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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분명히 방언이 그치게 될 것임을 교훈하고 있다
김대운  |  21274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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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4  14: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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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분명히 방언이 그치게 될 것을 교훈하고 있다. 바울은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13:8)라고 교훈했다. 특별히 “폐하고”, “그치고”, “폐하리라”는 표현들은 헬라어 원어에서 미래 수동태복수형( καταργηθησονται), 미래중간태복수(παυσονται), 미래수동태단수형(καταργηθησεται )으로 쓰였다.

따라서 성경이 완성되면 예언과 지식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치게 되고, 특별히 방언 같은 경우에는 주어의 역할을 강조하는 중간태로 쓰임으로서 성경의 완성과 함께 스스로 없어지게 될 것을 시사했다. 그러면 언제 없어지는 것일까? 고전 13장 9,10절을 보면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부분적으로 알고 예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으로 완성되기 전이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고 종합적으로 알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대소요리문답에 나와 있듯이 구원과 신앙생활에 필요한 온전한 계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게 됨으로서 어린아이의 일, 부분적으로 알고 예언하던 것들을 버리게 된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예언과 방언이 필요 없게 된다. 마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전화번호 책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과 같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전화번호와 주소뿐 아니라 가는 길까지 알려주는 데 누가 두꺼운 전화번호책을 들여다 볼까?

그런데 고전13:12절이 약간 논란이 된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신오순절주의자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11절의 온전한 것은 주님의 재림이라고 주장한다. 주님이 오시면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때까지 방언과 예언이 계속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님이 오신다고 해도 우리의 지식이 과연 주님처럼 모든 것을 알게 됨, 전지해질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셔도 우리는 여전히 피조물의 위치에 있을 뿐이다.

또한 성경에서 언급된 “주님의 재림”, “다시 오심”, “나타나심”이라는 단어들은 전부 다 여성형 명사들로 여성형 관사가 붙는다. 그러나 11절의 '온전한 것'은 중성으로 표시돼 있어서 이것이 재림이라는 신오순절주의자들의 억지 주장을 쉽게 일축할 수 있다. 온전한 것, 즉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으로 완성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당시의 거울이었던 청동거울이 희미하게 얼굴을 비춰준 것처럼 완전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되면 이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란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완성되면 방언, 예언, 지식과 같은 계시성을 띤 사도적 은사, 사도시대에만 나타났던 은사들은 다 스스로 그치게 될 것이지만 사랑, 믿음, 소망은 영원할 것이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함으로서 일시적인 은사보다는 영원히 있을 사랑을 추구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이런 논조가운데 14장으로 이어지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을 추구하는 은사활용인지 설명한 것이다.

방언의 그침에 대한 위대한 신앙의 스승들의 증언들이 참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그의 고린도전서 주석에서 "이 대목 전체는 매우 애매모호하다. 그 이유는 성경에 언급된 사실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방언의 중단때문이다. 즉 방언은 과거에는 발생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였다. 

2. 성 어거스틴(Augustine, 354~430)
최초의 교회 시대에는 성령이 믿는 자들에게 임했고, 믿는 자들은 방언으로 말했는데, '성령이 그들에게 할 말을 주셨을 때' 그 말은 믿는 자들이 전에 배운 적이 없는 말이었다. 이 은사는 그 시대에 맞춰진 표적이었다. 하나님의 복음이 장차 모든 언어를 통해 온 땅에 퍼질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모든 언어로 성령의 전조가 나타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은 하나의 전조로 성취된 이후 사라졌다.

3. 존 칼빈(John Calvin)의 (제네비교리문답 247번)
문: 그렇다면 방언으로(알지 못하는 말)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이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며 일종의 사악한 위선입니다."

4. 존 오웬(John Owen)
본질적으로 우리의 모든 능력을 능가하는 은사, 그런 성령의 섭리는 오래전에 중단되었고 오늘날 아무도 그런 은사가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면 그것은 광신적인 기만으로 의심받아 마땅하다.

5. 메튜 헨리(Matthew Henry)
방언의 은사는 예언의 영의 한 새로운 산물이었고 유대인의 울타리가 무너져 모든 열방이 교회로 인도되게 하려는 특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런 은사들과 그 밖에 다른 예언의 은사들은 하나의 표적이므로 오래 전에 중단되어 폐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은사들이 부활하기를 기대할 아무런 동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성경을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 하늘의 음성보다 더 확실한 말씀이라고 일컬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성경을 찾아보고 성경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6.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그는 성령의 인격과 능력에 대한 빈번한 설교 때문에 일부 교회 지도자들에게 광신주의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이런 주장을 단호히 부정했다. "나는 결코 이런 특별한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거나 방언을 말하는 척 한 적이 없다." 사우스캘롤라이나주의 회중교회 목사였던  존 스미스(Joseph Smith)는 "휫필드는 영감의 시대에 특별히 나타났다가 그 시대에 함께 사라진 사도 직분의 비상한 권능과 표적을 사칭하는 일체의 행위를 부정한다."라고 말했다.

7.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사도 시대의 교회에 주어진 많은 은사는 오늘날의 교회에는 쓸모가 없다."

   

 

방언이 이렇게 성경의 완성과 함께 그쳤음이 성경적으로 교회사적으로 명백히 입증될 수 있거든 어떻게 기도용 방언이나 선교 오지에서의 복음의 증거를 위한 방언이 있을 수 있을까? 설사 있다고한들 그것을 어떻게 성령의 역사로 인정할 수 있을까? 개혁주의 신학이 아니라면 당연히 그렇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 중심의 신학인 개혁주의 신학의 테두리 안에서는 인간의 경험이 진리의 근거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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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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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운 2017-11-17 10:22:52

    신약원어사전의 저자인 영국의 W.E.Vine이 1951년에 고린도전서 주석에서 온전한 것은 정경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신약원어사전으로 워낙 유명세를 떨친 사람이었기때문에 이 성경해석이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1963년에 Herman Hoyt가 신학적 논리를 따르면 온전한 것은 계시적 은사의 종결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지만 명확하게 정경의 완성이라고 단언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비해서 T.R Applebeury가 "온전한 것"이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지시함으로 온전한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정경의 완성이 맞다고 제시하였으며, 1967년에 Robert Glenn Gromacki가 "The Modern Tongues Movement"를 내놓으면서 아주 자세히 어떻게 온전한 것이 정경의 완성인지를 논증합니다.1968년에는 E.M. Blaiklock, 1971년에는 Merrill F. Unger이 New Testament Teaching on Tongues에서, 1976년에는 Walter Chantry, 1978년에는 Judisch가 정경의 완성임을 논증했으며 , 1993년에는 존 맥아더 목사가 학장으로 있던 매스터스신학교의 교수인 Pettegrew가 맥아더 목사와는 달리 New Covenant Ministry of the Spirit에서 온전한 것의 해석에 대해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신약 성경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 재림, 죽음, 휴거, 천국에서의 영원한 상태로 해석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은 해석이다."
    우리나라 신학자 중에는 제가 파악한 바로는 김효성박사와 조영엽박사, 김명도박사, 최근에 방언에 대한 책을 출판한 권기현목사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신학자들은 방언에 대해서 약간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방언이 워낙 논쟁의 대상이 되다보니까 분명히 선을 긋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월터챈트리의 책은 부흥과 개혁사에서 번역이 되었고, 후크마와 그로마키의 책도 번역이 되었는데 현재는 절판상태이지만 신학교의 도서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을 해석하는 개혁주의진영 내의 경향입니다. 물론 DA카슨이나 웨인그루뎀같은 은사지속론자들은 이러한 저자들의 글에 대해서 자신들의 은사지속론적 관점에서 계속 논쟁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2013년 Strange Fire Conference에서 Tom Penninigton은 본문을 언급하면서 많은 논란이 있지만 이 본문은 결코 은사지속을 언급하는 본문이 아님을 살짝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사견으로는 온전한 것을 천국으로 보는 분들은 아마도 선교지에서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주께서 방언을 허락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신 것 같은데,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 안토니 후크마교수는 계시의 종결, 성경의 온전성과 충분성을 근거로 이런 주장을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이는 단지 후크마만의 견해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의 뒤를 이어온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견해이기도 합니다.
    현재 위의 내용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는 중인데...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언제 정리가 끝날지 몰라서 대략의 내용을 이렇게 올려봤습니다. 자세한 사항들은 제가 위에서 언급한 저자들의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하시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잘못 파악한 부분이나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나 저서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신고 | 삭제

  • 김대운 2017-11-17 10:23:35

    위의 글을 보충하기 위하여 일시적 은사신중론과 중지론의 신학자들의 입장을 간략히 정리해봤습니다.

    은사지속론을 주장하는 분들을 제외하고 개혁주의 진영에서 온전한 것을 천국, 완성된 주님의 나라나 그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대표적으로 찰스 하지, 리차드게핀, 존 맥아더, 에드먼드 클라우니, 안토니 후크마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8절을 해석할 때는 계시의 완성과 종결을 단언하면서 "온전한 것"을 해석할 때는 갑자기 목소리의 톤을 바꿔서 죽음, 재림이나 천국으로 해석함으로서 논리적인 일치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는 10절 말씀에 의하면 방언, 예언, 지식의 중단같은 부분적인 것들, 계시적 은사들이 온전한 것의 도래와 함께 중단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들은 신학적 역사적으로는 분명히 사도시대의 종결과 함께 위의 부분적인 계시성을 가진 은사들이 중단되었다고 말하면서 "온전한 것"은 정경의 완상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해석하는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것이 이 이론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것입니다. 참고로 맥아더목사는 그의 세대주의적 종말론 때문에 Charismatic Chaos(무질서한 은사주의)에서는 방언의 종결을 말하면서, 그의 고전13장 강해를 읽어보면 앞서 했던 말들을 갑자기 다 뒤집어 버립니다.

    위의 신학자들의 모순된 성경해석은 아마도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의 성경해석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교부들의 글이나 종교개혁자들도 분명히 사도적 은사의 중지를 말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고전13장 본문에 와서는 온전한 것을 그들의 신학적 논리대로 정경의 완성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이 천국, 주님의 재림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칼빈이나 리차드벡스터는 각 개인의 죽음으로 해석하였는데, 아마도 그들의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은사문제가 첨예한 신학적 논쟁을 일으키지 않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경 해석에 최초로 제동을 건 사람이 바로 조나단에드워즈였습니다(더 충분히 살펴보지 못해서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그의 고린도전서 설교에서 본문을 해석하면서 두가지 의미(Two fold meaning)로 해석합니다.

    조나단에드워즈는 첫번째로 온전한 것을 정경의 완성으로 방언과 예언과 지식의 계시적 은사 즉, 일시적 은사로 사도시대의 마감과 함께 사라지고 중지되었음을 단언함으로 그의 앞선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이 극복하지 못했던 모순점을 해결하였습니다.

    에드워즈는 온전한 것의 두번째 의미로 마지막 주님의 재림 때를 제시하며, 주님이 재림하시면 일반적인 은사도 함께 폐지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시적 은사는 이미 정경의 완성과 함께 폐지되었기에 일반적 은사는 마지막 주님의 재림 까지 지속되다가 폐지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깝게는 정경의 완성으로 일시적 은사, 사도적 계시적 은사의 중단과 멀리는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천국에서 일반적 은사의 폐지를 온전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이런 에드워즈의 해석이후에 1918년에 워필드가 Counterfeit Miracle에서 사도적 은사의 종결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계시성을 가진 은사가 사도시대의 마감과 함께 그쳤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탁월하게 증명해 냈습니다. 물론 그는 논란이 되는 고전13장 본문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워필드라면 본문을 정경으로 해석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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