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이 영상을 보고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조롱을 남겼다.)“이단이 아니라면 예수의 100% 인성(+100% 신성)을 받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100% 인간이므로 십자가 이전에는 율법에 순종을 해야하는 것은 맞습니다. 참 쉽죠잉?”. 정이철 목사의 답변>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그리스도의 인성에는 죄가 없습니다. 아담의 죄와 무관하게 성령에 의해 창조된 인성입니다.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 죄를 지적하고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율법을 지키고 말고 할 것이 있습니까?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이 잠시
21년에 이라는 연구자들에게 제공하는 많은 자료들을 수록하고 있는 책을 펴내신 분이 한국에 계신다. 그 책의 85 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그러나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책임을 어기고 불순종하였다.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연 계시와 함께 주어졌다.” (84 페이지).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이 주어졌다는 의미이다. 자연계시와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은 서로 어울리는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은 특별계시이다. 구름, 산, 냇물, 바다, 나무 등의
정직하지 못한 경제활동에서 파생 되어진 천박한 자본주의는 유대인들의 탐욕에서 나온 이윤 창출을 비난하는 말이었다. 유대인들은 정직한 이윤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나 구조 속에서 엄청난 이윤을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는 착취와 수탈이라고 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시장을 확장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많은 돈을 벌 수 없는 시장의 환경 속에서 유대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천박한 자본주의라고 하는 용어의 의미이다.세상의 가치관은 이미 이러한 천박한 자본주의를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충고>방언에 대해 한 말씀 하자면, 방언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믿는 자에게 방언이 표적으로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제자들에게 방언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이구요.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나타난 방언을, 그렇게도 쉽게 ‘변태 방언’이라는 식으로 폄하하고 모욕을 주는건 ‘바른 믿음’의 자세는 아니라고 봅니다.바른 믿음은 어디까지나 성경을 근거로 하는 것이니까요. 목사님은 은사 중지론의 입장에 계신 것 같은데, 그것 역시 하나의 ‘성경 해석’이고 목사님의 주장일 뿐이지
21년에 이라는 책을 펴내신 분이 한국에 계신다. 그 책은 매우 귀한 자료들을 많이 담고 있어, 연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주장이 성경적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회사의 중요한 자료들을 많이 담고 있으므로 연구하는 사람이 참고할 좋은 책이라는 뜻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두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하는 것처럼, 필요할 때 자료들을 사용하기 위해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94페이지 이런 내용이 나온다.“의를 실천하는 기준이 율법 안에서 제시되었기에 종교개혁자들은 율법의 기능들을 강
(예장합동 총신대보(2016년 4월)에 실린 글을 보고 정리하다.) 프랑스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지인 '떼제(Taizé) 공동체' 한국인 최초의 수사인 '신한열'씨의 인터뷰 기사가 전면에 실렸다. '총신을 바꾸는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신한열수사'의 인터뷰기사를 통하여 수 많은 총신인들이 '떼제(Taizé) 공동체'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갖게 될지 참 두렵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인터뷰기사는 이런 글로 시작한다."지난 3월 19일 토요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떼제(Taizé) 예배가 진행되었다. 근교에서는 물론 전국 방방
총신에 아담의 중립적 창조를 믿는 교수들이 있다는 사실은 안 될일입니다. 아담이 중립적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은 기독교의 창조 신학을 성경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심각한 일 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거짓 이론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1) 아담은 죄를 범하지 않아도 얼마 후에 죽을 사람으로 창조되었다.2) 아담은 스스로 노력하여 생명을 얻을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 기간 안에서 창조되었다.3) 아담과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분이었다.4)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범죄로 죽음이 왔다는 성경 말씀은 거짓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23년 108회 합동 총회는 회심준비론을 주장하는 합동 교단의 인물들에게 22년 총회의 명백한 교류금지 결의를 무시하며 면죄부를 주었다. 회심준비론에 대한 신학부의 보고 내용은 전후좌우, 앞뒤가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이었다. 문제가 되는 청교도주의 회심준비론이 무엇을 주장하는 이론인지, 실제로 합동의 그 인물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회심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일어난다. 회심은 그 어떤 방도로도 인간이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선물이다.”“목회현
(이번 주 갈라디아서 본문 강해 설교를 준비하다 함께 읽으면 좋을 내용이겠다 싶어 그 부분을 조금 바꾸어 올립니다.)바리새파 유대교는 각 사람이 자기의 율법 준수의 공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믿는 율법주의 이단 종교였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칭의를 얻고, 또 율법을 지켜서 얻은 구원을 계속 유지한다고 믿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경을 크게 대적하는 율법주의라는 이단 사상입니다.지난 주에 제가 어떤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카나다 개혁교회의 웨스 브레덴호프라는 신학자가 쓴 “Feder
- 임진남 목사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한국사회가 중화사상에 물들어 거의 2,000여년 동안 불교, 유교, 선이라고 하는 계급과 신분제도에 의해 변화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에서 찾아 볼수 없는 위대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 기독교가 조선에 들어온 이후 구한말을 지나, 6.25 전쟁을 거쳐 그야말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축을 이루는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기에 산업근대화에 성공이라고 하는 열망은 교회 안에서도 진정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아주 딱 맞게 강단에서 목사들의 설교로 전파되고 가르쳐 지면서 교회의 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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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1602)는 영국 청교도주의의 아버지로, 그리고 뉴 잉글랜드(현재의 미국의 북동부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 회중교회 신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Lloyd-Jones 2016, 255: Jeong 2021, 135, 155, 184). 제네바로 망명하여 칼빈에게서 신학을 배운 후 장로교회 설립을 위한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Knox와 달리 퍼킨스는 칼빈의 책들 보다는 베자와 우르시누스의 책들을 통해 신학을 더 많이 배웠다 (Beeke & Jones 2012, 120). 스콜라주의를
영국 교회가 시들어가고 있을 때 놀라운 부흥을 가져온 찰스 스펄전, 생기 없이 죽어 가고 있던 유럽의 정통주의 신앙에 영적 활기를 가져왔던 리차드 백스터,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의 물결 가운데 타락과 방탕의 길을 걸어가고 있던 영국 사회를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했던 잔 웨슬리, 영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수많은 심령들에게 불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던 조지 휘필드 등을 연구하면 가슴이 뜨거워짐을 경험한다. 17-19세기 위대한 설교가들에 대한 강의를 듣던 한 학생이 상기된 표정으로 그런 질문을 했다. “그 사람들은 모두가 타고난 자질을 갖춘
질문>회심준비론을 교류금지하게 된 이유를 쉽고 짧게 설명하여 주세여~!답변>회심준비란 사람이 구원을 받기 전에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염려하고 준비한다는 사상입니다. 성령의 은혜의 역사와 주권으로 그리한다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그리한다고 하니 성경적 장로교 개혁신학의 가르침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의 구원을 준비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은 성경에, 기독교에, 장로교에 없습니다.장로교와 성경이 인정하는 구원에 대한 성령의 역사는 택하심 받은 불신자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마음이 열려서 믿게되는 역사뿐입니다. 영혼이 죽은
성경 말씀으로 모였다고 해도, 예수 이름을 선포하고 기도한다고 해도, 탑을 쌓게 되면 그것은 바벨탑이다. 나쁜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모인 모임이 아니고 좋은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 모였다고 해도, 탑을 쌓게 되면 그건 바벨탑이다.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은 위에서 군림하는 모양과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7장 1-2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