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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님이 목회를 잘하면 좋겠다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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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7  12: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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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에 대한 최근의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유투브 창에서 자료들을 검색하다 전병욱 목사의 후임으로 삼일교회에 부임하신 송태근 목사님의 설교 “성령과 방언”(고린도전서 강해 25회)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송태근 목사님 정도라면 당연히 성경의 방언의 성격과 현대 방언의 특징의 차이를 아실 것이고, 많은 삼일교회의 청년들에게 바르게 가르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보았다. 그러나 전혀 예상 밖이었고 아주 실망스러운 내용들을 듣게 되었다.

현대의 방언이 기독교 본래의 방언인지, 아니면 중간에 끼어들어온 다른 신의 거짓 방언인지를 논의하려면 당연히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1)성경의 방언은 실제 외국어였는가 하늘의 언어였는가?

2)성경의 방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은사였는가? 하나님이 방언 받은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명하시는 은사였는가?

3)성경의 방언이 실제 외국어였다는 명백한 증거는 성경에 너무도 많다. 그런데 왜 오늘 날에는 성경에 명백하게 나타난 외국어 방언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방언한다는 99.9%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셨다는 천사의 언어(하늘의 언어)를 받았고, 그것을 가지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역으로 기도한다고 하는 것인가?

4)성경은 방언과 방언통역이 반드시 함께 역사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왜 오늘 날에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받는 사람이 없는가?

5)방언을 통역한다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날지라도 같은 방언 녹음테입을 가지고 각기 다르게 통역하여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6)현대의 방언이 하나님이 주신 방언이라면, 그것과 더불어서 방언통역의 은사가 더불어 주어질 것이다. 만일 지금 방언통역의 은사가 정말 누구에게 있고, 그 사람의 통역을 통해 얻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면, 그것은 특별계시인가? 특별계시가 아닌가? 특별계시이면 성경의 본문에 추가시켜야 하는가? 또는 2016년 판 성경 부록을 만들어서 기록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인가?

7)왜 성경 완성 이후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은사를 통해 전도하고 교회를 섬겼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교회사에서 찾을 수가 없는가?

8)성경의 완성 이후 방언을 선보이고 활용했던 모든 사람들은 왜 ‘이단’ 또는 ‘불건전한 그룹’으로 간주되어 정통 교회의 역사에 포함되지 못하였는가?

9)왜 이레니우스, 크리소스 톰, 어거스틴 등의 초대교회의 저명한 신학자들의 저술과 송태근 목사가 삼일교회에서 강해한 고린도전서 바로 그 본문으로 그들이 설교할 때 “이전에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었던 방언이 이제는 사라졌고 교회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주석하였고 가르쳤던 이유는 무엇인가?

10)현대의 방언운동의 역사는 불과 110년에 불과하다. 초대교회, 중세교회, 종교개혁시대, 근세교회사에서 성경의 방언이 관심이 되었던 적이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 자기의 몸 된 교회에서 2천년 동안이나 자신의 소중한 은사인 방언을 사용하시지 못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불신앙적인 교회가 하나님을 짓눌러서 억압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죽였다는 것인가?

11)방언이 실제로 활용되었던 사도행전 시대 이후 2천년이 지나 다시 이상한 방언을 불러일으킨 1800년대 말 영국 사람 에드워드 어빙과 1900년 초 미국 사람 찰스 펄햄과 윌리엄 세이모어는 왜 이단성있는 불건전한 사람들, 심지어 오늘 날의 신사도 이단운동의 조상으로 간주되고 있는가? 그런 사람들이 시작한 방언운동을 과연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2)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단 한번 ‘방언기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했던 알쏠달쏭한 내용들은 왜 바울 사도가 다른 곳에서 가르친 성령의 은사 등에 대한 말씀들과는 상반되는 내용인가?

13)현대의 방언이 다른 종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방언을 ‘변음’이라고 하고, 힌두교에서는 ‘쿤달리니 각성의 현상’이라고 하며, 몰몬교, 무속인들, 최면실습 등에서도 동일한 방언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청년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한다는 삼일교회의 담임 송태근 목사가 방언에 대해서 설교를 하였다면, 적어도 위의 중요한 핵심 포인트들 중의 몇 개는 논의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송태근 목사의 설교에서는 전혀 이런 중요한 내용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방언은 사도들의 증거였고 사도들의 시대가 갔으니 방언도 사라졌다고 한다는 이론이 한 동안 설득력을 가졌는데, 이 주장에 문제가 많다”라고 하면서 자신은 현대의 방언이 하나님이 주신 방언이라고 믿는다고 다음과 같이 삼일교회의 신자들에게 가르쳤다.

“송 목사의 견해는 뭐냐하면, 오늘 날 여전히 은사가 진행되고 있고 특별히 방언의 은사도 존재한다는 입장에 저는 서 있습니다. 이 분들이 학자이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방언이라는 은사에 대해서 주관적이고 부분적인 이해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을 했다고 해서 그 분들을 ‘이단이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송태근 목사)

송태근 목사는 자신이 성경의 방언과 현대의 방언에 대해서 실질적인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매우 기초적인 상태에서 현대의 방언을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하는 주장 몇 개를 섣불리 소개하면서 지금 현대의 방언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신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의 방언과 성경의 방언이 다르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현대 방언운동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학자들과 목회자들에 대해서는 굳이 “이단이라고 말 할 필요는 없다”라는 일종의 적반하장 식의 자신의 관대한 태도를 삼일교회의 신자들 앞에서 과시하였다.

그러면서 송태근 목사는 현대의 방언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책 한 권을 소개하였다. 자신도 그 책을 통해서 현대의 방언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 책은 요즘 이상한 방언전도사라고 회자되고 있는 평택대학교 김동수 교수가 쓴 <하늘의 언어>라는 책이다.

“제가 이 설교 내용을 준비하면서 많이 도움이 되었던 책 중의 하나는 <하늘의 언어, 방언>이라는 책인데, 비슷한 제목들이 많아요! 엉뚱한 책들을 보면 안되요! 김동수 교수가 쓴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제가 읽었고 부분적으로 동의도 하고 인정을 합니다 ... 대체적으로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성경을 기초로 설명을 잘했다는 판단이 듭니다”(송태근 목사)

평택대학교 김동수 교수는 한국의 괴상한 대표적 방언분여자 김우현 감독, 손기철 장로, 부채도사라고 알려진 김하중 장로 등을 통하여 사도행전적 성령의 부흥이 나타나고 있다고 격찬하는 사람이다. 김동수 교수의 방언에 대한 이론에는 너무도 심각한 내용들이 많다.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예장 합동 총회의 대표적 젊은이들의 교회인 삼일교회의 담임목사가 김동수 교수의 방언에 대한 책을 신자들에게 소개하고, 자신이 그 책으로 방언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김동수 교수의 방언 신학이 매우 성경적으로 잘 정립되었다고 격찬한다.

이 사실을 과격하게 다르게 표현한다면 예장 합동 총회의 신학은 이미 죽었고, 더 심한 말로 삼일교회가 앞으로 지저분한 산당으로 변질되는 것은 분명히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송태근 목사가 방언에 대하여 탁월한 책을 썼다고 삼일교회의 신자들에게 격찬하고 소개한 평택대학교 김동수 교수가 어떤 사이비 방언 사상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영상 하나로 여기에 대해서는 말을 줄이고자 한다.

어떤 사람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와 같은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도 참으로 즐겁지가 않다. 그런데 이 내용을 접하니 “한국 교회가 이대로 가면 안 된다”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고, 나의 이미지가 사나워져서 우리 교회의 목회에 더 손해를 가져올지라도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삼일교회 개척자 전병욱 목사는 여신도들을 성추행했고, 교회를 더럽히는 성적인 죄악을 범했으므로 삼일교회를 떠났고, 지금까지도 많이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 그러면 그 후임으로 온 송태근 목사는 그 보다 더 낳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송태근 목사는 그릇된 신학과 가르침으로 삼일교회의 젊은 수많은 신자들에게 거짓 방언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었다. 더 나아가 거짓 방언을 인정하고 사모하게 만들어서 거짓 방언으로 교회와 영혼들을 사로잡고 지배하는 거짓 영들과 신자들이 부담없이 놀고 간음하게 만들었다.

여신도를 육체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이전의 전병욱 목사가 저지른 죄악과 신자들의 영혼들이 마귀와 교합하고 간음하도록 가르치고 인도한 송태근 목사의 죄악, 과연 어떤 것이 더 무섭고 무거운 것일까? 송태근 목사가 참 귀한 분으로 알았는데, 너무 실망되었다. 그래서 송태근 목사가 삼일교회에 부임한 이후 처음으로 삼일교회의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삼일교회의 새로운 시작 금요영성집회(매주 금요일 9시)”라는 제목의 대문짝 만한 베너 광고를 보았다. 도대체 영성집회라는 것은 무엇인가? 영성이란게 뭔지 궁금하다. 대체 영성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신자들에게 영성을 가지게 한다는 것인가? 사진을 보니 매우 좋은 무대를 만들고, 전문적인 조명도 가동하면서 노래를 제대로 부르고 ... 그러면서 금요일 밤마다 청년들을 모아 기도를 하게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그 영성이 생겨나고 늘어나는 모양이다.

삼일교회의 신자들이 ‘금요영성집회’라는 타이틀을 볼 때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기독교도 영성을 수련하는 종교라고 알게 될 것이다. 송태근 목사에게 물어보고 싶다. 기독교는 경건을 추구하는 종교인가? 영성을 추구하는 종교인가? 경건을 표방하고 나아가면 신자들에게 은혜가 덜하고 교회 부흥이 부족해지는 걸까? ‘경건’ 대신에 ‘영성’을 표방하고 나아가면 더 은혜가 많아지고 교회가 더 세련되어지는 것인가?

왜 하필이면 영성을 표방하는 것인가? 기독교에서 영성이라는 개념은 대략 두 부류들이 발전시켰다는 것을 대부분이 알고 있다. 이방 종교의 진리탐구 및 해탈에 이르기 위한 수행방식인 ‘명상’을 기독교에 도입한 천주교의 토마스 머튼, 그에게서 영향받은 미국 기독교의 비성경적인 기도사상가 리차드 포스터, 다원주의 성향과 동양의 신비종교를 미화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왜곡한 성경번역 “The Massage"를 출판한 유진 피터슨, 그리고 그들에게서 영향받은 한국의 이동원, 강준민, 최일도 목사 등 관상기도(예수기도), 레노바레 운동 가담자들, 그리고 아무 개념도 없이 영성이라는 말을 수용한 옥한흠 목사가 만든 앞서가는 목회자들의 모임인 ‘교회갱신협의회’(교갱협) 등이 앞장서서 이 용어를 퍼뜨렸다.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또 다른 한 그룹은 성령운동, 기름부음 등의 비성경적인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다. 성령사역, 성령운동, 성령집회 등의 명칭 하에 거짓 방언, 금이빨, 쓰러짐 등의 현상들을 신자들에게 접목하여 귀신과 영혼들이 교합하게 만드는 귀신 사역자들이 매우 좋아하는 용어가 영성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일을 앞장서 도입한 알파코스의 선구자되는 어떤 사람은 자신이 영성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한국에 도입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 두 부류와 무관하게 영성이라는 단어를 표방하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영성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기도 하다. 대체 송태근 목사가 생각하는 영성은 무엇일까? 혹시 방언 등의 접신 체험의 영성을 성령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병욱 목사 때의 삼일교회보다 송태근 목사 때의 삼일교회가 더 건강하고 성경적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나 같은 보잘것 없는 목사는 저렇게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삼일교회의 근처에 가 보지도 못하지만, 송태근 목사는 그 중심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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