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 운동에 관한 이론들은 대부분 2016년 10월 세상을 떠난 신사도운동 설립자이자 가장 대표적인 거짓 사도인 피터 와그너(Peter Wagner)가 퍼뜨린 내용들이다. 나는 피터 와그너의 책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피터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성경에 없는 중보기도 은사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나는 (성경이 말하지 않는) 세 가지 은사를 은사의 목록에 추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것은 은사들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성경의 어떤 구절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교회생활과 사역을 통하여 얻은 경험적인 관찰에 근거하여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은사는 다음과 같다. ‘중보기도의 은사’, ‘귀신추방의 은사’, ‘예배인도의 은사’”(피터 와그너)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피터 와그너는 성경이 말하지 않는 세 가지 은사를 기독교 신앙의 은사의 목록에 추가하였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수납하여 기록한 성경의 사도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중보기도의 은사에 대해서 계시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중보기도 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에 없는 말씀이 새로이 임하는 것은 거짓 계시이고, 그런 것을 받아서 쓰거나 선포하는 사람은 거짓 계시를 받는 거짓 사도이다. 지금 존재하는 거짓 사도들 가운데 가장 대표되는 사람이 피터 와그너이다. 2001년에 자신을 사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세계적 연대인 ‘국제사도연맹’(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이 설립되었다. 한국 사람으로는 홍정길 목사의 친동생 홍정식 목사와 김태진 목사,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2세인 Che Ahn 목사(한국명 안재호 목사, 캘리포니아 추수반석교회 담임)가 가입되어 있는데, 이 모임을 창설한 사람이 바로 피터 와그너이다.

피터 와그너가 성경이 말하지 않는 중보기도 은사를 성령의 은사로 신설하였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계시를 변경시키는 거짓 사도라는 명확한 증거이다. 피터 와그너가 어떤 방식으로 성경에 없는 중보기도 은사를 성령의 은사의 목록에 추가하였는지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나는 중보기도의 은사를 말씀하는 성경의 말씀을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중보기도가 성경적인 사역이므로 중보기도의 은사가 존재한다고 가정(postulate)하였고, 그리고 중보기도의 은사가 실제로 나타난다고 확신한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중보기도의 은사가 있다. 중보기도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특별한 멤버들에게 꾸준히 더욱 오래 기도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보통의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기대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능가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시는 특별한 능력이다.

피터 와그너는 자신의 경험적인 관찰에 근거하여 중보기도의 은사가 교회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중보기도가 성경적인 사역이므로’ ... 라는 피터 와그너 개인의 생각이 기록된 성경의 권위를 앞질러 버렸다. 피터 와그너는 기본이 안 된 신학자였으므로 중보기도에 대한 옳고 그름을 성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성경이 가라고 하는 곳 까지만 가는 것이 신학의 기본이고 전부라는 사실을 모르는 엉터리 신학자였다.

피터 와그너는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중보기도의 은사가 있다”라고 하였다. 피터 와그너가 그리 생각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런 행동을 한국에서는 ‘사이비’라고 한다. 그러나 이 당시 피터 와그너는 너무나도 유명하고 최고의 인기강사였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이 맞는 이론이라고 의심없이 수용되었던 시절이었다. 이 당시 한국의 목회자들에게는 그의 수업에 참여했다는 것이 자랑거리였고, 그의 책을 서서 읽는 것이 목회자의 기본으로 여겨졌었다. 다음은 피터 와그너의 책 <Prayer Shield>에 있는 내용이다.

“어찌되었건 간에 성경의 은사들의 목록에 내가 추가하는 것 두 가지는 귀신추방과 중보기도이다. 이 두 가지를 은사의 목록에 추가하는 주된 이유는 (성경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 은사들이 실제 사역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은사의 목록을 다시 만드는 피터 와그너의 모습이 꼭 제멋대로 가위질하는 엿장수 같다. 피터 와그너의 어떤 책에는 1)중보기도의 은사, 2)귀신추방의 은사, 3)예배인도의 은사, 이 세 가지 은사를 추가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의 또 다른 책에서는 1)축사의 은사와 2)중보기도의 은사가 성경에서 누락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또 다른 어떤 책에서는 자신에게 사도의 은사가 임한 것을 깨달았다면서 사도의 은사를 추가해야 한다고 하였다.

피터 와그너가 누구이기에 감히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성령의 은사의 목록에 더 할 수가 있다는 것인가? 제 정신과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일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위험스러운 사이비 이단이 앞장서 수립하고 실행한 중보기도 운동을 우리는 바보같이 믿고 따랐다.

그렇다면 피터 와그너는 무슨 기준으로 누구에게 중보기도의 은사가 있음을 판단하였을까? 이것에 대해 피터 와그너가 말하는 내용을 보니 심히 불건전하기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피터 와그너는 중보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긴 시간 동안 기도한다. 하루 한 시간의 기도는 보통이고 중보기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에 두 시간에서 다섯 시간을 기도한다. ∙더욱 강력하게 기도한다. ∙기도하기를 즐기면서 기도 시간을 통하여 개인적인 만족(기쁨)을 얻는다. ∙기도에 대한 드라마틱한 하나님의 응답을 자주 경험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선명하게 듣는다. 중보기도의 은사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언의 은사를 함께 받는다.”(피터 와그너)

중보기도 은사를 받은 사람에 대한 피터 와그너의 말은 너무 유치하고 이상하다. 길게 기도하면 중보기도 은사를 받은 사람이고, 짧게 기도하면 보통의 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력하게 기도하면 중보기도 은사를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강력하게 기도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데모하듯이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는 것일까? 기도할 때 손바닥을 칼날처럼 세우고 무엇을 자르는 시늉을 하면서 기도하는 강력한 기도일까? 무엇을 밀어 붙이듯이 손 바닥을 세워 미는 흉내를 내면서 하는 기도가 강력한 기도일까? 어떤 중보기도 모임에서 양 팔을 ‘ㄴ’ 자 모양으로 접어들고서 부르르 떨면서도 기도를 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렇게하면 강력하게 기도하는 것일까?

그때 한 쪽에서는 “릴리리리 ~ 우알라스데 오오요쎄 쎈노리쎄” ... 라는 특이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강력하게 기도하는 것일까? 그런데 왜 가장 능력있는 중보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에게서는 그런 강력한 기도가 나오지 않았을까? 구약 성경에서 최고의 중보기도자인 모세가 중보기도하여 여러 번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여 내면 장면 어디에서도 그런 강력한 기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후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이렇게 중보기도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는 길지도 않았고, 목소리가 강하고 우렁차지도 않았다. 피터 와그너에 의하면 이것은 중보기도로 간주될 수 없을 것 같다. 이때 예수님은 어떠한 기쁨도 얻지 못하셨고, 드라마틱한 응답을 전혀 보지 못하고 얼마 후에 죽으셨다. 피터 와그너가 말하는 중보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으로서 특징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면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이 기도는 중보기도의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피터 와그너가 아무 개념도 없이 중보기도에 대한 말들을 늘어놓은 것이다. 피터 와그너처럼 중보기도의 은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다. 중보기도는 오직 적법한 중보의 자격을 가진 중보자가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사람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기도야 말로 최고의 중보기도이다. 비록 예수님에게 마음이 고통이 심하고 육신의 기운이 부족하여 큰 소리로 우렁차게 길게 기도하시지는 못했을지라도 예수님의 그 기도는 가장 강력한 중보기도였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로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체포되어 죽으시는 과정은 제자들에게 살얼음판 위를 조심조심 걷는 것보다 더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생명을 잃지 않았고, 아무도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모두 나중에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받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다 전파하는 능력있는 사도들이 되었다. 딱 한 사람 오직 구약 성경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해 예비된 멸망의 사람이었던 가룟 유다만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이다.

이것이 처음부터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의 권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천지를 지으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여 언제나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 이미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계속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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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