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말한 것처럼, 나는 웨슬리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신학교 교수님들과 그 외의 여러 사람들의 연구물 등을 통해서 웨슬리 신학에는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성경적인 내용이 없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는 웨슬리의 신학적 오류에 대해서 거론했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만으로 죄인에게 영원한 구원이 임한다고 웨슬리가 가르친 증거가 있으면 보여 달라고 여러 목사님들에게 요청했다. 만일 웨슬리가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외에 인간 편에서 그 무슨 행동이나 무엇을 더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불행히도 웨슬리안 목사님들은 그 증거를 보이지 못했다. 계속 성화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다른 많은 이단 옹호자들이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시도했던 협잡과 모략의 글들을 동원하면서 인신공격을 시작했다. 웨슬리안 목사님들이 계속 하는 말은 구원받은 자는 성화를 보여야 한다는 웨슬리가 강조했다는 것이었다. 누가 성화를 반대하는가? 성화를 반대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웨슬리가 성화를 구원유지 조건으로 가르쳤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웨슬리안 목사님들은 웨슬리는 구원유지 조건으로 성화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성화를 보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성화가 구원의 조건, 구원유지의 근거라고 가르치지 않고 오직 구원받은 자에게서는 성화가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 원칙이라고 웨슬리가 가르쳤다면, 매우 안심할 일이다. 성경은 성화에 근거하여 칭의와 구원을 준다고 가르치지 않고 칭의와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는 성화가 나타난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참에 심각하게 다른 점 하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웨슬리안 목사님들이 구원받은 자라도 다시 구원을 잃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행위가 부족하면 구원을 잃는다!” 라고 표현하지는 않고 “다시 믿음을 잃고 죄에 빠지면 구원을 잃을 수밖에 없다!”라고 표현하셨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사실은 전혀 다른 내용의 신앙을 가지고 있음이 바로 여기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결국 행위가 나빠지고 성화가 파괴되면 구원을 잃고 지옥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의 자질을 보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적용하여 죄를 씻고 성령으로 인치시어 그 사람을 구원하였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구원을 다시 빼앗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구원받은 자의 구원의 영속은 하나님의 크신 주권에 속하였지 사람의 노력과 자질에 달린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언약을 동원하신다고 한다. 이미 구약에서 우리를 구원한 언약을 예고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겔 16:60)

그리고 신약에서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 영원한 구원의 새 언약을 만들어 내셨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심은 자신이 언약을 성실히 준수하여 우리를 반드시 구원하려하심이다. 언약을 받은 자격도 없고, 언약을 요구하지도 않은 우리에게 언약을 주심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구원자가 반드시 되시기 위해 언약을 주신 것이다.

웨슬리안 목사님들은 우리가 믿으면 하나님이 구원하고 우리가 믿음을 버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옥에 버린다고 하였다. 믿음과 구원의 주도권과 책임 모두를 인간에게 돌리므로 이런 비성경적인 신학구조가 나온다. 구원의 언약을 주시고, 또한 그리스도가 대신 언약 조선을 다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도록 은혜를 주시어 영원한 구원을 누리게하셨다. 웨슬리안 목사님들은 성경의 이와 같은 진리를 전혀 모른다.

그쪽 목사님들은 인간의 믿음이 떨어지고 다시 죄에 빠지면 구원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성경의 핵심 진리를 모르니 나오는 인간적인 말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영원히 구원을 누리도록 자기 백성들의 속성과 마음을 재창조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는 타락한 자기들의 마음을 다시 조성하시어 하나님을 믿도록 만드신다고 하셨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24:7)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우리 속에 조성하시어 우리가 하나님 백성되고 구원을 영원히 누리게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역사하심이다. 이것을 모르니 전부 인간의 선택과 결단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믿음이 떨어지고 죄에 빠지면 구원을 잃는다고 한다. 자기 백성되도록 여호와는 아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이 자기 피로 구원하신 그 백성이 지옥에 갈 정도로 믿음이 떨어지게 하실까? 그런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구원 받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성령의 새로워지지도 않았던 사람이라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대체 무슨 죄에 빠지면 다시 지옥에 가는 것인가? 음란, 도적질, 폭행, 살인 ... 이런 죄에 다시 빠지는 하나님 백성이 있다면, 다시 회개시키는 것이 하나님께 어려운 일인가?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맡기신 영혼들은 하나도 잃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신자들의 영원한 생명을 그 무엇도 다시 앗아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쪽 목사님들이 믿는 내용은 너무도 다른 내용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비성경적인 신앙이고, 기독교를 오해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그 동안 내가 웨슬리에 대해서 배우고 들은 내용들이 모두 사실로 확인되었다. 웨슬리안 목사님들은 인간이 믿어 자신을 구원하고 인간의 믿음이 떨어지거나 사라지면 다시 구원을 잃는다고 믿는다. 이 속에는 아무런 자질이나 공로가 없는 죄인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완전하고 영원한 칭의와 구원이 주어진다는 성경의 핵심이 없다. 

다음은 내가 총신 신대원에서 어떤 교수님으로부터 조직신학 <구원론> “웨슬리의 도덕적 칭의 관념”부분에서 배운 내용이다. 왜 장로교에서 웨슬리의 신학을 우려하는지, 왜 웨슬리의 신앙이 성경을 훼손한다고 여기는지 읽으면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웨슬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은혜로 구원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 은혜는 앞서 오는 은혜(preventient grace)이다. 앞서 오는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주어져 있다. 이 선행하는 은혜와 협동하여 사람은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낸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기 전에도 하나님께로 가는 운동이 시작된다. 이 운동은 선행하는 은혜에서 나온다”(Works, X, 358-60)

“(웨슬리 신학에서는) 회개의 많고 적음, 열매가 있으냐 없느냐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이 회개는 사람이 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작정은 부장하다. 무조건적인 작정은 믿음과 회개를 배제한다는 것이다.”(W., XI, 494)

“더구나 회개가 믿음에 절대적으로 앞서간다. 이 회개의 열매들은 선행하는 은혜의 결과들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오기 전에도 행동해야 한다. 열렬한 순종, 훈련된 삶, 자기 부정과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함이 없이는 완전 성화는 없다.”(W., VI, 50)

“그래서 웨슬리는 믿음을 칭의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W., XI, 494)

“회개가 칭의의 조건인데 선행하는 은혜가 회개를 하게하고 확신하게 한다. 이것이 구원의 첫 단계이어서 참 칭의에 필수적이다.(W., VIII, 373) 선행하는 은혜가 여기까지 사람을 인도한다. 그러므로 본래적인 구원이 오기 전에 칭의하는 믿음이 행동해야 한다고 웨슬리는 주장한다”(W., VIII, 373)

"칭의를 받으려면 내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 내적 변화는 칭의 전에 일어나기 시작한다. 의로워진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는다. 그 의롭게 되는 것은 성화로 이루어진다. 성화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하지 않으신다. 거룩하게 된 자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신다”(W., V, 56, 57)

“따라서 최종 칭의는 계속된 선행들과 마음의 거룩에서 나온 순종에 의존한다”(W., I, 321; VIII, 47)

“웨슬리는 성화가 믿음에서 왔다가 주장한다. 그러나 선한 행위들이 믿음에 본질적이다”(W., VI, 491)

“(웨슬리는)성화로 칭의에 이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사랑의 선행으로 믿음에 이르고 성화에 의해 칭의를 받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웨슬리는 선한 행위들을 게을리하면 결코 칭의받지 못한다고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들이 믿음과 함께 칭의에 필수적이다”(W., VI, 48)

"회개할 때 회개의 정도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이(W., VI, 494) 웨슬리의 반복된 주장이다 ... 철저하게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많이 맺으므로 의롭다함을 얻는다. 그러면 웨슬리는 완전성화주의자이면서 완전 도덕적 칭의론자였다”(W., XII, 333-34)

“(웨슬리에게) 그리스도에게서 전가된 의는 칭의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의의 외투일 뿐이다. 칭의는 의롭게 되어짐과 성화에서 나온다”(W., VI, 71)

“웨슬리 말로 요약하면 내가 나를 구원하지 않으면 하나니도 나를 구원하지 않으신다. 웨슬리는 완전한 도덕칭의론자이다”(W., VI, 511-13)

이상으로 웨슬리에 대한 논쟁을 마치려고 한다. 웨슬리를 지지하는 분들은 다른 이단들처럼 거짓되고 악의적인 글들을 동원하여 인신공격함으로 스스로 다른 이단들과 같은 수준으로 전략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도 그 동안 쓴 글을 다시 보면서 비인격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들을 수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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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