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던 제사장 엘리의 집을 심판하셨다. 그 대신 기도의 사람 한나가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여 얻은 아들 사무엘을 이스라엘의 영적지도자로 준비하셨다.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사무엘이 젖을 떼자 곧 엘리 제사장의 집에 아들을 의탁하여 장차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도록 훈련받게 하였다. 

하나님의 집에서 배우고 자란 사무엘이 성인이 되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시작하자 이스라엘에 큰 부흥이 일어났다. 사무엘은 아직 이스라엘에 왕이 등장하기 전에 왕처럼 다스리는 일을 수행하였고,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제사장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선지자였다. 사무엘은 장차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완전한 제사장으로, 최종적 선지자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었다.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족속을 미스바로 불러모아 기도하게 함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지도하는 영적지도자로서 사역을 시작했다. 사무엘의 가르침대로 모든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였다. 지금 그릇된 중보기도 운동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가장 좋아하는 내용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들은 사무엘이 주도하여 이스라엘의 미스바 대각성 회개기도의 이야기를 하면서 영적 각성과 부흥을 위해 함께 모여서 중보기도회를 열자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에는 심각한 성경해석의 오류가 들어있다. 그때 하나님께서 더 중요하게 여기시고 들어신 기도는 미스바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블레셋을 물리치고 역사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과 회개의 기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신 다른 한 사람의 기도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였고, 그 시대의 임시적 인간중보자로 세워졌던 사무엘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중보기도였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보다 그리스도의 예표였던 인간중보자 사무엘의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기도에 성경의 초점이 모아져 있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고 있다. 미스바 집회를 기획하였던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삼상 7:5)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 족속을 미스바에 모이게 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기도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복과 은혜를 주시기 위해 인간중보자 사무엘이 이스라엘 족속을 위해 중보기도를 올리기 하셨던 것이다. 물론 미스바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과 회개의 기도가 무의미하였고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거국적 미스바 집회 이후 역사가 달라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던 인간중보자 사무엘의 중보기도를 하나님께 받으셨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더 옳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과 회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에 적합한 일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중요한 사실은 온 백성들의 기도보다 그 시대의 인간중보자 사무엘의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나님께서 더욱 중시했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면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진리를 간과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상황에 맞지도 않게 미스바 대각성을 운운하면서 부흥과 영적 각성을 위한 중보기도회를 열자는 말에 동조하거나 현혹되게 된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로 모이고 있다는 정보가 블레셋에게 들어갔다. 블레셋은 그 모임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것을 몰랐고, 단지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향하여 군사적 행동을 하려고 모인다고 판단하였던 것 같다. 블레셋은 먼저 군대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침략하였고, 그 소식을 들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워서 떨었다. 왜냐하면 이전에 블레셋과 두 번을 싸워 모두 패하였고, 처음에는 4천명 나중에는 3만이 블레셋에게 죽임 당하는 비극을 경험햇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청동기에서 철기로 문명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던 시대였고 블레셋이 철을 다루는 앞선 기술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더 강력하고 뛰어난 무기를 가진 더 강력한 군대가 침략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공포에 빠졌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찾아가서 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삼상 7:8)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기도보다 사무엘의 기도가 하나님께 더욱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온 민족이 미스바에 모인 것도 자기들의 합심기도 보다 자신들을 위해 사무엘이 하나님께 드리는 중보의 기도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는 몰랐을지라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블레렛 군대가 또 다시 침략해 온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사무엘로 하여금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께 쉬지 말고 중보기도를 올려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무엘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을까? 왜 사무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와 복을 베푸셨을까? 이 부분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중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죄에서 건지신다.

기독교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중간에 두고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관계가 형성되는 종교이다. 기독교에서는 아무도 그냥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한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 홀로 나아가는 자를 하나님을 반드시 죽이신다.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기독교는 오직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게 하는 종교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음을 명시하고 고백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구약 시대에의 백성들은 무슨 수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을까? 그때는 예수의 이름을 듣지도 못했고, 믿을 수도 없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할 수도 없었던 시대이다. 그때는 어떤 방식으로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까?

하나님은 구약의 백성들을 위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들을 만들어 주셨다. 장차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다 이루어질 구원의 진리를 부분적으로 드러내는 안식일, 할례, 음식구별법, 제사, 각종의 율법들 ... 등을 통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셨다. 이러한 것들 외에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백성들을 위해 더욱 더 선명하게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감당하는 인간 중보자들을 따로 세우셨다. 그들이 바로 구약의 모세, 사무엘 등의 선지자, 제사장 들이었다. 장래에 오실 예수님의 역할을 임시적으로 대신했던 구약의 인간중보자들이 많았으나, 그들 가운데 특징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던 경우는 모세와 사무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3)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출 34:9)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죽이시려고 할 때,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로 나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지 말라고 이와 같이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였다. 그리고 모세의 요청대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피의 언약을 맺으셨다. 대체 모세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그러한 내용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구약의 한 시대 속에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하는 사람으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구약의 실패한 언약을 회복하여 하나님 백성에게 영원한 구원을 선물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증거삼아 영원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새 언약을 수립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작정하심이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십자가의 피로 새 언약을 만드시어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구원하기까지 구약시대 속에서 예수님의 역할을 임시적으로 대행하도록 하나님께서 모세를 훈련시켜서 중보자로 세우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해서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었다. 친히 중보자로 세워주신 모세의 중보의 기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선지자의 기능, 왕의 기능, 제사장의 기능을 수행하였던 사무엘도 진정한 왕이시고 참 선지자이시고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대행하는 구약의 임시 인간중보자로 세워졌던 특별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그 시대의 자기 백성들을 위해 특별히 훈련하여 세운 임시 인간중보자가 있게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온 민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미스바에 모이게 하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임시 인간중보자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게 하셨다. 그래서 사무엘은 미스바 집회의 목적을 분명히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던 것이다.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삼상 7:5)

사무엘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다.

“여러분들이 모두 미스바로 모이면 좋겠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함께 하나님께 합심하여 중보기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스바 집회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세운 인간중보자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이었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에 적합하도록 온 이스라엘 민족이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고 회개하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까지 이해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사무엘의 기도가 결정적이고 더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때 블레셋이 침략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무엘에게 말하였기 때문이다.

“당신은 우리를 위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8절)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자고 하니 나쁘게 들리지 않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좋게 여기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믿음의 진리를 우리는 바르게 붙들어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 옛날 사무엘과 이스라엘 민족의 미스바 대각성 집회 같은 것을 다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 중에는 사무엘과 같은 중보기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유명한 목사도 사무엘과 같을 수 없다. 누가 매일 금식기도를 할지라도 사무엘을 따라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구약의 모세, 사무엘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예수님의 기능을 불완전하게 대신했던 임시적 인간중보자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사역은 완성되었다. 자기 피로 구원하신 자기 백성을 위해 그리스도는 지금 하나님 우편에서 끊임없이 중보기도하고 계신다. 예수님이 자기의 피로 구원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매일, 매 순간 지켜달라고, 버리시지 말라고,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시험에 들지 않도록, 실족하였을지라도 다시 일어서도록 ... 계속 중보기도하여 주신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거절하지 못하신다.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을 꼼짝 못하고 들으시게 하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의 값을 자기의 피로서 자불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보기도라는 명칭으로 기도회를 열면 안 된다. 그 옛날 사무엘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모였던 미스바를 모델로 삼는 중보기도회를 열면 더욱 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때는 중보자가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있었으나, 지금 우리의 중보다는 땅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시기 때문이다. 

만일 구약의 미스바 집회를 본 받아서 합심기도회를 열려면 우리의 참 중보자가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지금 중보기도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또한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일체 인간의 그릇된 중보기도 사상을 버리고, 단지 이스라엘 온 족속이 인간 중보자 사무엘의 중보기도에 하나님이 더욱 기꺼이 응답하시도록 자신들을 준비하기 위해 금식하고 회개한 것을 본 받아 겸손하게 기도할 될 것이다. 그러나 '미스바 대각성' ... 운운하면서 중보기도회를 인도하는 그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슨 특별한 권세나 은사가 있고,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무엇이나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중보기도 운동을 벌일고 있으므로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끊어졌고 마귀가 애용하는 사람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니 극히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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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