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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절대로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성결교 이석민 목사의 '구원론의 혼선을 진단한다'(3)
이석민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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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7  22: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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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민 목사(대민교회 담임, 성결교)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 것인가?"

이 질문에는 신학적으로 대립이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즉 장로교 측의 주장으로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는 것과 일부 사람의 주장인 감리교와 성결교 측 주장으로 구원 받은 자도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보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믿고 입술로 시인하면 영원히 구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절대 놓지 않으신다. 어린아이기 길가다가 위험한 곳에 가면 엄마는 그 손을 꼭 붙잡고 혼내면서까지 붙잡아 두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늘에 계신 그 분의 품안에서 영화롭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미 이렇게 계획했기 때문에 한 성도가 영화롭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일단 사람이 한번 의롭게 되면 그의 구원은 보장된다. 즉 하늘에서 이미 영화롭게 된 것처럼 보장된다. 바울은 로마서8장33-34절에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한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하나님이 선택한 자를 고소하겠는가? 아무도 없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변인 되시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는가? 아무도 못한다. 그리스도 즉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분만이 정죄할 자격이 있다. 우리의 구원자는 우리의 대변인이자 심판자 되신다. 성도들은 그들이 믿을 때 (요한복음 3:3; 디도서 3:5) 거듭(중생)난다. 한 성도가 자신의 구원을 잃으려면 다시 거듭나지 않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 거듭난 새 생명이 다시 빼앗기는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성령께서 모든 성도 안에 거하여 계시고 (요한복음 14:17; 로마서 8:9) 또 모든 성도를 세례 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드신다. (고린도전서 12:13). 그러므로 다시 구원이 없어지려면 성령이 거하지 않게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야 한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가질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받고 내일 잃게 된다면 그 생명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잃는다면 성경에 있는 영생에 대한 약속은 오류가 된다.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이 말씀에 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8-39).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또한 우리를 당신을 보호하신다.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영원히 보장된다.


믿는다고 하면서 막 사는 사람의 구원은?

예를 들어 술 담배에 찌 들어있는 이 사람들도 이 모습 이대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구원은 술을 먹으며 담배를 피우면 못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청나라가 아편으로 무너졌다. 예전 중국에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였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왔는데, 그 중에 아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하는데, 아편에 매여서 살고 있는 것이 아름답지 못하였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중국의 교인들에게 아편을 못하게 하였다. 아편을 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아편을 못하게 한 것이다. 예전 한국에서 일하던 선교사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천당”을 외치며 복음을 전하였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왔는데, 한국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많이 좋아하는 것이다. 술을 먹었다 하면 끝을 보려고 한다. 술을 먹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먹고 기생집에 가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왔는데, 술과 담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하는데, 술과 담배에 매여서 살고 있는 것이 아름답지 못하였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한국의 교인들에게 술과 담배를 못하게 하였다.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술과 담배를 못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술을 안 마셔야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혹 믿는다 하면서 막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진리가 훼손 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구원받은 확신이 있는 사람은 막 사는 사람일지라도 구원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렇게 살지 않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요일1:9) 죄의 쾌락보다 10배, 20배 더 큰 고통을 받게 되고(시51:12), 귀한 그릇으로 사용되지 못하고(딤후2:21),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시66:18), 무서운 징계를 받게 된다. 때로는 물질손해로, 무서운 사고를 당하게 되고, 질병으로 매를 맞게 되고 본인이나 사랑하는 식구의 생명을 잃게 되기도 한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히 12:6)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무서운 고통으로 징계하시는 것이다. 그렇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구원에서 멀어진다고 하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다만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불행해 진다고 경고해야 한다. 담배를 많이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시면, 폐암과 간암에 걸릴 확률이 많아 건강을 해친다고 경고해야 한다. 게으르고 나태하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면, 나중에 가난하고 불행해 진다고도 경고해야 한다.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거듭난 자가 계명을 어기고 계명을 어긴 죄를 회개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한번 얻은 구원이 취소되거나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실 때는 곧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 죄 값으로 죽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택함 받은 자의 모든 죄 값을 십자가 죽음으로 치루셨다. 그를 믿는 자는 죄가 없는 것으로 인정받아 의인이 되는 것이다. 구원과 칭의와 중생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구원은 살아가면서 자범죄를 짓거나 회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실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예수님이 그 죄 값을 다 치루었기 때문이다.

이미 구원받은 자에게 있어서 '회개'라고 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은 것을 확인하고 감격하고 감사하는 은혜의 수단으로 하는 것이다. 결코 믿는 자가 범죄하고 회개하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이 상실되거나 지옥 가는 것은 아니다. 시간적으로 지은 죄를 회개하지 못하는 경우는 자살한 경우가 아니라도 많이 있다. 지은 죄를 회개하기 전에 사고당해 죽을 수도 있다. 혹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지라도 자살 외에도 의지적으로 회개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어떤 죄에 대해 회개하기 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속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고 믿음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결코 그 어떤 행위라도 구원의 조건에 들어올 수 없다. 기독교는 선행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믿는 종교이다. 우리에게 구원의 날이 완성될 때 까지 우리 안에 죄가 없어야 구원이 유지된다고 하면 과연 구원받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확실한 것은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 그것은 죄와 무관한 삶을 유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구원받은 자로서 거룩하지 못하거나 죄 짓고 사는 자에게 그 죄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거룩하지 못한 자보다 얼마만큼 거룩한 삶을 사는 지 그리고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사는지 묻고 싶다. 죄를 정죄할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 다만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를 깨달으며 죄를 통해서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만을 절대 의지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은 결코 '멸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경 곳곳에서 명백히 증거하고 있는 교리일 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요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도 너무나 뚜렷이, 너무나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결 론

구원은 오직 믿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아무리 바르게 착하게 살아도 안 된다. 정결하다고 거룩한 것은 아니다. 착하다고 거룩한 것은 아니다. 착하게 산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착하게 살 수 있다. 좋은 일하고 보람 있는 일 하고 살 수 있다. 착하게 사는 것 분명히 좋다. 거짓말 안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다. 혹 ‘예수 믿고 구원받아 놓고 이렇게 살아서 구원받겠나!’ 이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바르게 살게 된다. 바르게 살아내지 못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구원을 잃지는 않는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줄로 믿는 것이 영원히 하나님과 사는 길이다.

“그렇다면 이제 성도들은 절대로 구원이 취소되지 않을 것이니 마음껏 죄를 짓고 세속적으로 살아도 무방하단 말이군요”

혹시 이렇게 말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이같이 말하고 있다.

“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5-18)

진실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영적으로 새 사람이 되었다. 곧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고린도후서5장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다.

이전에는 영적으로 죽은 자요 소경이었으므로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그저 이 땅의 것만을 위하여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고 마음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왜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는지, 영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기 이전과 이후의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았고 다시는 멸망하지 않는다고 해서 믿음을 저버리거나 죄를 짓고 방종 하는 생활을 하지 않는다. 이는 구원 받은 성도들은 가치관과 좋아하는 분야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과거에 믿지 않을 때에는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갖고 살았지만, 믿은 후로는 성경적인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과거에 믿지 않을 때에는 세속적인 것들을 좋아했으나 이제 믿은 후로는 과거에 좋아하던 것들이 추하고 유치하게 보인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야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고상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말하기를 ‘믿기 전에 귀하게 여겼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다. 사회적인 신분과 지위, 학식, 재산, 명예, 따위를 배설물 곧 오줌이나 똥처럼 하찮게 여겼다. 그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을 삶의 최상의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성도들이 궁극적인 구원을 보장 받은 것이니까 더 이상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지 않고 각자 마음대로 살자고 할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이다. 진실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구원받았으니 죄짓고 방종하자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 받은 성도는 절대로 죄를 짓지 않는다거나 나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성도들도 죄를 짓는다. 나쁜 생각이나 말과 행위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성도들은 죄를 짓고 악을 행하면 양심에 고통을 느낀다.

로마서 7장에 보면, 이 같은 사도 바울의 탄식이 나온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탄식은 비단 사도 바울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려고 하지만 자주 실패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의 탄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탄식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성도들의 내면에는 항상 영적 싸움이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길 때는 우리 심령에 기쁨이 있지만 패하면 슬픔과 고통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적 싸움을 통해서 성도들은 연단을 받아서 점점 더 강해지고 드디어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어 죄를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믿음이다. 믿음 외에 그 어떤 것을 더한다고 하는 것은 바른 복음이 아니다. 믿음을 우리게 허락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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