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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은 기도의 은사가 아니라 복음 증거의 은사이다.
임진남  |  climj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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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8  05: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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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넌 전 WCC 제10차 부산총회가 열렸을 때, 벡스코 총회 현장 입구에서 반대 시위 참가자들이 길거리에 자리를 펴고 방언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기독교를 가장 심히 왜곡하는 거짓 방언은사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WCC를 반대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대교회에서 가장 크게 왜곡되어 가르쳐 지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방언에 대한 은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목사들과 성도들이 기도의 은사로 알고 방언 받기를 위해 얼마나 사모하는지 그 열풍은 지금도 대단하다. 그렇다면 과연 방언이 기도의 은사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여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방언이 기도의 은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목사들과 성도들은 방언이 기도의 은사인 것처럼 그렇게 알고 있는가?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순복음교회의 어리석은 가르침이 마치 성경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방언에 대한 말씀이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누구하나 방언이 기도의 은사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 한국교회에서 방언 기도하는 교회들이 부흥하고 성도들도 관심을 가지게 되므로 너나 할 것 없이, 교단의 신학과 교리도 무시하고 그저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된다면 지나가는 개가 짖는 소리도 방언으로 여기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성경과 믿음의 조상들은 우리들에게 방언이 기도의 은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

먼저, 성경에서 방언이 왜 기도의 은사가 아닌지 그 분명한 가르침은 사도행전 2장에서 각 나라 방언 즉, 외국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기록하여 주는 것을 통해 방언이 오늘날 교회에서 알지도 못하는 소리로 기도하는 은사가 아님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방언은 기도의 은사가 아니라 복음 증거의 은사이다. 복음이 유대와 예루살렘에서만 증거되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른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더 큰 사역을 하시게 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과 연관된 것이다. 이제 복음이 성령께서 오셔서 이방 세계에도 증거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 나라 언어로 복음이 증거되어야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를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각 나라 언어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표적의 사건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하시면서 명령하여 주신 그 일을 성령께서 오순절에 오셔서 각 사람위에 불의 혀처럼 임하여 성령이 복음을 증거하시는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현대 교회 안에서 방언이 마치 기도의 은사로 바뀌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방언(외국어)이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본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방언으로 기도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마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서 방언이 기도와 연관 되어 가르쳐 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바르게 보면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금하고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자신도 방언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바울의 말은 방언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교회에서 누가 알 수 있는가? 라고 하는 것이다. 방언은 각 나라 언어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은사로 방언을 받은 사람이 아랍어로 기도한다면 그것도 공적인 예배 가운데 기도를 하면 누가 그 기도를 알아들을 수 있겠느냐? 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자는 통역의 은사를 같이 받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또한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외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즉 믿지 않는 자를 위해 주신 은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자신들의 말로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복음을 듣게 되니 그것이야 말로 구원의 소식을 듣는 것이므로 얼마나 큰 유익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되는가?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14장 전체에서 바울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주 분명한 성경적 지식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명확한 외국어(방언)로 교회의 공적인 예배에서 기도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방언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방언은 외국어도 아닌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또는 몇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말을 가지고 수 없이 계속 반복하는 것을 방언의 은사라고 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오늘날 방언으로 기도하는 자들에게 묻겠다. 당신이 하는 그 방언으로 복음을 과연 전할 수 있는지? 길거리에서 당신이 하는 방언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라. 그래서 불신자가 당신의 방언을 듣고 복음을 이해하고 아는지? 결국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방언은 방언이 아니다. 아무리 당신이 방언으로 많은 시간을 기도한다고 해도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방언이 아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들이 조금이라도 성경을 바르게 읽고 그 의미를 안다면 교인들에게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고 조장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귀 있는 자들은 들을 것이라고 하셨다. 성경을 가장 많이 연구하고 가르쳐야 하는 목사들이 단 한 번도 성경에서 왜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배우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 믿음의 조상 어거스틴과 칼빈, 그리고 조나단 에즈워드는 방언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여 주고 있었다. “방언이 기도의 은사가 아니라 복음 증거의 은사” 라고 말이다. “다수가 한다면” 그것이 정의가 되어버린 시대 속에서 우리는 오직 성경의 바른 가르침만이 진리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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