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에게 회심준비론 사상 있었다는 비키의 말에 일면 수긍한다

  • 김리훈 2019-05-29 01:57:56

    제가 말 하려고 했던 것은 율법을 구원과 연관시켜 말하려는 것이 아닙이다. 그 당시의 신정국가의 상황에 대해 말하려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 당시 칼빈은 율법에 기초한 종교법으로 제네바 시민을 통제 해야 했고 청교도들은 그보다 더 강한 회심준비론과 같은 원리로 예비 신자들의 구원 얻는 믿음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의 종교개혁 시기나 청교도의 영국 식민지 시대에 율법이 강조된 것은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죠엘 비키가 언급했던것 처럼, 칼빈의 글 속에서도 ‘회심준비론’과 같은 내용이 나오는 것이고요. 제가 말하려는 어떤 상황을 ‘Minn’님께서 일반적인 성경이나 칼빈의 원리로 평가하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Minn’님의 의도는 알겠고 그러한 평가도 또한 고맙습니다. 또한 그 당시의 상황을 정교가 분리된 다원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또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칼빈의 글 속에서도 이율배반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성경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외 여러 저서들과 그의 사상을 통해 개혁정신을 이어 받은 사람들 이지만 그를 우상화 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Anyway 댓글 감사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Minn 2019-05-28 15:39:07

      기사가 좀 당황스럽습니다. 회심준비론은 칼빈의 주장들과는 아주 다른 성격의 이론이라 생각합니다.
      회심준비론과 율법의 용도를 헷갈려서는 안됩니다. 칼빈은 율법이 몽학선생이라는 성경 구절을 설명했으나, 율법 자체가 선생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교과서를 ‘선생님’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비유적 표현이지요. 비키의 주장으로는 율법이 진짜 선생님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선생님은 따로 계십니다.
      님의 댓글에서 계속적으로 칼빈이 율법을 강조해서 성화의 신학자라고 불린다는 의견이 보였는데, 칼빈은 칭의와 성화를 따로 떼지 않았습니다 (기독교강요 3-16-1).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마지막에 구원을 증명해야되서가 아닙니다. 율법 준수는 성도에게서 반드시 나타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 사랑, 믿음에서 나옵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의를 밝히고 정죄하는 기능, 사회 안정, 신자들의 선행 촉구로 율법의 기능을 설명했습니다. 율법을 구원과 엮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듣기론 칼빈의 신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칼빈의 말들을 잘못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칼빈에 대한 오해가 많은데 이 기사가 오해를 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율법이 구원에 영향을 주는 용도가 있다면 왜, 어째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후 430년 후에 율법을 주셨을까요? (기독교강요 3-11-20참조)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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