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목사가 씨애틀 연합장로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모습(2016년 8월)

이동원 목사의 <세상을 끌어안는 중보기도 파티>라는 책을 좀 더 보았다. 정확한 성경 이해를 가지지 못한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내용이 많았다. 이동원 목사는 그냥 기도에 힘쓰자고 강조하면 될 내용들을 전무 중보기도해야 한다고 표현하였다. 이동원 목사는 그 당시 떠 오르는 중보기도 물결에 생각없이 말려든 것 같다. 이동원 목사는 먼저 우리의 죄를 해결해야 중보기도가 살아난다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중보기도의) 의무를 행사하고 특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제일 커다란 방해물이 있다면 나 자신, 내 삶 속에 있는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가 살아나려면 먼저 해결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들, 우리 삶의 길에 놓여있는 장애물들이 처리되지 않으면 우리 기도는 금방 죽어버리고 맙니다.”(이동원, <세상을 끌어안는 중보기도 파티>, p. 63)

성경에는 우리에게 죄가 없어야 효력있는 중보기도를 잘 할 수 있다는 말씀이 전혀없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우리의 거룩과 성결로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언제가 중보자 그리스도의 도움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동원 목사의 죄가 없는 사람이 능력있는 중보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가르침은 성경과는 거리가 먼 개념없는 말이다.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대신 죽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번 들어가서 하나님을 직접 뵈었다. 그때마다 대제사장은 자신과 온 이스라엘을 위해 대신 죽은 황소의 피를 들고 나아갔다. 장차 오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신앙의 원리가 그때부터 그렇게 드러났다. 신약 시대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원리는 동일하다. 오직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중보기도를 잘하기 위해 자신의 죄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고, 회개하는 사람의 중보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고 하는 이동원 목사의 말은 기독교의 기도를 오해하게 만든다. 이동원 목사는 중보기도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아어야 했다. 대신 구약의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갈 수 있었던 비결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고,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원리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입는 것이라는 사실을 성경적으로 설명했어야 했다. 이동원 목사는 신약의 성도들이 완전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그러한 특권을 누리는 신자들이 성결하고 경건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기도에 대한 성경의 일반적인 교훈을 가르쳤어야 했다.

성경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 더욱 친밀하게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성도가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기도의 힘을 더하여 주신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벧전 3:12)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그리고 이동원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성공적인 중보기도자들의 사례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모델링(modeling)은 교육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귀감을 본받으면 학습의 좋은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승리의 모본을 함께 살펴보면서 어떻게 우리도 승리하는 중보기도자가 될 것인가를 나누고자 합니다.”(이동원, <세상을 끌어안는 중보기도 파티>, p. 77)

이동원 목사가 소개하는 성공적인 중보기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1)아브라함 링컨
2)죠지 물러
3)아브라함과 멜기세덱
5)여호사밧
6)이동원 목사 자신
7)윌리엄 캐리
8)무디
9)빌리 그래함

이 사람들 중에서 성경적인 중보기도자였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 멜기세덱, 여호사밧 뿐이다. 십자가에서 완전한 중보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왕, 선지자, 제사장의 직분을 완성하는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로 오셨다. 이 말을 달리하면, 구약의 왕, 선지자,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불완전한 인간 중보자였다는 것이다. 창세기의 신비한 제사장 멜기세댁과 왕, 선지자, 제사장이 등장하기 전 이 직분들의 통합기능을 발휘하였던 아브라함, 그리고 왕이었던 여호사밧의 성공적인 기도를 중보기도의 사례로 설명하는 것은 맞다. 그 밖의 인물들은 모두 십자가에서 중보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서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갔던 신실한 성도들이었을 뿐이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 죠지 물러, 이동원 목사, 윌리엄 캐리, 무디, 빌리 그래함 등은 중보기도자들이 아니고 중보자 예수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신약의 신자일 뿐이다. 특히 천주교 교황을 탁월한 영적지도자로 고백하고, 무신론자들과 타종교인들이 양심을 따라 선을 행하면 모두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라고 가르치는 빌리 그래함을 성공적인 중보기도자로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이동원 목사는 중보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다음과 같은 어이없는 말을 하였다.

“자, 이제 중보기도 사역이 선명해져 가는 것 같지요? 히브리서 7장 24,25절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이동원, <세상을 끌어안는 중보기도 파티>, p. 92)

이동원 목사는 이 말을 하면서 여전히 신자들에게 중보기도를 하라고 가르쳤다. 오직 한 분이신 기독교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너무도 명백한 내용의 말씀을 스스로 인용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교회의 중보기도실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동원 목사가 인용한 성결 구절은 명백하게 신자들이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로 기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4,25)

이 말씀 어디에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야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일반 신자들도 역시 중보기도할 수 있다는 내용이 없다. 죄인들을 하나님 앞에 서게하는 중보의 기능은 오직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만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가 우리신 중보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 백성되어 기도하고 예배드릴 뿐이다.

중보기도 사상을 가지고 신자들에게 중보기도를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라도 이런 어이없는 궤변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중보기도라는 용어와 사상과 운동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리와 전혀 맞지 않다. 중보기도 사상은 기독교의 기도를 변질시키기 위해 사탄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미혹이다. 지금이라도 교회에서 중보기도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치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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