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6 10:47 (목)
그날 에드워즈는 숲에서 무엇을 보았나? 그것이 알고싶다
상태바
그날 에드워즈는 숲에서 무엇을 보았나? 그것이 알고싶다
  • 정이철
  • 승인 2018.11.10 23:07
  • 댓글 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7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11-11 04:02:11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슈의 근거가 되는 영어문장의 번역에 관심이 있어서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모쪼록 건전하고 유익한 토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I had a view, that for me was extraordinary, of the glory of the Son of God”라는 문장을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나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환상을 보았다.”이라고 번역하셨습니다. 그런데 영어 표현에서 ‘had a view of~’라는 표현은 ‘환상’이라는 단어로 확정 지어서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육신의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 곧 이해력으로 무엇을 보는 것, 다시 말해서 어떤 대상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번역을 위해서는 어떤 표현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의미 중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보고 번역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을 올바르게 번역하기 위해서는 문맥을 잘 살펴서 에드워즈가 육체의 눈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런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비로소 ‘환상’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좋은 방법은 에드워즈가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라는 표현을 쓸 때 (다른 곳에서도 많이 썼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때 ‘본다’라는 동사가 육안으로 어떤 환상을 본다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더 현저하게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방법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라는 표현을 쓸 때 (설교자들은 흔히 성경의 표현을 배워서 쓸 때가 많습니다), 그 때 ‘본다’라는 동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확인하고 위의 문장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성경을 보면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해하고 확신하는 것에도 ‘본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구절은 고후 3장 1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장 18절을 읽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가시적인 환상으로 나타난 주의 영광을 육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주의 영광을 본다’라는 표현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6절은 ‘보는 것’과 ‘아는 것’을 병치함으로써 ‘보는 것’이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임을 확실하게 설명합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에드워즈가 성경의 이런 표현을 차용해서 말한 것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이해를 해야겠지요.

사족으로, “The person of Christ appeared”라는 문장을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가 나에게 나타났다.”라고 번역하셨는데요 순전히 번역의 차원에서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입니다. 이런 경우 ‘person’이라는 단어는 신학용어로 ‘위격’이라고 번역됩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할 때, 한 분이신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고 말하는데, 그 때 ‘위격’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영어로 하면 ‘person’입니다. 이 표현은 성부, 성자, 성령 각각 모두에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육체의 형상이나 가시적인 형상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모쪼록 건전하고 유익한 토론이기를 바랍니다.

김리훈 2018-11-11 03:34:35
좋은 의견이고 very controversial한 issue 입니다. 저도 집사 안수시 성령의 임재 하심을 체험했고 (저는 이 체험을 성령세례라 정의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모태신앙 가운데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녔지만 내가 정말로 에수님을 믿었는가에 대해서는 집사안수 전까지는 몰랐기 때문입니다), 어디선가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을 확실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가 제가 죽음의 문턱에 있었을 때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는 저에게말씀 하시길, “네가 4살 때에 뇌막염으로 죽을뻔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Jonathan Edwards의 말대로 회심은 사람에 따라 다양 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 재세례 사상에 대해서는 단연코 거부 합니다. 성령세례 받은 사람이 성령 더 달라고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 받지 못한 사람들이 성령의 임재 하심으로 나타나는 외적인 현상들은 사람들에 따라 다양하다고 봅니다. 만일 이러한 것을 부정한다면 그동안 수세기 동안 일어났던 성령의 대부흥의 역사들은 다 사탄의 역사였고 심지어 평양 대부흥의 역사까지 부인 하여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부흥운동을 주도 하였던 주역들 만큼 성령의 역사를 더 잘아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요 ? 마치 사도바울이 1세기 유대교를 모든 이 시대의 새관점학파들의 신학자들 보다 더 잘 아는것 처럼 말입니다. 물론 부흥운동의 주역은 성령님 자신이십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