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사던 세미나리 총장 Albert Mohler 박사의 기사이며, 정태윤 목사님이 번역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sexuality)과 양성(兩性)에 성서적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자 원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여러분의 답변은 끊임없이 거듭해서 동일한 것이 되어야할 것이다. 이 문제는 당신이 “최종적으로 역사의 바른 쪽에 서는 것을 결정하도록” 반복해서 직면하게 될 것이다. 충성은 일관성을 요구한다. 외길로만 향해가는 긴 복종이다.

찬성하기 이전에 유진 피터슨은 반대했는가? 지금은 진정으로 반대하는 것인가? 인기작가 유진 피터슨이 겪는 고뇌의 모습이란 대체적으로 스스로가 초래한 고뇌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피한 결과이다. 여러분은 면밀하게 주목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다음 차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목사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유진 피터슨에게 이 고뇌가 시작된 것은 동성애와 동성애 결혼에 관한 두 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시작된 것이다. 종교뉴스서비스(RNS)의 조나단 메리트가 동성애와 동성애 결혼에 관해 언급한 후, 동성애 관계의 도덕성에 대한 피터슨의 견해가 달라졌는지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피터슨은 지난 1991년 은퇴하기 전까지, 29년간 ‘Christ Our King 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질문에 대한 패터슨의 답변은 “그 건에 대하여 나는 많은 경험이 없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가 부목사로 근무했던 이전의 회중 안에는 “몇 명의 레즈비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담임한 회중도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고 피터슨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저 생각에는 그런 것을 큰 문제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찬송을 인도하는 게이 한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문제를 야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참으로 훌륭한 음악가였지요.” 그의 답변은 이리저리 뒤틀려서 참으로 난해한 것이었지만, 결론은, “내게 관한한, 그것은 옳고 그른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였다.

그 다음 피터슨에게 향한 질문은, “만약 당신이 지금 목회를 한다면, 그리고 당신 교회의 믿음 좋은 한 게이 커플이 와서 동성애 결혼 주례를 서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피터슨은 간단명료하게, “하지요.”라고 답했다.

바로 그 한 마디 “yes”라는 말이 복음주의 진영에 신호탄처럼 불타게 되었다. RNS 인터뷰의 머리기사에 이 문제에 관하여 패터슨이 마음을 바꾸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상당히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패터슨의 답변에 충격과 실망을 표명하였다. 가장 큰 체인 스토어를 가진 기독교 서적 판매 기관이 패터슨의 “The Message”라는 풀어쓴 성경을 포함하여 그의 다른 책들의 판매를 재고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의 “yes”가 나타나자마자, 곧 철회되었다. 바로 그 다음 날, 패터슨은 <워싱턴 포스트> 지를 통하여 긴 해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는 그의 “yes”를 철회하고, 동성애 결혼식을 주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회중에 대한 존경과, 더 큰 광역 교회와 결혼에 관한 역사적 기독교의 견해 및 가르침을 인하여, 그런 것은 안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목사로서 그러한 커플들을 여전히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명백히 할 점은, 나는 성서적 결혼관을 확인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입니다. 나는 모든 성서적 견해를 확인합니다.”

이렇게 그는 48 시간 내에 그의 원래 인터뷰 내용, 곧 동성애 결혼 주례에 대한 “yes"를 철회한 것이다. 그는 이제는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를 확인한 것이다. 불길의 방향이 돌려졌다. 패터슨의 RNS와의 인터뷰를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적어도 일부 안도하게 되었고, 그의 “yes”에 처음 기뻐했던 측은 후에 발표된 “no”에 분노한 것이다.

조나단 메리트는 패터슨이 철회한지 몇 시간 내에 한 기사를 올렸다. 그 내용은 2014년 피터슨은 한 집회에서 그가 이미 LGBT 건에 대한 그의 점진적 변화와 자신의 목회사역을 뒤돌아보는 내용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는 “나는 나의 마음을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한 자녀들이 동성애자들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시작한 부모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결국 그게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받아드렸습니다. 그것은 선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번성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LGBT 관계들과 행동들에 대해서, 혹은 동성애 결혼에 대해서 유진 패터슨은 무엇을 진정으로 믿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참으로 알 길이 없다. 우리는 참으로 알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의 취소는 그의 책들이 다시 팔리게 되는데 도움은 되었다. 그러나 이 고뇌는 그의 명성에 막대한 손상을 입혔다. 복음주의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작가 중 한 사람인 그는 이제, 실상은, 하나의 거대한 로샤흐 시험(Rorschach test)이 되었다. 여러분은 그가 LGBT 관계에 대해서 완전히 개방적인 작가로 그의 글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혹은 경제적인 압력을 받을 때에는 그는 그러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도 처신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혹은, 그는 이 문제에 대하서 전통적인 작가이지만, 압력을 받아서 동성애 결혼을 인정하고는, 곧 후회하고 철회는 모습도 보게 된다. 그러한 가능성은 끝이 없다. 본인은 유진 피터슨의 많은 글들을 즐겨 읽어 왔다. 그는 우아한 문학가이다. 그는 박력 있는 문장의 인용에 능한 사람이다. 그는 또한 영어 단어를 강력하게 단순화해서 사용하는 능력이 있다. 그의 <목사>라는 책의 내용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찾을 수 있다.

“(교회 생활)에 관한 베스트 샐링 책들 중 하나에서 (독자들에게는) 내가 선택한 본문 내용보다, 우리 교회의 주차장 크기가, 우리 교회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보다는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나에 대한 거짓말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심지어 나의 생애 동안 가장 큰 (그리고 가장 짧은) 문학적 업적을 성취해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다음 인용문이 이를 증거 할 것이다. 프리드릭 니체의 글을 인용하여, 기독교의 제자도를 재 정의하였다. “같은 방향으로 만 긴 복종”의 길이라고. 니체의 말을 돌려서 사용하여 그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재 정의한 그의 재능은 참으로 탁월하고, 선명하고, 잊을 수 없는 글재주 이다.

이와 같이 유진 피터슨은 말들을 관리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다른 책에서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을 극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야한다. 우리가 그들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나, 끝에는 그들이 우리를 사용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참으로 그렇다. 사려 깊은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피터슨의 답변에서, 그저 “어깨를 들썩거리고” 혹은 “한숨을 쉬는” 그런 태도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하였다. 곧 진실을 나타내기보다 은폐하는 태도 말이다. 또한 그 사안은 분명하게 예스와 노가 요구되는 그러한 내용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놀랄 일은 아니다. 유진 피터슨은 논쟁거리에 대해서나, 많은 중요한 성서적 혹은 신학적 문제에 대해서 태도를 분명히 한 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들은 그저 “목회 신학”의 범주에 속한 것이다. 그의 저술에 분명한 교리가 담겨 있는 것은 없다. 그의 배경을 보면, 어린 시절은 오순절 교단에서 자랐다. 그의 회고록에서 말하기를 자기는 우연히 장로교인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장로교를 선택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공부해 보거나, 인터뷰를 해 보거나, 찬반을 비교분석해 보거나, 영분별을 기도해 보거나, 그리고 나서 교인등록을 신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로교인들은 그들의 농구 팀에 코치가 필요했습니다. 나는 그런 것을 할 줄 알았고, 알아서 했습니다 ... 나는 자의식적으로 장로교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상의 그의 고백은 유진 피터슨에 대해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아마 그가 속한 교단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을 것이다. PCUSA로 알려진 자유주의 경향의 교단에 대해서, 그 장로교단의 가장 유명한 목사 중 한 사람의 말이, “나는 자의식 적으로 장로교인이 된 적이 없다”는 말은 그 정체를 모두 드러내고 있다.

피터슨의 저술들 중 최고 판매부수를 올린, <The Message>에서, 그는 동성애 행동이나 혹은 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심지어는 로마서 1:26-27 절, 혹은 고린도 전서 5:9-13 절 내용에서 마저 그렇다. 그 구절들에서 패터슨은 동성애 활동을 그저 일반적으로 ‘promiscuity’라고 번역하고 있다. (1950년대 영한사전에 의하면, promiscuity를 ‘뒤범벅’, ‘난잡’,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 성행위’, ‘난혼(亂婚)’등으로 번역하고 있음. 독자들은 영영 사전을 참고하시기 바람. 역자주)

피터슨은 논쟁거리를 다루지 않는 사람으로 명성이 있는 분이다. 그리고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명백한 답변을 제공할 수 없는 듯 해 보인다. 그의 “철회”는 성경과는 상관이 없는 조치이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의 관심사는 자신의 회중을 위한 것이며, “역사적으로, 성서적인 견해와 결혼에 관한 가르침에 있다”는 것이다. LGBT 행실이나 관계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한 태도이다. 만약 피터슨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PCUSA가 취하고 있는 LGBT 인정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놀랄 일은 하등에 없다. 만약 놀랄 만한 일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메튜 바인 이라고 하는 LGBTQ 옹호 운동자이며 작가는 말하기를, 피터슨의 동성애 결혼에 관한 답변은 규범(規範)적 도덕에 관한 그의 입장에 대한 것 보다는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라고 주장했고, 이는 옳은 말이다. 바인은, “교회 안에서의 경계선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 결혼을 지지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문제, 곧 그들이 동성애 관계를 아예 처음부터 죄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라고 했다.

유진 피터슨은 지금 84세이다. 그의 RNS 와의 인터뷰는 일종의 졸업식에서 수석대표의 연설과 같다. 그는 더 이상 공적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피터슨은 이들 문제에 대해서 답변을 하지 않고 자기의 공생애를 마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들이 있다. 그것이 마지막 인터뷰까지는 (그 것이 가능했다).

대부분의 그의 연배 사람들은 지금쯤 세상을 떠났거나, 은퇴했다. 피터슨의 장수는 그가 계속해온 문필활동과 힘을 입증하고 있다. 그는 거의 잘 마칠 뻔하였다. 그런데, 그 일이 터진 것이다. 유진 피터슨의 고뇌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고려해 볼 것이다.

첫째, 숨을 곳은 없다. 모든 목회자, 모든 교회 지도자, 모든 작가, 모든 신자들은 이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한다. 질문은 단순히 동성애 결혼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그 질문은 믿는 사람이 성경에 분명하게 계시된 바대로 인간의 성(性)과 양성(兩性)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된 계획을 선포하고 방어할 결의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두 번째, 우리는 답변을 준비하고 살아야한다. 회피적이며, 우회적이고, 믿고 끝도 없는 답변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 그 신분을 나타낸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처를 찾아간 사람은 이미 그 구조물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항상 붕괴된다.

세 번째, 만약 여러분이 성과 양성에 관한 분명한 성서적 교훈 위에 서려면, 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해서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한다. 이 문제는 여러분에게 거듭해서 찾아오고, 또 찾아올 것이다. 여러분이 드디어 “역사의 바른 쪽에 자리 잡을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때까지, 충성은 일관성을 요구한다. 바로 “같은 방향으로의 긴 복종”의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한 제자도를 의미한다, 유진 패터슨이 가르친 바와 같이. 다만 그는 오직 한 길 외에 여러 다른 길을 가르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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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윤 목사는 정태윤 목사는 미국 달라스에 있는 서남침례교회의 목사이다. 정태윤 목사는 현대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에서 멀리 벗어났음을 안타까워는 목회자들과 함께 ‘복음주의 형제회’를 조직하여 매년 복음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천주교의 심각한 배도를 설명하는 데이비드 헌트의 책「짐승위에 탄 여자」을 번역하여 국내에 보급하였고, 그 외에도 「진정한 복음」,「참 복음과 거짓복음」, 「로버트 채프만: 사랑의 사도」를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