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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저의 진심의 사과이고 분명한 소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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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저의 진심의 사과이고 분명한 소신입니다
  • 정이철
  • 승인 2017.09.26 12:05
  •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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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처럼 2018-04-19 19:16:08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가능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호의적으로 응답하면 구원을 얻고 거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

=> 위 문장에서 "거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거절할 수 있으며 그 결과 구원이 없다"라고 이해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택하여 은혜를 베푸시려고 작정하였는데, 그 사람은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꺾고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수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 주장은 개혁주의의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적 은혜'라는 교리에 반합니다.
그러나 일단 교리적 문제는 접어두겠습니다.


"이 때 주도적으로 선행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수동적으로 응답할 수 있고 또 응답해야 한다."

=> 이 문장은 문장 자체의 신학적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처음 윗 문장의 주장과 충돌합니다.
첫 문장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수 있다고 전제했는데, 그 다음 문장에서는 "응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첫 문장의 "거절할 수 있다"라고 기술한 앞 문장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신학적 판단을 떠나 단지 문맥적으로 위의 두 문장의 논리가 일치하려면, 반드시 두 문장 중 한 문장은 수정해야만 합니다.

1. 첫 문장을 그대로 둘 경우, 둘째 문장을 "응답하거나 거절할 수 있다"로 고쳐야 합니다.

2. 둘째 문장을 그대로 둘 경우, 첫 문장을 "...호의적으로 응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로 고쳐 "거절할 수 있다"라는 부분을 없애야 비로소 두 문장의 상호 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이 문장이 번역상 오류가 아니라 정말 웨슬리의 견해라면, 그는 아마도 신학적 체계가 서지 않은 상태의 열심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웨슬리 신인협력설 2018-04-19 17:08:25
정이철 목사님께서 웨슬리의 신인협력설을 주장한 자료들을 더 보시고 사과하셨으면 좋으셨을텐데 아쉽네요. 그 중 한 자료를 발췌합니다.

-------------------------
[웨슬리 설교집]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가능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
심에 호의적으로 응답하면 구원을 얻고 거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
이 때 주도적으로 선행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수동적으로 응답할 수 있고 또 응답해야 한다.10)


10) 한국웨슬리학회 편,

웨슬리비판 2018-04-19 15:38:08
기독강요라는 닉네임의 말투와 주장이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카페장 이인규 감리교인과 비슷하군요.
그 사람은 감리교 신학 공격하면 뒤도 안돌아보고 강퇴시키던데...
알미니안주의의 영향을 받은게 웨슬리인데 신학이 건강할리가 없죠.

서병구 2018-04-10 19:06:46
글이 난해하였군요?
죄송합니다^^

행위가 아닌 은혜로 구원받은자는, "행위에 따라 심판 받지 않으며,"행위가 없는 사람은 성령받은자가 아니고 거짓믿음이 아닌가요?
이글 밑에 달란트 비유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은사를 사용하지 않는 무익한종은 성령받은자의
행위가 없었으니 거짓믿음이 아닌가? 라는 물음이였습니다.

구원의취소에 대한 물음은 본문중에 있는,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받았을지라도 이후 죄에 대한 회개와 성화로 이미 얻은 칭의와 구원을 완성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다시 지옥에 간다고 가르치는 행위구원론자들과는 교제하기 곤란하고, 그들이 어느 교파에 속했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거짓 영의 미혹을 받아 중대한 신앙의 오류에 빠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정이철 목사)

행위구원론자 라는 지적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보편적 교단 설교자는 구원받은 성도의 믿음의 의무로 행위가 따라와야 한다고 합니다,

행위구원론만 강조하는 보편적 교회 목사님을 본적이 없어
다시 의문을 던져본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구원받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믿는자로서 의무가 있다는 강조를 하는것이지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하는 분들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주신 구원의 은총을 훼손하였다 고
하는것은 본질을 보지 못하는것입니다

행위구원론 은 자력종교에 해당합니다.

행위구원론자 라고 말한다면 말하는 자가 심판자가 되는것입니다.

그런뜻에서, "또한 회개와 성화로 이미 얻은 칭의와 구원? 이라고 한다면 한번받은 구원은 어떤 경우에도 취소될수 없다는 것인가요?"
이미 받은 구원 은 행위를 강조하던지 행위가 따라오지 않으면 구원받은 자기아니고 열매없는자니 지옥간다고 하든 안하든 무슨 상관이 있는가란 말입니다.

칼빈도 완변할수 없고 웨슬리도 완변할수없다고 보는저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는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입장에서 예수의은혜로 구원받게 하신거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그것을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물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님안에서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바울처럼 2018-04-09 21:20:21
아니요, 아무도 달란트의 비유를 구원의 취소에 대한 증거구절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서병구님의 댓글에서 처음 보았구요, 그래서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특히...
"또한 회개와 성화로 이미 얻은 칭의와 구원? 이라고 한다면 한번받은 구원은 어떤 경우에도 취소될수 없다는 것인가요?"
이런 반박성 질문과 함께 인용된 구절을 어찌 구원의 탈락에 대한 제시로 보지 않을 수 있는지요?
좋습니다...ㅋ
님께서 인용하신 구절을 은사의 양에 대한 비유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님께서 말씀하신 은사의 양과 구원의 탈락과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가르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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