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에 대해 더 고민해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생애 동안 적극적으로 율법을 준행하시어 의를 얻으셨고, 그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상하게 총신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이 개념으로 칭의를 배운 적이 없다. 함께 총신을 나온 주변의 사람들도 동일하게 말한다. 

총신을 나온 목회자들은 대부분 흠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십자가에 드리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시었다고 배웠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얻으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칭의를 주셨고, 그 피로 죄를 사하였다는 이론은 약간 다르다. 흠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 대한 율법의 요구대로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고 동시에 의로운 자가 되었다. 

나에게 많은 신학적 영향을 미치신 서철원 박사님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을 거부하시는 것을 보았다. 서철원 박사님도 또한 흠없고 온전하신 그리스도가 자신을 십자가에 제물로 드리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고, 믿는 자에게 속죄와 칭의를 주셨다고 가르치신다. 그런데 알고보니 조나단 에드워드와 핫지 역시도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 개념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들도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신 (흠없고 온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스스로 십자가에 제물로 드리심으로 믿는 우리에게 속죄와 칭의를 주셨다고 가르치기를 더 좋아했다. 

나 또한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얻었다는 '능동적 순종' 개념 보다는 죄 없고 온전하시고 흠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실패한 첫째 아담이 살았던 환경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온전하게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사셨고, 자신을 십자가에 제물로 드리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고,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에게 속죄와 칭의가 단번에 주어졌다고 기존에 배운대로 정리하였다.

그런데 며칠 전 또 다시 이 문제가 대두되어 신학 연구가 깊으신 뉴욕의 어떤 목사님과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 분도 역시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이지, 적극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삶을 사시어 의를 얻으시고 그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이론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런 대화중에 갑자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칭의론이 언급되었고 한국의 예장 고신의 조직신학 교수 박영돈 박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목사님에게서 박영돈 교수님에 대한 거친 말이 쏟아졌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박영돈 교수님 본인과 여러 사람들이 현실의 심각성을 알도록 그대로 옮기면 좋겠으나, 그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략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었다.

"아니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 있나요?”
“인터넷 유트브에 벤자민 오를 쳐봐! 그러면 알아!”
“왜 갑자기 벤자민 오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가요? 벤자민 오와 박영돈 교수가 무슨 관련이 있어요?”
“구원받은 사람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간다고 강조하는 벤자민 오가 박영돈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설교를 하고, 그것으로 특별한 영상을 만들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어!”

나는 벤자민 오가 누구인지 조금 안다. 서울의 변승우 목사와 뉴저지의 벤자민 오 목사는 한국 교회에 신사도 운동 바람이 불던 초기에 가장 앞장서 외국의 예언자들을 불러 신사도 집회를 열었던 사람들이다. 특히 뉴저지의 벤자민 오 목사는 영어를 잘 하므로 외국의 저명한 예언자들의 예언집회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특히 이 두 사람은 일반 신사도 운동가들과는 달리 구원받은 자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에 떨어진다고 강력하게 전파하고 있다. 사실 이 두 사람이 전하는 내용 때문에 신사도 운동가들의 회개 강조는 '율법적 회개 사상'이라고 정의하며 성경적 회개와 구분하게 되었다. 성경적 회개는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완전하게 용서받아 구원받은 성도로서 그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합당하게 살기 위한 성도의 회개이다. 그러나 율법적 회개는 구원 이후에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구원을 잃거나, 재산을 잃거나,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하는 회개라고 정의하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지금도 서울의 변승우 목사와 뉴저지의 벤자민 오 목사가 구원받은 사람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에 간다고 가르치는 내용이 쉽게 발견되고 있다. 뉴욕의 그 목사님은 나에게 자신의 거친 말이 박영돈 교수님에게 꼭 전해지게 하라고 하셨으나,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분의 말의 요지는 박영돈 교수님 자신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왜 자신의 칭의에 대한 글이 이단적 행위구원을 전하는 목사의 주일 설교에 그대로 인용되었고, 또한 그 내용을 특별영상으로 제작하여 홍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박 교수님 본인이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박영돈 교수님의 글을 읽고 우려하였다. 어떤 목사님은 내가 이전의 글에서 한 말과 같은 내용을 써서 박영돈 교수님에게 보냈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단 행위구원론 교회가 박 교수님의 구원에 대한 글을 저렇게 적극적으로 인용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살펴보니 벤자민 오 목사는 정통 개혁주의 신학을 견지하는 명망있는 교수님들의 글을 전혀 인용한 적이 없고, 오직 김세윤 교수와 박영돈 교수의 글만 인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세윤 교수님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의 구원 타락의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유보적 칭의론을 주장하였고, 박영돈 교수님은 본인의 의도가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약간 김세윤 교수님을 두둔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 유트브창에서 그 목사님이 말씀하신 열을 올리면서 말씀하신 그 영상을 쉽게 발견했다. 뉴저지의 벤자민 오 목사는 박영돈 교수님의 글을 직접 인용하여 설교를 했고, 그 부분을 아주 뛰어난 기술을 편집하여 멋있는 유트브를 만들어서 홍보하고 있었다. 

박영돈 교수님은 이런 일도 일어났으니 정말 자신의 글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을지라도 자신의 글이 읽는 사람들에게 어떤 오해의 소지가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셔야 할 것 같다. 불순한 자가 자신의 글을 악용했을 뿐이라고 변명하기만 할 일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미 많은 올바른 신앙의 사람들이 박영돈 교수님의 글에 대해 의문과 우려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변승우 목사도 에드워즈 등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변승우 목사에게 인용당하는 에드워즈도 나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에드워즈의 사상이나 글에 대해 전혀 의문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쁜 사람들이 에드워즈의 글을 인용해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영돈 교수의 글에서 행위구원론을 은근히 거드는 뉘앙스가 풍긴다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었는데, 이 시대의 대표적인 행위구원론 목사가 박 교수님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논란이 더 이상 연장되지 않기를 바란다. 곰곰히 생각해서 이 논란을 끝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보고 싶다. 뉴저지의 벤자민 오 목사가 박영돈 교수님의 글을 어떻게 자신의 행위구원 설교에서 그대로 인용하였고, 또 그 내용을 어떻게 영상으로 제작하여 홍보하고 있는지 보자! 영상에서 설교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구원받은 사람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강조하는 행위구원론자 벤자민 오 목사이다. 

  

그 다음의 영상은 벤자민 오 목사가 최근에 자신의 교회에서 전했던 구원에 대한 설교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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