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도 월드컵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뜨거웠던 그 날이 생각난다. 신학대원 3학년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다. 총신대학원 3학년 4반 반장이었던 나는 서울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정현 목사는 총회의 헌법대로 편목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상식도 알고 있었다.그런데 오정현 목사가 3학년에 편목하였다는 말은 있었지만 그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1학기 시험을 앞두고 오정현 목사를 복도에서 한 번 보았다. 그런데 총신신학대학원 교수들은 오정현 목사를 과잉보호하듯이 그가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듯이 그를 자신의 연구실로 맞이 하여주었다. 그리고 오정현 목사는 편목 수업을 거치지 않고 강도사 시험도 보지 않았
기독교진리수호연구협회(기진협) 1,2월 신년세미나(제16,17회)에 초청합니다. 기쁜 성탄과 2017년 새 해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7년 세미나에도 실질적이고 매우 유익한 주제들이 준비되었습니다. 부디 꼭 오시어 함께 큰 유익을 나누시고, 또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데 힘써 동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16회 기진협 1월9일 신년세미나제 1강 : 신년하례 및 특강(오전11:00~오후12:20) 1)겸손함으로 관계를 새롭게 하라!(딤전6:3-10) 2)복(‘히.아쉐르’)의 진정한 개념 이해하기(마5:1-5
'종교개혁 칭의론인가, 새 관점 칭의론인가?'라는 주제의 리포르만다(기독교사상연구원) 학술발표회가 2016년 12월 12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됐다. 이번 발표회는 1주일 전인 지난 5일 연동교회에서 열린 김세윤 박사의 칭의론 관련 발표에 반박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브니엘신학교와 개혁신학포럼이 후원했다.발표회에서는 천광진 목사(리포르만다 연구위원)가 '새 관점 학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칼빈의 칭의론', 김철홍 교수(장신대)가 '루터의 칭의론을 둘러싼 논쟁: 루터가 실수한 것인가, 새 관점이 실수한 것인가?', 최덕성 교수(브니엘신학교 총장)가 '트렌트공의회 칭의론과 칼빈의 해독문(解毒文): 김세윤의 칭의론과 관련하여' 등을 발표했으며, 라은성 교수(총신대)가 '새 관점
중보기도 운동에 관한 이론들은 대부분 2016년 10월 세상을 떠난 신사도운동 설립자이자 가장 대표적인 거짓 사도인 피터 와그너(Peter Wagner)가 퍼뜨린 내용들이다. 나는 피터 와그너의 책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피터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성경에 없는 중보기도 은사를 만들어 냈다.“그러나 나는 (성경이 말하지 않는) 세 가지 은사를 은사의 목록에 추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것은 은사들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성경의 어떤 구절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교회생활과 사역을 통하여 얻은 경험적인 관찰에 근거하여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은사는 다음과 같다. ‘중보기도의 은사’, ‘귀신추방의 은사’, ‘예배인도의 은사’”(피터 와그너)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피터 와그너는 성경이
오순절주의(Pentecostalism)는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형성되었다. 오순절주의는 1세기 예루살렘 오순절(사도행전 2장)에 임한 성령의 한 현상인 ‘방언’을 성령 세례의 표로 주장하는 신학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방언은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하는 기능을 했는데, 오순절주의에서는 방언을 개인적인 ‘성령세례의 증표’로 세웠다. 방언은 오순절주의의 기본이고 다른 복음주의 교회와 구분할 수 있는 표식이다. 성도는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오순절주의는 방언을 추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성령세례와 방언에서 오순절주의는 ‘방언’ 사모를 추구한다. 방언이 임하지 않으면 성령세례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1898년 칸사스의 토페카(Topeka)에서 감리교 목사 챨스 파함(Charles Parham.
신학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평신도가 예수님의 죽으신 몸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것이 ‘재창조’라고 설명했던 나의 말을 트집 잡고 황당한 이단시비를 일으켰다. 그 사람이 트집 잡은 나의 말을 여기에 다시 그대로 소개한다.“단지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하고, 허파가 호흡하게 만드는 치료 수준이 아니었다. 죽었고 삼일 동안 그 몸이 부패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재 창조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기 백성을 다시 새롭게 조성하여 하나님 백성되게 하시는 재창조의 시작(이전에 sample이라고 했던 표현을 더 적합한 용어인 '시작'으로 수정한다)이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 제사의 은혜를 덧 입은 신자들이 이미 죽었던 상태에서 다시 창조(출생)된
개혁교회와 현대교회의 설교의 내용은 다르다. 목사는 신학교에서 신학과 그 밖에 다양한 학문을 배운다. 배우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여기에 해당하는 답은 헬라어, 히브리어로 기록된 원어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음으로 그 원어 성경을 각 나라 언어로 번역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강단에서 목사가 설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의를 놓고 보면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시 말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이다.이러한 성경의 권위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어 주는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을 기록한 책’ 이라고 말한 존 맥아더의 말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최근 부요층과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고급신비주의 영성운동일 일어나고 있다. 일부 영성신학 운동가들의 진행하고 있는 ‘웰빙 수도원 운동’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영성운동의 중심에는 관상기도가 있고, 관상기도의 핵심적인 요소는 침묵이다. 이미 수년 전에 관상기도는 한국교회에서 거의 이단으로 정죄받기 직전까지 갔었던 적이 있다. 그때 관상기도 운동을 도입하여 활발하게 전개하던 이동원 목사가 더 이상 관상기도 운동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서 이동원 목사는 이단시비에서 놓여났었다.필자는 2016년 11월 8일 미국의
지금까지는 사진, 실명, 출석교회를 공개하지 않는 익명 기고자들의 글을 내용을 보고서 독자들에게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여러 사람들이 익명으로 기고하는 기사의 내용에 대한 신뢰성과 책임성에 대한 문제를 꾸준하게 제기하였습니다. 편집자문 정태윤 목사와 대표 정이철 목사는 진지한 논의 끝에 이후 더 이상 익명의 글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글의 내용이 뛰어날지라도 실명, 사진, 출석교회가 공개되지 않는 기고들의 글은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얼굴, 이름, 출석 교회 등을 떳떳하게 공개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자세이기 때문입니다.저자의 얼굴, 실명, 출석 교회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쓰는 글
우리는 중보기도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믿음이 연약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것이 중보기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보기도라는 말과 개념을 퍼뜨린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엄청난 심각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보기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하나님을 위해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것이 가장 대표적인 중보기도라고 알고 있다.성경적 근거가 없는 중보기도 사상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누구에게서 남을 위해서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배웠는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는가? 사도 바울이 그렇게 가르쳤는가? 전혀 아니다. 물론 성경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한다. 사도
대 그레고리로부터 샤를마뉴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방 교회는 신학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신학적으로 유력했던 지방은 회교도들에게 정복을 당하였으며, 강력한 희랍 철학은 동방 민족의 세력에 밀려나게 되었다.이제 신학은 교리적 배경이 없는 북쪽 지방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신학이란 단지 과거의 유산 정도로만 여겨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샤를마뉴는 국가뿐 아니라 교회도 지배하였다. 교회의 예배, 훈련뿐만 아니라 교리 문제 등까지 간섭하였다. 그의 판단은 실천적인 것, 실용적인 것이냐?가 기준이 되었다.신학적 암흑의 시대에 교회는 어느새 반펠라기안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신학의 중요성을 모르고, 실천적인 것, 실용적인 것을 강조하는 환경은 반펠라기안이 성장하는 좋은 토양이다. 반펠라기안 저술은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루터는 “구원하는 믿음은 오직 살아 있고 의의 열매를 맺는 생명이 있는 믿음”이라고 하였다. 죄인이 의롭다고 함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장2항은 루터의 가르침대로 “믿음은 다른 모든 구원의 은혜들과 함께 있으며 그것은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다” 라고 가르친다.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믿음으로 칭의를 받고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는가? 세대주의자들 가운데 반율법주의적 견해를 가진 자들은 이 질문에 충분히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믿음은 의롭다고 하는 것
(뉴올리언스침례신학대학, NOBTS) 한국인 담당 이덕재 교수님이 장경동 목사의 성령사상과 안수행위에 대해 비판한 글을 보시고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신 글을 인터넷에서 보았다. 의 독자들에게도 유익하겠다 싶어 여기에 소개한다.) "우선 장경동 목사의 성령론에 대하여 비판한 정이철 목사의 글을 이 곳에 옮겨준 노준엽 목사에게 감사한다. 바른 성경의 가르침을 찾기 위한 노력은 그리스도인 누구나가, 특히 주님의 일군이라면 누구나가 성실하게 계속해야 한다. 우선 정이철의 목사의 글에 일부 일리가 있고 동의하는 점이 있어 지적하고자 한다.첫째로 정이철 목사가 지적하기를 "성령세례와 관련없이 물세례를 받게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장경동 목사의 성령세례 사상의 핵심이다." 라고 했다. 필
바울은 성령의 은사가 소멸되어 갈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바울은 성령의 은사가 결국에는 소멸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물론 바울이 성령의 영감으로 고린도전서 13장 10-11절을 기록할 때 확실히 깨달았을 테지만, 그 전에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은사가 소멸되는 것을 이미 인지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신유의 은사에 대한 그의 경험을 살펴보면 바울은 은사가 소멸되어 감을 몸소 겪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바울은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는 자를 일으켰다(행14:10). 귀신들린 소녀에게서 귀신도 쫓아냈다(행16:18). 자신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통해서도 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갔다(행19:12).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까지 행했다(행20:10). 이렇게 바울
중보기도운동이 교회에 미친 악영향이 크다. 이제는 중보기도라는 용어 자체가 비성경적임을 성도들에게 더욱 더 강조하고 가르쳐야 한다.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우리에게 중보기도를 가르치고 권하는 내용이 없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는 중보기도라는 용어나 개념으로 기도해서는 안 된다.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고, 남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모든 기도를 다 하되 중보라는 개념과 의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보자·중보기도팀·중보기도회·중보기도운동… 이 모든 용어도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복음에 해되는 말이기 때문이고, 우리의 신앙에도 오해와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중보기도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가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장 합
최근 예기치 않게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 속의 시신의 상태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그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정이철 목사였다. 정이철 목사는 요즘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 간증자들에게서 “하나님이 피를 흘리셨다”, “하나님이 죽으셨다”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신 분은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와 동일한 완전한 인간이셨음을 분명히 설명하고자 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보통의 인간의 몸과 같은 몸이었고, 죽으신 후 무덤에 계시는 동안 부패하였고, 하나님이 완전히 죽고 부패하고 있어 스스로 소생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살리셨고, 그것은 하나님 백성의 재창조 사역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몸의 부활이 하나님의 재창조임을 설명하
어느 분이 용인에 있는 '우리제일교회'(www.wjchurch.or.kr/) 소에스더 여자목사의 설교를 꼭 들어보라고 했다. 다음은 소에스더 목사가 2016년 11월 27일 우리제일교회에서 했던 주일 설교의 일부이다.이 설교는 35분 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까지 들어왔던 어떤 방언에 대한 설교보다 심각한 방언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령이 오실 때 방언의 기도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겁니다. 여러분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는 이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변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최
그렇다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경은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이다.“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24:44).정확하게 번역하면 “모세의 글들과 선지자들의 글들과 시편”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선지자들의 글이란 모세 오경과 시가서를 제외하고 모든 구약 성경을 선지서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구약 성경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마귀는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성경으로 이끌지만 성령은 그리스도가 계시
이전에 에 “칭의를 주신 분은 반드시 성화를 이루신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요즘 김세윤 교수 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칭의가 영원하지 않고, 이후 믿음의 증거가 되는 성화의 열매가 지속되어야만 칭의가 유지되고, 또한 종말에 하나님의 완전한 칭의 선이 최종적으로 다시 이루어진다는 비성경적인 칭의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의 글이었다.그때 칭의를 얻는 방식에 관하여 잘못 알려진 내용(신학) 몇 가지를 소개하였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1)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영원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에게 전가되었다는 이론,2)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믿는 자들에게 칭의를 주었다는 (김성로와 그 옹호자들의 주장),3)성황의 열매가 진전됨으로 칭의가 증대된다는 이론,4)처
정말 해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죽은 목사의 설교동영상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는 나가지 아니하고 인터넷 유튜브 동영상 설교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교회에 가기는 싫고 신앙양심은 아직 남아 있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스스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다.소위 가나안교인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교회가 안아야할 숙제이다. 교회에 실망하고 목회자에게 식상한 사람들의 임시방편으로 등장한 영적 비극이다. 혜성같이 나타난 설교자가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을 사정없이 비난하고 비판하고 치는 공격적인 설교를 들으면서 보상심리로 속이 시원한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 것처럼 느낀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비리(물질문제, 윤리문제)에 상처 입은 성도들에게는 갑자기 뜨고 있는 한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