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는 비성경적 가르침이 유행하고 있다. 소위 '장자권회복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많은 교회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한국교회에서는 조금만 부흥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그것이 성경적 근거보다는 오히려 이방종교에 가까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점을 직시하지 않고 실용성만을 절대화시켜서 도입하는지 데이빗 웰스의 표현대로 한국교회는 '신학실종'(No Place for Truth)상태에 빠져 있다.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교회 내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의 뿌리는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미국의 유명한 성공학 강사였던 나폴레온 힐의 가르침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다.
성경은 분명히 방언이 그치게 될 것을 교훈하고 있다. 바울은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13:8)라고 교훈했다. 특별히 “폐하고”, “그치고”, “폐하리라”는 표현들은 헬라어 원어에서 미래 수동태복수형( καταργηθησονται), 미래중간태복수(παυσονται), 미래수동태단수형(καταργηθησεται )으로 쓰였다.따라서 성경이 완성되면 예언과 지식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치게 되고, 특별히 방언 같은 경우에는 주어의 역할을 강조하는 중간태로 쓰임으로서 성경의 완성과 함께 스스로 없어지게 될 것을 시사했다. 그러면 언제 없어지는 것일까? 고전 13장 9,10절을 보면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
바울은 갈3:23에서 율법을 몽학선생으로 부르며, 그 유효기간을 "믿음이 오기 전",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로 한정하고 있다. 그는 이 비유를 통하여 율법의 목적과 한계를 분명하게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면 그가 몽학선생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드러내고자했던 율법의 목적과 한계를 살펴본 후 구원 얻은 신자에게 율법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몽학선생의 의미몽학선생(παιδαγωγος)은 헬라어 사전에서 "아이의 인도자", "주인의 자녀를 학교에 등하교 시키는 책임을 맡은 종" ," 가정교사" 등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관습을 조금 더 살펴보면 몽학선생은 주인의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초적인 내용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학교에 등하교를 시키며 후견인의 역할을 맡
기도는 경건의 수단이다. 따라서 기도는 마땅히 경건의 척도로 여겨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경건의 수단인 기도가 경건의 척도로는 사용할 수가 없다. 만일 한국교회에서도 기도가 경건의 척도로 사용할 수 있다면 특별새벽 기도회의 붐을 일으킨 사랑의 교회, 새벽기도로 유명한 명성교회, 기도를 강조하며 뜨겁게 기도하는 순복음교회는 가장 경건한 교회, 경건의 모양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 함께 나타나는 교회여야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기도를 강조하며 뜨겁게 기도하지만 온갖 불법의 온상으로 전락해버리지 않았던가? 왜 이렇게 경건의 수단인 기도가 유독 한국교회에서는 경건의 척도로 통하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주님과 사도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할 것을 반복적으로 경고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 많은 신자들이 주님과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거짓된 가르침에 쉽게 미혹되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의 분별 기준은 무엇일까? 또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된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자.(1) 거짓 선지자의 분별 기준.주께서는 마7장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갈 것을 경고하시면서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설명해 주셨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의 본성을 가진 자들로 그들의 거짓된 본성이 열매를 통해서 입증된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사람이 왜 변하지 않는가? 이 문제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과 같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여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인데, 이 능력이 복음의 현장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분명히 복음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복음의 능력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그렇다면 전하는 자들이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성경적 변화됨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변화됨의 시작 : 회심, 거듭남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거듭남(회심)의 여부에 달려 있다. 만일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령께서 그 안에 거하시면서 그를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명이 아닌 성경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주님은 우리를 빛과 소금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빛과 소금이 제 역할을 하면 부패를 막을 뿐 아니라 어둠을 밝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부패를 막지 못할 뿐 아니라 어두움도 밝힐 수가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원인은 백성들의 죄악과 부패였지만, 성경은 아브라함과 주님의 대화를 통하여 결국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하게 되었음을 동일한 어조로 강조하고 있습니다.오늘날 대한민국의 문제는 사교를 의지한 최고 통치자와 그 권위를 내세워 호가호위한 세력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의지하려는 권력의 높낮이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는 모두 동일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듯 어거스틴의 신학은 이단과의 논쟁을 통하여 집대성되었습니다. 그는 마니교와의 논쟁을 통하여 신론을, 도나티스트와의 논쟁을 통하여 교회론과 성례론을,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통하여 죄와 은혜를, 신국론을 통해서 역사철학을 발전시켰습니다.물론 최근 페이스 북에서 많은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분들과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근본주의 진영에 있는 분들이 지적하신 대로 어거스틴은 "세례를 통한 죄의 씻음"을 주장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연옥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순교한 자들은 죽기 전 세례를 통하여 죄를 씻지 않아도 순교 자체가 하나의 공로가 돼 죄 사함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비성경적인 가르침 등으로 로마 카톨릭의 교리적 토대를 놓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이를 근거로 어
기독교의 세속화는 로마의 국교로 지정되면서 시작된다. 중생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국교로 지정된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자신들의 종교 예식 및 풍습들을 이름만 기독교식으로 바꾸어서 계속함으로서 기독교는 이방종교화되고 말았다.가장 대표적으로 이방종교의 어머니 여신 숭배가 마리아 숭배로 이어진 것을 꼽을 수 있다. 에베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아데미 여신 숭배를 마리아 숭배로 대체하였다. 이집트에서도 어머니여신, 이시스를 섬기던 자들이 마리아를 어머니 신으로 신격화하였다. 고대 근동지방의 대모신(大母神)이며 지중해의 주요항구들인 티루스, 시돈, 에일라트의 주신(主神)이었던 아스타르테, 로마인들이 섬기던 대지의 여신이자 죽음과 부활의 신이었던 키벨레를 섬기던 자들이 모두 마리아 숭배로 몰려
예장 합신 총회에서 김성곤목사의 두날개운동에 대해서는 다루지로 않기로 했다. 9월 20일 헌의부는 두날개운동에 대한 신학위원회의 명확한 해석을 주문하는 등 4개의 헌의안 목록을 상정했지만 박영선 목사(남포교회)가 "두날개선교회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 총회에서 결의했으며 서로 다르다고 정죄해서는 안된다"면서 기각을 요청했다고 한다.이에 대해서 김용주 목사가 "4개 노회나 헌의한 안건이니 이를 존중해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해서 총대들의 의견이 갈리자 투표를 실시, 105표대 34표로 기각을 선언하게 됐다고 한다. 참으로 비탄에 빠지게 하는 기사다. 이에 비해서 고신측에서는 인터콥을 불건전한 단체로 규정하여 참여 및 교류 금지 결정과 함께 인터콥에 참여하고 있는 교회나 목사는 속히 교류 관계를 정리하기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CCM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구자억 목사의 트롯트 CCM이나 디제잉워십, EDM을 비롯하여 모든 현대음악장르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만일 CCM에 Christian이라는 단어만 붙지 않았어도 트롯트 CCM이 나오든, 디제잉워십이 나오든, EDM이 나오든 그렇게 큰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Christian이라는 단어가 엄연히 박혀 있기에 CCM의 영역이 확대될 때마다 뜨거운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다음은 트로트 형식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구자억 목사의 보기에도 매우 역겨운 TV 공연 영상이다. 차라리 목사라는 호칭을 포기하고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선 선교 초기에 사역했던 선교사들은 대부분이 2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복음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지만 처녀 선교지에서 어떻게 선교 방향을 정립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때 중국에서 활동하던 구프린스턴 출신의 네비우스선교사를 통하여 2주간의 특강을 듣게 된다. 이들은 네비우스가 제시한 원리들을 그대로 수용하여 조선선교의 원리로 삼고 1891년에 일련의 규범과 세칙을 채택한다. 그리고 조선에 처음 온 모든 장로교 선교사들은 누구나 도착 후 네비우스 선교 정책에 관한 책을 한 부 받아 첫 해 말에는 언어에 대한 시험을 합격해야 함과 아울러 이 원리를 완전히 터득하게 되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그러면 그 선교원리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일까? 조직적이고 철저한 성경공부를 통하여 현지인 중심의 교회를 세우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강조한다. 기도를 강조하지만, 성경과는 다른 방향에서 강조한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하여 이방인과 같이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뜻, 그의 이름을 위하여 간구할 것을 명령하셨다.이를 위하여 우리가 일용할 양식만 구하게 하심으로 탐심을 물리칠 것과 용서를 명령하실 뿐 아니라 용서를 기도 응답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심으로 우리가 반드시 예수님처럼 원수를 용서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기도 응답의 공식을 알려주셨다.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해주시기를 간구하도록 명
북이스라엘 왕 중 가장 극악한 왕이었던 아합은 바알 숭배자 시돈 사람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한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왕상16:29-33). 왕상18:19을 보면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이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다는 표현을 통하여 당시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국가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세벨은 이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국가 종교가 된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방해가 되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없애버리는 일에 혈안이 돼 있었다.당시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얼마나 극에 달했던지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아합의 선지자들과 대결하기 전 백성들에게 했던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오늘날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주님의 속성의 동일성(불변성)을 교훈한 말씀을 그의 계시 방법의 동일성으로 오해하여 오늘날에도 과거에 계시하시던 방법대로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어리석은 주장을 하고 있다.만일 주께서 과거에 계시하시던 방법대로 오늘날에도 자신의 뜻을 나타내신다면 주님과 사도들을 통하여 나타났던 병자의 치유와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동일하게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역사가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자들
오늘날에도 특별계시가 주어질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모든 개혁주의신학자들의 동일한 입장이다. 이 글을 통하여 성경이 완성되기 전 계시의 수단으로 주어졌던 기적과 현현, 직접적인 음성이나 예언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우선 특별계시의 수단이었던 기적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보자. 19세기 미국에서 최고의 칼빈주의 신학자로 불렸던 찰스하지는 기적을 이렇게 정의내린다. "이적이라는 말은 놀라다는 의미를 가진 miror라는 말로부터 유래되었고, 따라서 놀람을 자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어원적 의미를 통해서 놀람을 자극하고
자충수를 고집하는 한 이단전문가의 어리석은 고집을 본다. 주께서 자신에게 주신 재능을 통하여 나름대로 한국교회를 바르게 세우겠다고 노력하던 분이었는데, 언제부터 부활복음을 내세우는 춘천한마음교회에 협력할 뿐 아니라 적극 지지하며 방패막이를 자처하더니, 이제는 자신의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 겸손히 인정하고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큰 소리를 치고 있다.하나님의 계시가 오늘날에도 주어진다는 그의 주장은 정통개혁신학 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도 상반된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의 주장대로 오늘날에도 주께서 계시를 주신다면 이는 성경의 충분성과 완전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의 구원과 신앙 생활에 성경만으로는 부족함으로 주께서 계시를 주시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이는 결국
Nick Hall 목사가 세운 The Pulse가 주최하는 "Together 2016" 워싱턴 집회에 힐송이 참여한다. 이 집회는 나라와 전 세계를 위한 기도운동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집회에 영상메시지를 보낼 뿐 아니라 백만명을 모으기 위한 초대영상까지 보냄으로서 결국 종교통합을 위한 집회임을 쉽게 알 수 있다.이런 종교통합운동에 힐송이 함께 참여함으로 그들이 외친 'One Way, Jesus'는 결국 '오직 한 길이 아닌 많은 길 중에 하나'였음이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작년 7월에도 힐송 리더인 달린첵은 호
지난 6월 30일 춘천한마음침례교회 김성로 목사가 개최한 제 4회 '부활복음 전국 목회자세미나'에서 합신의 교수이였고, 웨스터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총장이였던 박형용 교수가 특강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의하기 위해 춘천에 간 박형용 교수는 사전에 김성로 목사에게 비성경적인 부활관을 교정할 것인지 물어보자, 김성로목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성취하신 속죄를 확증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사와 하늘성소의 제사가 따로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