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사 부흥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아주사 난장판’이라고 불러야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말 그때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난장판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종교개혁 이후의 부흥 운동에 대한 탁월한 연구를 하신 미국인 학자를 만났다. 아주사 부흥에 대한 그 분의 견해를 물었다. 

“여러 가지 논란이 많지만, 많은 사람들이 개종(conversion)했으므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볼 수 있다”

그 분은 아주사 부흥을 성령이 일으키신 부흥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아주사 부흥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일반적인 목회자들과 학자들 99%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견해이다. 나는 혹시 그 분에게 다른 날카로운 견해가 있지는 않는지 궁금하여 크게 기대하지 않고 물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개종했다고 하지만, 그들이 성경의 하나님에게로 개종했는지, 성경의 하나님을 모방하는 사탄에게로 개종했는지 너무도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성경의 하나님에게로 개종했다면, 그들의 신앙이 하나님이 기독교를 설명하신 성경의 내용에 부합하여야 하는데, 그들의 신앙은 반대로 성경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하여 영어로 재빠르게 이렇게 말할 수가 없었고, 다른 미국 사람들이 질문을 하려고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못했다. 아주사 부흥의 핵심은 거짓 방언이었다. 아주사 부흥을 실제로 주도한 사람은 흑인 윌리엄 세이모여였으나, 그에게 신앙적인 모티프를 제공한 사람은 원래 감리교 목사였고, 1800년도 말 미국의 위험스러운 종말부흥파 이단들에게서 영향받은 찰스 펄햄이라는 백인 목사였다.

당시 미국의 감리교 목사들에게는 ‘성결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이미 성령을 모시고 사는 신자들에게 완전함과 거룩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선물하시는 성령의 또 다른 임재, 즉 성령재세례(반복적인 성령의 임재)에 대한 염원이 상당히 무르익고 있었다. 또 한편에서는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특별한 부흥이 종말시대에 일어나면서 영적 대추수가 벌어지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단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찰스 펄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섭렵한 이단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일찍 토페카라는 도시에서 성경학교를 열었고, 학생들과 주로 사도행전의 부흥의 재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학생들에게 사도행전의 성령세례가 임할 때 함께 나타난 증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하라고 과제를 내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방언이 성령세례의 증거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찰스 펄햄은 사도행전의 성령세례를 다시 재현시키기 위해 사모하였고, 결국 1901년 1월 신년기도회에서 학생들에게 안수하여 현대의 방언운동의 초기 현상이 나타나게 만들었다. 찰스 펄햄은 자신의 노력으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현상이 다시 재현되었다고 확신하고 더욱 힘있게 가르쳤다. 그러나 자신에게 배운 학생들과 지역 교회들 사이에서 자신의 사이비성에 대한 큰 논란이 일어나 더 이상 학교사역을 지속할 수가 없게되었다. 그는 몇 년 후 휴스턴에 정착하여 다시 성경학교를 시작하였고, 이때 찰스 펄햄에게 영향을 준 내용들과 비슷한 것을 가르치는 이단들에게서 이미 많은 영향을 받은 흑인 윌리엄 세이모어가 그 학교의 학생이 되기 위해 찾아왔다.

세이모어는 흑인이었고 한쪽 눈이 실명된 상태였으므로 백인 학생들의 멸시가 심하여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펄햄의 강의를 들었다. 다시 사도행전의 방언과 성령세례가 재현되면서 종말 대추수 운동이 일어나는 마지막 시대의 부흥에 대한 펄햄의 강의를 가장 잘 받아들이는 학생은 세이모어였다. 세이모어는 펄햄이 가르친 사상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었고, 1906년 초에 캘리포니아의 한 나사렛 교회의 청빙을 받아 휴스턴을 떠났다. 그때까지 세이모어 자신에게 사도행전의 방언, 성령세례는 아직 나나타지 않았다.

세이모어를 청빙한 교회는 단 한 번의 설교를 듣고서 그를 추방해 버렸다. 세이모어가 사도행전의 성령세례가 재현되고 그 징조로 방언이 나타난다는 해괴한 설교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올바른 교회들에게 사도행전의 재현을 이야기하면서 성경의 방언이 재현된다는 주장은 이와 같이 해괴한 이단적 이론으로 간주되었다. 청빙해준 교회에서 추방되어 갈 곳이 없어진 세이모어는 다행이 자신을 따라주는 한 여성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주사에 있는 그 여성도의 집에서 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그가 미치도록 사모했던 방언과 성령세례가 드디어 자신에게도 나타났다. 아주사 난장판이라고 불러야 할 ‘아주사 부흥’이라는 것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주사 부흥에서는 이상하게 끄적거리는 영서, 이상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방언찬양, 성령이 넘어뜨린다는 쓰러짐 등의 현상이 대량으로 속출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방언이었다.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이 성령의 임재하심(성령세례)의 현상, 즉 기름부으심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의 모임은 말이 예배였지, 사실상 아무 순서도 없었고 그저 이상한 영들이 시키는 대로 돌아가는 난장판에 불과했다. 그래서 당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에는 아주사에 새로운 광신자 집단이 탄생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나중에는 이웃 마을에 사는 무속인들까지 합류하여 함께 함께 난장판을 더 크게 만들었다. 세이모어의 초청으로 급히 아주사에 와서 그 현장을 목격한 찰스 펄햄은 그들 앞에서 설교할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귀신의 매춘 행위를 즉각 중지하라”

이 후 세이모어는 더 이상 자신의 스승 찰스 펄햄에게 설교하도록 강단을 내어주시 않았다. 스승 펄햄과 제가 세이모어는 그렇게 서로 비방하면서 결별하였고 죽을 때까지 다시 보지 않았다. 세이모어를 통해 벌어지는 일들이 그에게 방언에 대해 사모하라고 가르친 스승 펄햄의 눈에도 전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세이모어는 자신을 통해 나타나는 방언에 대해 당시 이렇게 가르쳤다.

“하나님이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우리에게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선교를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방언을 해석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즉 예언이 됩니다”

세이모어는 분명히 자신을 통해 나타나는 방언이 사도행전 2장에서 선보인 외국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것을 통역하면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예언이 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오늘 세이모어가 일으킨 방언운동을 추종하는 현대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방언이 외국어라고 말하지 않고 기도하는 영의 언어, 하늘의 언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그들의 방언은 단지 외국어로 보였을 뿐이고, 사실상 아무 뜻없는 소리현상이라는 것이 나중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세이모어는 매우 불행하게 죽었다. 이상하게도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깊은 상처를 주면서 그를 버렸다. 그를 따르던 백인들은 노골적으로 흑인을 무시하는 인총차별 감정을 드러내면서 그를 떠나갔다. 그래서 한때 세이모어는 성령세례의 가장 명확한 증거는 방언이 아니고 인종차별주의를 버리는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그를 따르던 여성도들은 그가 한 여성도 결혼하자 이 팽계 저 핑계를 대면서 그를 비방하고 떠나갔다.

세이모어는 홀로 쓸쓸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배우고 떠나간 백인들에 의해 그가 시작한 방언과 성령세례 운동이 더욱 크게 불붙었다. 그가 주도했던 아주사 부흥의 신앙을 따르는 오순절 교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동시에 방언에 대한 가르침도 외국어라는 이론에서 기도하는 영의 언어라는 노선으로 달라졌다. 왜냐하면 서서히 외국 여행이 시작되었고, 외국에 가서 방언을 실험해 보는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방언이 아무 효용가치가 없는 단순한 소리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언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하늘의 비밀의 언어라고 둔갑시켰다. 

아주사 부흥에 기원을 두고 비교적 온전하게 발전된 오순절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오순절 운동은 60년대에 은사운동으로, 80년대에는 빈야드 운동으로, 그리고 빈야드 운동의 완성형으로 나타난 2000년대의 신사도 운동으로 계속 이어졌다.

아주사 부흥으로부터 급격하고 과격하게 발전되어간 노선도 있었다. 찰스 펄햄은 휴스턴에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옷을 입히고 플랭카드를 들고 시가지를 행진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 그들이 외쳤던 구호는 “사도시대의 신앙의 회복”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방언 운동이 곧 사도들의 시대의 회복의 징조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펄햄은 자신을 ‘마지막 시대를 여는 세례요한’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신앙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광신하는 이단의 길로 접어들어 버렸다.

찰스 펄햄의 노선에서 ‘늦은 비 운동’이 탄생했다. 성경의 사도행전 시대를 ‘이른 비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자신들을 통해 다시 시작되는 종말 부흥의 시대를 ‘늦은 비의 시대’라고 정의하였다. 그들에게는 방언, 예언, 안수를 통한 성령의 전달, 사도와 선지자 직의 회복 등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었다. 이 노선에서 훗날 아이합을 세운 마이크 비클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 폴 케인과 밥 존스와 같은 초대형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났다.

아주사 부흥에 뿌리를 두고 발전된 온건한 오순절 운동 배경에서 나타난 빈야드 운동은 주로 기름부음(anointing)를 강조하면서 성령의 전달과 이적 행함을 특징으로 하였고, 존 윔버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같은 아주사 부흥에 뿌리를 두고 과격하게 발전된 늦은 비 운동 쪽에서는 예언과 계시, 사도와 선지자 직의 회복 사상이 특징을 이루었고, 나중 아이합의 마이크 비클이 그 그룹의 핵심에 서게 되었다. 폴 케인의 주선으로 마이크 비클과 존 윔버가 연합하게 되어 이 두 세력이 하나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사도, 선지자 직분의 회복을 말하면서 예언과 계시, 그리스도 기름부음을 내세우면서 능력을 행하고 성령을 전달하는 신사도 운동이다.

신사도운동을 위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는 아주사 부흥이다. 아주사 부흥에서도 가장 핵심적 현상이었던 방언과 성령세례가 신사도 운동의 뿌리이다. 피터 와그너도 이 사실을 여러 번 인정하고 설명했다. 아주사 부흥이 없었다면 신사도 운동은 일어나지 못했고, 거짓 방언이 없었다면 신사도 운동을 일어날 수가 없었다. 거짓 방언이 나타나면서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시대의 신앙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그것에서 서서히 불어난 것이 오순절 운동이고, 좀 더 과격한 늦은 비 운동이고, 은사운동이고, 빈야드 운동이고, 신사도 운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대의 방언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하는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은 절대로 자신이 신사도 운동을 반대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거짓 방언과 함께 가는 목회를 청산하던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이미 신사도 운동에 포함되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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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