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 장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십자가 장식은 목걸이로 가장 흔희 사용된다. 종종 여성들의 귀걸이로도 이용되고 때로는 아무것도 없는 빈 벽면에 포인트를 주는 용도로도 쓰여 진다. 나무로 예쁘게 만들어진 예술적인 십자가들이 많다. 표면처리가 잘된 금속으로 만들어진 십자가도 무척 보기에 좋다. 

그러나 십자가는 사람의 목숨을 끊는 죽음의 도구였다. 칼이나 밧줄이나 총이나 독약 같은 죽음의 도구들도 많았지만 십자가는 더 잔인하고 무서웠다. 죄수가 자신이 달릴 십자가를 지고 형장에 도착하면 죄수의 몸을 가리는 모든 의복이 제거된다. 벌거벗은 채로 달리는 수치를 당하도록 죽을 때까지 고문하는 것이다. 체중으로 인해 몸이 못으로부터 찢어져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밧줄로 팔을 십자가에 묶어 둔다. 성인 한 뼘 길이의 쇠못들이 두 팔과 다리의 살과 뼈를 뚫고 박히도록 잔인한 망치질이 가해진다.   

그러나 이 고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죽음이 오려면 아직도 긴 시간이 남았다. 최고로 15일 동안 숨이 끊어지지 않아 십자가에 달린 채로 고통을 당하다 죽은 죄수도 있었다. 한꺼번에 피가 쏟아지지 않으므로 체력이 강하고 건강할수록 더 오래 고통을 당한다. 예수님은 체력이 약하셔서 불과 6시간 만에 돌아가셨다. 못 박힌 자리에서 흐르다가 응고된다. 그러나 죄수의 몸이 고통으로 비틀어지면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 피가 멈출 수 없을 만큼 빨리 흐르면 좋으련만 십자가는 그것도 자비가 된다고 하여 허락하지 않는다. 

십자가가 선 예루살렘 성 외곽의 죽음의 언덕은 낮에는 살인적인 사막의 더위가 머무는 곳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 그늘도 아닌 40도가 넘는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몇 날을 보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십자가에 달린 자에게는 물 한 방울도 주어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십자가가 선 그곳은 밤이 되면 반대로 살을 에는 추위가 찾아오는 곳이었다. 때로는 피 냄새를 맡은 독수리들이 몰려와서 죄수에게 빨리 죽으라고 다그친다. 기다리지 못한 독수리들이 아직 죽지도 않은 죄수의 눈을 쪼어먹디도 하고 발톱으로 찢고 내장을 파먹기도 한다. 십자가는 이렇게 잔인한 저주의 죽음의 형틀이었다. 

예쁜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는 참 예쁘다. 독특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십자가도 참 멋있다. 그래도 십자가를 장식으로 쓴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는 일이다. 십자가는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여 저지른 배교(창3:4,5)에 대한 형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전혀 손해되지 않는 일이었고 그보다 좋은 일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 아래 있기 싫어하는 교만이 생김으로 독립하기를 원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실행에 옮기고 말았다. 

하나님은 스스로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인하여서  배반한 인간을 죽이셔야만 했다. 또한 하나님은 스스로의 사랑으로 인하여 인간을 살리시고 다시 행복하게 살도록 은혜를 베푸셔야만 하셨다. 이 두 가지가 십자가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 두 가지가 다 이루어졌다.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한 마귀가 “왜 안 죽이십니까?”라고 고소도 못하게 되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십자가에서 나는 죽었었다. 동시에 다시 십자가 위에서 나는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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