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7 12:55 (화)
이찬수 목사는 왜 십자가 대적자 김성로 목사의 들러리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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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목사는 왜 십자가 대적자 김성로 목사의 들러리가 되었는가?
  • 오진구
  • 승인 2016.11.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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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꾸역꾸역 모여드는 사람들을 다 받아들일 수 없어 가려서 받을 정도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드는 이유는 이찬수목사가 가장 복음적인 목사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복음적인 목사라고 믿고 있는 이찬수 목사가 실은 복음에 대해 분별력이 없는 목사임이 드러난다면 우리교회 교인들의 실망이 얼마나 클까?

이찬수목사는 김성로목사의 이단성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부활복음을 비호하고 있다. 김성로 목사의 이단성을 간략히 살펴보면

1.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를 정면으로 대적한다.
2. 그는 예수님이 부활로 우리를 구원했다고 주장한다.
3. 예수를 죽은 예수와 산 예수로 분리시켜 반쪽짜리 예수로 만들고 이중제사를 주장한다.

이찬수 목사는 십자가 보혈을 병 낫는 부적정도로 여기는 한마음교인 이옥매씨 간증을 분별 못하고 교인들에게 소개하는가하면, 김성로 목사를 비호하는 교수의 글도 분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칭찬하는 것을 동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 우선 먼저 김성로 목사의 이단성을 살펴 본 후 김성로 목사를 옹호하는 교수를 칭찬하는 이찬수 목사의 동영상도 살펴보자.

먼저 김성로목사의 부활복음이단성을 살펴보자.

김성로 목사의 이단성은 분별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노골적으로 십자가를 비하하고 부활구원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김성로목사가 강조하는 부활은 특별한 부활이다. 죄를 사하고 구원을 주는 특별한 부활이기 때문에 십자가가 필요 없는 부활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폄하한다.
 

김성로 목사의 이단성 1>
예수를 죽은 예수와 산 예수로 분리시킨다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은 예수를 죽은 예수와 산 예수로 분리시킨다. 부활을 세우기 위해 어처구니없게도 예수님을 산예수와 죽은 예수로 분리하고 죽은 예수는 능력이 없다고 말하며 살아있는 예수를 주인으로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말 한다. 사도들도 부활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활먼저 증거 했다고 말한다. 이건 왜곡이다.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예수시체를 훔쳐갔다고 믿고 있었다.(마28:12-15)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제자들은 먼저 부활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부활을 안 믿으면 복음전파도 허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마치 십자가보다 부활이 중요하여 부활만 전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부활은 십자가에 포함되어 있다.

김성로 목사는 죽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심으로 새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속이고 있다. 그저 부활복음을 띄우려고 살아있는 예수만 강조한다. 생물학적으로 죽은생물과 산생물을 비교하듯 죽은 예수보다 산 예수가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산 예수와 죽은 예수는 다르지 않고 한분이시다. 김성로목사를 따르는 사람들은 결국 반쪽짜리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김성로 목사의 이단성 2>
예수의 부활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예수 죽은 십자가에 머물지 말고 최종적으로 부활까지 나가주어야 죄사함과 구원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이건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십자가는 종착지이다. 이곳에서 모든 것이 완성된다. 죄사함도. 구원도.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도 십자가에서 완성되고 보장받는다.

십자가를 지나치면 멸망하게 된다. 십자가에서 부활로 나가라는 주장은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구원받고 부활하게 된다는 구원법칙을 거스르는 주장이다. 따라서 부활복음은 죄사함과 구원에 대한 십자가의 완전성과 유일성, 절대성을 부인하고 구원을 막는 다른복음이다. 김성로목사는 부활이 되어야 죄사함과 구원이 완성된다는 근거로 고전 15;17절을 말한다. 부활이 없으면 죄가 여전히 있으므로 부활이 되어야 죄가 사해진다는 것이다. 이건 눈속임이며 트릭이다. 이미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 고전15:17절은 예수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가 아니고 십자가 사역도 헛된 것이기에 죄가 여전히 있다는 뜻이지 결코 부활이 되어야 죄가 사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부활은 거듭남의 표적이며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활은 죄와 구원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 김성로 목사는 부활로 죄가 사해진다는 또 다른 근거로 하늘제사를 말한다. 십자가는 땅의 제사이며 예수가 부활하여 하늘성소에서 하늘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이중제사라고 비판하자 김성로목사는 그렇게 말한 사실이 없고 하늘제사를 말한 사실도 없다고 딱 잡아뗀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동영상들이 증거하고 있음에도 잡아뗀다. 신기한 것은 김성로나 비호자들은 이중제사는 변명하면서도 부활구원에는 반박하지 못한다.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된 것을 부정하면 스스로 이단임을 자인하는 것이 되고 부활을 믿고 구원받는 것을 부인하면 부활구원을 믿는 한마음교인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김성로 목사의 이단성 3 >
십자가를 집요하게 폄하한다 

십자가만 믿는 믿음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가하면, 세계교회들이 십자가에 매달려있어 망하고 있다고 하고 심지어 십자가를 쓸데없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십자가 중심을 부활중심으로 개혁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도 말한다.

김성로 목사의 십자가 폄하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자신이 만든 특별한 능력(죄사함과 구원)을 가진 부활복음을 세우기 위해서는 십자가는 걸림돌일 뿐이기 때문이다. 김성로 목사께 질문하고 싶다. 한마음교인들은 부활 믿고 구원받았다고 간증하고 있다. 부활 믿고 구원받는 것이 맞는가? 십자가에서 죄사함과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정통교리가 틀리는지 맞는지 답변 바란다. 즉 부활구원에 대하여 명확한 답변을 부탁한다.

아마도 김성로 목사는 이 답변을 회피할 것으로 본다. 십자가만의 구원을 인정하면 죄사함과 구원을 완성시킨다는 “부활복음”의 뼈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유명한 이찬수 목사가 엉망진창인 김성로 목사의 이단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들러리 서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이것이 실수일까?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찬수 목사를 수많은 양을 치는 목회자로 불렀다면 호시탐탐 엿보는 이리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을 것이며, 김성로목사 같은 뚜렷한 이단성을 가진 자는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아보지 못했다. 김성로 목사가 이찬수 목사를 부활복음의 선전도구로 사용하는 동영상을 들어보자.

이찬수목사는 자신이 십자가를 400번쯤 증거하고 부활은 1번 증거 한다며 적게 말한 것을 회개하고 있다. 이렇게 이찬수 목사의 응원을 받은 김성로목사는 마귀가 십자가로 복음의 광채인 부활을 가리고 있다고 말한다. 어이없다. 성경의 핵심인 십자가의 진리를 훼손하는 김성로 목사의 이단성을 못 알아보는 이찬수 목사는 성경지식은 탁월할지라도 결코 십자가 복음을 진실로 깨달은 목사라고 할 수 없다.

진실로 십자가를 깨달은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십자가는 영원한 생명의 탯줄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영생을 얻은 기쁨과 은혜의 생수를 맛본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이찬수목사는 고귀한 십자가를 짓뭉개는 부활복음의 이단성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는커녕 오히려 부활복음을 인정하고 칭찬하며 사악한 부활복음이 널리 알려지도록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삯군목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듣기에 좋은 말과 사람보기에 옳은 말을 하는 삯군들은 사람들의 귀를 만족시키는 기술이 있다. 그들에게 사람들은 몰려든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두고” (딤후4:3)

자기의 귀를 만족시키려 자기사욕을 좇는 사람들은 감정을 자극하고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삯군들을 좇는다. 삯군들은 도덕적이고 겸손하게 보인다. 사도바울이 이 시대에 교회를 개척했다면 지금의 삯군교회 만큼 사람들이 몰려들었을까? 말솜씨가 없다고 배척받고 예수 죽은 십자가만 자랑한 사도바울에게 교인들이 몰려들었을까?

결코 몰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십자가만 전하는 사도 바울의 설교는 맛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십자가인 무교병만 전하면 맛이 없다. 그에 비해 오늘의 삯군들은 이것저것을 잘 배합하여 맛있는 유교병을 만들어 자기사욕을 좇는 양들을 현혹한다. 양들은 이런 삯군들에게 열광한다. 삯군들은 예수보다 인기가 더 좋다. 교인들은 예수보다 삯군을 자랑한다. 그래서 몰린다.

예수의 제자들은 자신들을 주목하는 사람들을 꾸짖었지만 삯군은 현란한 말솜씨로 자신을 주목하게 한다. 칭찬을 받는 목사는 이미 영광을 도적질한 삯군이다. 삯군을 분별하는 법은 간단하다. 삯군들은 사단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십자가에 대해 깊이 있게 가르치지 못한다. 십자가에서 흐르는 은혜의 생수를 마셔본 일이 없고 십자가의 문이 왜 좁은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삯군들은 모든 성경이 예수로 관통하고 있음도 알지 못한다.(요5:39) (눅24:27) 삯군들은 오직 예수를 통해 들며나며 양들이 꼴을 얻는 것임도 알지 못한다.(요10:8-10) 삯군들은 많은 성경지식들을 동원하고 인용하지만 모두 십자가는 비켜간다. 저들의 끝은 멸망이다. 천국은 떼거지로 몰려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오직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거듭난 성도들만 들어간다.

 

오진구 / 중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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