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제사를 통하여서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이 우리를 구원하심을 알수 있다. 구약은 짐승의 죽음으로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며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 만일 김성로 목사가 주장한것처럼 부활을 따로 믿어야 구원이 된다면 짐승의 대속의 죽음으로 속죄제사를 드린 구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것일지 의문이다,

구약 성도도 오직 예수를 믿은 자만이 구원 받았다. 물론 구약백성은 역사적 실존 인물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를 믿고 인정한 자들이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 당시나 신약시대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육신을 가지고 직접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장차 오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사실이다. (1).

구약 백성의 구원의 원리도 신약 시대의 구원의 원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십자가에 드러난 바로 그 원리이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그 구속의 원리가 점진적으로 조금씩 계시 되다가 때가 차매 십자가에서 완전히 실현되었다.

즉 자신의 의로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으며 하나님이 전적으로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믿은 자들이다. 그들은 짐승제사를 통하여 순종을 보였다,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로 오셔서 죄인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려 이루신 속죄 사역, 곧 헌제사역을 알고 그분을 믿음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부활은 십자가 대속의 완성의 당연한 결과이며 열매이다.

구약을 통해서 분명히 알수 있는 것은 십자가의 대속이 복음의 중심이라는 것이며 십자가와 부활을 따로 떼어서 부활신앙이어야 하며 십자가신앙은 잘못되었고 부활신앙만이 능력있는 신앙의 삶을 산다는 것은 궤변일뿐이다.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다면 부활은 당연히 믿어야 하고 믿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섬기는 카페에서 직년에 부활교 신자가 남긴 글들이다. '나너셋'이라는 닉네임을 쓰시던 분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는 죄 사함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하늘나라 참 장막에서 영원한 제사를 드려야만 죄사함입니다. 성경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말씀대로 지켜 살아가기 위함 아닙니까? 부활이 실제되면 성경의 모든 말씀은 통째로 단번에 믿어지고...이제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한 삶인데이렇게 살라, 말아라는 잔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함부러 지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전해 듣고 전한 복음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차이입니다.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십자가를 복음으로 전했기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부활의 복음을 듣는 자는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을 바라보고 좌절하고 울고불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자는 기쁨과 평강 속에서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주인으로 연합되어 있기에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다! 역사적, 객관적, 보편적인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주인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구원이라면 천국 가는 것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문제에서 건짐을 받는다! 그러니까 주인으로 믿으라! 확실한 증거로 믿는 신앙은 환란이 와도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틀렸습니까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신앙은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흔들리고 맙니다. 결국 배교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자는 핍박과 환란이 온다해도 순교할 수가 있습니다.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고, 살아가는 목적이 주를 위한 삶이니까요.

모든 사람이 믿을만한 증거! 부활! 확실한 증거 부활! 날마다 부활의 감격이 있는지 점검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가르치려한다느니...전혀 그런 것 아닙니다. 제가 조금 먼저 접했을 뿐입니다. 제자들과 동일선상에서 사람인 예수가 왜 하나님인지 알아가시면 됩니다. 사도행전을 다시한번 읽어보시면 답을 얻으실 것입니다.^^

아래 김명인 자매의 간증에서 차이를 느끼셨지요? 지식으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은 전혀 다르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내 삶에 개입하셔서 동행하는 삶은 정말 까무러칠 정도입니다. 느낌 감정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믿음은 사실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이심을 확증해 보이셨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었나요?? 전 처음 들었습니다. 행전17:30,31 부활이 모든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라고!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친다해도 증거로 믿는 신앙은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김성로 목사님의 신학은 이미 검토가 끝났습니다. 많은 신학자로부터..그리고 성경대로 초대교회 역사와 동일하다는 것을요. 김 목사님의 능력이 아닙니다. 누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자는 동일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것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주인이 바뀐 천지개벽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목적은 우리의 주인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롬14:9) 부활복음을 만나기 전까지 앞에 열거하신 케직사경회를 이끌었던 제시펜루이스, 잔느귀용, 휘걸, 앤드류머레이, 워치만니,오스왈드 챔버스,노만그럽등등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부활복음을 만나고 보니 그들은 십자가로 출발하기에 틀렸습니다! 반복에 대한 것은 유대인들의 교육법을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려면 왜 반복해야만하는지..그리고 겸손하지 않다셨는데..가만있으면 겸손입니까? 복음을 가진자가 가만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비이지만 느낌,감정의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사실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사실을 보면 믿음은 저절로 생깁니다

사도행전을 다시한번 보시면 간단합니다. "죽은 예수가 살아났다! 그러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인지 아니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으라"인지 ... 이 둘의 차이는 천지차이라는 것입니다.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복음의 능력은 죽은자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예수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우울증,공항장애로 자살한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떠나는데..치유되는 것이 신비주의 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자는 눌리고 포로된 상태에서 해방입니다. 한마음교회는 교회나온지 1주, 2주된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삶을 살고 있습니다. 신앙연륜에 따라 성화되어진다는 교리는 틀렸습니다

사단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면 승리할 줄 알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를 살리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창3:15절 원복음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십자가는 얼마든지 전해도 괜찮은데 부활을 전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지요"

 

결론적으로 김성로 목사의 부활교는 정통교리와 정통신앙을 교묘하게 왜곡시켜서 십자가의 도를 무력화하는 위험한 이론이다.십자가의 도를 믿으면 대속의 결과인 부활은 당연히 믿게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되었다. 예수님 당시 신성모독죄는 돌로 쳐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정치범으로 몰려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은 신명기 말씀을 이루신 것이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3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만일 김성로목사의 부활교의 주장 즉 부활 때문에 구원이 된다면 굳이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없이 돌에 맞아 돌아가셔도 상관이 없을수 있었다. 하지만 십자가의 대속만이 성경대로 구원의 완성이시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이렇게 성경의 중심인 십자가의 도가 아닌 부활이 참복음이라는 부활교의 교리는 논리적 모순임을 알수 있다.부활도 당연히 기독교의 중심이며 우리는 당연히 부활을 믿는다. 십자가의 대속은 부활로서 그 결과를 보여 준 것이다,

그리고 추종자의 주장중 "한마음교회는 교회나온지 1주,2주된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삶을 살고 있습니다.신앙연륜에 따라 성화되어진다는 교리는 틀렸습니다"라고 한 주장을 보더라도 성경전반이 우리의 신앙이 말씀과 기도로 믿음의 행함으로 서서히 자라가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이를 부정하는 신비주의적 발상이다.

또한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신앙은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흔들리고 맙니다. 결국 배교도 가능합니다."라는 말로 십자가중심의 신앙을 매도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것과 십자가의 죽음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같은 말이다, 그런데 부활을 믿는 것이 복음이다" 하는 것은 그들은 어떤 죽음이든지 부활만 하면 된다는 비성경적인 사고로도 갈수도 있다,

이제 부활교는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고 자신들이 특별한 복음을 전함으로서만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주장을 멈추고 십자가의 도가 복음의 중심이며  십자가대속의 열매로서 부활하심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1)구약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 ? 박일민 교수 의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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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숙 집사는 한국 교회의 신앙의 현장에서 개혁신학이 세워지기를 위해 깊이 헌신하고 있는 평신도이다. 개혁주의 신앙을 사랑하는 많은 목회자들이 모여서 신앙을 토론하는 인터넷 싸이트 “개혁주의 마을”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대 및 이화여대교육대학원을 졸업했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대학원(MA 졸업)과 총신대학원(기독교 교육 수학)에서 신학을 연구하였으며, 대구신학교(현 대신대학) 등에서 강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