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의 한 교회가 성령충만 부흥회를 열고 있는 모습(본 기사와 직접 관련없는 사진)

보통 우리는 “성령 충만하라” 하신 그 말씀 때문에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늘 충만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 충만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렇지 않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은 유일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성령 충만 하라고 하신 것은 성도가 혼자 충만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성도 각 사람에게 은혜의 분량을 따라서 성령의 은혜를 주신다. 우리는 형제로서 교제를 갖는다. 다시 말해, 교회를 이루고 그 이룬 교회 안에서 서로 교제한다. 그것은 아무도 스스로 혼자 성령 충만하거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 이유는 성도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 나누고, 협력하게 하는 존재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령 충만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성도 지체 간에 협력하라고 하는 것이다. 성도는 혼자서 성령 충만할 수 없다. 성도는 늘 실패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실패하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또한 주신다. 성령을 부어 주셔서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우리로 하여금 섬기게 하신다.

우리는 먼저 여기에서 교회의 교사들 즉 목사들만 성령 충만한 부류들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목사들도 매일 매일 죄 때문에 실패한다. 그래서 장로와 집사로 하여금 주님께서는 교회를 이끌고 섬기게 하셨다.

또한 교회 내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결코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반복되는 몇 개의 음절로만 계속 기도한다. 이런 사람을 성령 충만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나와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전히, 아니 더 교만하고 은밀한 죄를 많이 짓는다.

또한 성경을 많이 읽는 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령이 충만하여지지 않는다. 이것도 많이 읽는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읽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신앙의 어떤 모양을 많이 하는 것으로 성령 충만하다고 하는 표준을 세운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 충만이 이런 것으로 나타나지 않음을 가르친다. 그리고 성도 혼자서는 성령 충만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성령 충만은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서로 부족한 것을 인식하고 타인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를 같이 사용할 때 이루어진다.

성부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는 성령이 충만하게 늘 거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성령 충만을 구할 때 그리스도는 성도 개인을 위해 주시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주신다. 만약 성도가 성령 충만을 구한 것이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성령 충만이 아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마지막 선지였던 세례 요한과 신약의 사도들이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사역을 하였다. 그들의 사역을 보면 우리는 왜 성령께서 그들에게 충만히 거하셨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 즉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회를 위해 주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는 교회와 연관되어 주신 것이다. 또한 복음이 이방에 증거되게 하시기 위해 더더욱 주셨다. 이러한 바른 성령은사와 충만의 개념을 알고 성도는 주님께 성령 충만을 날마다 구해야 한다. 이것이 정통기독교의 성령충만에 대한 신앙이다.

성도가 성령충만하여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주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충만하라고 하신 것처럼 사도들 또한 성도들에게 성령충만하라고 가르쳤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성령충만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 개인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와 계속 연관되어 있다. 성도는 혼자 성령충만할 수 없다. 교회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성령충만을 구해야 한다.

오늘날 성령충만을 구하는 집회를 보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충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충만하여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 자녀의 문제, 병 고침에 대한 것들만 가득하다. 우리가 성경에서 성령충만으로 사도들에게 역사하신 주님의 사역을 보면 이런 것들과는 전혀 다르다. 결국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가르치고 구하는 성령충만은 다른 성령이며 다른 복음이다.

예수님께서 천상으로 승천하셔서 성령을 제자들에게 부어주신 것은 예수님의 자기계시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는 사도행전이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말씀으로 보면 안 된다. 그것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천상적 사역이기 때문이다. 사복음서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라고 하면 사도행전은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에서 여전히 동일하게 복음 사역을 하는 천상 사역인 것이다. 이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충만케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상관없는 성령충만이란 있을 수 없다. 성령충만은 주의 이름과 복음을 위한 보혜사 성령의 사역이다. 이러한 이해만이 성령충만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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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