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략) 이런 춘천한마음교회의 변화와 한국교회에 끼치는 부활의 참 소망에 대한 영향은 호평을 받기도 한다. 현대교회에서 그대로 적용할 내용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이 책에는 김성로 목사와 관련한 논란이 왜 일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

신앙의 변화가 없는 성도, “사도행전을 건너뛰고 서신서로 넘어갔다”
 

“사도행전을 살펴보아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변화된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고 분명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밖에는 없었다. 이런 고민 가운데 나의 목회에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깨달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신앙이 사도행전을 건너뛰고 서신서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고 고백한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왜 사람이 변하지 않았는지, 왜 초대교회와 같은 생명력이 있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사도행전을 건너뛰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교회를 다녀도 예수가 주인이 아니고 여전히 자기가 주인이었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훈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복음’에 있었던 것이다. 훈련과 복음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15~16쪽).

15p부터 김 목사는 우리의 신앙이 사도행전을 건너뛰고 서신서로 넘어갔다고 지적한다. 이 주장은 후반부까지 이어진다

공감할 내용도 있지만 논란소지가 될 수 있는 발언이 살짝살짝 섞여 있다. 변화가 없는 교회, 김 목사는 이 문제의 이유를 우리의 신앙이 ‘사도행전’을 건너뛰고 서신서로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이 주장을 한다.

“지금 이 시대는 사도행전을 건너 뛴 시대이다. 이 말은 초대교회를 세운 원형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가려졌다는 뜻이다. 강단에서조차 죄에 대한 회개의 메시지가 사라짐으로 인해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며 여전히 자기가 주인되어 살아가는 종교인들이 늘어나는 아픔을 겪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가슴 아픈 현실은 바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사라진 비참한 결과이다.”(47쪽).

“사도행전을 건너뛴 시대, 회개가 사라진 이 시대에 다시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죄에 대한 회개가 선포될 때,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오늘날 모든 한국교회에 동일하게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49쪽).

강단에서 회개·부활·부흥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사도행전을 건너뛰었다는, 그것도 이 시대가, 현대 교회의 신앙이 그렇다는 그의 비판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이 책의 시작 부분에 나는 이 시대를 ‘사도행전을 건너뛴 시대’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지금은 살아계신 부활의 주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주인으로 믿는 믿음이 가려진 시대이기 때문이다.”(53쪽).

“불과 백년 전만해도 기독교의 큰 부흥을 이끌며 전 세계에 복음의 불길을 번지게 했던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교회들이 오늘날 힘을 잃고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 그 이유는 사도행전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80p).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지금,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들에 관한 원인을 정확히 진단할 때 해답 또한 분명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의 이유에 관한 많은 목소리가 있지만, 나는 이 시대가 사도행전을 건너뛴 시대, 즉 복음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오직 해답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 즉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확신한다”(135쪽).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2000년이 지난 지금,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너무나 가슴 아픈 시대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 시대가 ‘부활’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부활로 확증된 십자가의 사랑으로 초대교회와 같이 우리가 서로 생명을 나누며 사랑할 때 온 세상이 예수님께로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85p).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고, 회개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모셔야 한다는 김 목사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건너뛴 시대, 부활이 가려졌다는 그의 주장은 많은 오류가 있어 보인다. 더욱이 김 목사는 자주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에만 초점이 맞춰져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시대”라는 발언도 한다. 지금까지 십자가를 폄훼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도 김 목사가 이런 주장을 지속한다는 것은 이미 이런 생각이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이고, 쉽게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이다.

초대교회의 부활의 복음이 가려져서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세워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김성로 목사(197p).

“지금까지 세워진 11명 간증자들을 변화시킨 부활의 복음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분을 마음의 주인으로 믿어 놀라운 삶을 누리는 'Amazing Grace'(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가 곳곳마다 부어지길 기대한다.”(177쪽).

이쯤되면 그는 이 시대를 믿음이 가려진 시대, 사도행전을 건너뛴 시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복음의 능력을 잃고 부활은 가려진 시대라고 보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이 시대의 믿음을 비판하면 춘천 한마음교회의 ‘부활의 복음’은 반대급부를 얻게 된다. 자신들만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합한 총체적 믿음, 완전한 복음의 원형을 증거하는 곳이라는 특수성과 우월성, 영적 엘리트 의식이다.

부단히 고치고 수정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그의 시각은 ‘이 시대 =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에만 초점’, ‘춘천 한마음교회 =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전하는 곳’이라는 인식에 멈춰 있다. 김성로 목사에 대한 변호·비호의 글이 생산되지만 그의 본질적 주장들에 이런 인식이 드러나는 이상, 과연 논란이 그칠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던질 수밖에 없다.

과연 한국교회는 사도행전을 건너뛰고 서신서로 넘어갔을까? 사도행전을 건너뛰어서는 안 되겠지만 설령 건너뛰었다고 해도 복음의 한쪽 날개가 날아간 것처럼 불균형해질까? 우선 김 목사가 자주 인용하는, 바울이 전한 복음의 원형은 고전 15:1~4에 이미 그대로가 나온다.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갈 1:9). 그리스도를 주로 모셔야 함도 서신서에 빠지지 않는다(롬 14:8).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형 그대로가 모두 서신서에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김 목사는 사도행전을 건너뛴 신앙 때문에 초대교회와 같은 생명력있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서신서를 통해 변화를 경험한 신앙의 선배들은 수없이 많다. 로마서 13:14을 읽다가 어거스틴이 회심했다(알리스터 맥그라스, 신재구 옮김, <위대한 기독교사상가 10인>, 1992년, IVP, 38p). 마틴 루터는 로마서 말씀을 통해 ‘이신칭의’뿐 아니라 “칭의 교리는 단순한 법적 허구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신자 개개인이 실제로 인격적인 연합을 이루고 있음을 가르친다”(위의 책 100p)는 종교개혁의 신앙을 정립해 나간다.

서신서에도 김 목사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 부활하심, 주되심, 성도들의 회개, 주되심에 대한 굴복과 선언은 얼마든지 등장한다. 이미 김 목사 스스로도 설교 시간에 인용했지만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부활신앙과 주되심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 시대와 우리 신앙이 사도행전을 건너뛰고 부활이 가려져 성도들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발상은 납득되지 않는다.
 

이 시대는 부족한 복음, 한마음교회는 그리스도의 원형의 복음?

이외에도 몇 가지 논란이 될 부분이 또 있다. ‘세상을 배설물로 여기고’라는 부분이다. 김 목사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열정적인 신앙은 결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성경을 많이 배워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그림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보이지 않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배설물로 여기고(빌 3:8), 천국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고 썼다(163p). “우리 교회에 오는 특별한 그 사람들을 통해 바울이 이 세상을 배설물이라고 한 이유를 정확히 보게 되었다”(173p)고 두 차례 강조한다.

김 목사는 바울이 이 세상을 배설물 여겼다(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고 봤다. 그러나 이 말씀을 ‘(바울이)세상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확대한 해석이다.

“(빌 3장)4절부터 6절까지 나열한 바울 자신의 유대인으로서의 특권과 성취들은 ‘율법으로부터 나오는 나의 의’를 이루는 것들인데, 자신의 의와 그것을 얻게 하는 그런 것들이 ‘이익’이 아니라 ‘손해’임을 깨달았음으로 손비처리해 버렸고 개똥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김세윤, 빌립보서 강해, 두란노, 2004, 127~128p).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 위해 유대인으로서 가졌던 특권과 성취들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의미이지 세상이 배설물이라고 말 한 게 아니다. 만일 세상을 ‘똥’으로 여기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세상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가질 수 있다. 나아가 이원론적 세계관이라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여기서는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지는 않겠다).

그의 부활 복음을 다시 한번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그가 참된 하나님으로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분이심을 입증했다.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의 주인이 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선포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주인이 돼서 살아온 죄,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를 회개하며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 앞에 굴복한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모든 것의 주인으로 모신다(158~159p).

이것이 그가 말하는 부활 복음의 핵심이다. 새로울 게 있는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가르쳐온 사람들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따를 것을 강조해왔다(다만 김 목사의 ‘주되심’과 관련한 주장은 주재권 구원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는 요소도 있다. 예수를 주인으로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50p)는 주장이 그것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믿어야 한다는 부분이 신앙 고백적 의미인지, 아니면 행위에 기반을 둔 것인지에 따라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이 문제도 역시 여기서 따지지는 않겠다).

그런데도 그가 굳이 ‘부활복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이 시대의 복음과 달리 마치 자신은 새롭고 신선하고 특수한 복음을 가르치는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많은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책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복음의 핵심 사건이라고 주장하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자신의 주장을 하기 위해 안전망을 친 듯한 발언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 목사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김 목사가 십자가를 폄훼하지 않는다고 변증한다.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부활의 복음은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하고, 십자가를 더욱 십자가 되게 한다. 즉 부활로 죄사함과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은 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크거나 중요하다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 같이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복음의 핵심 사건이다. 부활은 십자가 사건의 참된 의미와 보혈이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를 재조명한다.”(김성로 목사,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 207p).

“단순하게 부활사건만을 강조하다 보면 십자가와 다른 사건을 무시하는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도, 부활하신 분도,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자 계신 분도 모두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셔서 지금 보좌 우편에 앉아 이 땅을 통치하시는 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 굴복하는 것이다. 굴복은 통치의 시작이며,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를 통치하신다. 이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214p).

십자가와 부활을 이원화 시키지 않고 통합해서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말을 했다고 다른 페이지에 나온 부적절한 표현이 면책되는 건 아니다. 논란이 될 만한 표현들은 그 표현 자체로 문제가 될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실제로 어떤 교회에선 한 목회자가 “지금까지 십자가만을 강조해왔는데 이젠 부활복음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한 네티즌은 “이단성은 없지만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며 “이 교회의 말씀을 듣던 분들이 크게 물의를 일으키고 결국 (교회를)나간 일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부활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는 가짜라는 식의 말들, 그걸 믿지 않는 사람 또한 구원 받지 않았다는 말을 해서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다”고 쓰기도 했다.

김 목사는 지금까지 십자가를 폄훼하는 발언을 한 게 사실이다. 어떤 맥락에서 보아도 잘 이해되지 않는 발언들이 다수 있어 왔다(김성로 목사의 '십자가 폄훼'와 '하늘 제사' 주장 녹취록 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728). 사실 교회 안에서 한마음교회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분열과 갈등이 있었다면 그것은 김 목사의 십자가에 대한 폄훼, 그리고 부활복음의 지나친 강조에서 왔다고 봐야 한다.

600여 명의 신앙인이 간증을 통해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하는 것은 사실 대단하고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춘천 한마음교회의 부활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원형을 그대로 고수하는 우월한 복음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위험성 또한 상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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