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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저의 진심의 사과이고 분명한 소신입니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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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6  12: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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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저에게 피하지 말고 정직하게 입장을 밝히라고 재촉하시는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실 저의 처음의 도발적인 질문의 취지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의 피 공로 완전하고 영원하게 이루어졌다고 믿으면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었으나, 구원 이후의 회개, 성화로 구원이 완성되기도 하고, 다시 구원이 파기되어 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는 “행위구원론”은 기독교의 복음의 영광을 파괴하는 심각한 이단사상입니다.

저는 웨슬리 구원론이 행위구원론적이라고 오해하였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수의 장로교 목회자들은 그렇게 교육받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인간의 회개, 성화가 칭의의 근거가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의 공로만으로 칭의를 얻고 완전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회개와 성화는 구원받은 자에게서 나타나는 확실한 열매입니다. 결코 회개와 성화 때문에 칭의를 얻고 구원의 완성을 이룩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년은 종교개혁 500주년되는 해입니다. 저는 웨슬리의 구원론이 그리스도의 피 공로외 인간의 회개, 성화가 중요한 요인이 되어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진다는 행위구원론이라고 오해한 상태에서, 과연 그러한지를 묻는 공개적이고 도발적인 질문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행위구원사상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짐작했던 한국 감리교신학대학의 교수님들이 웨슬리의 구원론이 결코 행위구원론적이지 않다는 분명한 신학적 해석과 입장을 밝히는 글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충격적이었고 또한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발견한 즉시 “감신대 임성모 교수님의 글이 웨슬리 신학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면, 저는 웨슬리를 존경할 수 있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국 감신대 이후정 교수님의 글에서도 제가 알고 있는 웨슬리 신학에 대한 내용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해 주는 내용을 또 발견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저의 도발적인 글로 인해 마음이 크게 상하신 모든 분들, 특히 감리교 성도님들과 목회자님들에게 진실하게 사과드리고 더 이상 문제로 불편한 관계의 날을 세우지 않으려고 결정했습니다. 그 분들에게 불편을 야기했던 저의 원래의 글을 내릴까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쪽에서는 여전히 행위구원사상이 진정한 웨슬리의 가르침인 것처럼 설명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는 왜 같은 웨슬리안 진영에서 의견이 다른지 묻지 않겠습니다. 잘못하면 저로 인하여 웨슬리안 진영의 신학교, 신학자들끼리 또 다른 예기치 않은 논쟁이 일어날까 조심스럽습니다. 같은 장로교단이지만 합동과 통합 사이에 도저히 이해하고 화합할 수 없는 내용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모습일 수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제가 “웨슬리의 신학적 오류”라고 표현을 수정하기 전, 즉 웨슬리 구원론에 대해 일반적으로 들었던 말들만 믿고 "웨슬리에게 이단성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감신대 임성모 박사님의 성화는 구원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다만 구원의 열매라고 설명하는 내용의 논문을 읽고 제 스스로 감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공개적으로 표명했던 내용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저의 진심과 소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감신대의 이후정 박사님께서도 인간의 행위와 무관한게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칭의가 주어진다는 설명하시는 글을 읽고 더욱 마음의 큰 위안을 얻은 후 다음과 같은 글을 쓰면서 감리교 성도님들에게 사과드렸습니다.

   


웨슬리안 신앙에 대해 일방적인 내용만을 배우고 들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 즉 임성모, 이후정 박사님과 같은 분들이 가르치는 내용이 한국 감신대 안에 있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고 크게 놀랐습니다. 혹시 이 분들이 가르치시는 내용이 웨슬리안 신앙진영의 주류 입장이 아니라 할지라도 외부에서 알려져 있는 내용만을 기초로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을 주의해야 하겠다는 것이 이번 논란을 통해 제가 얻게 된 소감입니다. 저의 마음이 잘 전달되어 웨슬리 구원론에 대한 저의 도발적인 글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이 모두 풀리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까지 설명하였음에도 또 다시 저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말로 한번 더 답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받았을지라도 이후 죄에 대한 회개와 성화로 이미 얻은 칭의와 구원을 완성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다시 지옥에 간다고 가르치는 행위구원론자들과는 교제하기 곤란하고, 그들이 어느 교파에 속했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거짓 영의 미혹을 받아 중대한 신앙의 오류에 빠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정이철 목사)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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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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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poiqw 2017-09-26 17:27:02

    자 이제 논리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감리회는 자신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장로교처럼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바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중요한 교리적 특징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선행은총, 칭의, 중생, 성화, 완전, 이 5개라고 맣한다.
    그러나 장로교는 인간의 완전타락, 하나님의 무조건적적인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인 은혜. 성도의견인, 이 5개를 근거로 든다.
    그리고 알미니안주의는 이에 반하여 예지에 근거한 조건적 선택, 무제한적 속죄, 부분적 타락, 저항할 수 있는 은혜, 은혜로부터의 타락 가능성을 말한다.신고 | 삭제

  • 147poiqw 2017-09-26 17:28:49

    김리회는 성경에 없는 선재적 은총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적인 타락을 말할 수 없다. 전적인 타락을 말하면서 선재적 은총을 말하는 것은 꼼수이다. 그들이 말하는 선재적 은총이란 조건적 선택을 말하기 위한 포석이나 같다. 결과적으로. 그리고 그와 병행선상으로서 그들은 무조건적 선택을 말 할 수 없다. 그리고 제한 속죄를 말할 수 없고,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말할 수 없고, 성도의 견인을 말 할 수 없다, 이 선재적 은총이란 인간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총을 부인하고 결과적으로 인간스스로 완전에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강조하게 된다. 그러므로 행위책임으로 나갈 수밖에 없으나 교묘히 그 행위책임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은밀한 시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제한 속죄를 주장하고 인간의 타락 가능성을 말할 수밖에 없으나 이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으려한다.신고 | 삭제

  • 147poiqw 2017-09-26 17:29:44

    감리회는 그러므로 완전같은 것을 말하고 그들의 구원론에 있어서 인간행위의 중요성을 알기에 성결과 완전성 같은 것에 크게 집착하고 기존의 장로교의 성화라는 개념이 있음에도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감리회의 교리는 참으로 문제가 있는 교리라 할 것이다. 그러나 불란을 일으켜 평지풍파 일으키는 것을 싫어하는 무리들이 그들을 그냥 덮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재적 은총은 구원을 주는 은총이 아니라 구원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뿐이기에 그들은 인간이 말씀을 받아들일지 거부할 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건 행위 책임론이다. 이런 것들은 조건적 선택과 무제한적 속죄, 부분적 타락, 저항 할 수 있는 은혜, 은헤로부터의 타락가능성을 다 맘껏 말하지만 전적인 타락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살짝 덮붙일 뿐이다.신고 | 삭제

  • 147poiqw 2017-09-26 18:21:46

    감리회에서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공로이외에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지만 이 선재적 은총으로 인하여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수정되게 된다. 이 선제적 은총이란 구원으로 이끄는 은총이 아닌 구원으로 견인차 역할만 하는 은총이기에 나머지는 인간이 더하여야 한다. 고로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심히 왜곡된 표현이란 것을 알게 된다.신고 | 삭제

  • 147poiqw 2017-09-26 20:50:18

    감리회에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을 말한다면 선재적 은총을 말할 수 없다. 선재적 은총은 부분적 제한적 은총이다. 하나님의 부르심, 거기에 인간의 응답 즉, 인간의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응답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부합되는 것이 인간이 완전한 타락의 존재가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타락한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대답하거나 거부하거나 하는 것은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상, 인간 능력존중의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왜 성경에도 없는 그런 말을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 앞에 인간이 철저하게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기 때문일 것이다. 이럼에도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논리는 필연적으로 알미니안적 구원론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신고 | 삭제

  • 147poiqw 2017-09-26 20:51:05

    감리교가 온전한 하나님 절대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행은총과 칭의, 중생, 성화, 완전을 말하는 것은 이 선행은총으로 응답하는 자들은 칭의를 얻고 이들이 성화를 힘쓰는 가운데 최선을 다하면 완전한데로 나아간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그들은 이 완전이 상태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즉 성화를 힘쓰면 완전함에 나아갈수 있지만 이것을 굳이 동적인 개면이라고 말한다.

    또한, 구원론에 있어서 실상은 자유의지를 말하지만 겉으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을 말한다.

    부분적 타락을 내심으로는 말하지만 겉으로는 완전 타락을 말한다.

    구원론에서 신인합일을 말하면서 예수의 구속의 보혈의 공로로만 구원얻는다고 말한다.



    감리교는 정밀하게 살펴보면 그 내심과 말하는 것이 심각한 괴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신고 | 삭제

  • 본질로 2017-09-26 22:54:05

    정목사님! 말씀하신 내용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더 이상의 반박에 대해서는 마음에 두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위해서 기도하고 있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신고 | 삭제

  • 배우는 사람 2017-09-26 23:33:58

    147poiqw님이 제시해준 신학적 논리를 몰랐을 때에도 감리교의 이상한 행적을 많이 보고 참으로 실망했었습니다. 왜 그런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뿌리가 중요한거지요. 처음에는 비슷하게 보여도 결국 엉뚱한 열매를 맺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정이철 목사가 이단/오류 분별에 너무 지나다고 말하지만 그런 이유가 있는겁니다. 147poiqw님 감사합니다.신고 | 삭제

  • 장기영의 웨슬리 2017-09-27 09:17:23

    장기영의 웨슬리는 행위구론자입니다. 정이철 목사님이 지적하시고 있는 행위구원론이 원래 웨슬리의 신학 맞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웨슬리안들이 장로교와 개혁신학의 영향을 받아 원래의 웨슬리 신학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행위구원론이 이단사상이라는 것을 자신들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기영은 여전히 원래의 웨슬리 신학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장기영은 순진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현명하지 못한 사람입니다.신고 | 삭제

  • 147poiqw 2017-10-14 18:08:16

    웨슬리신학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신학이라고 하기 어렵다. 진리가 비 진리와 섞여서 성도들을 헛갈리게 하고 분별력을 없애서 구분 못 하도록 하는 신학이 있다면 그것은 과감하게 배격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웨슬리 신학을 비판해 보면,

    1, 웨슬리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은 전부요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건 꼭 하나님 절대주의신앙을 말하는 것 같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시작은 왠지 그럴듯하게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로 살펴보면 그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2. 그의 주장은 문제 많은 선행은총으로 시작된다. 이것으로 인간은 구원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런데 구원을 못 받는 것은 인간 책임이고,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으로 받는 것이라고 하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게 아니라고 한다. 즉, 전적 타락한 상태이나 그가 구원받을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선행은총으로, 그러므로 그는 일정부분이 회복된, 제한적으로 회복된, 그 정도로만 타락한 상태라는 것이고) 그것은 믿음이 있는 상태이고 그런 사람만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라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없으면 구원받을 수조차 없는 상태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왜 같은 말을 빙빙 돌려서 말을 꼭 해야 하는가? ‘전적인’, ‘절대적인’이란 말만 빼면 다를 게 하나 없다. 결국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말의 핵심 아닌가?


    3. 또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 신인 협동 설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 신인협동설도 또 하나님의 은총 아래의 협동이라고 주장한다. 구원의 대상이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은 자기범죄에 대해서 자신이 심판관이 된다는 것이다. 이걸 피하기 위해서 은총을 끼워 넣었으니 그럼 이것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으로 구원받는다는 말과 결과적으로 뭐가 다른가?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인한 것이 아니고 신인협동설 즉, 하나님과 인간이 협력해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인간 위주보다는 하나님 위주의,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이끄시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면 이건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으로 구원받는다는 말과 결과에서 다른가? 절대적 이라는 말만 빼버리면 양 주장이 꼭 들어맞는 말이다.


    4. 그리고 그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롬 8:32절(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을 든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란 말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의미의 성구가 아니라 할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온갖 좋은 선물을 은사로 주신다는 것에 불과 하다할 것이다. 또한 이미 이런 것들을 주신 그 하나님은 영생까지도 다 보장하신다는 말씀인 것이지 모든 사람을 다 구해 주시는 그런 은총을 베푸셨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선행은총을 주장하면 부분적 타락과 만인 속죄 그리고 무조건적 선택과 가항력적 은총, 구원대열의 낙오가능성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들은 이미 다 정해진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무제한적 속죄를 말하기 위해서 이 성구를 들고 있지만 본문의 의도는 그게 아니다.

    또한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라는 말도 만인 구원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택하신 이들을 말한다. 28절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라는 말씀과 그리고 33절의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고발하리요,’ 라는 말씀들의 일련의 문맥상, 이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와 그 이름을 믿는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만인 구원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그의 주장은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는데 그러나 그가 구원을 못신고 | 삭제

  • 147poiqw 2017-10-14 18:10:43

    그러나 그가 구원을 못 받는 것은 그의 책임이고 만일 구원받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말한다.


    무제한적인 구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즉,
    구원받음에 있어서는 인간은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이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으로 구원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그런데 왜 말을 돌려서 하는가? 예정조화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멸망시키기로, 믿는 자들은 구원시키기로 예정하셨다는 뜻이라는 말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만인속죄설을 주장하지만 웨슬리의 만인 속죄설이 만인 구원설은 아니어서 속죄는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구원은 조건적인데, 그 조건은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고 믿음이 주어진 사람에게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인데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은 구원받는다는 말이나 뭐가 다르냐 하는 것이다. 이게 만인속죄설이 아닌 제한속죄설이 아닌가? 결국 조건인 그 믿음이 자기의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냐를 헛갈리게 하는 것이 이런 말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성경구절을 믿는다면 이게 제한속죄설로가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에서 그 ‘절대적’이란 말을 빼버리는 게 그의 의도라는 말이다.


    5. 그리고 사람은 불가항력적 은혜로 구원받으며 사람은 이에 항거 할 수조차 없는 존재이라는 말을 굳이 반대하고 항거할 수 있고 그건 인간이 하나님이 회복해주신 제한적인 타락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는 구원을 선택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고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 인간의 공로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구원받고 없으면 못 받는 말인데. ‘불가항력적’ 이란 말만 빼면 다른 게 없지 않는가? 그는 항거할 수 있는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6. 또, 신자는 살아있을 동안에 성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이 땅에서 온전히 그리스도를 다 닮은 이를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 땅에 남겨두실 이유가 있을까?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신자가 살아있을 때에 이 성화를 다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칼빈과는 다르다. 칼빈은 살아 생전에는 완전성화를 주장할 수 없다고 하였다. 웨슬리가 성화를 강조하는 것은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강박관념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성화조차도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 진의는 뭘까? 이룰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웨슬리신학의 핵심은 완전성화라고 한다. 이것 때문에 비난을 받고 논란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성화는 또 완전한 성화는 아니다. ‘나는 다 이루었다라고 할 필요는 없다.’ 고 웨슬리는 주장한다. 이러니 성화가 구원의 조건이 되는가 안 되는가 하는 끝없는 논쟁이 안 나올 수 가 없다.


    7. 웨슬리는 참으로 성도를 헷갈리게 하는데 도가 튼 사람이다.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끝없이 헛갈리게 하고, 구체적인 문제에서는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를 말하면서 회피해 가고 그러면서 성도들에게는 끝없는 성화를 강조하므로 구원의 확신과는 멀어지게 하고, 결과적으로 모두 다 알미나안적 주장을 하면서 또 그걸 추궁하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다 알미니안적인 구원관을 갖게 해서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와 사랑에서 결과적으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웨슬리의 구원관이다.


    그는 성도들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하기 보다는 구원에 대한 불완전함을 끝없이 강조하고 인간의 자기 의를 말하지 않는 듯하면서 말하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예수의 십자가를 말하면서 구원은 자신이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성도들을 벗어나게 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에게 구원은 결국 내가 이루어야 할 커다란 짐이기 때문이다. 전적인 타락을 말하면서 부분신고 | 삭제

  • 147poiqw 2017-10-14 18:42:35

    전적인 타락을 말하면서 부분적 타락을 염두에 두고 있고, 조건적 선택을 말하면서 무조건적 선택을 말하고 있고 무제한적 속죄를 말하면서 제한적 속죄를 말하고 있고 항거 가능한 은혜를 말하면서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하며, 구원의 대열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하면서 그래서 성화를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성화는 완전 성화이고 그러므로 성도가 구원의 대열에서 떨어지지 않고 안심하는가. 했더니 또 그 성화가 완전성화는 아니어서 안심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성도와 목회자들을 끝없이 헛갈리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이나 예수 십자가의 절대적 공로를 약화시키고 그 대신 인간의 ‘의’를 집어넣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8. 성경에 없는 선행은총이란 말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신학은 성도들과 또한 그 교리를 추종하는 목회자들을 한없이 헛갈리게 하는, 지극히 교묘한 교리이고 사람들을 혼미케하는 교리로서 결과적으로는 구원은 내가 이루어야하는 것,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고 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한 지극히 귀하고 값진 보배로운 구원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와 그 은혜의 완전성, 충분 성을 허물려 하는 것이 그의 속마음이라 생각되며 이걸 말하는 것이 웨슬리의 구원관이라 할 것이다.
    시작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으로 구원 얻는다고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주장하는 바는 하나님의 은총이 있으나 절대적 은총은 아니고 인간의 의나 공로가 들어간 은총이고 인간의 의나 공로가 들어간다는 말을 극히 회피하고자 하지만 본색은 그게 아니고 들어간 은총이고, 들어간 십자가이고, 구원이고, 그러므로 이런 신학은 인간의 공로로나 의를 주장하는 여타의 신학과 종파와도 쉽게 연합될 수밖에 없고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신앙과는 함께 할 수 없다. 웨슬리의 신학은 배제되어야한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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