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철 목사님, 안녕하세요. <바른 믿음>을 통해서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여러 문제제기에 대해 전적으로 목사님에게 동의합니다. 제가 따로 바른 믿음의 길을 가시는 분들을 찾을 필요가 없이 <바른믿음>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온라인상에는 꽤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됩니다.

최근 우리 00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지금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쓰러짐이나 방언 등을 성령의 사역이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방언은 공적인 예배에서는 통역이 없으니까 하는 걸 권하지 않지만, 집에서 혼자서 하는 것은 유익이 있다고 애매모호하게 끝을 내는 식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공부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불편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방언 등의 미혹의 수단이 되는 것을 바르게 분별하자는 취지가 아닌가요?

또한 개혁주의 ‘TULIP’를 지향한다고 얘기하고 알미니안주의는 옳지 않다고 하면서 동시에 감리교회도 말씀을 공유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구원이 있고 우리와 같이 갈수 있다고 결론을 짓습니다. 구원에 관하여 서로 상반된 것을 주장하는 내용들이 별 문제없이 받아들여진다면, 우린 왜 웨스트민스터를 공부해야 하나요? 이 성경공부 계속해야 되는지 고민됩니다.

또한 서철원 박사님의 성령론을 읽었는데, 제가 배운 대로 설명하셨고, 단 한 가지 저에게 새로웠던 것은 “지금 시대에 신유치유의 은사는 없지만 현재 여러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병 고침의 기적들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신유의 은사라기보다는 야고보서 5:14-16의 내용대로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간절한 기도를 따라 지금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병을 고치신다”고 하셨어요.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기적, 예언, 방언들은 복음을 확정하고 증거하기위해 있었던 일시적이며 지금은 오직 말씀으로만 일하신다고 배웠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그렇게 판이하게 핵심교리를 다르게 믿고 있는 감리교회, 오순절교회에 다니고 있는 가족들이 있다면 ‘전도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그곳에서 나오게 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곳에도 어떤 모양으로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니 구원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대로 두어야 하나요? 목사님들이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어 말씀하시는 분이 없고, 천주교와 여호와 증인은 경계하면서 감리교회와 순복음교회와는 서로 친교하는 분위기라 애매합니다. 바쁘시겠지만 목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질문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질문 1>
“<웨스트민트서 신앙고백서>를 공부하면서 현대의 방언, 예언, 쓰러짐 등의 현상들이 성령의 역사하심일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옳은 일인가요?”

<웨민신앙고백서>를 바르게 공부함으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신앙의 확신 가운데 하나는 특별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경의 완성으로 종결되었음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계시는 자연과 우주의 현상과 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와 권능을 알게되는 일반계시가 아닌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이 직접주시는 말씀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직접적 말씀의 계시는 성경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개혁신학을 추구한다고 말하거나, 웨민신앙고백서를 공부한다고 자랑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방언과 예언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계시가 내포되지 않았다면, 현대의 방언은 뜻 없는 개소리이고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는 사람들이 주는 예언은 하나님과 아무 연관이 없는 잡소리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방언하고 예언하는 사람들은 무안하여 분개합니다. 그러면 또 다음과 같이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방언과 예언 속에 하나님이 지금 현재 직접주시는 말씀계시가 있다는 것인가요?”

현대의 방언과 예언을 추구하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아주 묘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계시가 나타난다고 하면 이단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있으나 계시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아주 우스운 말을 합니다.

“현대의 방언과 예언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계시가 아니고 우리에게 필요한 책망과 위로와 권면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책망하시고 위로하시고 권면하시는 말씀을 주신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특별계시 현상이고, 성경의 완전성과 종결성을 허무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적어도 웨민신앙고백서를 공부하는 분들이라면, 특별계시가 성경으로 종결되었음을 당연히 가르치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방언과 예언 속에 위로, 권면, 책망 등의 내용의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다면 현대의 방언과 예언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수단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과 다른 이론은 모두 말장난입니다. 성경의 방언은 분명히 계시적 현상이었고, 특별계시를 보조하거나 설명하는 계시적인 은사였습니다. 예언은 더 말할 것이 없이 특별계시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예언은 사도들을 통해 주어진 특별계시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말씀(오늘 날의 설교)이었습니다. 웨민신앙고백서를 공부하면서 동시에 현대의 예언, 방언 등이 성령의 역사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개혁신학의 내용을 알지도 못하고 확신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웨민신앙고백 1-1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지금 중지되었기 때문이다"(웨민신앙고백 1-1)
 

질문 2>
“<웨스트민트서 신앙고백서>를 공부하는 분들이 알미니안주의를 비성경적(이단적)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감리교회를 믿음의 형제로 인정하고 교제하는 행위는 올바른 믿음의 자세일까요?”

웨민신앙고백서는 완전하게 타락한 자연적 인간은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없고, 스스로 자기의 영혼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깨닫거나 우려하는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 가운데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택하신 사람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주시어 그리스도를 믿게하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여기시고, 의롭다하신 자에게 성령을 부으시어 영원한 자기 백성으로 인치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이 완전하게 타락한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자기 영혼의 비참과 불행을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이 기회가 주시면 스스로의 선택과 결단으로 그리스도를 믿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을 근거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정한 인간이 스스로 의지, 선택, 결단, 그리고 적합한 신앙행위로 믿음이 진보하고 삶이 성화되면, 하나님이 그것을 근거로 실제적으로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성령을 부으신다고 합니다.

웨민신앙고백서를 따르는 교회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신앙과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마친다고 믿고,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인간이 붙들어서 자기를 구원하는, 즉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구원을 가르칩니다. 또한 웨민신앙고백서는 한번 은혜로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 즉 성도의 견인을 가르치나 알미니안주의는 구원받은 자도 다시 성화를 상실하는 상대가 되면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감리교회가 알미니안주의에 속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논란이 많습니다. 감리교 신학자들은 웨슬리 신학과 알미니안주의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알미니안주의 교회가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무시하거나 배척하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웨민신앙고백서의 내용을 믿음의 교과서로 여기는 개혁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같은 내용의 복음을 전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예수'라는 단어와 명칭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수을 믿는 방식과 내용이 너무도 다르니 같은 복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가 성경적 진실이면 다른 하나는 비성경적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 3>
“개혁주의 신학의 대가 서철원 박사님이 복음계시 확증의 차원에서 일어난 사도적인 이적은 종료되었으나 기도의 응답으로서의 치유는 지금도 있을 수 있다고 하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초대교회 사도들을 통해 일어난 이적들을 모두 사도들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구세주이심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증거하시고 확증하셨던 특별한 이적이었습니다. 당시는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너무 생소하여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해 역사하셨습니다. 결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일으키신 단순한 이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구세주로 확증되고 난후 더 이상 그러한 역사하심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조용기 목사가 아프리카에서 죽은 사람을 살렸다고 하였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지금도 누가 태어나면서 장님인 사람을 보게한다고 하지만, 알아보면 다 사실과 다릅니다. 성경의 사도들 외에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일으켜 걷고 뛰게 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은 사도들이 증거하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구세주이심을 하나님이 그 방식으로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날에도 치유이적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참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진실을 말하면 마치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처럼 매도하려고 합니다. 기도의 응답으로서의 하나님의 직접적 치유의 역사까지를 부정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 치료의 역사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의 사도행전적 양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감기를 고치시는 것을 인정하면서 죽은 사람을 살리지는 못한다는 것인가?”

사도행전의 놀라운 이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또 이런 식으로 의문을 제기합니다. 고약한 논리입니다. 하나님이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 일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불신앙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사도행전은 반복되지 않으며, (고)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처럼 사도행전 29장을 우리가 쓴다는 발상도 아주 위험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주시고 우리의 고통을 긍휼히 여김시는 하나님의 치유이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제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손기철 장로 등의 현대의 치유사역자들의 이적은 대부분 심리적인 것이고, 그들을 통해 미혹을 일으키기는 거짓 영들의 장난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초자연적) 치유이적으로 우리를 고치시기 보다는 일반은혜 가운데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현대의 의학으로 우리를 고치시는 시대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아난 사도적 이적이 있던 당시 인간의 평균수명은 약 40세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평균수명이 90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치유가 사도행전 시대보다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질문 4>
“가족들이 오순절 교회, 감리교회에 다니고 있으면 올바른 복음을 전해야 할 전도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나오게 해야 하나요? 아니면 그곳에도 예수를 믿는 신앙이 있으므로 구원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두어야 할까요?”

오순절교회에 대해서만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순절교회 신앙의 최대의 특징은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별 문제가 아닌 것 같으나, 믿음을 가지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을 동일시하지 않으면 올바른 기독교 신앙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결국 믿는 자들에게 추가적으로 성령이 오실 때 나타난다는 거짓된 현상을 신봉하게 됩니다. 그들은 거짓 방언을 성령받음의 증거로 여기는 미신과 기형적 신앙에 집착합니다.

오순절 교회가 등장하면서 이 땅의 교회는 급속하게 더려워졌습니다. 1906년의 거짓된 아주사부흥으로부터 시작된 오순절 교회가 60년대의 은사운동, 80년대의 빈야드 운동, 2000년대의 신사도운동으로 계속 변신하면서 이 땅의 교회를 죽였습니다. 조용기 목사 등의 4차원의 영성, 적극적신앙, 말믿음 ... 등이 모두 오순절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오순절 교회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순절교회의 성장은 교회성장이 아니고 교회의 암덩어리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오순절 교회에 출석하면서 하나님(?)체험하는 사람들이 지금 같은 실정입니다. 하나님이 영적인 욕심와 탐욕, 그리고 거짓된 현상과 자기의 우상을 좋아하여 하나님을 왜곡하기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유기하시고 마지막 심판의 때까지 안전하게 보존처리하시는 곳이 정통 오순절교회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오순절교회들 못지 않게 그와 같이 하나님의 진로를 자초하는 영혼 쓰레기장 같은 장로교회 등도 많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런 곳에 다니고 있으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곳에 다니면서 은혜를 입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연 진정한 복음이 먹힐까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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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