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제임스 성경이 가장 완벽한 성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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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성경이 가장 완벽한 성경인가?
  • 서철원
  • 승인 2017.02.1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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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교회에서 시비되는 중요한 논의 중 하나는 흠정영역 곧 킹 제임스번역성경이 가장 완벽한 성경으로 모든 계시의 내용을 다 담고 있어서 이 성경대로 믿어야만 완전한 신앙생활을 할수 있다는 시비다. 

더욱이 “개역 판은 심히 부패되었으므로 개역성경은 교리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하는 심히 황당하고 억지스런 주장을 제기하여 한국교회에 혼란을 많이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이런 무식한 자들의 주장을 정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1611년 흠정역 번역자들이 이용한 사본의 편찬을 생각해보자. 15세기 문예부흥이 일어나므로 교회의 권위에서 벗어나서 원천에로 돌아가서 고전 본래의 가르침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기 바랐다. 그래서 16세기 최대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가 당시 알려진 6개의 사본들로 편집해서 1514년 헬라어 신약성경을 편찬하여 1515년 출간하였다.  
   
이렇게 편집된 헬라어 신약성경은 계시록 부분에서 6개의 절이 없으므로 라틴어 역인 불가타에서 헬라어로 번역하여 보충하였다. 또 사도행전 9:6절의 경우도 에라스무스는 라틴어 성경에서 번역하여 헬라어 성경을 보충하였다.  
   
이렇게 하여 최초로 헬라어 성경이 출판되었다. 이 헬라어 신약성경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호응이 좋아 1516년과 1519년 사이에 3, 300권이 유럽에 팔렸다. 반면 적대감도 강하였다. 캠브릿지와 옥스퍼드 대학은 에라스무스의 성경을 읽지 못하게 금하였다. 또 에라스무스의 가지고 있던 사본에는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이 없었다.  
   
또한, 참고했던 사본에는 요한의 콤마라고 불리는 요한일서 5:7절이 존재하지 않아 많은 공격을 받은후 사본 하나가 발견되면 추가한다는 약속에 의해 요한의 콤마를 삽입하였다. 그리고 3판 4판을 낼 때, 콤풀루툼 본문에 근거해서 에라스무스는 90여 곳을 고쳤다. 이 성경본이 판을 거듭할수록 더 고쳤지만 대중판으로 보급되어서 수납된 본문 혹은 전승본 또는 공인본문(Textus Receptus)으로 알려지게되었다.

이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에서 1611년 영국의 킹 제임스 번역본이 나왔다. 이 전승본의 제 2판에서 루터의 독일어 번역본이 나왔다. 종교개혁 교회의 대부분의 번역본도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나왔다. 16세기 중반에 로베르 에스티엔느 (Robert Estienne, 라틴어형으로 Stephanus)는 헬라어 성경 3판을 내면서 14개의 헬라어 사본과 콤플루툼 다국어역에서 인용하고 베자 사본에서도 인용하여 난외에 실었고, 또 비평장치들을 난외에 실었다.  
   
이 판본이 영국에서 권위본이 되었다. 그후 베자 (Beza)와 엘제비르 형제 (Elzevirs)도 전승본을 출판하므로 표준본 혹은 권위본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후에는 초기 고대 사본들을 선호해서 전승본의 일부분을 버리기 시작하였다. 밀(Mill)은 거의 3만개의 다른 독본들을 발견하였고 에드워드 웰스 (Edward Wells)는 엘제비르 편찬 성경본문에서 210곳을 버려 고대 사본들에 근거한 완전한 신약성경을 편집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리챠드 벤틀리 (Richard Bentley)는 전승본의 40곳 이상을 버렸다.  
   
그리고 4세기 이전(380 AD 이전)의 사본들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다니엘 메이스(Daniel Mace)는 다양한 독법들이 전승본보다 우월하다고 하여 전승본을 버렸다.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Johannes Albrecht Bengel)은 신약성경에 3만 곳 이상 다른 독법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랬다. 그 후 에드워드 하우드 (Edward Harwood)는 전승본의 70% 정도는 버렸다.  
   
그러나 본격적인 사본 편집과 대조 작업은 요한 그리스바흐(Johannes Griesbach)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전승본의 기본이 된 비잔틴 판본들이 후기 (12세기 이후) 것이고 많이 부패했으므로 고대 사본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바흐는 전승본을 버리기로 하였다.  
   
그후 칼 라흐만 (Karl Lachmann)은 원본을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380년 이전의 기독교 사본들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고대 사본 발굴과 편집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19세기 프리드리히 폰 티센도르프 (Friedrich Tischendorf)이다. 

그는 신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을 찾으므로 신약의 원본을 찾기로 하였다. 그는 시내산 수도원에서 불쏘시개로 없어지게 된 시내산 사본 (codex Sinaiticus)을 발견하였다. 또 그는 많은 헬라어 성경의 사본들과 편집을 출판하였다. 그의 목표는 신약성경의 원형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그는 시내산 사본의 증거에 더 무게를 두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사무엘 트레겔레스(Samuel Tregelles)는 영국교회로 하여금 전승본에 대한 편애에서 돌이키게 하였다. 그는 최초의 사본들의 증거에 의해서 최종적인 판본을 내기 바랐다. 19세기 후반 브루크 웨스콧 (Brooke Westcott)과 죤 호르트 (John Hort)는 원 헬라어 신약을 출판하였다.  
   
그 다음 단계로 두 사람은 여러 사본들의 서로의 관계를 검증하였다. 사본들을 모아서 발생관계에서 생각하였다. 부패된 본문을 믿을 만하게 회복하는 것은 본문들의 역사에 근거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비잔틴 사본들은 비잔틴 제국에 널리 퍼져있지만 원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다는 사실이었다. 전승본이 비잔틴 사본들 곧 시리아 본문의 가장 늦은 형태이라는 것을 확증하였다.  
   
또 웨스콧과 호르트가 분리해낸 사본들 중에서 서방 유형을 골라냈는데 그 사본들은 극히 초기의 사본들이어서 2세기 중반 이전에 기원한 것으로 확증하였다. 이 증거들이 말키온과 타치안과 유스틴, 이레네이우스 힙폴리투스 텔툴리안과 치프리안 등이 사용한 것을 증명하였다.  
   
웨스트콧트와 호르트는 시리아 본문 곧 비잔틴 사본들은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다 제거해서 유창함과 완벽함을 추구한 것임을 밝혔다. 새로운 생략은 드물지만 새롭게 삽입한 것들이 많아서 완벽한 본문이 되었다고 하였다.  
   
웨스트콧트와 호르트는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이 원본에 가장 가깝다고 보았다. 이 두 본문들이 서로 합치하는 것이 강하여 원본에 가장 가깝다고 보았다. 그래서 두 사본의 독법을 참된 독법으로 받아야한다고 보았다. 그 반대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그러하다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두 사본의 독법은 결코 배척하면 안 된다고 보았다. 
   
웨스트콧트와 호르트는 비잔틴 사본의 본문이 다른 그룹의 사본의 본문보다 더 후기의 것으로서 다른 사본들과 융합된 독법을 드러냈음을 증명하였다. 또 어떤 니카야 공회의 이전 교부도 비잔틴 사본을 인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다른 사본들과 대조해서 읽으면 이 비잔틴 사본이 원본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다 사라진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웨스트콧트와 호르트의 시리아 사본 곧 비잔틴 사본 비평은 교회지도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그들이 작성한 신약성경의 본문의 비판적 작성은 새로운 세기를 여는 작품이었다. 그들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순수한 사본들을 제시하였다.  
   
이 후에는 대형 신약성경에서 소형 보급형으로 바뀌었다. 에벌하르트 네슬(Eberhard Nestle)이 티센도르프의 신약본문과 웨스트콧트와 호르트의 신약성경 또 바이스(Bernhard Weiss)의 신약성경을 대조해서 만든 신약성경이 포켓판으로 정착되었다. 여기에 신약본문 사본들에 대한 정보를 실었다.  
   
그 후에는 에르빈 네슬(Erwin Nestle)판 신약성경의 포켓판과 또 네슬 알란트(Kurt Aland)와 공동 편찬한 네슬- 알란트 신약성경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높은 정확도로 신약본문들의 정보를 대량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66년에는 국제위원회가 십여년 일하여 다섯 개의 성서공회가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하여 학생들과 성경번역자들이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이 신약성경판은 1440개의 다른 사본적 독법을 수록하였다.  
   
1514년 처음 헬라어성경이 출판된 이래 20세기까지 천여 출판본이 나왔다. 지금은 거듭 수정 증보된 네슬-알란트 판이 학자들 사이에 두루 사용되고 있다. 1514년 첫 헬라어신약성경이 나온 이래 사본들이 꾸준히 연구되어 거의 첫 원본에 가까운 헬라어성경이 나왔다.  
   
400년에 걸친 사본들의 대조와 편집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흠정영역의 원본이 된 에라스무스의 편집 신약성경은 비잔틴 사본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잔틴 사본들은 후기 사본들이고 삽입과 추가가 많아 부패된 판본으로 밝혀졌다.  
   
그러므로 킹 제임스 성경의 원본인 전승본(Textus Receptus)만이 유일한 정확 무오한 사본에 근거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리고 400년간의 사본 연구로도 신약의 첫 원본은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사본들의 내용이 97%가 첫 원본과 일치하는 것으로 추정 판정하고 있다. 그럼 킹제임스성경에 들어있는 13곳의 내용은 필사자들의 추가였다고 보아야한다.

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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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다비드 2017-02-10 23:59:17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베자사본 그리고 소수사본의 이문 그리고 역본까지 채택된 성경이라고 처음부터 밝히고 있고
대부분은 베자사본을 따랐기 때문에 사본학적으로만 구분하면 다수본문 계열이라고 말하고있다.
따라서 사본학적으로만 의견이 충돌되면 킹제임스 성경의 의견은 다수사본학회쪽에 더 가깝다.

그런데 이미 처음부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베자사본 그리고 소수사본의 이문 그리고 역본까지 채택된 성경이라고 처음부터 밝혀져 있는데,
"킹 제임스 성경의 원본인 전승본(Textus Receptus)만이 유일한 정확 무오한 사본에 근거했다는 주장"으로 몰고가는 자체가 넌센스 아닌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넌센스로 꼬여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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