 목사가 휘두르면서 한국교회를 흔들고 있는 신학의 칼의 성격을 정리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인터넷 매체인 을 사람들은 ‘신학과 이단비평 전문사이트’라고 한다. 이 사이트는 2014년 10월 1일, 그러니까 약 4년 전에 드라마틱하게 시작했고 지금까지 한국 교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오해일수도 있고, 공격일수도 있다. 아무튼 정이철 목사의 기사와 보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정이철’ 자신뿐인 것 같다.필자는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 그는 누구일
정이철, 미국 앤아버반석장로교회 목사이고 신학신문 대표이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에서 소개되는 정보에 의하면 전남 여수 출신이고, 1967년생이라고 한다. 필자가 69년생이고 86학번이므로 정이철은 그 보다 조금 빠를 것 같다. 지금도 여수에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은 한국에 방문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가 어떻게 정이철 목사와 알게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사실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어떻게 정이철과 연결되었을까? 정이철을 안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정이철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빨대’, ‘총’ 등 상상하기 어려운 어휘를 구사하면서 사람들에 충격과 패닉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일단 그
총신대학교가 학부와 신대원 모두 개강을 하였으나 일부 비대위 학생들이 아직도 본관을 점거하고 있고, 전산시스템이 점거된 상황이다. 정보화시대에 전산실 점거는 사실상 테러 수준으로 보아야 한다. 비록 종교사학의 내부문제라서 경찰이나 정부가 강제진압을 하지 않고 있으니, 자칫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가 증폭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증거이거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총신대학교 교직원과 교수들은 총신대학교 불법 점검에 대해서는 어떤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는데, 용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