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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오직 믿음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이다성결교 이석민 목사의 '구원론의 혼선을 진단한다'(2)
이석민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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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5  01: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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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거룩함의 열매가 없어도 믿기만 하면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복음의 변질입니다.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에는 잘못된 구원론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교인들이 변화되지 않는 문제는 우선적으로 구원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믿기만 하면 거룩함이 없어도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생각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성경은 물론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에도 이런 사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하는 것처럼 수준 있게 말하는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가 수 천명 수 만명이 모여 구원에 대해 이야기 한다할지라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바른 복음이 아니다. 오직 믿음에 의해서 구원받는 다는 것이 성경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것을 더 할 수 없다.

위에서 주장한 자처럼 “믿기만 하면 거룩함이 없어도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생각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성경은 물론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에도 이런 사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긴박한 가운데 있는 자들, 수술대에 있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함께 달렸던 강도 ... 이러한 자들도 믿으면 구원받는 것인데 이러한 사람들에게 거룩함을 찾을 수 가 있는 것인지 믿는 순간에 거룩함을 입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한 위와 같이 자는 거룩함이 어느 정도인지 혹 거룩함이 본인은 하나님의 합격점에 이룰 수 있는 묻고 싶다. 거룩함이라든가 행동의 변화는 구원받은 이후에 나타나야 하는 현상이지 거룩함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 구원의 조건은 오직 믿음만이 필요충분조건이다. 만약 믿음 외에 다른 것을 더한 다면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또한 다음과 같은 질문들도 있다.

"어떻게 믿기만 하면 구원받느냐?"
"그러면 살인범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느냐?"
"의로운 삶이 있어야지 그러면 막 살아도 믿기만 하면 되냐?"

우리는 먼저 이러한 질문들 자체가 잘못 되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면 살인범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느냐?"

이 질문은 살인범을 자기 자신과 비교하는 데에 그 문제가 있다. 자신을 살인범과 비추어보았을 때 의롭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죄인과 의인을 나누는 기준을 높여야 한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기준과 한번 비교해 보자. 성경은 마음으로 자기 형제를 미워해도 살인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누구를 미워하는 것은 두 세 살짜리 어린 아이도 저지르는 죄악이다. 따라서 성경의 기준을 따라보면 우리 모두가 살인자이다.

"의로운 삶이 있어야지 그러면 막 살아도 믿기만 하면 되냐?"

이 질문은 자기 자신이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데에 그 문제가 있다. 물론 우리는 고의적으로 죄악을 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롭게 살려고 해도 완벽하게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위태한 상황이 되면 거짓말이 나오고 증오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인간이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죄악된 것이다.

"어떻게 믿기만 하면 구원받느냐?"

"어떻게"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내 옆에 있는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을 버리고 성경에서 제시하는 절대적인 기준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모든 불의, 음행, 사악, 탐욕, 악의로 가득 찼으며,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며, 수군거리는 자들이요, 비방하는 자들이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요, 모욕을 주며, 교만하며, 자기 자랑만 하며, 악한 일들을 꾀하는 자들이요, 부모를 거역하며, 몰지각하며, 약속을 저버리며, 무정하며, 화해하지 아니하며, 무자비한 자들이라"(롬 1:29-31).

이것은 성경에서 열거한 죄의 목록들이다. 물론 이것들 말고도 더 있다. 하지만 우선은 로마서1장29-31절에만 나온 것을 열거하였다. 이것만 보아도 이 세상에 성경에서 제시하는 죄에 대한 기준을 대했을 때 완전히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기 스스로도 속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또는 너무나 교만하여서 그러한 죄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죄악 됨을 철저히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서는 어떠한 구원도 나올 수 없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나에게서도 구원이 나올 수 있고 나 스스로도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이상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앞에서 다루었듯이 어떤 인간에게서도 구원이 나올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이심에도 불구하고 그 심판을 자신에게 대신 적용하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죄인들에게 내릴 벌을 자신에게 내림으로써 죄인들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신 것이다.

이 세상에는 힘이 센 사람도 있고 의지가 강한 사람도 있고 원래부터 온순한 사람도 있고 원래부터 포악한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셨다. 그래서 구원을 얻는 일에 어떠한 조건도 내 걸지 않으신 것이다. 다만 믿으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를 자신의 왕국으로 들여보내는 데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구원을 주신 것이다. 이제 문제는 사람들이 그 구원을 받는 것에 있다.

믿음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믿음이 무엇인지 개념을 못 잡는 경우가 많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이고 의지하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믿음은 기대는 것이다. 믿음은 마치 벼랑에 떨어지는 상황에서 믿음직한 나무뿌리 하나를 붙잡는 것과 같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자신에게서는 어떠한 구원도 나올 수 없음을 인식한 상태가 바로 벼랑에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이제 죄에 대한 심판으로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인식한 것이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죄인의 모든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셨다. 그리고 손을 내미시는 것이다.

"나를 붙잡으라. 나를 믿고 나를 붙잡으라."

예수님을 못 믿겠다면 예수님을 붙잡지 않을 것이다. 벼랑 끝에서 지푸라기는 믿지 못할 대상이기에 붙잡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 수많은 죄인들은 자신의 도덕성과 의로움을 믿고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벼랑 끝의 지푸라기와 같은 것이다. 정말 구원받기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라", "하지말라"는 명령은 무엇인가?

이쯤 되면 사람들은 또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무엇무엇 하라.', '하지 말라.'한 명령들은 무엇이냐?"

그것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선생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려 함이라"(갈 3:24).

율법('하라', '하지말라')이 우리를 그리스도(구원자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 선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려는 것이다. 율법은 우리가 정말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과 같다. 아직도 자신이 무엇인가 의롭다고 생각되고 자신에게 가망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작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기쁜 소식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도 자기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구원을 발로 차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해 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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