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방언과 함께 평화롭게 목회하는 목사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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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방언과 함께 평화롭게 목회하는 목사님들께
  • 정이철
  • 승인 2016.10.09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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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현대 방언에 대해 그 동안 연구한 것을 집약하여 강의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 가서 계획대로 강의를 하고, 또한 잘 녹화하여 인터텟에 올리면 이후에는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말하고 강의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자는 어떤 분의 제안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를 바란다.

사실 현대 방언의 문제는 너무도 예민하고 치열한 영적 전쟁의 분야이다. 그리고 관련된 사람들의 자존심과 감정 문제가 치밀하게 결부되어 있어 더욱 힘든 문제이다. 그래서 자신의 교회의 무난한 부흥과 평안을 바라는 목사들은 절대로 건드리거나 뛰어들어서는 안 되는 분야이다. 평안하게 목회하다가 은퇴하기를 바라는 목회자라면 절대로 현대 방언의 진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현대 방언의 문제는 참으로 무섭고도 더러운 사탄의 덫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나는 현대의 방언에 대한 성경적이고 굽히지 않는 자세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 얼른 돌아보아보니 우리 교회에 있었던 열성있는 몇 가정이 방언 문제로 교회를 떠났다. 우리 교회처럼 작은 교회에서는 헌금도 하고 열성도 있는 몇 가정은 엄청난 자산이다. 그런 분들은 장래의 더 큰 부흥(?)을 만들어 내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방언으로 대표되는 신앙 노선의 차이로 한 가정 씩 떠날 때마다, 북극의 얼음 바람이 나의 가슴 속으로 몰려들어오는 것 같은 추위를 나는 경험했다.

현대 방언의 문제는 같은 하나님 안에서의 다양한 신앙의 특징이라고 볼 문제가 아니다. 현대 방언의 문제는 성경의 하나님인가? 하나님을 위조하는 다른 신인가? 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방언의 문제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고, 방언 문제는 반드시 방언에 잡힌 사람들에게 “이 교회에 그대로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로 귀결되어진다. 그때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견디었다.

“서로 섬기는 신이 다르면 자기 신의 역사와 인도를 따라 각자의 길을 가는 것 외에 다른 무슨 길이 있겠는가? 지금 우리 교회는 망하는 것이 아니고 더 거룩해지고 있는 중이다!”

현대의 방언은 영혼들을 더럽히기 위해 마귀가 교회에 밀어 넣은 가장 더럽고 고약한 배설물이다. 현대의 방언은 영혼들을 사냥하기 위해 마귀가 교회에 풀어 놓은 가장 짜릿한 마약이다. 이 무섭고 어려운 영적인 싸움을 알지 못하고 목회하는 목사들은 진정한 목사가 아니다. 또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조금이라고 알면서도 자기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편히 섬기기 위해, 교회의 부흥과 평안한 목회를 위해 일부러 피하는 모든 목회자들은 나중에 죽어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특히 성령의 역사는 다양하다며 현대의 방언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치고,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즐기고, 다른 사람과 교회에 피해를 주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거짓된 목회강령을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목회자들은 이미 사탄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 그런 목회자들은 장래의 하나님의 저주와 미움을 넘치게 예약받은 불쌍한 거짓 목회자들이다.

삼일교회의 송태근 목사님처럼 현대의 방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린도전서 14장을 강해하겠다고 섣불리 나서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유명한 목사님들이 한국 교회에 너무도 많다. 목사님들은 현대의 방언에 대해서 긍정하건 부정하건 간에 적어도 다음의 내용들에 대한 고민을 해 본 후에 현대의 방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든지 말든지 했으면 좋겠다.

1)성경의 방언은 실제 외국어였는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하늘의 언어였는가?

2)성경의 방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은사였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방언을 준 사람을 통하여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명하는 은사였는가?

3)성경의 방언이 실제 외국어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성경에 많다. 그런데 왜 오늘 날에는 성경에 명백하게 나타난 외국어 방언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그 대신에 방언을 받았다는 99.9%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셨다는 천사의 언어(하늘의 언어)로 기도한다고 한다. 결국 하나님이 자신에게 기도를 한다는 것인데, 이게 하나님을 모욕하고 놀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4)현대의 방언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한다고 주장되고 있는데, 하나님이 몰라서 우리가 알려드려야 할 ‘비밀’은 대체 무엇인가?

5)성경은 방언과 방언통역이 반드시 함께 역사하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왜 오늘 날에는 통역하는 은사를 받는 사람이 없는가?

6)방언을 통역한다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날지라도 같은 방언 녹음테입을 가지고 모두가 다르게 통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7)현대의 방언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방언이라면, 그와 더불어 방언통역의 은사도 나타날 것이다. 만일 지금 방언통역의 은사가 정말 누구에게 있고, 그 사람의 통역을 통해 얻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계시인가? 특별계시가 아닌가? 특별계시이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야 하고 반응해야 하는가? 그 내용을 성경의 본문에 추가시켜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2016년 판 성경의 부록을 만들어 기록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인가?

8)왜 성경 완성 이후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것처럼 방언은사를 통해 전도하고 교회를 섬겼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교회사에서 찾을 수가 없는가?

9)성경의 완성 이후 방언을 주장하고 활용했던 사람들은 왜 대부분 ‘이단’ 또는 ‘불건전한 그룹’으로 간주되어 정통 교회의 역사에 포함되지 못하였는가?

10)왜 이레니우스, 크리소스 톰, 어거스틴 등의 초대교회의 저명한 신학자들의 저술과 그들이 고린도전서를 강해할 때 “이전에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었던 방언이 이제는 사라졌고 교회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주석하였고 가르쳤던 이유는 무엇인가?

11)현대의 방언운동의 역사는 불과 110년에 불과하다. 초대교회, 중세교회, 종교개혁시대, 근세교회사에서 성경의 방언이 관심이 되었던 적이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서 자기의 몸 된 교회에서 2천년 동안이나 방언을 사용하시지 못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탄생한 그의 몸 된 교회가 머리되신 그리스도보다 강하여 하나님의 방언을 압살했다는 것인가?

12)방언이 활용되었던 사도행전 시대 이후 2천년이 지나 다시 이상한 방언을 미약하게 불러일으킨 1800년대 말 영국 사람 에드워드 어빙은 인간의 타락을 부정하였고 불건전한 환상 등을 좇아간 신비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보면 현대의 방언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할 수있겠는가?

13)최초로 방언-성령세례 이론을 1900년 초 미국 사람 찰스 펄햄은 자신을 마지막 세례요한(엘리야?)라고 주장했고, 자신의 방언 운동으로 새로운 사도들의 신앙시대가 시작되었다면서 추종자들을 모아 시가행진까지 했었다. 오늘 날의 신사도 운동의 원조였던 것이다. 이런 이단을 통해 시작된 현대의 방언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

14)1906년의 아주사 거짓부흥을 통해 현대 방언을 전 세계에 퍼뜨린 윌리엄 세이모어는 자신들의 방언을 통해 하나님의 직통의 말씀(예언)을 받을 수 있고, 외국에 가서도 선교에 직접 활용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 말대로 외국에 가서 실험해 본 그의 제자들은 모두 좌절을 경험했을 뿐이다. 그 뒤로 그들의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고 하늘의 기도의 언어라고 다시 각색되었다. 이런 자들이 시작한 현대 방언을 믿을 수 있겠는가?

15)방언으로 사도행전 시대를 재 점화했다고 자부한 찰스 펄햄과 그의 제자 아주사 거짓 부흥의 주도자 윌리엄 세이모어는 아주사 거짓 방언 부흥의 현장에서 오랜 만에 재회하였다. 그러나 스승인 펄햄이 제자인 세이모어의 방언운동의 실상을 보고 “마귀의 매춘 행위를 중단하라”라고 강력하게 조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 세이모어는 스승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시는 설교의 기회를 주시도 않았다. 이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다시 보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일으킨 현대의 방언이 하나님의 선물이겠는가?

16)바울이 고린도전서의 단 한번 ‘방언기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했던 알쏠달쏭한 내용들은 왜 바울 사도가 다른 곳에서 가르친 성령의 은사 등에 대한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인가?

17)현대의 방언이 왜 다른 종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방언을 ‘변음’이라고 하고, 힌두교에서는 ‘쿤달리니 각성의 현상’이라고 하며, 몰몬교, 무속인들, 최면실습 등에서도 동일한 방언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18)현대의 방언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탁월한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귀하게 쓴 분들에게서는 현대의 방언이 나타나지 않았다. 기독교 지성과 성령의 실제 역사와 부흥에 관하여 최고의 인물이라고 인정받는 조나단 에드워드의 책 어디에도 현대의 방언기도가 권장되지 않았다. 스펄전, 요한 웨슬리, 성경주석으로 탁월한 설교자들을 키운 메튜 헨리, 삶이 설교였다고 알려진 오스왈드 챔버스,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았던 죠지 뮬러 ... 등의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에게서는 현대의 방언이 나타나지 않았다. 반대로 이단시비가 따라다니는 조용기 같은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현대의 방언이 일상으로 붙어다닌다. 이런 실제 상활을 보고서도 현대의 방언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현대의 방언을 인정하시는 목사님들께 드리는 부탁

지금도 방언, 환상, 예언 등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고, 다만 교회에 해를 미치지 않고 조용히 하면 된다고 공개적으로 가르치는 목회자님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싶다.

첫째, 더 이상 그런 말을 함부로 막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더럽히고, 거짓 방언으로 마귀가 교회를 유린하도록 앞장서지 말기를 바란다. 나중에서 죽어서 그렇게 말한 입술과 혀를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더 연구해 보기 바란다. 

둘째, 자신은 자신의 방언의 내용을 알면서 기도한다고 말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영적인 신령함을 과시하는 말을 신자들에게 흘리면서 자신과 신자들과 하나님을 속이는 방언하는 목사님들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왜 그 귀한 하나님의 음성을 혼자서 즐기시나요?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주신 그 방언의 말씀들을 핸드폰으로 녹음하시어 설교 중에 모든 성도들과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을 혼자서만 즐기고 다른 신자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은 죄악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본을 따라 다음과 같이 목사님에게 방언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직통의 말씀을 모든 신자들과 함께 나누시고, 목사님이 느끼시는 대로 통역을 하시어 녹음하여 모두에게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직접 당해보시기 바랍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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