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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지자를 주의하라
김대운  |  21274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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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5  01: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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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사도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할 것을 반복적으로 경고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 많은 신자들이 주님과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거짓된 가르침에 쉽게 미혹되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의 분별 기준은 무엇일까? 또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된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자.

(1) 거짓 선지자의 분별 기준.

주께서는 마7장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갈 것을 경고하시면서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설명해 주셨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의 본성을 가진 자들로 그들의 거짓된 본성이 열매를 통해서 입증된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주의 이름을 부르며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좇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어도 주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가르침으로 주의 주권을 거부하며 그의 뜻대로 살지 않았으면 거짓 선지자로 분류돼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다.

그런데 이렇게 멸망에 처하게 될 자들이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왜 한 번도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말씀을 선포(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좇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이야말로 진실한 주님의 종일 것으로 착각, 구원에 대한 잘못된 확신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의 심판대 앞에 서보니 그것들은 그들의 구원의 확실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아니라 그들을 기만하는 소재에 불과했던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거짓 영의 역사에 미혹된 자들은 주님의 주권을 거스르고 불법을 행하면서도 멸망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딤후3:13절 말씀대로 이런 자들은 다른 사람을 속일 뿐 아니라 자신도 스스로 속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가운데 불법을 행하며 주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복음, 듣는 자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평안과 형통만을 외치면서도 자신은 진실한 주의 종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2) 거짓 선생에 미혹된 교인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지 못하고 진실한 사역자로 추앙하는 수많은 교인들의 행태이다. 그들은 왜 이렇게 분별력을 갖지 못한 것일까? 주님은 분명히 좋은 나무는 그 열매를 통해서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이 왜 그들의 불법에는 눈을 감아 버릴까?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경고에는 왜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전하는 왜곡된 복음에 사단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단의 거짓 표적을 통한 신비한 체험과 종교적 흥분, 카타르시스의 경험은 거짓 선생들을 진실한 주의 종으로 인식하게 한다. 따라서 그들이 전하는대로 순종하면 자신의 현실적 필요와 갈급함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바르게 선포된 주의 말씀을 통하여 죄와 위선을 깨닫고 육신의 안일함이 침투하지 않도록 두려움과 겸손함으로 자신을 점검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성령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와 위선, 거짓됨을 책망하시고 교정하심으로서 우리를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시지만 왜곡된 복음을 통하여서는 이런 역사를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곡된 복음이 책망하는 것이라고는 "더 많이 바치고 헌신하고 희생하면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인데 왜 그 은혜와 축복을 누리지 못하냐"는 율법주의로 변질된 거짓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이런 거짓 복음은 결국 타락한 이기적 본성을 부추기는 미혹의 손길에 불과하다.

이렇게 왜곡된 복음을 통하여 참된 성령의 역사, 말씀을 통한 책망과 교정을 경험하지 못한채 거짓 영에 의한 종교적 흥분과 더러운 이기심을 만족시켜주는 가르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진실로 거듭난 자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이 진실로 거듭난 자라는 거짓 확신에 빠져 있다. 그들에게도 거듭난 신자와 비슷한 신앙인의 모습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예배에 참석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등 일반 신자들이 행하는 종교적 외형이 자신들에게도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잘못된 확신을 갖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자신이 섬길 대상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무언가 얻어 낼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구주로서만 받아들일 뿐 섬기고 따라야 할 주님으로는 거부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주가 돼 죄 문제 뿐 아니라 모든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소원을 성취해 주길 바라고 있다. 자신들의 예배 참석, 구제, 성경 읽기와 묵상, 기도와 헌금, 헌신과 희생적 봉사라는 종교적 열심을 근거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소원을 성취해 주실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신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이 원하던 대로 역사하시지 않으면 결국 실망하고 원망함으로 자신들의 본심을 드러내고야 만다.

   

(3) 진실한 신자의 기준

진실로 거듭난 신자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진실로 거듭난 신자는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하지 못한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아들을 그 마음에 모시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을 그 마음에 소유한 자와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와 같다. 죽은 자가 어떻게 산 자를 흉내낼 수 있을까? 죽은 자에게 생명이 주어지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가짜 그리스도인의 종교적 열심은 철저히 이기심에 근거한다. 이기심에 근거하기 때문에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진실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진 구원에 대한 감사와 함께 그를 주인으로 섬기고자 하는 변화된 마음을 갖고 있다. 비록 여전히 죄악된 육신의 본성의 영향아래 있지만 그의 기쁨은 죽은 자로 있을 때처럼 육체의 소욕을 좇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퍼하고 혐오한다. 그의 기쁨은 이제 주님의 뜻을 행함에 있다. 주님을 주와 왕으로 섬기고 따르는 것, 그를 높이는 것에 유일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 진실로 거듭난 신자는 거짓 신자들처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체험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노력한다. 주님을 신뢰한다고 입으로 떠들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입증하기 위하여 몸부림 친다. 물론 진실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좌절하고 낙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곧 그리스도의 주권을 바라봄으로 잠시 흔들렸던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며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으로 교정돼 간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시42:7)
"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로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시88:7).

위에서 인용한 시편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자신에게 닥친 환란과 어려움까지도 "주의 파도와 물결", "주의 노", "주의 모든 파도"로 부름으로 이 모든 어려움들이 주님의 주권가운데 자신에게 온 것임을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단순히 순경(順境)만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고백한 것이 아니라 역경(逆境)까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고백함으로 주님의 계획가운데 자신의 삶에 허락된 괴로움이라면 주님의 선하신 성품에 근거하여 반드시 최선의 결과로 인도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드러내 주었다. 이렇게 진실로 거듭난 신자는 주님의 말씀에 복종할 뿐 아니라 그가 우리의 삶을 최선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늘 신뢰함으로 그의 주권을 인정함을 입증해 보인다.

(4) 진실한 사역자의 기준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양보하고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렇게 복음으로 주 앞에 나온 신자들을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자로 세우려는 목표를 갖고 힘을 다하여 수고(골1:29,30)하였다. 그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당시에 유행하던 영지주의와 헬라철학, 율법주의를 철저히 경계시켰다. 영지주의는 육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여 그리스도의 육체는 단지 환영에 불과(기독가현설)함으로 결국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대속사역까지 부인하는 마귀적 이단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단적 가르침에 나타나는 신비한 체험, 영적 체험으로 인하여 초대교회들이 쉽게 미혹되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에 유행했던 철학적 가르침을 수용하여 미련해보이는 십자가의 복음을 포장하려 했으며 율법주의를 통하여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인간의 전적 타락과 부패를 부인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부인하는 하는 가르침을 따름으로서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고가 되시는 그리스도로로부터 이탈하고 말았다.

바울은 이런 가르침들은 그리스도에 비하면 세상의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으로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골2:23)고 일갈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성도라면 마땅히 육체를 좇을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에 힘쓸 것을 독려하였다.

따라서 진실한 사역자는 바울이 경계한 영지주의(신오순절과 신사도주의와 심리학),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되는 복음이 미련하게 보인다고 세속 철학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나 우리의 열심과 헌신, 희생으로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미혹하는 (기복주의의 옷을 입은)율법주의를 배격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유행하는 가르침들은 오직 육신의 죄악된 본성과 이기심을 좇는 데에만 유익할 뿐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이탈시키는 것임을 심각하게 경고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왜곡된 가르침을 경계하며 성경이 교훈하는 바른 복음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며 성도의 모범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다. 물론 사역자도 죄악된 본성을 갖고 있기에 때로는 죄에 빠져 넘어지거나 위선된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잘못을 겸손히 시인하며 변화되기 위하여 노력하는가를 봐야 한다.

베드로는 진실한 사역자의 자세를 이렇게 제시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2,3).

(5) 결 론

우리가 따르는 사역자는 어떤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그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의 죄와 위선을 책망하기 보다는 육신의 안일함과 세속적 부와 영광을 전하는 사역자인가? 아니면 우리의 죄악 된 본성과 죄가 우리를 어떻게 속여서 자기기만에 빠지게 할 수 있는지를 엄중히 경고하면서 주님의 거룩한 말씀을 따라 변화되는 삶을 촉구하는 사역자인가?

또 우리는 어떤 성도인가? 주님의 심각한 경고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누가 어떤 말을 전하든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닌가? 만일 그러하다면 거짓 선지자를 따라 함께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바른 복음이며 믿음인지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그리스도는 죄로부터 구원해주신 분일 뿐 아니라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마땅히 섬기고 복종해야 할 주님이어야 할 것이다.

주님은 거짓 선지자를 주의할 것을 엄중히 경고하셨다. 주님의 분명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지 않고 그들을 따름으로 멸망에 이르게 된다면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매를 보고 그가 거짓 선생인지 진실한 사역자인지 분별해야 한다. 히13:7도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고 명령했다.

이 기준으로 사역자를 분별할 때 우리는 누가 믿고 본 받아야 할 진실한 사역자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진실한 사역자를 분별할 때 왜곡된 복음을 배움으로 그리스도까지 자신의 이기심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을 수 있다. 그가 전하는 바른 복음의 메시지를 통하여 성경적으로 올바른 신앙을 형성함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만으로 감사하여 그를 주와 왕으로 섬기며 그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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