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논단
방언, 예언 은사주의자들도 좋아하는 로이드 존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5.20  07:23:4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불건전한 은자주의자들이 로이드 존스를 만만하게 여기고 은근히 뭉개고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운동가들이 매우 중시하는 현대의 거짓 방언과 예언 은사에 대해서 뚜렷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와 현대의 방언

성령의 세례를 받아 이미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추후 능력과 부흥을 주는 성령의 세례가 또 나타난다는 이론을 가장 정교하고 열성적으로 펼쳤던 사람이 로이드 존스였다. 로이드 존스의 성령세례 이론과 일반 오순절-신사도 운동의 성령세례(기름부음) 이론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로이드 존스는 오순절 운동가들처럼 거듭난 신자에게 추후 능력과 부흥을 주는 성령의 세례가 또 나타날 때, 방언이라는 소리현상이 반드시 동반된다고 강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로이드 존스가 현대의 변태적 방언 현상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취한 것도 아니었다. 로이드 존스는 현대의 방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모호한 방식으로 언급하였다.

“그럴 때 여기에서처럼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현상이 수반될 수도 있고 방언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매번 그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능력과 영광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온 나머지 쓰러져 버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부흥을 설명할 때 로이드 존스가 말한 이 내용은 마치 지금 이 시대에도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 현상과 그때 나타난 16개 국가의 외국어 방언이 나타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전혀 배우지 않은 남의 나라의 말을 완전하게 구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논증하는 이적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짧은 한 두 마디의 배우지 않는 외국어를 구사하면서 남의 이름, 국적, 직업을 이야기하여 맞추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온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방언은사가 아니고 간교한 귀신의 점이다. 하나님은 성경의 방언 은사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이름, 국적, 직업을 알아맞추시는 등의 사닥스러운 일을 하지 않으신다. 사탄은 그 정도의 속임수를 능히 발휘하여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천하의 영물이다. 그러나 성경의 방언은 배우지 않은 남의 나라의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을 심도있게 설명하는 이적이었다. 그래서 방언이 있으면 불신자들의 회개가 많았고, 교회가 더욱 든든하게 세워졌다.

로이드 존스에게는 성경의 방언에 대한 이런 올바른 가르침이 없었다. 성경의 방언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마치 지금도 성령의 부흥이 일어날 때 그 방언이 나타날 수 있는 것처럼 쉽게 말했다. 물론 이론상으로 로이드 존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성경의 방언을 보기가 현실에서 매우 어렵운 것은 사실이나, 이제 성경의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100%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성경의 방언이 나타날 가능성을 늘 열어두고 있다는 뜻이지 실제로 있다는 말은 아니다.

로이드 존스의 성령(부흥)과 은사에 대한 신학적인 문제는 성경의 방언과 현대의 귀신의 변태 방언의 차이를 명확하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주도하여 만들어 낸 방언은 심리적인 현상이지 성령의 은사라고 볼 수 없다는 모호한 말을 했다. 그의 말을 들을 때 과연 어느 심각하게 병든 은자주의자들이 자신의 거짓 방언이 진정한 방언이 아니고 심리적인 현상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로이드 존스는 현대의 옹알거리는 거짓 방언과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의 참 방언 사이에 일치하는 명확한 특성이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의 방언이 성경의 방언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했으니 오순절-신사도 이단적 성령운동가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 개혁신학의 거장이면서 동시에 오순절 신학으로 무장된 성령운동가들이 친근하고 만만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로이드 존스와 현대의 예언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예언 현상에 관하여서도 로이드 존스는 분명하게 자긴의 근본적인 개혁신학 관점을 취하지 않았다. 평소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 운동에 반발하여 파생된 퀘이커 교파의 직접적 계시수납 사상에 대해 아주 단호하고 올바른 입장을 취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퀘이커 교도들이 자신들 안에 내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감을 얻고, 직접적인 계시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랄하게 반박했다.

“이것이 청교도들과 퀘이커 교도들 간에 있었던 논쟁의 주제였다. 퀘이커 교도들은 기름부음을 내적 조명으로 받아들였으므로 자신들은 기름부음을 통한 내적 조명을 받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직접 계시를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필요하지 않다고 했는데, 직접 계시란 어떤 의미에서 사도들이 영감받았던 것과 거의 동일한 차원의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견해가 퀘이커 교도들 전체의 의견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 중 한 부류가 주장했던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성경완성 이후에도 신적 영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진리를 계속 받고 있다고 믿는 로마 천주교에 대해서도 다음가 같이 분명하게 쇄기를 박았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다 말할 수 없겠지만 여러분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와 같이 명확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전의 사도들이나 선지자들과 같이 오늘날에도 신적 영감을 계속 받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신약 성경의 기록이 끝난 이후에도 새로운 진리를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퀘이커 교도들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한다. 즉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계속 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처럼 특별 계시의 타당성을 주장함으로써 성경 말씀에서 명확하게 가르치는 진리를 부인하고 있다.”

평소 로이드 존스는 성경완성 이후 새로운 계시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으로 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면서 천주교와 퀘이커 교파의 계시연속 사상을 단호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특별한 부흥의 시기에는 성령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말씀이 있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결국 로이드 존스는 현대의 불건전한 예언운동가들에게서도 매우 좋은 평판을 얻게되었다. 다음은 로이드 존스가 성령의 부흥에 대해서 기술한 책 <부흥>에서 특별한 부흥의 시기에 예언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그 뿐만 아니라 때로는 예언의 은사가 주어지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장래를 예고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대면해 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학식과 지식을 가지고 성령을 소멸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사례들은 여러분 앞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예언의 현상들, 장래를 예언하는 이러한 능력들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여러 가지 형태를 띨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은사를 가진 한 목사를 알고 있는데 1904년과 1905년 부흥의 때에 그런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은사가 후에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부흥이 지속되는 동안에 그 사람은 그의 교회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예언했습니다. 한번만 아니라 아침 마다 예언을 했습니다. 그는 새벽 두시 반에 잠에서 깨어 그날 일어날 일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정신적인 현상들의 또 다른 부분입니다.”

이처럼 로이드 존스가 특별한 부흥의 때에 성령의 직접적인 예언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주장한 것은 아주 위험스럽다. 내재하는 성령으로부터 영감이 임하여 직접적 계시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퀘이커 교파가 위험스럽다고 스스로 비판한 내용을 자신이 범하고 말았다. 성령이 더 부어지는 특별한 부흥의 때에는 성령의 직접계시를 받는 예언의 은사가 나타난다는 로이드 존스의 사상은 현대의 예언 운동가들의 주장과 거의 다르지 않다. 모든 거짓 예언자들은 자신을 통하여 성령의 부흥이 시작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성령의 적집적 계시가 나타난다는 것은 곧 이미 기록된 성경의 절대성에 대한 하나님 스스로의 모순이고 도전이다. 특별한 부흥의 때이건, 다른 어느 때이건 간에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부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그토록 경계하였던 은사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오류를 범했다. 예언 외에도 로이드 존스가 잘못 말한 내용들이 더 있는데, 나중에 다른 기회를 통해 이런 점들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과연 로이드 존스가 부흥의 때에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전달받았고, 그 내용이 다 맞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로이드 존스가 말한 그 사람은 웨일즈 부흥의 중심인물 이반 로버츠(Evan Roberts,1878~1951)일 것으로 짐작된다. 

   

1904년에 일어난 웨일즈 부흥(Welsh Revival)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웨일즈 부흥은 1907년의 ‘평양부흥’, 1906년의 ‘아주사 부흥’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나타난 세계의 3대 부흥의 하나라고 칭송되었다. 그러나 무조건 미화되었던 아주사 부흥의 참 모습이 알려지면서 아주사 부흥을 더 이상 하나님이 일으키신 부흥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웨일즈 부흥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1904년에 웨일즈 땅에서 일어난 일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의심스러운 요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으므로, 그때 그곳에서 역사한 영이 과연 성령인지? 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고 있다.

웨일즈 부흥을 일으킨 청년 광부 이반 로버츠는 당시 아직 신학을 공부하지도 않은 목회자가 지망생이었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성령이 쓰시지 못한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문제는 그에게서 매우 위험스럽고 불건전한 영적인 현상들이 많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에 신사도 운동을 소개하고 전파하기 위해 이론적으로 크게 공헌한 예영수 박사가 발행하였던「카리스월드」라는 잡지에 웨일즈 부흥의 이반 로버츠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1904년 봄 어느 금요일 밤, 로버츠는 침대 옆에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 1시경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시간과 공간이 없는 위대한 ‘거대함’으로 들리어져 갔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경이로움에 쌓여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4시간 동안 마치 친구와 대면하여 말을 나누듯이 하나님과 말을 나누었습니다. 5시경 나는 다시 지구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는 5시부터 9시까지 잠을 잤는데 또다시 9시부터 12시나 오후 1시까지 같은 체험을 했다. 그는 이 체험이 하나님과의 만남이란 것 외에는 어떤 것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후 3-4개월 동안 매일 아침 이런 대화가 계속됐다. 그 결과 로버츠의 성격이 변화되었으며,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는 하나님께서 웨일스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역사 하실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로버츠는 새벽 1시마다 깨어나서 4시간 동안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었다. 그 4시간 동안 그는 분명히 많은 환상을 체험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 환상 중의 하나는 달이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달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펼친 팔과 손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그 종이에는 ‘100,000’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환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오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부흥운동이 웨일스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몇몇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 웨일스에 부흥운동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말하고 사역 팀을 구성했다.”

“10월이 지나자 로버츠는 환상 가운데 자신이 고향 로우골에 있는 교회에서 특별히 젊은 사람들과 옛 동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환상을 떨쳐 버리려고 애를 써도 계속 그 환상이 나타났다. 마침내 10월 30(일) 저녁예배 때 주님은 그에게 고향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알았어요! 주님 당신의 뜻이라면 가겠어요.’라고 했더니 환상이 즉시 사라졌다. 그 순간 그는 찬란한 빛을 경험했다. ‘온 교회가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서 단 위에 계시는 목사님이 희미하게 보였어요. 목사님과 나 사이에 태양 빛과 같은 하늘나라의 영광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이후 갑자기 부흥운동이 불붙기 시작하여 지칠 줄 모르게 지속됐다.”

신사도운동 신학자 예영수 박사가 인용한 위 내용이 사실이라면, 웨일즈 부흥의 정체성을 다시 제고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반 로버츠가 구약의 선지자, 신약의 사도들처럼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환상과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설립하는 특별계시가 임할 때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감동이 이반 로버츠에게 일어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고 그가 체험한 활홀한 일들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악한 미혹의 영이 이반 로버츠에게 장난하였고, 그는 마귀의 도구가 되어 여러 영혼들을 속이고 오도하는 거짓된 부흥을 일으켰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가들에게도 이반 로버츠에게서 일어난 일들이 상당한 호재가 되는 것이다. 부흥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품었던 로이드 존스는 그만 웨일즈 부흥와 그 중심인물 이반 로버츠에게서 나타난 이와 같은 위험성을 간과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부흥’이라는 붙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속으로 함몰되었다. 평소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거나 성령의 계시적인 영감이 나타나지 못한다고 바르게 못질을 잘하였으나, 부흥이라는 타이틀이 걸리기만 하면 성령이 주시는 예언이 나타나기도 한다며 위험한 곳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그 때문에 현대의 불건전한 예언파 은사주의자들도 로이드 존스의 글들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예언파들은 “가장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 로이드 존스도 특별한 때에는 성령의 예언이 나타난다고 인정하였으니 어중간한 개혁주의자들은 더 이상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지 말라”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정이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바른믿음
후원방법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118 Ann Arbor-Saline rd, Ann Arbor, MI 48108(USA)
대표(발행,편집):정이철(734 678 7133, cantoncrc@gmail.com)  |  편집자문: 정태윤  |  신학자문: 서철원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이철
Copyright © 2017 바른믿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