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경은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24:44).

정확하게 번역하면 “모세의 글들과 선지자들의 글들과 시편”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선지자들의 글이란 모세 오경과 시가서를 제외하고 모든 구약 성경을 선지서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구약 성경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마귀는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성경으로 이끌지만 성령은 그리스도가 계시는 성경으로 성도를 이끈다’ 고 하였다.

사도바울은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이라고 증거한다 (엡2:20). 이 말은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자들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제자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직접적으로 가르친 자들이었다. 결국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라고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세우심을 받은 자들을 교회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을 그 씨앗으로 삼고 자란다. 그런데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을 통해 성도들에게 복음 선포를 하지 않으면 결국 목사 개인의 사적인 말이나, 인간의 이야기만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보면 예배당에 사람들이 있고, 찬양대가 찬양을 하고, 목사가 성경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아니하면 그곳은 교회라고 볼 수 없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모든 설교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하는가? 답은 '그렇다' 이다. 왜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하는지 먼저 가장 큰 이유를 든다면 그것은 성도들의 죄 사함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간 속죄제물인 동물위에 제사장이 한 손으로 죄인의 머리에서 두고 다른 손은 짐승 위에 두면 죄가 그 짐승에게 전가 된다.

그러면 제사장은 죄인의 죄를 공식적으로 속죄하기 위해 그 짐승을 죽이고 그 피를 뿌린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예배 가운데 그리스도의 피, 즉 복음이 선포되어 지면 성도의 죄가 공식적으로 용서 받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교회는 성도가 죄를 지으면 개인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신다고 가르친다. 이 말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성도가 교회에서 증거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가 공식적으로 사죄의 은혜 가운데 누리게 되는 것은 바로 공적인 예배에서 선포되어지는 복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개혁교회나, 장로교는 예배 시간에 죄를 고백하는 시간을 갖는다. 예배 시간에 성도가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여 주신다. 그것이 바로 복음 선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죄 사함의 진수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사로이 설교하지 않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그 중심에 항상 있었다. 오늘날 강단에서 목사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성도들의 죄는 공적으로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목사는 성경의 본문을 아주 정확하게 그리고 바르게 선포해야 한다. 

 

임진남 목사 / 김제 예본교회 담임, 한국개혁신학 연구원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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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