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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에드워즈는 숲에서 무엇을 보았나? 그것이 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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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에드워즈는 숲에서 무엇을 보았나? 그것이 알고싶다
  • 정이철
  • 승인 2018.11.10 23:07
  •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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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018-11-12 08:46:33
하지만 위의 문장을 정확하게 번역하기 위해서 더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것은 위의 문장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앞 문장에서 에드워즈가 말한 내용이 정말 환상을 보았다는 말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This grace that appeared so calm and sweet, appeared also great above the heavens.” 여기에서도 appear라는 동사가 사용되어 마치 에드워즈가 가시적인 형체로 나타난 그리스도를 본 것처럼 생각되지만 주어를 잘 보면, 형체가 없는 ‘grace’(은혜)입니다. 그러니까 에드워즈에게 나타난 것은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 곧 환상이 아니라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으나 믿음의 눈으로는 파악이 되는 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과 관련된 ‘grace’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문장에서 “I had a view~”라는 표현을 ‘환상을 보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과연 올바르고 공정한 번역인지 의문이 듭니다.

“This grace that appeared so calm and sweet, appeared also great above the heavens.”라는 문장 바로 다음에서도 에드워즈는 자기가 말한 ““I had a view that for me was extraordinary, of the glory of the Son of God.”라는 문장이 어떤 뜻인지 다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장은 위의 글에서도 인용이 잘 되었습니다.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The person of Christ appeared ineffably excellent with an excellency great enough to swallow up all thought and conception.” 여기에서도 appear라는 동사가 쓰여서 마치 에드워즈가 가시적인 형체로 나타난 그리스도를 본 것처럼 생각되지만 주어를 잘 보면, 가시적인 형체가 아닌 ‘person’(위격)입니다. 우리 말로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제 보니까 그 사람 성격이 나타나더라.” 일반적으로 ‘나타난다’라는 동사는 가시적인 형체를 가진 어떤 대상이 우리 몸의 눈 앞에 문자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성격이 나타나다.’라는 표현이기 때문에 우리 중 아무도 성격이 어떤 형체로 나타났다고 이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드워즈의 영어 원문도 이와 같은 원리로 해석하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문장에서 “I had a view~”라는 표현을 ‘환상을 보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과연 올바르고 정확한 번역인지 의문이 듭니다.

모쪼록 에드워즈가 정말 환상을 보았다고 말했는지를 먼저 정확하게 확인을 하고 그 다음에 필요한 논쟁을 건전하고 유익하게 진행하면 더 큰 유익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울처럼 2018-11-12 13:37:05
'환상'에 대한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듯 합니다...ㅋ

에드워드가 말한 환상의 의미가 실제적 현현이냐, 아니면 에드워드의 상상이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표현한 신앙감정이 과연 개혁주의 신앙에 합당한 것이냐의 문제가 아닐까요?

오늘날의 오순절파를 위시한 모든 신비주의자들이 환상을 말할 때 그 의미가 실제적 현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 아닙니까?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환청이나 환상'이라는 표현을 쓸 때에는 환청이나 환상을 본 그 순간 당사자에게는 분명히 들리거나 보이는 것이 맞습니다.
단, 그 환청이나 환상을 본 사람과 같은 시공간에 있는 사람에게는 들리거나 보이지 않기에 제 3자가 판단하기에 이 현상이 사실이냐 가짜냐 따지는 것입니다.(사울이 다메섹 도상에게 주님을 만날 때 옆의 사람들은 전혀 몰랐지요)
그러므로 에드워드가 '환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남이 보지 못한 그 무엇인가를
본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님께서 '은혜'라는 비가시적인 용어의 사용때문에 반드시 앞의 원인 역시 비가시적인 것이여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점 역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같은 형제의 어떠한 순수하고도 경건한 행동에서 주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나요?
교회의 구석자리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형제 자매님의 모습에서 주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나요?
찬송 중에 그 고백하는 가사의 내용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며 찬송하는 형제의 모습을 볼 때 주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나요?

감사합니다. 2018-11-12 22:04:40
좋은 의견 대단히 감사합니다. 바른 믿음에 올려진 기사나 댓글을 보면 인신공격성 글들이 많아서 당사자는 아니지만 실망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신사적이고도 건전한 토론이 진행되는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신학적인 토론장에 들어와서 번역 이야기를 자꾸 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토론은 번역을 정확하게 한 후에야 비로서 시작할 수 있는 성격의 토론이기 때문에 건전한 토론을 위해 사전 작업으로 번역에 관해 함께 생각하자고 제안 드리는 것입니다. 에드워즈가 “환상을 보았다,”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영어문장 하나를 잘못 번역해서 이런 논의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고 무익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학적인 토론이야 앞으로 훌륭한 신학자들께서 잘 진행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논쟁의 이슈가 되는 문장을 우리가 정확하게 번역하기 위해서는 순전히 번역의 측면에서만 차분하게 생각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번역하는 사람의 신학적인 편견이나 경향이 번역의 과정에서 원문을 곡해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은 어떤 문장이 조금만 그 냄새를 풍기기만 해도 자기의 불편한 마음을 원문에 덧칠해서 번역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번역은 번역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문에 대한 정직성과 신실성을 위배하는 심각한 오류가 되고 비의도적으로 독자를 속이는 심각한 죄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번역의 문제를 우선, 함께 생각하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위 글의 번역문에는 원문에 없는 단어들이 삽입되어 있는 것도 올바른 번역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환상’이라는 단어가 삽입된 것도 그렇지만 ‘모습’이라는 단어가 번역과정에서 삽입된 것은 의역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친 측면이 있습니다. ‘모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가시적인 형체나 대상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 단어를 집어넣으면 원문을 안 읽고 번역문을 읽는 독자는 거의 100퍼센트 에드워즈가 가시적인 형체를 보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문장을 번역할수록 번역자의 편견이 반영되지 않도록 단어들을 선정해야 하고, 원문에 없는 단어를 집어넣을 때는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번역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위의 글에서 제시된 번역을 먼저 고민해 보고 그 다음에 신학적인 토론을 하자고 제안 드리는 것입니다.

어제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I had a view of~”라는 표현에 ‘환상’이라는 강한 단어를 집어넣어서 번역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가 영어로 된 자료 중에서 위의 문장을 인용하거나 해설하거나 한 자료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혁주의 라인에 있는 사람들의 글에서도 위의 문장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에드워즈가 환상을 보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보다 더 오래 더 깊이 개혁주의에 심취해 있는 분들의 글에서도 위의 문장을 ‘환상을 보았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아는 미국 사람이 있으면 원문을 보여주고 이것이 정말로 어떤 환상을 보았다는 의미인지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쪼록 지금처럼 건전한 토론이 진행되어 모두에게 유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11-12 22:06:27
올바른 번역에 관해서 고민을 하다 보니 에드워즈가 다른 곳에서 비슷한 표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여러 군데서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많은 자료를 뒤져보지는 못했지만, 참고할 만한 중요한 문장을 발견하기는 했습니다. “Of Religious Affections” Part 3 Section 4에 있는 문장인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Spiritual understanding consists primarily in a sense of heart of that spiritual beauty. I say, a sense of heart; for it is not speculation merely that is concerned in this kind of understanding... Spiritual understanding primarily consists in this sense, of taste of the moral beauty of divine things; so that no knowledge can be called spiritual, any further than it arises from this, and has this in it. But secondarily it includes all that discerning and knowledge of things of religion, which depend upon and flow from such a sense. When the true beauty and amiableness of the holiness or true moral good that is in divine things is discovered to the soul, it as it were opens a new world to its views. This shows the glory of all the perfections of God, and of everything appertaining to the divine Being.”

이 문장을 읽어보면,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에드워즈의 체험을 해석할 수 있는 단초가 여러 가지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모쪼록 지금처럼 건전한 토론이 진행되어 모두에게 유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울처럼 2018-11-13 13:13:06
아, 그러니까 '환상'이라는 신비주의적이고 거부감 많은 단어 대신 보다 개혁주의적인 그 무엇으로 바꿔야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다면 감사합니다님께 문제가 되는 본문(환상)을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에드워드의 전하고자하는 의미를 온전히 표현하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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