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 박사의 김성로 부활론 총평 2

김성로 목사의 저서『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하라(1), 동행하라(2)』에 대한 총평

김성로의 두 권의 교재는 “복음시리즈”로 세우고,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1)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한다. 김성로의 교육 시리즈가 ‘복음’과 ‘부활’이 주요 가치인 것을 알 수 있다. 복음과 부활을 동의어로 놓았는지에 대해서는 명료하지는 않지만, 복음의 핵심을 부활로 파악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복음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복음에서 부활만을 떼어서 복음 전체라고 말할 수 없다. 부활을 강조하고 복음의 다른 항목들을 무시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복음’을 파괴하는 교묘한 행동이다. 복음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인데, 선으로 선을 이기는 방식은 없다.

“복음시리즈”는 ‘성령’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주제는 1권에서 “부활을 증거”이고, 2권에서는 “하나님과 동행”이라고 했다. 두 권의 교재는 체계적인 저술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저술이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미숙한 저술’도 위험 요소가 있다.

조덕영 박사는 ‘미숙한 신학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미숙한 신학이 문제는 없지만, 미숙한 신학이 대중적인 인기를 가질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왜 미숙한 신학이 인기를 갖게 되는가? 그것은 미숙한 신학을 가진 사람이 미숙하기 때문에 쉽게 습득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이 착각은 김성로의 열정적인 강연과 신비적인 현상을 강조하면서 발생할 수 있다. 김성로가 매우 조용한 음색으로 사상이나 교재를 강의했을 때에도 대중적인 인기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열정적인 강연이 성령의 역할은 아니다.

두 권의 저술에서는 복음 전체 도식은 없다. 아직 미완의 시리즈이기 때문에 부분으로 모두를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마음교회(http://www.hmuchurch.com)에는 “복음시리즈 9”까지 동영상이 소개되어 있다. 교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동영상의 복음시리즈는 교재와 같지는 않다.

(2)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보자,
(3) 십자가의 군사가 되자,
(4) 주님께서 주신 것,
(5) 동행,
(6)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7) 최고의 축복, 예수님의 주 되심,
(8) 십자가의 사랑으로 승리하라,
(9) 인본주의를 깨뜨리는 말씀의 능력”
이다.

1권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부활-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
2. 부활로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는 것이다,
3. 이 세상은 어둠이다,
4. 복음,
5.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
6.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7. 부활의 주께 굴복하라

2권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죄사함,
2. 옛사람의 죽음,
3. 새로운 피조물,
4. 죄와의 싸움,
5. 연합,
6. 승리의 비결(마태복음 10장),
7. 비전(세계정복)

김성로가 두 권의 교재에서 주로 사용하는 어휘는 ‘복음’, ‘죄’, ‘부활’, ‘성령’, ‘깨달음’이다. 큰 주제로 정리하면 ‘자기 주인에 대한 인식’, ‘죄를 깨달음’, ‘세계정복’이다. 이것을 위해서 부활, 성경, 성령, 회개가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일까? 김성로의 교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죄를 성령으로 깨닫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다(1권).

둘째, 죄사함, 옛사람의 죽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승리를 거두고 그것을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2권). 이 과정에 중요 역할(죄를 깨닫게 함)은 ‘성령’이 한다.

그런데 왜 ‘부활’을 강조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김성로는 자기 교도(敎徒)에게 “부활한 주 예수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고 독단적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교도에게 다시 독단적으로 “하나님과 연합해서 세계정복”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세계정복은 마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성경 행 1:8, 요 14:12을 근거로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이라는 말로 결론한다.2) ‘세계 정복’과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은 연관성이 없다. ‘마귀를 굴복시키는 것’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도 아니다. 김성로는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고 2권을 종료한다. 3권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설명을 할런지는 의문이다.

1권과 2권을 살펴보면서 내린 필자의 결론은 “체계적인 자기 도식을 갖고 있지 않는 미숙한 구도”이다. 그러나 각종 작품에서 좋은 것으로 생각된 것을 뽑아 배열한 술이부작(述而不作, 옛것을 전술할 뿐 창작을 하지 않음, 받아쓸 뿐이지 만들지 않음)으로 비판은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재료는 죄와 싸움, 자기 부인(포기)이고, 복음의 요소들을 곳곳에 제시해서 변명의 여지가 충분하다. ‘복음을 무질서하게 채워 넣는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개념이 김성로에게 없는 것이다.

복음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단순하게 좋은 소식으로만 인식하고), 복음의 요소들을 난발시키면서, 전체 복음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시리즈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뒤편에 나올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 2권에서 복음의 요소들을 난잡하게 배치했기 때문에, 뒤에서 정립될 확률은 없다.

반복된 지적인데, 김성로는 중요한 복음의 체계를 외면하고, 복음 밖의 요소를 부각시키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찾기 어렵다. 복음에는 죄와 싸우는 것이 없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없다. ‘죄와 싸움’과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복음을 믿는 사람이 하는 행동(부산물)이지 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은 생명인데 생명으로 말미암은 부산물을 제시하면, 부산물을 원인으로 한 행동(부산물)은 필연적으로 율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 신인협력주의로 귀결한다. 김성로 사상에는 보편구원주의까지 있다.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고찰한다.

우리는 김성로 사상을 비평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다. 사상을 비평하는 것은 인격 비난이 아닌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상가는 자기 사상을 공개하고 타인의 비평을 겸손하게 경청하고, 자기변호와 자기주장으로 만민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과제가 사상을 비평하는 일이기 때문에 좀 더 냉철한 독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비평의 강도를 높이려고 한다. 그것은 독자가 비평적인 내용을 잘 숙지케 하는 방편이다. 김성로 목사가 너그럽게 비평을 경청하길 바라고, 독자들은 좀 더 냉철하게 검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성로의 “복음시리즈”는 1권에 7 과로 구성했다. 앞에서 권 당 주제를 대별했는데, 주제를 보아서 저자의 의도를 쉽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주제가 일목요연한 것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성로 사상은 교재가 아닌 강연을 통한 것이 주된 것이고 생각했다. 교육 교재는 세미나와 강연에서 주입된 사상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교재가 매우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상을 교육하려면 체계적인 교재 구성을 해야 하는데 교재에는 그런 체계가 보이지 않는다. 김성로는 열정적인 강연으로 매료시킨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강연에 대한 비평은 정이철이 <바른믿음>을 통해서 매우 효과적으로 지적했다. 정이철이 제기한 핵심은 “십자가를 무시하고 폄훼하는 것”이었다.3)
 

--- 각주 ---

1) (참고) 김성로가 사용한 ‘부활 신드롬’이라고 하는데, ‘신드롬’은 ‘증후군(症候群)’으로 어떤 병이 발생했을 때 전체로 확산되는 현상이다. 김성로가 사용하는 언어 선택이 매우 위험하다. 이창모 목사는 ‘하나님의 승부수’라는 제목에서도, ‘승부수’가 위기에 처했을 때 타개하는 묘책인데 하나님께 사용했다고 제시했다.
2) 2권, 43.
3) (참고) 김성로, “예수님 부활을 부정하는 이단은 비성서적… 교주 신격화로 농간”, 국민일보. 2017.02.06. 을 보면, 복음의 내용(하나님의 성육신, 몸의 부활)을 잘 정리했는데, 결론에서 R.A. 토레이의 글을 근거로 참된 부활신앙으로 이단의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결론했다. 과정에서는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이단이 초대 교회에 있었다고 한다. 고린도전서 15장을 근거로 하는 것 같다.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 요한서신에서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을 하는데, 요한일서 4:3과 요한이서 7절에서 등장한다. 김성로는 요한이서 7절을 간략하게 제시하는데, 요한일서 1장 7절에서 ‘예수의 피’에 대한 주장에 명료하다. ‘예수의 피’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심’의 긴밀한 복음의 의미를 간과한 것이라 추측할 여지를 주었다. 2017년 2월은 2016년 12월에 정이철의 ‘부활교’ 비판이 있는 뒤인데도, 김성로에게 사상의 변화가 없고, 오히려 ‘부활신앙’을 부정하는 세력을 이단으로 규정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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