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끊임없이 자기 개혁을 하지 않으면 권력화되고 부패한다.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을 때는 이미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이 더 이상 개혁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2017년 10월 31일은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의 부속 교회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여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긴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루터는 당시 교황과 로마 가톨릭의 타락과 부패를 목도했지만 이단으로 심문받거나 화형당하는 것을 우려해 입을 닫았던 그 시대에 침묵을 깬 사람이었다.

그 일로 루터는 겨우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의 정신을 수호하고자 전쟁터에서 죽기도 했고,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하기도 했으며, 고문을 받다가 죽기도 했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드러내지 못해 세상으로부터 온갖 모욕을 받고 있을 뿐더러 이제는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초기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새겨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1. 중세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적 배경

루터는 종교개혁이 시작된 이듬해 1518년부터 1543년까지 이슬람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강연과 설교, 저작 등을 통해 밝혔다. 그는 이슬람과 결부된 부정적 이미지를 가톨릭교회에게 투영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더욱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정치적인 공동체를 기독교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도 분명히 해야 했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 개혁자 루터의 권면은 오늘을 사는 한국 교회에게도 좋은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신, 구교가 서로 다투면서 반목상태에 있었다. 그동안 오스만제국은 유럽에서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고 마침내 술탄 메메드 2세(Mehmet II, 재위 1452-1481) 때인 1453년 3월 29일에 고대 로마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였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을 발판으로 유럽 중앙을 향해 전진해오고 있었고, 이에 유럽인들은 ‘터키인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힘들었고, 이에 십자군 전쟁 외에 해결 방법이 없음을 역설하였다.
 

2. 마르틴 루터의 입장

루터는 1518년 『사면의 능력에 대한 논쟁의 해답들』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십자군 전쟁과 관련, 처음으로 이슬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했는데, 이때 대다수의 기독교인들과 다른 입장을 표명한다.

첫째, 이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불의의 채찍

십자군 전쟁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터키인이라는 채찍을 통해 우리의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투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슬람을 ‘불의의 채찍’으로 이해했고, 이 채찍을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으로 판단했다. 이것은 마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블레셋을 통하여 징계하시고,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했듯이 기독교의 타락이 이슬람의 징계를 불러왔다고 본 것이다. 즉, 루터는 이슬람 자체보다 교회 내부의 부패를 더 큰 문제로 여겼고, 그 부패에 대해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써 이슬람을 이해한 것이다.

또한 싸우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자기 내면에서부터 싸움을 시작해야 된다고 밝혔다. 루터가 주장하는 자기 내면에서의 영적인 전쟁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적그리스도의 사탄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지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이미 이슬람을 빗대어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난했던 위클리프는 이슬람의 성장 원인을 로마 가톨릭교회의 자만, 탐욕, 소유욕 때문으로 보았고, 교회의 죄악이 세속화된 종교 이슬람을 낳았으며, 교회가 내부로부터 회개할 때 이슬람은 쇠퇴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루터에게 종교개혁 외에 이슬람에 대한 이해에도 영향을 주었다.
 

둘째, 이슬람은 종말론적인 적(敵)

루터는 1529년 이슬람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의 포위소식을 들으면서 임박한 종말을 의식하며,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터키인에 대항하는 군대 설교”(Eine Heerpredigt wider den Turken)에서 루터는 말세에 예언된 두 폭군을 교황과 이슬람으로 해석하고, 다니엘서 7장의 4번째이자 마지막 짐승을 로마제국으로, 열 뿔을 제국 내의 나라들로, 그리고 뿔들 사이에 있는 ‘작은 뿔’을 이슬람으로 이해하였다. 교황은 위선의 가면을 쓰고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적그리스도로, 이슬람은 선하고 정결한 덕목을 지닌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계략을 가진 적그리스도로 이해했다.

이렇게 루터가 종말론적인 사고를 가지고 교회에 주려고 하였던 것은 두려움보다는 ‘위로’였다. 비록 당시 교회가 고난 속에 있을지라도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 것이며, 교회가 고난 속에서 인내한다면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교회는 고난 속에서 자신의 가진 신앙을 확신해야 한다. 루터는 터키의 군사력에 대해서 많은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가 염려하는 것은 교회가 온전한 신앙과 회개로 터키 문제를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교회가 회개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고난의 기간을 짧게 하실 것이다. 결국 이슬람이 저렇게 강대한 힘을 휘두른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때 모두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고난에 눌리지 않고 고개를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루터의 이러한 자세는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분의 섭리에 대한 신앙과 그에 따른 세계관을 보여준다.
 

3. 루터의 입장에 대한 적용

루터의 주된 관심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 믿음에 머물러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즉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coram Deo) 의롭게 서도록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관심이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자들로서 무슬림 세계 앞에 (coram mundo muslimo) 의를 추구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었다. 환경이 어떠하든지 시련이 얼마나 강하든지 그는 그들에게 생의 시련을 견딜 수 있는 신학을 주고자 하였다.

첫째, 기본적인 교리문답을 배우라.

그런 시대(정복 당할 시)가 되면 더 이상 설교자나, 책을 가질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적에게 사로잡힌 점령지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에게 적어도 신앙의 기초가 되는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을 암송하도록 촉구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인 사도신경의 제 2조항을 잘 암송하도록 적극 권하였는데, 이는 그 조항에 우리 신앙의 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무슬림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답게 섬기며 살아가라.

오토만 제국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즉 적극적인 의로 그들의 믿음을 살아내는 것으로. 그는 그의 독자들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도록 부름으로 시작하였다.

셋째, 고통을 감수하라.

루터는 고통을 감수하라고 권한다. 그러한 고통은 “구원에 좋고 필요한 것”인데, 순종이나 고통이 그 자체로 유익하다기보다 그것이 구원을 위하여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세우기 때문이다.

넷째, 주의하라.

루터는 무슬림들의 의식과 도덕의 진지함과 철저함이 기독교인들이나 수도승, 성직자들보다 더 나아서 단지 3일 동안만 무슬림과 함께 살아도 기독교대신 이슬람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정도로 무슬림의 도덕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루터는 이슬람의 의식이나 도덕보다 훨씬 더 고귀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율법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무슬림으로 개종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루터의 네 가지 권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슬람을 향한 선교의 가능성

루터는 이슬람이 마귀의 종이라고 묘사하며, 그들이 꾸란의 어이없는 가르침을 따른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그들은 강퍅한 자들이기에 좀처럼 회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역시 구원의 대상이라는 큰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루터의 종말론적 선교이해와 선교의 긴박성을 가지고 종말이 오기 전에 무슬림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무슬림을 대할 때 형제사랑으로 대할 것을 요구하였다. 현대 이슬람 선교에서 교만한 태도는 선교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루터는 믿음, 순종, 경건, 용기, 인내 등과 같은 덕목이 무슬림을 능가할 정도가 될 때, 무슬림이 개종할 것으로 생각했다. 동시에 루터는 성도들이 스스로의 믿음을 지키며,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신앙고백으로 무장할 것을 요구한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그 신앙고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 신앙고백을 확고히 할 때에만이 성도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FIM 국제선교회 이동훈 목사 / 

이동훈 목사는 안양대학교 기독교문화학과,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졸업하였다. 한국에서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연구에 많은 힘을 쏟고 있는 목회자이다. 현재 무슬림들에게도 주님의 유업을 물려주기 위해, 한국교회에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와 관련한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FIM국제선교회 한국본부 총무로 섬기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