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차 대각성 운동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찰스 피니에 대한 그릇된 정보가 매우 많이 유포되어 있다. 찰스 피니가 마치 매우 성경적인 부흥운동을 주도하여 미국 교회의 복음주의에 대단한 공헌을 했던 것처럼 오도하는 글들이 지속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찰스 피니를 성경적인 인물로 미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들 가운데 내가 가장 최근에 접한 기사는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박욱주 겸임교수의 “한국형 이단의 자화상, 삶의 박탈과 성의 착취”(크리스천투데이, 2017.9.3)이다.

박욱주 교수는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 텔리비젼 방송극 <구해줘>를 소재로 삼고 쓴 이 글을 통해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하는 이단의 발생 원인과 그 특징들을 매우 심도있게 기술하여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박욱주 교수의 중요한 논지 중의 하나는 정통교회의 건강한 부흥이 있으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이단도 함께 발흥한다는 사실이다.

박욱주 교수는 정통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나는 곳에 반드시 이단이 함께 발생하는 역사적인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였고, 이 현상은 성경의 가라지의 비유(마 13:24 이하)에서도 확인되는 불변의 진리라고 강조했다. 즉, 하나님의 알곡의 씨가 뿌려지는 곳에 반드시 마귀의 가라지 씨앗도 덧뿌려진다는 것이다.

박욱주 교수는 기독교의 역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이 사실을 설명하였다.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사도들이 목회하던 초대교회 당시에도 사탄은 율법주의와 영지주의라는 가라지 씨앗을 교회에 덧뿌려서 사도들의 목회를 방해하였다고 하였다. 이는 사실이며 맞는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욱주 교수의 다음의 말은 우리에게 올바른 신앙관을 가지지 못하고 혼선에 빠지게 만드는 내용이다.

“19세기 초 찰스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 1792-1875) 등의 주도로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제 2차 대각성운동(1790-1840)은 이 원숙한 정통주의가 부흥으로 빛을 발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역사상 단기적으로 가장 많은 수의 이단이 발생한 시기 중 하나가 바로 이 때였다. 몰몬교(Mormonism), 제칠일안식교(Seventh-day Adventist Church)의 전신인 밀러주의(Millerism)가 처음 발생한 시기도 바로 제2차 대각성운동이 막바지 국면에 이른 1820-40년대였다.”(박욱주 교수)

박욱주 교수는 찰스 피니를 성경적 신앙을 가진 위대한 인물로 설명하며 바로 그 시기에 몰론교, 안식교 등의 마귀의 가라지 씨앗들이 미국 교회에 덧뿌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중대한 진실왜곡이 담겨져 있다. 박욱주 교수의 이 말은 2차 대각성 운동 대표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이 지극 성경적이었고 미국 교회에 하나님의 복음을 견고하게 세우는 성령의 부흥이었다고 오해하게 만들어 버린다. 

과거의 역사를 바로 해석하고 진단하지 못하면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뒤틀린다. 그래서 문화가 발달하려면 지나간 역사를 바르고 정당하게 해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후세들에게 조상들이 저지른 위안부 문제 등을 가리우는 것은 후세들을 위하는 일이 아니고 후세들을 망치는 일이다.

찰스 피니가 주도했던 미국의 2차 대각성 운동 당시 동시에 이단들이 많이 등장한 이유는 찰스 피니가 마귀에게 크게 쓰임을 받았던 거짓된 부흥사였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찰스 피니와 같은 거물이 마귀의 일을 열심히 했으므로 노골적으로 그리스도를 훼방하는 몰론교 등의 거짓 종교가 미국 땅에서 탄생하고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미국의 교회사를 진단해야 옳고 바르다.

그 이유는 실제로 찰스 피니가 거짓 복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찰스 피니가 어떤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요약해 보고자 한다. 다음의 사실들은 내가 직접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들의 책을 참고하여 확인한 사실들이다. 찰스 피니를 하나님이 교회의 부흥을 위해 결코 사용하신 적이 없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확신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신앙이 전혀 갖추지 못한 거짓 복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음을 부정

찰스 피니는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죄인이 아니고, 또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신 구세주가 필요하지도 않게 된다. 이런 신앙을 가진 찰스 피니를 하나님이 복음을 위해 사용하셨을 이유가 없었다.
 

2.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부정

찰스 피니는 그리스도가 우리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셨음을 부정했다. 성경적 복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피 흘리시고 죽음으로 죄 값을 지불하시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이 들어설 자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런 거짓된 신앙을 가진 찰스 피니를 통하여 성령이 역사하셨을 이유가 없었다.
 

3. 인간의 전적타락을 부정

찰스 피니는 인간의 전적타락을 부정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고, 스스로 영적인 생명을 얻기 위한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음을 말씀하고 있다. 아담의 죄로 인해 완전히 타락하고 부패한 상태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인간은 여전히 자기의 영혼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을 능력이 있다는 것이 된다.

과연 우리가 그런 상태에서 구원을 받았다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은 것은 믿음을 선택한 것이 우리의 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전적으로 감사하지 못하게 되고, 영원히 살 길을 위해 믿음을 택한 자신의 공로와 현명함을 자랑하게 된다. 구원을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지 않으니 참된 신앙은 불가능하다.

찰스 피니의 신앙을 의심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들이 또 있으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교단에 소속한 분들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찰스 피니가 1)인간의 전적 타락을 부정하고, 2)아담의 원죄의 유전됨을 부정하고, 3)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부정했다는 이 사실은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방하는 이단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이단 찰스 피니를 통해 복음의 사역을 일으키시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찰스 피니가 복음의 기초와 핵심을 무너뜨린 이단이었다는 사실은 로이드 존스가 피니를 알미니안으로 간주하였고, 콜드웰(Coldwell) 피니를 미국 교회 속에 펠라기우스주의를 도입한 거짓 부흥사였다고 정의하였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미국 교회에서 어지간해서 목사면직이라는 징계가 나오지 않는 풍토인데, 찰스 피니가 자신에게 목사 안수를 주었던 교회로부터 목사면직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가 이단이었기 때문에 나타난 일이었다. 
 

4. 찰스 피니의 비성경적인 부흥운동

찰스 피니는 부흥에 대해서도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위험한 사상을 가졌던 인물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부흥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심'이라고 정의하였고, 로이드 존스는 부흥을 '오직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는 기적이며 하나의 직접적인 개입하심의 결과'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찰스 피니는 부흥을 '적절한 수단들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 나타나는 결과'라고 정의하면서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였다.

피니는 심각한 이단성은 부흥을 오직 성령의 역사에 전적으로 의존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령이 부흥을 일으키시지만, 인간이 부흥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를 갖추어 놓으면 성령이 따라서 역사하시어 실제로 부흥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피니는 부흥을 오직 성령의 주권과 은혜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사람이 부흥을 위한 준비를 갖추어 놓으면 성령이 역사하여 부흥을 일으킨다고 보았고, 실제로 그 방법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므로 이후 미국 교회에서는 (피니 외에도 다른 요인이 있었지만) 거짓된 성령세례를 추구하는 성령운동이 등장하게 되었다.

피니는 부흥을 만드는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먼저 인간이 회개해야 할 것은 매우 강조했다. 피니는 사람이 죄를 찾아서 회개하면 성령이 반드시 따라서 일하신다고 주장했다. 피니가 회개를 강조하므로 매우 성경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람이 스스로 죄를 찾아서 회개하면 성령이 역사하신다고 주장하였으므로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다. 심하게 비유하자면 성령과 부흥에 대한 피니의 가르침은 사람이 준비하는 일정한 상황과 조건이 형성되면 반드시 일하는 기계나 짐승과 같은 것으로 성령을 격하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는 피니의 부흥이론에 대해 “성령을 말하고 있는 것 같으나 성령을 모욕하고 추방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의 특징은 부흥을 일으키는 '새로운 방법들'(New Measures for Revival)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피니의 신학에서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부흥은 결국 성령의 은혜와 역사하심이 아닌 ‘사람의 의지’(the will of human)의 문제였다. 그래서 피니는 인위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부흥운동과 특별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주력하였다.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시어 그들을 거듭하게 하시고 하나님 백성되게 하실 것이라고 보았다. 원죄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죽음을 부정하고,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를 부정하는 펠라기안주의가 찰스 피니를 통해 완전하게 부활하여 미국의 복음주의로 자립잡게 된 것이다. 이것이 2차 대각성 운동이었는데,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 무서운 사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피니는 사람들이 자신의 설교에 대해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반응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였다. 며칠 동안 연속으로 열광적인 부흥집회를 연이어 개최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지극히 고양시키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사람들이 일어서게 하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게하고, 강대상 쪽으로 나오게 하는 등의 자신의 설교에 대한 반응과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적극적으로 표시하게 하였다.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좌석’(the anxious seat)이라는 것을 만들고서 자신의 부흥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가운데 특히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게하였다. 대게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피니의 설교에 대해 감적적으로 신체적으로 적극적으로 반응하였고, 그것이 피니의 부흥집회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회심(?)할 예비후보자들을 미리 준비하여 부흥집회의 열기를 고조시켰던 것이다. 

문론 이 방법들을 피니가 처음으로 고안하여 실행했던 것은 아니다. 그 보다 약 30년 전 미국의 감리교 부흥사들이 먼저 시도했던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장 광범위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큰 효과를 거둔 사람은 찰스 피니였다. 그래서 이후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유도하는 이와 같은 인위적인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일어났다. 결국 찰스 피니는 복음을 훼손하는 거짓 복음의 사람으로 간주되어 목사직 면직을 받게되었다.


5. 찰스 피니의 신학공부

찰스 피니가 왜 이와 같은 위험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진단하고 마치도록 하자. 찰스 피니는 신학을 바르게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혼자 성경을 읽고 특별한 성령체험을 통하여 회심하였다. 예일대학에 입학하여 신학을 배우고자 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피니는 회심하고 난 후 출석했던 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부터 성경과 신학을 배웠다. 그를 가르쳤던 조지 게일(George Gale) 목사는 매우 신실하고 뛰어난 분이었다.

그러나 찰스 피니는 게일 목사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내용은 수용했고 마음에 들지 않은 내용은 거부했다. 피니가 게일 목사로부터 배운 내용들 중에서 가장 수용하기를 싫어했던 것은 장로교회 신앙의 핵심이며 동시에 성경의 핵심에 해당하는 내용들이었다. 피니는 게일 목사가 자신에게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죄에 오염된 인간의 자유의지’, ‘오직 성령의 역사로 거듭남’ 등에 표시내지 않으면서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러므로 피니는 결국 알미니안주의와 펠라기안주의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혼자 성경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진리를 취사선택하는 사람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이다. 

요즘 사람들은 신앙에서 교리를 중시하지 않고 당장 피부와 와 닿은 요소들을 보고 교회를 선택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 예배의 분위기(노래, 설교 시간 등), 모이는 사람의 숫자, 건물의 모양 등이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교려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교회 목사의 신학이어야 한다. 끝에 가서 반드시 파멸하게 될 절벽을 향하여 가고 있는 배는 아무리 좋아 보이고 아무리 분위가 좋아도 빨리 탈출해야 할 죽음의 배이기 때문이다. 그 교회 목사의 신학은 그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준석 선장이 몰았던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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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