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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방언은사가 거짓인 이유는 무엇인가?외국어 아닌 방언은 거짓이거나 악한 영의 장난
권동우  |  wmsf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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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1  21: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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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야 라샤카파테 라시야다 로야로 바칸나기 리키키고 나카치 
라시카파타리 니미카니야 아파타카카야 시키키코 바야"


위의 방언은 몇 문장 정도인데 통역은 엄청나게 길다. 실제 지구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데, 언어로서의 구조가 없고 일관성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리피야' :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너는 내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느냐
'라샤카파테' : 내가 구만리 장천 멀리 하늘 위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라시야다' : 땅 끝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땅을 파야 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로야로' : 아니라 !십자가를 통하여 내가 너희 속에 들어와 있고
'바칸나기' : 너희 숨과 함께 있고 너희 생명 속에 함께 있도다
'리키키고' : 내가 너를 붙들어 주고 너를 도와주기를 바라노라
'나카치' : 너희가 나를 모르는도다 나를 알라 나를 깨달으라라
'시카파타리' : 나를 의지 하라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듣고
'니미카니야' : 기필코 내가 살아계신 능력을 너에게 나타내 주리라
'아파타카카야' : 영광을 보여 주리라 뜻대로 되게 만들어 주리라
'시키키코' : 하나님의 영광의 뜻이 임하여서 너희 속에 나타나게 할 것이다
'바야' :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며 담대하고 강하라


이 방언을 녹음하여 방언통역의 은사를 받았고 신령하다는 4분에게 방언통역을 맡겼더니, 통역이 모두 제각각 이었다. 즉 방언도 외국어가 아닐 뿐 아니라 방언통역도 모두 가짜였다. 

이런 방언과 통역은 모든 종교에 존재한다. 아래는 가톨릭에서 오순절주의자들에게 받아들여 시작하게 된 성령쇄신운동의 모습이다. 끝부분에 방언을 직통계시로 통역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것은 성령의 은사인가.. 악령의 은사인가.. 아무것도 아닌 흉내인가?

 


방언의 정의는 오순절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14개 나라 이상의 실제 외국어가 나타나 각 나라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게 되었던 것으로 완벽한 외국어를 의미한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8) 
 

은사주의자들은 방언은 외국어 방언이 아닌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언이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서 "방언을 말하는 자는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한 표현 하나를 근거로 삼는다.

러나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는 표현은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서 15절까지 전체 문맥을 살펴보면 '영으로 말한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데, 긍정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9절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1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3절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절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위에서 바울은 2절에서 통역없이 방언을 한다면 알아 듣는 자가 없기에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허공에다 말하는 것과 같기에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통역을 하지 않고 방언을 말한다면 말하는 자나 듣는자나 모두가 외국인(foreigner)이 된다고 표현하였는데, 이 표현은 고전 14장의 방언이 외국어 방언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통역없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면 영이 하는 것으로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하기에 바울은 영으로 또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양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 통역이 없는 것은 현대방언이 가짜라는 것을 드러내 준다.

은사주의자들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은 외국어로 인정하면서 고전14장에 나오는 방언은 외국어가 아닌 다른 방언(옹알이방언, 따따따방언, 천국방언)이라고 말을 한다. 그들의 주장처럼 고전14장이 외국어가 아닌 방언이 아니라고 백만 번을 양보를 하더라도 14장의 문맥 전체를 보면 방언통역이 아주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절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13절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26절 "너희가 모일 때에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절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절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이것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방언에 대한 통역이 반드시 은사로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방언의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이 방언통역의 은사를 주실 수 없는 분인가? 13절의 말씀처럼 방언을 하는 자들은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셨기에 하나님께서 방언통역의 은사를 주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통역을 주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두세 사람의 차례를 따라 방언을 하고 통역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킬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수백만 명이 방언을 하는데 통역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두 세 사람이 방언한 후 차례를 따라 통역을 해야 하는데, 왜 통역의 은사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검증을 해보면 전부다 거짓된 통역들일까?

바울은 23절에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들어와서 미쳤다고 하지 않겠느냐 라고 말을 하면서 통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3절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미쳤다고 할 것 이라는 바울의 경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방언을 하려면 통역을 해야 한다고 했고 만약 통역이 없다면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였는데 교회는 이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서 교회에서 방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교회들은 성경을 따르지 않고 있다. 

현대방언의 모습들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방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분명히 교회에서 통역이 없다면 집에서만 하라고 햇것만, 오늘날 교회들은 많은 경우 인도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통성으로 방언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행태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교회에서는 통역하지 않고서는 교회에서 방언을 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이런 기본적인 말씀들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대방언이 과연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인지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무질서하게 방언을 하고 성경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통역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는 통역도 없는 이상한 형태의 방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통역은 왜 없는 것이고...왜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을 따라 방언을 하지 않는 것인가? 그러면서 "따따따 랄랄라" 방언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말을 하는데, 그런 은사를 하나님이 성경 어디에 약속을 했는가? 

오늘날의 방언에 통역이 없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방언이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2. 고전 14장은 예언의 탁월성을 강조하는 장이다.

바울은 정작 방언에 대한 내용을 전개해나가는 14장 1절부터 예언의 은사의 탁월함을 강조하고 있다. 방언에 대하여 통역이 없다면 교회의 덕이 세워지지 않고 예언하는 자만 못하다고 말하고 있다.
 

1절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4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24절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절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29절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2절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예언을 하라고 한 이유는 14: 24-25절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그러나 오늘날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예언을 한다고 했지만, 모두 다 거짓으로 드러나거나 그들의 열매가 모두 거짓된 열매로 드러나지 않았는가?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다 예언을 하면 하나님이 전파된다고 했는데, 왜 오늘날의 교회는 예언의 은사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가? 

방언통역의 은사나 숨은 사람의 마음을 모두 드러내는 예언의 은사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검증될 수밖에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지만, 방언은 흉내 낼 수 있기 때문 아닌가 !! 

오늘날에도 은사가 지속된다면 바울의 말처럼 방언보다 예언을 더 사모하고 예언을 하여 사람들의 숨은 일들을 드러내게 된다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고 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예언을 찾아볼 수가 없고, 거의 예언을 한다는 사람들의 열매들이 거짓된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쇠하여 진 것일까?
 

3. 성령의 능력을 가장한 거짓된 인간의 속임수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려고 하되 한국말로 하려고 하지마라~!"(유기성 목사)

 

(방언전도사 김동수 교수가 알려주는 방언받는 비법)

 

성령의 은사도 훈련으로 받게 하는 성령사기꾼들과 성령을 훼방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할렐루야 30번 빠르게 하는 전통방법과 차별화해서 와따따따~ 방법이 나왔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방언에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분별하지 않는 사람들.. 과연 당신이 말하는 이상한 언어가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인가?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소리가 성령을 훼방하지 말라는 말이다. 결국은 은사를 인위적으로 받게 하는 자신들이 성령이기에 자신들을 훼방하지 말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언은 모두 거짓이거나 악한 영에 의한 방언이 전부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은사라면 통역되지 않는 은사를 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아니면 은사주의자들은 또 다른 주장을 세워야한다.

그것은 오늘날에는 방언은 은사로서 존재하지만 통역과 예언과 계시는 초대교회에서 끝났다는 논리다. 물론 이런 논리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장하지 못한다.

인간의 훈련으로 할 수 있는 방언을 성령이 주시는 은사라고 사기를 치는 대다수의 목사들과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는 것이고 또, 악한 영의 신 내림을 받아 기독교 무당으로 활동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로 둔갑되는 것을 올바른 영적분별력으로 검증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4장을 보면 오늘날의 교회 상황과 너무나 다른 참 낯선 말씀들이 많이 나온다. 

차례들 따라, 통역할 것, 예언하는 자 둘이나 셋이 말하고, 분별할 것, 계시가 있으면, 하나씩 예언 등. 

그리고 특별히 여자는 교회에서 방언이나 통역이나 예언이나 계시나 교회에서 말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여자에게 방언을 말하게 하고 통역과 계시를 주실 수가 있을까? 과연 교회는 아래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고 있고 아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고 있는가?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고전 14:27-35)
 

상식적으로 살펴보아도 오늘날의 은사는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고린도전서 14장이 말하고 있는 것과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850명의 바알의 선지자가 제단 앞에 섰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제단 주위에 모여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부르짖으면서 서서 뛰고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고 머리털을 뜯고 살을 베면서 바알에게 기도했다. 

오늘날의 은사운동의 모습들을 보면 바알의 선지자들이 응답 없는 신을 향하여 하는 행동들과 비슷해 보이기까지 한다. 제단에 불이 떨어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들의 발광만 보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방언과 통역, 예언의 은사들은 초대교회로 부터 종결되었다. 그것이 지속되었다는 어떤 기록도 속사도나 교부들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 초에 시작된 오순절운동이 드러내고 있는 열매와 결과는 그것들이 하나님께 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지 않는 은사주의자와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심판 날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 어떤이들은 필자가 방언체험도 해보지 않고 방언을 비판하는 줄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필자는 28년전 방언체험으로 신앙생활이 시작되었고, 통역을 받기위해 한얼산, 오산리 금식기도원에가서 금식을 하며 은사를 달라고 기도했었다. 그러나 수년간의 신앙생활 후 내가하는 방언이 성경이 말하는 방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심각한 좌절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계신것을 체험에 중심을 두는 신앙은 그 체험이 가짜라는 것을 경험할때 모든 신앙이 무너진다. 말씀에 기초한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동우 대표 (wmsfms@naver.com)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망상] 저자
킹제임스성경연구소 대표
한국 밥죤스신학교 Th.G
(주)스트리밍웨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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