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듯 어거스틴의 신학은 이단과의 논쟁을 통하여 집대성되었습니다. 그는 마니교와의 논쟁을 통하여 신론을, 도나티스트와의 논쟁을 통하여 교회론과 성례론을,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통하여 죄와 은혜를, 신국론을 통해서 역사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물론 최근 페이스 북에서 많은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분들과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근본주의 진영에 있는 분들이 지적하신 대로 어거스틴은 "세례를 통한 죄의 씻음"을 주장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연옥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순교한 자들은 죽기 전 세례를 통하여 죄를 씻지 않아도 순교 자체가 하나의 공로가 돼 죄 사함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비성경적인 가르침 등으로 로마 카톨릭의 교리적 토대를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어거스틴을 이단으로 몰면서 그의 구원까지 부인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합니다. 이 글은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과 신학적 대립각을 세우기 위하여 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비록 근본주의 진영에서는 예정론을 교회에서 몰아내야 할 누룩이라고 표현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과 복음을 위해서 함께 동역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존 웨슬리와 휘트필드가 신학적으로는 첨예한 대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동역함으로 영국의 대각성과 부흥운동을 주도했듯이 오늘날 팽배한 은사주의운동이나 로마카톨릭과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진리의 싸움에는 함께 동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근본주의 진영(더 정확히 말하면 신근본주의겠죠?)에 속한 분들이 간과한 점은 어거스틴이 처했던 교리사적 위치입니다. 어거스틴 당시는 정통신학이 확립돼 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 이전의 많은 교부들에게서 오늘날 받아들일 수 없는 비성경적인 부분들이 많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아직 그 이전 교회들이 행하던 이교적 습관들과 플라톤 철학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교도적 관습을 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존재했으며, 마12:32절과 고전3:12-15절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연옥 사상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연옥과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 대한 어거스틴의 잘못된 이해는 신국론 21권 24항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어거스틴의 잘못된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로교 신학에서 칼빈과 함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그의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진리를 지켜낸 노력과 함께 정통 기독교신학의 토대를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는 오랫동안 기독교의 중요한 라이벌 종교 중의 하나로서 당대의 진실된 과학적 신학 체계를 대표하며 젊은 지성인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고 있던 마니교에 대항, 논박하기 위하여 <자유의지론>과 <창세기에 관한 마니교 반박>, <가톨릭교회의 관습과 마니교도들의 관습>을 저술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국론 7권에서는 이교도들의 잘못된 종교를 반박하며, 8권에서는 플라톤주의를 일반 계시의 영역 안에서는 기독교 신앙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참 하나님을 아는 데 실패하여 결국 많은 신들을 섬기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설명함으로 플라톤 철학의 태생적 한계를 드러내 주었습니다. 이어지는 9권과 10권에서는 마귀와 천사들에 대한 플라톤주의자들의 오류와 함께 그들의 철학적 신념 때문에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어리석음을 가리켜 이렇게 정죄했습니다.

"이 비참한 피조물들에 관해 말하자면 이들은 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들은 자기들의 질병을 뽐내면서, 자기들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을 복용하기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은 위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파멸적으로 타락하는 길을 확고하게 다지고 있는 것이다."

14권 5번에서는 신체에 관한 플라톤주의자들의 생각은 마니교의 생각보다는 나으나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기에 배척해야 함을 밝혔습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인식하였던 이교도적 사상과 플라톤주의를 교회 안에서 몰아내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하여 성부와 성자의 동일 본질 문제는 일단락되었으나 아직 총체적으로 정리되진 못했습니다. 어거스틴은 20년에 걸쳐 완성한 저서인 삼위일체론을 통하여 "셋의 하나(Oneness in three)와 하나인 셋(three in one)" 개념을 신학적으로 성공적으로 정립하여 삼위일체 교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신적 실존의 단일성을 크게 강조하면서, 그 단일성 안에 셋의 개념과 함께 반대로 셋의 개념 속에 단일성이 함축되어 있음을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삼위일체 개념은 개신교회의 삼위일체 교리의 마지막 귀결인 아다나시우스 신경(정통 신앙의 수호자요 대변자였던 아다나시우스의 이름을 딴 신경)에 그대로 표현되었습니다. 섭리적 삼위일체론 이후 계속되어온 종속주의의 색채를 완전히 제거할 뿐 아니라 삼위일체의 각 위격이 동등한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했으며, 성령의 출래를 "아버지와 아들에게"서로 확립하므로 서방교회의 기본 자산이 되어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정을 수정하게 했습니다(다만 한 하나님이 삼위일체라는 강조에도 불구하고 한 실체보다는 위격들을 독립적으로 생각하도록 하였고, 또 성령의 출래를 아버지와 아들에게로 확정했지만, 출래에 대한 설명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칭의론 정립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부인하지는 않았어도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를 조화시키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서방교회는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했습니다. 인간의 원죄와 원죄의 직접적 전가설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서방의 인간론이 어거스틴을 통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펠라기안과의 논쟁을 통하여 그의 칭의론을 체계화했습니다. 펠라기우스가 원죄를 부인하여, 선과 악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며, 아담의 죄는 아담 자신에게만 국한되며 전 인류에게 전가되지 않았으므로 인간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으며, 적어도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협력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며 다만 선행과 악행 가능성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므로 그 책임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어거스틴은 펠라기안과의 논쟁 이전에 하나님의 자비 외에는 참 소망이 없으며,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펠라기안과의 논쟁을 통하여 더욱 체계화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전적부패와 불가항력적 은혜에서 그의 구원론을 시작합니다. 그는 인간의 상태를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상태(최초 인간 아담의 상태)”,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상태(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전 인류의 상태로 죄를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구원이 완성된 상태)”로 나눕니다. 그는 아담의 죄의 전가로 인하여 전 인류가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노예의 상태로 규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능력에 의한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범죄한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원 받은 인간은 하늘에서 구원이 완성됨으로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어거스틴의 인간론이며 구원관입니다.

어거스틴은 원죄를 전가 받은 인간은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 율법으로 구원 받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며 은혜와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사도 요한의 고백과 함께 율법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선행은 은혜의 결과이지 결코 선행이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어거스틴의 가르침이야말로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오직 은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불은 태우기 위하여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고, 타고 있으니까 뜨거운 것이다. 바퀴는 둥글게 되기 위하여 구르는 것이 아니라, 둥글기 때문에 구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도 은혜를 받기 위하여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은혜를 받음으로써 그는 선행을 행할 수가 있다(Question of Simplicianus, 2nd Question3).”

“하나님의 부르시는 자비가 앞서지 않고서는 아무도 믿지 못하며, 부르심을 받을 때만이 인간은 믿고 의롭다하심을 받으며 선을 행할 힘도 부여 받는 것이다. (Question of Simplicianus, Ⅱ.7).”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받고 사랑으로 선행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하여 먼저 믿도록 명령 받는다(Question of Simplicianus, Ⅰ,21).”

이 하나님의 부르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며 따라서 그것은 펠라기우스가 주장하듯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스스로가 거부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어거스틴의 은총론은 예정론의 입장을 취합니다. 그는 예정 받은 자들이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예정 자체가 신적 기원을 갖는 것이기에 불변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불가항력적인 것이므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이중예정론과 함께 성도의 견인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누구에게 신앙을 허락하실 것인지 하나님께서 미리 알지 못하시었다고 누가 감히 말하겠는가? 그가 누구에게 신앙을 허락하실지 예지하시었다면, 누가 우리를 구원하실 그의 자비도 또한 분명히 예지하시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의 예정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예지와 작정이다. 이로써 성도들은 확실히 구원 받는다(Corre, et gratia.3.23).”

이렇게 성경적 구원론을 정립시킨 어거스틴의 노력을 통하여 펠라기우스와 그의 제자 켈레스티우스는 칼타고에서 정죄를 받아 더 이상 사역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후 동방의 에베소로 가서 네스토리우스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했지만 얼마 후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네스토리우스와 함께 모두가 정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구원관은 루터와 칼빈에게도 영향을 주어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그의 구원관이 정통신학으로 다시 한 번 검증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이런 큰 업적에도 불구하고 "세례"와 "연옥", "순교라는 공덕을 통한 죄사함"이라는 가르침은 오늘날의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큰 오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근본주의 진영에 있는 분들의 시각에 이러한 어거스틴의 잘못된 사상이 로마 카톨릭이라는 거대한 이교도 집단의 교리적 토대를 놓았기 때문에 결코 그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리사의 발전과정에서 정통신학을 형성하는 시기에 살았던 어거스틴 본인도 어쩌면 그냥 늘 해오던 것, 교회의 관습이었기에 경솔하게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세례 하나만 봐도,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틴이 어린 시절 죽을 병에 걸리자 죽기 전에 세례를 받게 하려고 했으나 병세가 호전되자 세례를 연기했습니다. 당시 서방교회에서는 세례를 받으면 죄가 사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죽기 전에 세례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그의 신학적 한계는 아니었을까요?

당시 유행했던 마니교를 반박할 뿐 아니라 교회 안에 만연했던 이교주의와 플라톤주의, 펠라기안과 대치하여 몰아내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교회의 전통과 관습으로 행해져 왔던 잘못된 세례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순교라는 공덕에 대해서는 별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그의 신학적 한계로, 이후 세대에게 개혁의 대상으로 넘겨진 것이 아닐까요?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어거스틴의 가르침에 상당수 의지하여 그의 논지를 펼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거스틴의 잘못된 성경 해석과 오류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로마카톨릭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어거스틴의 오류를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개혁되어야 할 필요성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일례로 로마카톨릭이 어거스틴의 가르침을 근거로 연옥을 주장하자, 칼빈은 기독교강요 3.5.10에서 고대교회의 잘못된 관습과 어거스틴의 신학적 오류를 그대로 받아들인 로마 카톨릭에 대해서 “자기의 시대도 판단의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교회를 부적당한 기초 위에 세우는 사람은 모두 그 공력을 잃어버릴 것(고전 3:11-15)”라고 가르친 바울의 말을 인용하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지는 논증에서 우리의 기도는 마땅히 이전 세대의 관습을 좇을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은 반드시 성경적으로 교정돼야 함을 강조하면서 로마카톨릭의 연옥설의 비성경적인 부분을 드러냈습니다. 칼빈 역시 어거스틴을 교회사 가운데 큰 스승으로 존중했지만, 그의 신학적 오류까지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도록 교정하면서 신학을 전개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개혁주의 신학을 따르는 신학도들은 칼빈의 자세를 따라 오늘날 우리에게 전수된 신학을 더 개혁주의적으로 발전시키는 자세를 우리의 사명으로 여겨야만 합니다. 이것이 어거스틴과 칼빈을 존중하는 진정한 자세입니다. 그들도 우리를 통하여 그들의 신학에서 발견될 수 있는 오류가 더 성경적으로 교정된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어거스틴이나 칼빈과 같은 교회사의 거목들을 스승으로서의 존경해야 되지 숭배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그들이 숭배의 대상이 된다면 우리는 그들의 신학적 오류에 대해서 감히 언급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그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에 개혁주의 입장의 조직신학 책을 보시면 그들의 오류를 교정해가는 노력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빙크, 하지, 벌콥의 조직 신학 책을 보시면, 신학을 전개해 갈 때 단순히 어떤 개념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운데 교부들은, 로마카톨릭은,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은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핀 후에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며 가장 성경적이고 논리적인 결론으로 이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인간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기 위하여 교회사의 중요한 신학자일지라도 다시 한 번 점검하며 교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주의의 정신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우리에게 전수된 신학을 더 개혁주의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때, 그 발전은 교회를 더 견고한 진리의 터 위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

 

- 참고서적 -
박용규, <초대교회사>
서철원, <교리사>
벌코프, <조직신학>
존 칼빈, <기독교강요>
아우구스티누스,<신국론>, <고백록>
앨리스터 맥그라스, <이신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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